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
서경희
아침에 일어나면 사과부터 먹는다. 크면 하나, 작으면 두 개를 먹는다, 아침 사과는 의사를 물리친다는 말을 알아듣고 사과가 나를 길들인 듯하다. 한 입을 베어물고 또 먹고 또 먹고 그러다 다 먹을 때까지 누리는 상큼한 그 행복을 나만큼 아는 이 있을까.
나는 사과가 지천으로 나는 고장에서 태어났다. 가만히 눈 감으면 떠오르는 그 사람같이, 가만히 눈 감으면 사과가 떠오른다. 빨갛게 익어 가을 햇살에 붉어지던 그 예쁜 사과의 얼굴을 평생 이리 못 잊어 하다니.
풍성하고 값싼 사과를 많이도 먹어서인지, 그 버릇의 끈이 여직 끊이지 않아 사과 안 먹으면 몸이 이상하고 마음이 깜깜해진다. 사과의 자태는 어여쁘다 못해 농염하지만 먹을 땐 못 생겨도 괜찮다. 못 생길수록 맛이 있다.
어릴 때 나는 이상한 ‘알 수 없음’ 하나를 갖고 있었다. 홍수가 나면 왜 동네 강물이나 도랑 물에 꼭 사과가 둥둥 떠내려가는지를. 비 오면 원래 그런 것인 줄 알았다. 온 세상이 사과밖에 없었으니 사과가 떠내려 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허나 지금, 그 사과 하나도 없다.
날씨가 점 점 더워져, 흔히 말하는 지구온난화 때문에 내 눈 앞에 가장 먼저 일어난 일이 대구 사과의 실종이었다. 제주도에만 나던 귤이 남해안까지 오고, 제주도에는 남쪽 나라에나 있던 열대과일들이 열리니, 사과밭도 쑥쑥 북쪽으로 올라가버린 것이다. 이미 한참 된 이야기이다.
올열믐도 무지막지 덥다. 어쩌다 더운 것이 아니라 이제는 여름마다 이렇게 더울 것이라 한다. 우리나라가 아열대가 되었다는 말은 옛말이다. 예쁜 봄과 가을은 살짝 얼굴만 내밀고, 긴 여름과 겨울이 밋밋이 이어질까 두렵다. 아기들이 자라 춥거나 덥거나 두 가지 밖에 모르면 어떠하지.
한 해에 네 가지 계절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정녕 축복이다. 우리나라 사람 모두는 이 축복을 알고 행복해한다. 사계절은 생각할수록 오묘하다. 모르는 사람은 결코 모르는 경지이다. 세상의 모든 과학과 철학과 예술은 사 계절을 좋아하다 태어난 것이 아닐까?
옷장을 열어보니 내 옷이 참 많다. 옷이 많다는 것은 계절이 많다는 것과도 같다. 봄, 여름, 가을, 겨울뿐 아니라, 봄 안에 봄, 가을 안에 가을이 있는 풍성한 세상에 우리는 산다. 행복하다. 그 행복을 표현하려 내게도 수많은 옷이 필요했으리라고 말하련다.
뜨거워서 싫어요. 세상은 지금 뜨거워서 난리다. 우리가 여름이면 저 남아메리카 나라 들은 한창 추운 2월인데 아르헨티나가 30도, 칠레가 38도로, 집 나간 겨울을 찾는다고 뜨겁게 부르짖는다. 바다도 뜨겁다고 한다. 미국의 알라스카 주에서는 더 난리가 났다.알래스카 빙하가 녹아 멘델홀 호수가 불어나 언덕 위에 있던 집 한 채가 떠내려갔다. 생생한 뉴스로 보았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돈 많은 알론머스크는 끊임없이 우주 개발을 외치며 지구를 떠나려 한다. 거대한 공룡처럼 언젠가 더 거대한 인간도 사라질 것이다. 우주는 이미 그런 계획을 세워놓았는지 모른다.
지구는 왜 자꾸 자기이 체온을 넘어서서 아파하는 것일까. 사람도 몸 속에 독을 독이 생기면 체온이 높아진다. 체온 1도에 수많은 병이 달렸다고 한다. 지구의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온 오랜 업보가 지구를 마침내 펄펄 끓게 하여 땅도 사람도 뒤뚱대고 있다.
다시 지구가 편안히 돌아올 수 있을까. 사과가 없는 고향은 고향이 아니었는데 그때는 사과가 있는 진자 나의 고향도 돌아올 수 있을까.
(*어느 독자의 읽기 ---- 제목도 사과이고, 작가는 고향의 사과 이야기를 애정을 가지고 아주 길게 하였다. 사과가 있었던 고향을 행복한 땅으로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사과 이야기를 하려는 것보다 사과밭이 지천이었던 시절의 분위기를 전하려 길게 이야기 하였다고 본다.
그러나 작가가 정말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지구의 온난화로 미래에 대한 불안이고, 잃어가는 행복 때문에 느끼는 두려움이다. 사과 이야기를 통하여 나타날 지도 모를 불행의 두려움이다.
이때 사과는 ‘사과가 아니고’ 상징 언어가 된다.
우리가 수필을 쓸 때, 상징적 의미를 찾아서 글에 담아내어 이야기를 만든다면 더 많은, 더 좋은 수필을 쓸 수 있을 것이다. 사과는 그냥 사과가 아니고, 유토피아의 상징이고, 온난화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불행의 얘언장이기도 하다. 어떤 소재를 상징언어로 사용하여 수필쓰기하는 것도 연습해봅시다.)
(*작가 서경희는 대구에서 대학을 마치고, 국어 선생님을 하다가. 서울로 시집가서, 서울에서 살고 있다. 여러 권의 수필집을 냈다. 90년 대에 나와 같은 잡지에 등단하여 수필집을 서로 나누어 가지므로 그의 수필집 몇 권이 내게 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