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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22: 10~21 : 주님 무엇을 하리이까? ( 인생의 두 가지 중요한 질문 )
호산나교회 정태경 목사 2018년 12월 9일 주일 설교
< TV 설치한지 1년만에 TV와 프로젝트 두 개를 컴퓨터로 동시에 연결하고 비로소 둘다 보게 되었다 >
처음에는 컴퓨터랑 프로젝트만 연결해서 사용하다가 작년 다니엘 기도회 상품으로 TV를 선물로 받아서
동시에 연결해보려고 하다가 컴퓨터랑 맞지 않아서 사용을 못했다. 요즘 신형 TV는 RGB 연결선이 없다
프로젝터만 보던지 TV만 보던지 한 개만 보는것은 가능한데 동시에 연결이 안된다. 이것 저것 고민하다가 RGB 변환하는 선을 사서 연결해보기도 하고 HDMI 선을 사서 연결해보기도 하다가 결국 프로젝터와 TV 둘다 HDMI 선으로 연결하고 중간에 모뎀 분리기를 설치하고 이제 드디어 화면을 동시에 보게 되었다
그런데 컴퓨터에서 엠프로 나오는 소리가 안된다. 다시 고민하다가 TV에서 음성을 출력해서 엠프에 연결해서 소리를 나게 했다. 지금은 영상과 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화면이 소리보다 조금 늦게 나오는 단점 ^^
테크노벨리와 LG 고객센터에 여러 차례 전화와 방문, 현서 아빠가 와서 천정으로 선 연결하고 벽을 뚫었다
실패해도 그냥 포기하고 넘어가지 말고 열심히 노력하고 도전하면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을 깨닫는다
전문가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기계에 대해서 더 자세히 알게되는 좋은 경험을 했다. 수고한 분들에게 감사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뭔가를 해보다가 잘 안된다고 잘 모른다고 그냥 포기해버리면 새로운 세상을 열어갈 수가 없다 실패해도 좋으니 노력하고 도전해보고 일을 이루어 가기위해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한다
하다보면 반드시 조금씩 길이 보이게 되고 또 그 일을 도와주는 전문가가 있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
신앙생활 적용해보면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지만 세상에서의 실패가 도리어 주님을 만나는 기회가 되면 전화위복이 된다. 세상의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을 만나는 더 좋은 기회로 만들어가길 축복한다
( 인사 :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 만날 기회로 만듭시다. 주님이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실것입니다^^)
<문제제기> 지난 시간에는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후 주님이 누구신지 물어보는 것을 살펴보았다
그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질문했다. 첫째 주님 누구시니이까? 둘째,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이다
예수님은 어둠 가운데 있는 인생에게 큰 빛으로 다가 오시는 분이시다. 나는 세상의 빛 이다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독생하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고난 중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핍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분, 메시야 , 그리스도 구원자 다. 예수 이름의 의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분이다
또한 복음 성가 가사처럼 주님은 나의 선한 목자가 되신다 우리는 주님을 신뢰하며 끝까지 따라가는 양이다
주님은 나의 포도나무요 나는 그분께 붙어있는 가지다. 떨어지지 말고 그분께 꼭 붙어있어야 열매를 맺는다
주님의 나의 신랑 나는 그분의 신부다 순결한 결혼 언약처럼 서로 사랑하며 영원히 변치 않는 믿음으로 살아가자
주님은 나의 사랑 나의 전부다. 주님은 나를 전부를 내어 주시면서 사랑하셨다. 나도 생명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자
그리고 요즘 새벽기도 시간마다 요한복음에 나타나는 7가지 자기계시의 주님 모습을 묵상하며 은혜를 나누었다.
나는 생명의 떡이다. 생명의 떡(밥,빵)을 생각할 때 언제라도 집에 오면 따뜻한 밥을 차려주시던 어머니손길 셍각
나는 세상의 빛이다. 길을 잃고 실패하고 어둠속을 헤매일 때 빛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의 은혜 생각
나는 양의 문이다. 우리를 지켜주는 울타리 같은 주님 생각에 감사. 말씀과 주일예배와 목사가 울타리가 된다
나는 선한 목자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으시는 주님 생각에 감사. 한영혼 때문에 천국잔치가 열리는 감격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의 죽음과 비석에 뭐라고 쓸까. 예수 믿어서 복 받고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간 사람. 사모님: 예수님을 신실하게 따라갔던 사람. 권사님: 볼품없는 나무가 예수님께 접붙임되어 좋은 열매 맺었던 사람
오늘은 인생의 중요한 두 번째 질문,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대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쉬운 성경으로 번역하면 “주님 제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 무엇을, 어떻게 할까요 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반드시 옛사람을 벗어버리면서 이제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하는 질문을 해야한다
주님을 만나기 전처럼 예전처럼 그렇게 살수는 없는 것이다, 무엇을 할까요? 어떻게 할까요? 물어보는 삶이 복된 삶이다. 주님께 인생의 문제를 질문하면 주님이 대답을 하신다. 그 대답을 듣고 순종하며 따라가는 삶이 복되다.
사명자반 공부중 사명자 노아 이야기가 나온다. 노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방주를 짓는 것이다. 주님은 세상의 타락을 보고 홍수로 심판하실것이라 예언하시면서 구원받을 사람들과 동물이 함께 탈 방주를 지으라고 하신다.
몇 사람이 탈지, 짐승이 몇마리 탈지는 모른다. 그냥 하나님이 알려주시는 모양과 크기대로 방주를 짓기만 하면 된다.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였더라고 말한다. 언제 비가 오고 얼마만큼 물이차고 방주가 어디로 가고 홍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언제 나갈지 어디에 살아야 할지도 모르지만 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 준행하였다고 말한다.
노아가 잘한 것은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의 말씀을 내게 주시는 구원의 말씀으로 알고 내 것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방주를 짓는 일은 누군가는 해야 한다. 실재로 방주를 지을 때 누군가 와서 돈을 받고 목수로 도왔을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방주를 짓기만 지었지 그 말씀을 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홍수가 시작되고 방주로 찾아 갔지만 아무소용 없었다 이렇게 방주 지을 때 홍수가 온다는 말씀을 미리 듣고도 무시하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않아야 한다.
말씀을 순종한 노아와 가족만이 생명을 구원받고 새로운 인류의 조상으로서의 삶을 살아갈수 있었다.
주님은 방주를 짓는 동안 오랜 시간을 기다려주신다. 방주에 들어가고도 비는 7일 후에 시작된다. 그 마지막 7일은 또 주님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사람들을 향한 기다림의 시간이다. 방주에 들어간 후에 7일 동안 비가 오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노아를 보고 미쳤다고 그럴줄 알았다고 말하수 있을 것이다. 그 시간은 비난하는 시간이 아니라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노아도 방주에서 7일을 기다리며 고민했겠지만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고 7일을 견뎠다
문제는 7일 후에 비가 올줄 알면 견디기가 쉽지만 의외로 그 기다림의 언제까지 인지 모르기 때문에 어려운것이다
주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삶은 의외로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삶일수도 있다
그래도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끝까지 견뎌야한다. 방주 안에서도 가족들도 심지어는 동물들도 이상한 눈으로 볼수 있지만 묵묵히 오늘 맡은 동물들에게 먹이를 나누어 주고 하늘을 향하여 난 창문을 향하여 기도하며 살아가는게 사명자의 삶이다. 한명이라도 더 구원받기 원하는 주님의 마음을 알고 간절히 중보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한다
방주의 문을 닫으신 분이 주님이신데 주님이 방주의 문을 다시 열고 방주에서 나오라 할 때 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어도 끝까지 인내하며 말씀으로 승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복한다.
‣해결(아하!) - 오늘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후 무엇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고백하는 것을 살펴 보면서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기를 축복한다 다같이 따라해봅니다 “ 주님 내가 무엇을 하리이까?”
첫 번째로, 사도바울이 한일은 다메섹으로 가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말씀에 순종하여 다메섹으로 간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똑같은 다메섹으로 가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핍박하고 자기 열심으로 가던 길이었다면
이제 주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주님이 원하시는 일을 위해, 내가 할 일을 알려줄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고 있다
같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이라도 전혀 다른 목적을 위해 가고 있다. 내 생각, 내 열심, 내 야망을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기위해, 주님이 원하시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가고 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렇게 삶의 목적이 바뀌는 것이다.
지금 나는 무엇을 하기 위해 가고 있는가? 나는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방향과 목적이 선명한 사람들이 되기를 축복한다
( 강정호 선수 세례식 감동 : 미국 프로야구 진출 후 잘 나가다가 여러 가지 좋지 못한 사건을 겪고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가게됨.
거기서 선교사님을 만나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됨. 그분들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을 보며 야구가 전부인줄 알았는데 하나님을 만나고
나니 야구보다 더 중요한게 있구나 깨달음. 더 소중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지금 당장 야구를 그만 두더라도 후회가 없다 .
아 이사람은 진짜구나 생각이 들었다. 우리 인생에 그렇게 소중하게 여기던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그 어떤것보다 주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길 축복. 이런 사람은 하나님이 멋지게 사용 하신다.)
두 번째, 사도바울은 다시 눈을 뜨게 되었다. 주님을 만나기 전에도 눈을 뜨고 있었지만 사실은 영적인 소경이었다
11절 사울의 고백이다 다같이 읽습니다 “ 나는 그 빛의 광채로 말미암아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정오에 밝은 태양보다 더 빛나는 빛으로 다가오신 주님을 만나는 순간 사울은 더 이상 볼수 없게 되었다
얼마전 의기양양하게 다메섹으로 갈 때만 하더라도 사울은 이스라엘 정치 종교계의 촉망 받는 차세대 청년 리더였다.
지금까지는 내 힘으로 내 열정으로 세상을 이끌어 왔고 내 눈으로 보고 내 생각으로 판단해 왔는데 주님을 만남으로 갑자기 멀쩡하던 눈이 멀어지게 되었고 더 이상 볼수도 없고 더 이상 다른 사람을 이끌어 갈수도 없고 이제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이끌려 가는 불쌍하고 연약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런 어려운 상황을 만난 것이 도리어 사울에게는 영적인 눈을 뜨는 전화 위복의 기회가 되었다
행9장 9절에는 사흘동안이나 보지 못하였다고 고백한다. 그 3일의 눈먼 시간이 사울에게는 자기 인생을 돌아보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나는 무엇하다가 여기까지 왔는가?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나는 앞으로 눈을 뜰수 있는가? 눈을 뜨게 된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살아야하나? 고민하며 기도하며 회개하는 시간이었다. 그런중에 있을 때 주님은 믿음의 사람 아나니야를 보내서 사울의 눈을 다시 뜨게 하신다. 13절 “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아멘
아나니아는 율법에 따라 경건한 사람이었다.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아나니아는 사울이 다메섹에 있는 믿음의 사람들을 핍박하러 오는 사람인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주님이 환상중에 나타나서
사울을 만나라고 말씀하실 때도 사울을 만나기를 주저했지만 주님이 사울을 복음을 위해 택하신 그릇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그에게 가서 안수하여 눈을 뜨게 하고 이방에 복음을 전하는 일군이라는 사명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시기에 아나니아는 순종하여 사울을 찾아온다.
사도 바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기를 찾아온 아나니아를 보고는 나는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라고 고백한다.
그때 아나니아는 사울을 형제로 불러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러하다 우리 모두가 예수가 필요한 죄인이다고 이야기 해준다.
그리고 피 묻은 사울의 손을 주의 십자가 사랑으로 용서해주고 그에게 세례를 베풀고 죄사함을 선포한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인임을 너무 잘 아는 사울에게 찾아와서 용서와 위로를 주면서 “형제 사울아” 불러주니 이 얼마나 감격적인 단어인가? 믿는 사람을 그렇게 원수같이 여기고 핍박하던 나를 형제라고 불러주다니 이 얼마나 위대한 용서의 말씀인가. 사울은 눈이 떠지기도 전에 벌써 마음이 뜨거워지고 감격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나니아가 와서 안수해 주고 간절히 기도할 때 사울의 마음은 회개와 감사와 은혜로 가득찼다. 안수하고 기도할 때 사울은 벌써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결단을 하고 있었다. 나도 이런 용서의 사람이 되리라. 나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는 사람이 되리라 나도 이렇게 어둠 가운데 있는 눈먼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사람이 되리라. 나도 주님께 쓰임 받는 사람이 되리라.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길 축복한다 아멘^^ 아나니아가 안수할 때 사울은 눈을 뜨게 되었고 즉시 그를 쳐다 보게 되었다.
사울의 눈에는 그에게 안수한 형제 아나니아가 보였지만 사울은 그를 통해 용서와 은혜의 주님을 만나게 된 것이다
아나니야 이름의 뜻이 히브리어로 하나냐 즉 하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다. 아나니아를 통해서 사울은 은혜의 주님을 만나게 되었다
사울은 이 사건을 통해 중요한 회심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다시 눈을 뜨게 됨으로 은혜의 주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소경 같은 내 인생의 눈을 뜨게 해주신 주님을 만남으로 사울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눈을 떠서 주님을 보라고 권면하고 있다
우리 모두 내 인생의 눈을 뜨게 해주신 은혜의 주님께 감사드리며 눈 먼자를 다시 보게 하는 멋진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길 축복
( 베트남 축구 대표 박항서 감독 화제. 그가 변화된 계기. 아내의 전도로 예수 믿고 변화됨, 불교 신자인 어머니 전도, 생초교회출석
히딩크감독 만남: 영어를 못한다는 말에 영어에 도전. 베트남으로 해외 진출, 베트남 선수들이 영어공부에 도전, 선교사님들이 감사 )
예수 믿고 눈을 뜨라. 남편 전도하라, 어머니 영혼위해 기도하고 전도해라, 좋은 사람 만나서 영어공부에 도전 받고 외국으로 지경을 넓혀가라,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청년들에게 한 민족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쳐라. 이런 좋은 믿음의 사람들이 되길 축복한다.
세 번째, 사울 바울은 모든 사람 앞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증언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간다.
12절 “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네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증인이 되리라 ” 아멘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예수 믿는 자를 핍박하던 사울이 이제 주님을 만난 후에는 주님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간다고 고백한다
증인은 헬라어 “ 마르튀스”에서 파생된 영어 단어 마터 “martyr" 순교자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증인은 순교자와 같은 의미이다
사울은 회심하고 난후에 즉시로 다메섹의 회당에 들어가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언한다.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던 자가 이제는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고 있다. 사울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너무 놀랍다. 사도 바울이 한것처럼 우리도 모두가 주님의 증인이다.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다같이 따라해보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죄용서 받고 구원받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습니다, 여러분 예수 믿으세요.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원자 이십니다” 아멘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예수의 증인으로 살아가길 축복한다
사도행전의 전체적인 주제를 요약하면 행 1장 8절의 말씀이다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이 말씀은 주님이 부활하신후에 하늘에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다. 너희가 성령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는게 주님의 명령이요 사도행전의 핵심요절이다
사울은 이방인에게로 가라는 주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모르는 이방인에게 복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걸었다
사도행전에만 사도바울의 3차례 전도여행이 나온다. 안디옥에서 출발하여 소아시아 터키 지역과 마게도냐 지방과 그리스 로마에 이르기까지 가는곳마다 복음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수많은 제자들을 가르쳤다.
사도 바울은 평생에 2만키로 이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가끔 배타고 다녔지만 주로 걸어서 다니며 복음 전했다 당나귀나 노새를 타고 다니기도 했지만 하루에 걸어서 20-30 키로를 전도하러 다녔다고 한다
예수님 승천후 몇 년 뒤에 약 ad 33-35년경에 바로 주님을 만나서 회심하고 그때부터 ad 67-68년경 순교할 때 까지 약 30년 이상 복음을 전했다. 단순계산 30년 2만 키로. 3년에 2천키로, 하루에 2키로 전도.
가는 곳마다 복음 전하고 수없이 핍박을 받고 고난당하고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했지만 복음의 열정을 막을수는 없었다. 그는 또 여러 차례 편지를 써서 교회에 전하고 목회자와 제자들에게 전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가 기록한 13권의 편지가 오늘 성경이 되어 우리에게도 읽혀지고 있는게 주님의 섭리요 은혜다.
( 로마서 고린도전후 갈라디아 에빌골 데살로니가전후 디모데전후 디도서 빌레몬 - 사도바울의 편지 )
얼마전 “바울,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영화 소개, 로마에서 마지막 순교 당하기 전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사도 바울은 꿈을 꾼다. 꿈속에서 자기가 핍박했던 사람들, 또 순교당한 사람들의 모습이 자주 나타난다
나중에 사도 바울이 순교 당할 때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 진다. 하늘나라에 먼저 간 사람들이
회심하고 새롭게 되어 주의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당하는 자기를 마중 나오는 꿈임을 비로소 알게 된다.
사도 바울은 마지막 장면에서 순교를 각오하고 이렇게 말한다.
“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아멘
(디모데후서 4장6-8 )”
우리는 모두가 주님의 증인이다. 언젠가 주님 앞에 설 때 사도 바울에게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주님이 주시는 의로운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을 지키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달려가자
사도 바울처럼 주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아가 주님 앞에서 멋지게 만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복한다
* 결과기대 - 우리가 해야 될 일
< 기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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