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가 본,
내가 유년기를 보낸 마을사진이 있어 정리하다가 올린다.
이 곳을 찾았을 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할까.
아련한 그리움, 알싸한 향수..
사라진 것들에 대한 아쉬움, 아직 남아있는 것들에 대한 울컥한 고마움..
미묘한 감정이 교차한다.
내겐 유토피아였던 시간과 장소..
난 아직도 꿈에서 종종 이장소를 본다.
꿈속을 가듯 몇년 전 이 유년의 장소를 찾았다.
지붕이 슬레트로 바뀌고 예술인들이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건재하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한 여름 어르신들의 피서지였던
느티나무 그늘은 지금도 넉넉히 드리워져 있다.
우리집 바로 옆집이던 진철네 집.
아, 세상에.. 사십여년이 지나도록 나무 쪽문과 돌담이 여전히 남아있다니...!
돌담을 타고 오른 호박덩쿨도 마찬가지다.
진절이 동생이 태어나던 날, 저 나무 쪽문엔 숯과 빨간고추가 매달린 새끼줄이 쳐졌었지.
이 돌담을 따라 돌면 창숙이네다.
매일이다시피 숙이네로 놀러가던 길.
이 돌담밑엔 명아주가 돋아있었는데...
그 흙길엔 아스팔트가 깔리고 중년이 된 숙이가 서 있다.
사십년 시간을 훌쩍 넘어.
진철네 헛간에 황소는 간 곳 없고 싸리나무만 무성하다.
저 길을 따라 다리를 건너면 왼쪽으로 디딜방앗간이 있었고
마당 넓은 집이었던 경란이네로 이어진다.
대표네 집 사랑채.
교대를 갓 졸업하고 시골분교로 부임해 온 총각 담임 선생님이 하숙하시던 집이다.
엄마가 갖다 드리라는 달걀을 들고 이 대문을 들어서던 기억이 있다.
아버지가 시무하시던 시절의 교회당.지금은 교육관으로 쓰인단다.
교회 앞마당에 있던 종탑은 사라지고 마당이 좁아 보였다.
주일학교 아이들이 개울에서 자갈을 날라다 만든 시멘트 계단.
이 계단 기공식 때 찍은 흑백사진엔 부모님이 청춘이시다.
새로 지은 교회당.
동네와 어울리지 않게 위압적인 건물이 좀 생뚱맞다.
그곳 집사님부부가 장에 내나 팔 풋콩을 담아 매고 있다.
이게 뉘기여? 반색을 하며 맞이햐 주시는 집사님.
바쁜 일손을 접고 과일을 내 주신다.
고생스러웠던 옛시절이 말 그대로 옛말이 되었다.
숙이 옆에서 기도드리는 용자언니는 교회 사모가 되었다.
.....
세월이 많이 흘렀다.
첫댓글
내유년의 세월. 이웃들을 여기서 만나네요
애달프고 그립습니다 ........
극때 30대 젊디 젊은 새댁들이 이렇게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시다니... 그 때 가 아련히 떠오른다. 아! 흘러간 세월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