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린턴이 젊은 나이로 대통령 선거에 임하던 때에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구호가 선명하게 상황을 드러내며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한 일이 있었다. 트럼프는 '미국이 최고여야 해!'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 오늘날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먹고사는 일의 그 징그러운 절박함일 것이다. 일찍이 김훈의 <칼의 노래>에서 아직도 기억나는 한 구절은 바로 이런 것이다. '다가올 한 끼의 배고픔 앞에서 지나간 모든 끼니의 기억은 무효다.' 지난 포만감이 현재의 배고픔을 잊게 할 수 없다는 것. 매일 삼시세끼를 먹어야 한다는 것. 살아 있는 한 모든 존재는 그 절실한 요구에 속박되어 있지 아니한가.
공정과 정의를 이야기하려면 다양한 측면이 있겠지만 먹고 사는 문제 즉, 경제적 차원의 공정성과 정의로움에 대해서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이를 외면하고서는 올바로 세상을 바라보고 살기가 쉽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1%의 사회구성원이 60%의 금융자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다. 부의 쏠림 현상을 수치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 각자는 어디에 속할까?
마이클 샌델의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지적하듯 능력주의에 대한 가장 핵심적인 반박은 인간이 사회적 존재로서 주어진 기존 사회 시스템의 혜택을 받고 출발점이 같지 않은 데서 시작한다는 점과 자신의 능력이 이미 사회적으로 받은 유무형의 도움에 빚지고 있다는 관점이 결여된 것이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주류 경제학과 제도 경제학의 가장 큰 문제점은 경제가 다루는 내용을 바라보고 평가함에 있어서 윤리학이나 정치학과 같은 가치평가적 요소를 몰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학 앞에 '정치-'라는 접두어가 사라진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제적 논의들이 어떻게 흘러 왔고 어떤 맥락에서 하나의 이론이 제시되는지 알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은 주류 경제학의 그것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스스로 문제의식을 갖고 경제에 대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
각설하고 브렛 크리스토퍼스의 <불로소득 자본주의 시대>, 마리아나 마추카토의 <가치의 모든 것>과 같은 책은 영화 <매트릭스> 전반부에서 '빨간약'과 같은 각성제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 <도덕감정론> 등을 비롯해서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 등등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주는 책들도 찾아 읽으면 좋겠다. 경제가 우리 삶에 중요한 만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나름대로의 주관을 갖출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옥스포드에서 선정한 올해의 단어인 '뇌썩음(brain rot)'이 우리의 의식을 마비시키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 유튜브에 중독되지 말고 공정하지 않은 담론에 속지 않도록 정신 바싹 차리고 살아갈 일이다. 생각 없이 사는 것은 죄악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