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불암
송불암은 논산군 연산면 화암리 함박봉에 자리하고 있다. 구도로 연산사거리에서 개태사쪽으로 500m 이내에 자리하고 있다. 송불암은 미륵불, 대웅전, 요사채로 구성된 단촐한 도량이다.
송불암 입구
송불암 대웅전
송불암 미륵불
송불암 대웅전 삼존불
대웅전내의 신중단
대웅전내에 자리한 관음보살상
대웅전내에 자리한 지장보살상
송불암 요사채
송불암 수조
송불암 미륵불
문화재자료 제83호 (충남)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에 있는 이 미륵불은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석불사(石佛寺)의 불상이다.
지금의 송불암이란 명칭은 미륵불 바로 옆의 노송이 불상과 조화를 이루며 지붕처럼 퍼져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양쪽 어깨에 걸치고 있는 옷은 가슴부분에서 U자형을 이루었고, 옷자락의 주름은 얕은 선으로 조각하여 발목까지 내려왔다.
왼손은 가슴에 대고 있으며, 오른손은 몸의 측면에 붙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송불암 미륵불
2000년까지 미륵불이 소나무의 아래에 위치해 있음으로써 마치 소나무가 미륵불의 광배 겸 보호수 역할을 하는 모양새를 띠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이는 이 희한한 모양의 소나무는 미륵불을 보호하고자 원력수생(願力樹生)한 것으로 보는 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 소나무가 고목이 되면서 점점 밑으로 쳐져 미륵불이 소나무를 이고 있는 것처럼 되어 근래에 미륵불을 지금의 자리로 조금 옮겼다.
미륵불은 미래에 이 땅에 오셔서 중생을 제도하실 부처님을 말하는데 이 불상은 화강석으로 조성된 대형 미륵불로서 제문석불이라고도 부른다. 이 불상은 우리 나라의 산야에서 자주 발견되는 미륵불과 마찬가지로 투박한 민불(民佛)의 모습을 지녔다.
송불암 석물
석탑
석불의 오른쪽 앞에는 2층의 석탑이 있다. 온전한 탑이 아니라 주위에 흩어져 있던 부재를 수습하여 조합해 놓은 것이다. 즉2개의 탑신과 2개의 옥개석은 둘 다 3단의 옥개받침을 지녔으나 처마의 경도가 달라 탑신과 마찬가지로 별개의 석탑에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송불암 전설
미륵불과 소나무에 관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전설은 조선초에 근처 마을인 고정리(古井里)에서 살았던 광산 김씨가문과 관련되며, 아울러 당시 널리 퍼져있던 풍수지리와도 관련된다. 전설의 기본 줄거리는 같지만 세월의 흐름에 따라 약간씩 윤색되고
이 지역의 토착세력이던 광산 김씨 가문의 허씨부인이 별세하자 황령고개(느르뫼재) 너머 벌곡 쪽에 사는 풍수를 아는 스님이 묘터를 잡아 주었다. 그런데 부인의 묘혈이 왕퉁이혈(穴)이므로 풍수가 항령재를 넘은 뒤에 하관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이른 뒤에 풍수는 부지런히 고개를 향해 걸었다. 그러나 지관이 겨우 송불암 쯤 밖에 못 왔는데 상주측에서는 이미 풍수가 고개를 넘었으리라고 짐작하고 하관을 시작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왕퉁이 한 마리가 묘혈에서 나와서는 지관이 있는 곳을 향하여 날아가 지관의 머리를 쏘았고, 결국 지관은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다. 이 때 김씨 가문에서는 불의에 죽음을 잃은 지관을 위하여 묘를 써주고 미륵불을 세웠으며, 이것이 오늘날의 송불암이라고 한다. 이 전설은 이 지역을 주관하던 특정 성씨, 광산 김씨의 지역적 토착성이 강화되고 음택풍수가 중시되는 시대배경 속에서 이러한 전설이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송불암 처진소나무와 석탑, 그리고 미륵불
송불암 찾아가는 길
서논산 IC로 나와 우측 공주, 논산 방향으로 4번 국도를 따라 2.5km를 가면 논산대교와 대교사거리가 나온다. 논산역, 대전방향으로 좌회전하여 가다보면 1번국도와 연결 된다. 1번 국도를 따라 부적면을 지나 8.5km 정도가면 연산 사거리가 나온다. 사거리에서 좌회전을 하여 400m 지점 좌측편에 송불암 표지판이 나온다. 좌회전을 하여 길을 따라 올라가면 송불암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