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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이나 숯가루 등을 이용하여 불꽃을 만들며 노는 놀이. 한자어로는 화희(火戱)·화산희(火山戱)라고 한다. 나라에서 대규모로 하기도 하고 마을이나 개인이 작은 규모로 하기도 했다. | ||||||
예로부터 불과 큰 소리는 악귀(惡鬼)를 몰아내는 주술적인 의미로 사용되던 소재였다. 불꽃놀이는 이런 조건이 부합하는 적당한 놀이였으므로, 이 놀이는 오래 전부터 행해진 것으로 추정되다. 불꽃놀이는 꼭 화약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화약이 발명되기 전에도 불꽃놀이는 행해졌다. 즉 젖은 참대를 불에 달궈 튀게 한 것으로, 이것을 폭죽(爆竹)이라고 하였다. 이는 불꽃놀이의 원시적인 형태로 보여진다. 훗날 불꽃놀이에 참대 대신 화약을 쓰게 되었는데도 종전의 관습에 따라 이 역시 폭죽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또한 연화(煙火)라는 것도 있었는데, 이것은 폭발성물질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우리 나라에서는 13세기 후기부터 등(燈)놀이 때 불꽃놀이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12~13세기에 생존했던 이규보(李奎報)가 섣달 그믐 저녁에 정원에서 폭죽을 터뜨리면서 놀던 광경을 시로 읊은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밖에 1356년에 나라에서 서북면 방어군의 병기를 사열하였을 때 총통(銃筒)을 발사하여 시험한 일이 있었다는 기록은, 최무선(崔茂宣)이 화약(火藥)을 발명하기 전에도 화약이 사용되고 있었음을 알게 해주는 자료가 된다. 고려 말에 여러 왕들이 자주 불꽃놀이를 하였는데, 이색(李穡)은 산대잡희(山臺雜戱)를 구경하고 읊은 시에서 “불이 터져서 충전하는 것이 우레와 같다.”라고 표현하였다. 1373년 최무선과 그의 아들 최해산(崔海山)이 화약 제조법을 발명하여, 우리 나라에서 화약을 대량생산하게 되면서, 나라에서 화약을 다루는 기술을 가르치기 위하여 놀이 겸 나라의 큰 행사로 불꽃놀이가 매년 열렸다. 1413년 조선 태종 | ||||||
놀이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는데, 하나는 나라에서 큰 규모로 한 화산대(火山臺)였고 다른 하나는 민간에서 흔히 하던 줄불[落火]이 그것이다. 1) 화산대(火山臺) “불꽃놀이는 군기시(軍器寺)에서 주관하여 왕궁 후원에다 미리 설비를 차려놓는데, 대·중·소의 규모에 따라 설비가 다르다. 우선 노황·염초(焰硝)·가뢰·버드나무 재 등을 다져놓은 포통을 쌓아놓고 그 심지에 불을 달면 순식간에 연기가 나고 불이 번져 포통이 터지면서 그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킨다. 그보다 먼저 얼마 떨어진 산에 수많은 불화살을 묻어놓는데, 여기에 불이 붙으면서 화살이 무수히 공중을 향하여 솟구쳐 오른다. 이때 요란한 소리가 날뿐만 아니라 불꽃이 번쩍이며 하늘을 뒤덮는다. 또 후원 가운데 긴 장대를 수십 개 세워놓고 장대 끝에 작은 보퉁이를 매다는 동시에 구경꾼 앞에는 채롱을 달고 채롱에서 장대까지 긴 줄을 이리저리 연결시키는데, 그 줄 첫머리마다 화살을 매어놓는다. 군기시(軍器寺)의 책임자가 불을 달아서 채롱 속에 던지면 삽시간에 불이 일어나서 불꽃이 줄에 번지고 그 바람에 화살이 줄을 따라 나가서 장대를 치면 장대 끝에 단 보퉁이가 터지면서 수레바퀴처럼 둥그런 불테가 지어진다. 또 그 화살이 나가서 두 번째·세 번째를 치며 이렇게 마지막 장대까지 계속된다. ~중략~ 또 장대 위에다가 족자를 말아놓고 줄에 매어 두었다가, 불이 줄을 따라 올라가서 줄이 끊어지면 족자가 아래로 펼쳐지면서 거기에 쓰인 글자를 낱낱이 읽을 수 있게 한다. ~후략“ 2) 줄불[落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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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예전부터 불놀이가 있었군요속으로 고통도 아픔도 날려버리고..희망의 꿈을 갖으면서 용기를 찾을 수 있겠지요
불
불빛 축제가 다가오는데...
역사를 더듬어 재현하는 행사도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드네요..^^
네 좋으신 생각 이네요 포항이 전통 민속놀이 (장)이 되었으면 해요 ^^
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클로버님 감사합니다 늘 밝고 창대하십시요
행운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