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법의인류학자인 수 블랙이 쓴 죽음에 대한 이야기다.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써내려 죽음에 대한 이야기하고는 많이 다르다. 저자는 법의인류학자이다. 살인사건부터 자연재해, 대규모학살, 전쟁, 사고, 테러, 아동학대, 성폭력 등 수많은 재앙들에서 벌어지는 사고 후 죽은 자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유해를 발굴하며 신원을 확인하고 그들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까지 하는 사람이다. 결코 만만치 않은 일들이다. 시신이나 유해가 그 자체로 존엄하고 고귀하게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하는 수 블랙의 마음에 큰 울림이 있었다.
저자는 영국 스코틀랜드의 더딘대학교에서 해부학을 공부했다. 기증된 시신을 만나는 과정 그 시신이 죽은 자이지만 해부학 실험실에서 또다른 존재로 존재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시종일관 존엄을 이야기하고 있고 실험실에서의 경건함과 존엄함에 대해 놓치지 않는다.
이 책은 해부학 실험실을 시작으로 저자 가족인 할아버지, 부모님의 죽음에 대한 일화 속에서 저자가 죽음에 대해 어떤 태도였는지는 보여준다. 삶이 늘 죽음과 함께 있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나 사후 세계에 대한 불안보다는 죽음의 과정과 죽음 그리고 죽음이후 죽어있는 그것에 주목한다. 코소보의 사례가 인상적이었다. 코소보 내전에 급파된 저자는 집단 학살인 제노사이드의 현장에서 일하게 된다. 시신을 분리하고 그 시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그 현장에서 여러 동료들과 찾아낸다. 유해를 분리하는 것 뿐 아니라 이들의 죽음과 시신들이 온전히 가족으로 품으로 돌아갈 수 있고 그를 통해 가족들 또한 깊은 애도를 가질 수 있도록 헤아린다. 시신도 유해도 찾을 수 없는 가족들의 슬픔은 감히 우리가 가늠할 수 없기에 더더욱 그렇다.
시종일관 이 책은 실종된자, 자연재해로 사망한자, 전쟁으로 무참히 짓밟힌 자들이 있는 현장에 있는 수 블랙의 이야기를 한다. 왜? 그녀는 그곳에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인류에 전하는 참된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 누구도 억울한자 없어야 하고 참혹한 살상의 현장일지라도 한조각의 유해라도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 화제성을 노리는 기자들과는 너무 달랐다.
애도할 시신이 없는 사람들은 슬픔도 제대로 느끼지 못해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을 겪어야 한다. 머리로는 분명히 사라진 사람이 죽었음을 알고 있지만 마음으로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화재나 비행기 추락 사고, 자연재해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람들은 결국 시신을 찾게 될라는 타당한 기대를 하기 때문에, 반드시 꼭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순간 안 그래도 슬픈 마음은 더욱 비통해질 수 밖에 없다.
p.226
평생 죽은자를 만나는 일이라니 내겐 상상조차 불가능하다. 죽은 자의 뼈, 죽은 자의 시신, 죽은 자의 흔적을 찾아 내며 그들의 삶을 복원하는 일, 그들의 억울함을 과학의 이름으로 회복 시켜주는 일이 그녀의 일이다. 범죄와 인간의 사악함을 얼마나 많은 순간 보겠는가? 그러면서도 존엄에 대해 놓지않은 삶의 중심은 놀라 우리 만치 존경스러웠다.
꽤 두꺼운 책이지만 뒤로 갈수록 그녀의 삶에 몰입하게 되었다. 수 블랙의 삶을 고스란히 아주 깊숙이 들여다보며 인간의 삶은 결국 자신이 보다 중요하고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더많은 인류에 기여하는 작업으로 연결 되는 느낌이다. 코소보의 일이 그랬고 쓰나미로 엄청난 인명피해를 낸 태국에서의 작업이 그랬다. 결국 그녀의 이 일은 영국이 재난 상황에서 어떻게 재난피해자신원확인을 할것인지에 대한 과학적 메뉴얼을 갖추고 이를 현장에서 해낼 요원들을 만들어내는 일까지 연결시켰다.
고인은 품위있고 건강하고 정의롭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이 말이 너무도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