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북도 <박천군지>(1969. 6.8)에서 그 당시 박천군민회장인 장희열(1917-)회장은 그 책의 서문에서 "고구려의 유풍이 있어서 교한(驕悍)하다는 서도(西道) 기상은 이조 500년간 경원을 받아야 했"다고 주장했다.그리고 본서 44면의 지방기풍의 특징에서 "수양제의 침략군을 궤멸시킨 살수대첩 때의 박천은 교(驕)하고 한(悍)한 청구의 혼의 귀감이었으리라. 교는 주체성의 고수요, 한은 용맹을 뜻한다. 강궁을 들고 묘향 적유의 산줄기를 뒤지면서 수렵을 즐기고, 곡간에 밭을 갈아 자족하면서 진취와 실질을 숭상하는 기상으로 박천은 차 있었다."
그리고 진취적이고 실질강건한 서도 기상과 문약한 기호 기질을 상징 대조하는 낱말로서 북남남녀라는 말이 일찌기 생겨났던 것이다.. 그런데 기호에서는 남남북녀라는 엉뚱한 희어로 뒤집어서 사기의 열세를 은폐하여 왔다고 한다.(1933년 오기하라(狄原) 조선총독부 도서관장 고증))
이러한 서도 기상이 언젠가는 이씨조선 사직을 위협하게 되지나 않겠나 하는 조바심에서 수백년 동안 서북인을 중용하지말라(西北人 勿爲重用)는 그릇된 감정을 고수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리고 흔히 평안도의 인심을 맹호출림(猛虎出林)이라고 한다. 사나운 범이 수풀을 헤집고 나오는 기상을 지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