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 하인리히 하이네의 <본 슈나벨레보프스키 씨의 회상>중 유령선의 전설
빌헬름 하우프의 <유령선 이야기> 및 <악마의 일기> 참고
대본 리하르트 바그너
초연 1843년 1월 2일 드레스덴 궁정 오페라 극장
배경 17세기 노르웨이의 어느 해안과 항구
<2013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 140분 / 한글자막>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 / 얀 필립 글로거 연출
달란트.....노르웨이인 선장.....프란츠-요제프 젤리히(베이스)
젠타........달란트의 딸...........리카르다 메르베트(소프라노)
에릭........사냥꾼..................토미슬라프 무제크(테너)
마리........젠타의 유모...........크리스타 메이어(메조소프라노)
달란트의 키잡이...................벤자민 브룬스(테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사무엘 윤(베이스)
그외 노르웨이 선원, 네덜란드 사람의 선원, 소녀들
---------------------------------------------------------------------------------------------------------------------
=== 프로덕션 노트 ===
바이로이트의 새로운 별로 등극한 사무엘 윤과 거장 크리스티안 틸레만의 만남
2013년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오프닝 무대를 장식했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영상물로 출시되었다. 이 무대가 우리에게 있어서 더 한층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은, 타이틀 롤을 열창.열연한 이가 다름 아닌 우리의 자랑스러운 베이스 사무엘 윤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와 산업화로 인해 인간 본연의 가치가 폄하되고 있는 현대의 모습(달란트는 속물 자본가로 표현되며, 젠타와 친구들은 선풍기 공장의 직공으로 모습을 바꾸었다.)을 비판적으로 이 오페라를 통해 담아낸 얀 필립 글로거의 본 프로덕션은 2012년 바이로이트에서 처음 공개되어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듬해 있었던 이번 공연은 이전 해에 비해서 보다 긍정적인 평가를 낳았다. 원래 이 배역에 캐스팅되었던 에브게니 니키틴이 불미스런 일로 도중하차하면서 사무엘 윤이 급하게 대타로 나선 공연이었지만, 그는 몸을 사리지 않는 열연과 안정적인 가창으로 까다로운 바이로이트의 바그네리언들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켰다. 바이로이트의 새로운 군주로 확실히 자리매김한 크리스티안 틸레만은 명불허전의 강력한 연주를 들려준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 최초의 성공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 앞서 <요정>, <연애금지>, <리엔치> 등을 완성했지만, 바그너 자신이 바이로이트 무대에서의 공연을 허락한 작품들 중에서는 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 가장 먼저 완성된 작품이다. 1843년 드레스덴에서의 초연은 성공적이지 못했지만, <탄호이저>와 <로엔그린>의 연이은 성공으로 바그너가 독일 최고의 오페라 작곡가로 등극한 이후인 1865년에 다시 공연되었을 때는 이 오페라 역시 크게 호평을 받게 되었다. 리브레토는 유령선에 대한 북유럽의 전승 괴담과 하이네의 소설에서 소재를 취해서 바그너 자신이 직접 완성하였는데, 런던으로의 항해 도중 폭풍으로 크게 고생했던 자신의 경험도 이 작품에 반영되었다.
본 프로덕션에서 네덜란드인을 노래한 사무엘 윤(한국명 윤태현)은 서울대학교 성악과를 졸업한 이후 밀라노 베르디 음악원에서 수석으로 디플로마를 획득했다. 토티 달 몬테 콩쿠르, 프란체스코 알바네제 콩쿠르 등을 석권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탈리아 내의 군소 오페라 극장들을 거친 뒤에 1999년부터는 쾰른 오페라의 전속가수로 활약하였다. 2004년에 처음 바이로이트에 초청되어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하는 <파르지팔>에 출연하였고, 이후에도 2005년과 2006년에는 크리스티안 틸레만 지휘의 <탄호이저>, 2010년에는 <로엔그린>에 계속 캐스팅되면서 이 특별한 축제의 주역으로 발돋움했다. 2013년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원래 역할을 맡기로 했던 에브게니 니키틴이 불미스런 일로 하차하면서 갑작스레 대타로 나섰던 것이었음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침으로써 객석의 호평을 받았다.
=== 작품해설 === <2010년 9월 5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명곡 명연주
바그너,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유령선 민담'을 소재로 삼은 하이네의 소설을 토대로 작곡
음악극을 만들어내기 이전 바그너의 초기 작품, 1843년 드레스덴에서 초연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유령선 ‘플라잉 더치맨 Flying Dutchman’이 등장하죠? 원래 ‘플라잉 더치맨’은 1641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출항해 인도로 가려다가 남아공 희망봉 근처에서 침몰한 네덜란드 배의 이름이라고 합니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앞선 조선기술을 자랑해, 러시아 황제 표트르 1세가 그 기술을 배우려고 네덜란드 조선소에 외국인 노동자로 위장취업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네덜란드 선박뿐만 아니라 뱃사람들도 항해 솜씨가 뛰어나기로 유명했지요. ‘바다를 질주하는 네덜란드인’이라는 뜻을 지닌 배 이름 ‘플라잉 더치맨’은 바로 조선강국 네덜란드의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배의 선장 반 데르 데켄은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우를 만났지만, ‘지구 끝까지 항해하리라’라고 외치며 선원들의 반대를 뿌리치고 희망봉을 돌아 항해를 계속하려 했다는군요. 배는 폭풍우에 휘말려 가라앉았는데, 그로부터 약 3백 년 동안 바다에서 이 배와 마주쳤다는 다른 선박들의 증언이 ‘믿거나 말거나’ 줄을 이었답니다. 한마디로 유령선 전설이 태어난 것이지요. 여기서 나온 유럽의 민간 전설은 ‘선장과 선원이 다 죽었지만 저주를 받아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유령이 되어 배와 함께 바다를 영원히 떠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플라잉 더치맨’을 우리말로 옮긴 제목이 바로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의 오페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Der fliegende Holländer]이랍니다. 참, 2010 월드컵 준우승을 차지한 네덜란드의 축구선수 아르옌 로벤의 별명도 ‘플라잉 더치맨’이라는군요.
조선 강국 네덜란드의 유령선 선장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바그너가 음악극(Musikdrama)이라는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내기 이전의 초기 작품으로, 바그너는 이 작품에 ‘낭만적 오페라’라는 부제를 붙였습니다. 1막은 노르웨이의 산드비케 만에서 시작됩니다. 노르웨이 선장 달란트가 이끄는 배의 선원들은 험한 폭풍우 속에서 배를 해안에 대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겨우 배를 정박시킨 뒤 선장 달란트는 선실로 들어가서 쉬고 갑판에 남은 키잡이는 졸음을 참으며 고향의 연인을 그리는 노래 ‘천둥번개와 폭풍우를 헤치고’를 부릅니다.
그 사이 네덜란드 유령선이 소리 없이 곁으로 다가옵니다. 유령선 선장이 배에서 내려, ‘기한이 다 되었다’라는 노래로 자신의 처지를 한탄합니다. 이 네덜란드 선장은 오래 전에 바다에서 신과 악마에게 도전한 죄 때문에, 죽지도 못하고 영원히 바다 위를 떠돌아야 하는 저주를 받았답니다. 그는 7년에 한 번 육지에 올라와 자신을 진정으로 영원히 사랑해줄 여자를 찾아다닐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랑을 얻으면 죽지 못하는 저주가 풀린다는 것입니다.
매번 여자들은 그를 배신했지만, 이제 다시 7년이 지나자 그는 새로운 희망을 걸어봅니다. 노르웨이 선장 달란트는 네덜란드인 선장과 그의 보물을 보고는 마음이 이끌려 자기 딸 젠타를 아내로 주겠다고 약속합니다. 다시 순풍이 불기 시작하자, 두 척의 배는 나란히 달란트의 고향으로 향합니다.
2막은 달란트 선장의 집으로, 처녀들이 넓은 방안에 모여 앉아 물레질을 하고 있습니다. 다들 열심히 노래를 부르며 일을 하지만, 달란트의 딸 젠타는 벽에 걸린 초상화만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유모 마리가 나무라자 젠타는 마리에게 네덜란드인의 발라드를 다시 불러달라고 청합니다. 마리가 거절하자 젠타는 스스로 그 노래를 부르다가 자기도 모르게 노래에 몰입해 ‘바로 내가 당신을 구원하겠어요’라고 외칩니다. 젠타를 사랑하는 에릭은 그 모습을 보자 속이 상해 화를 냅니다. 마침내 달란트가 네덜란드 선장을 데리고 와 젠타에게 소개합니다. 젠타와 선장이 정신없이 서로에게 빠져드는 모습을 보고 달란트는 자리를 비켜줍니다. 운명으로 묶여 있음을 느낀 두 사람은 죽을 때까지 신의를 지키겠다는 사랑의 이중창을 노래합니다.
3막에서는 바다에서 돌아온 노르웨이 뱃사람들과 마을 처녀들이 신나게 잔치를 벌입니다. 사람들은 유령선 앞에 가서 ‘우리와 함께 놀자’고 외쳐보지만 배에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유령선 선원들이 나타나 기괴한 합창을 시작합니다. 요란한 폭풍우 속에서 두 합창단의 노래가 울려 퍼집니다.
한편 에릭은 젠타에게 옛날로 돌아가자고 간절히 호소합니다. 그러나 젠타는 네덜란드 선장에게 신의를 맹세했다며 그를 피하려 하지요. 에릭은 과거에 젠타가 자신에게 사랑을 고백했던 날을 상기시키며 젠타의 마음을 되돌리려 애를 씁니다. 그 이야기를 숨어서 듣고 있던 네덜란드 선장은 젠타가 에릭을 위해 자신을 배신했다고 오해하고, ‘구원은 사라졌다’고 외칩니다. 네덜란드 선장은 다시 유령선을 몰고 영원한 저주의 바다로 떠나갑니다. 그러자 젠타는 주위 사람들을 뿌리치고 절벽 끝으로 달려 올라가 ‘나는 죽을 때까지 당신에게 충실할 것’이라고 그에게 외친 뒤 바다로 몸을 던집니다. 그러자 마침내 저주가 풀린 유령선은 산산히 부서져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사람들은 멀리서 함께 하늘로 날아오르는 선장과 젠타의 영혼을 보게 됩니다.
하이네의 냉소적 원작 vs. 바그너의 낭만적 해석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5월에’, ‘노래의 날개 위에’ 등의 낭만적인 시로 유명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 1797-1856)는 [폰 슈나벨레보프스키 씨의 회상Die Memoiren des Herrn von Schnabelewopski]이라는 작품의 1권 7장에서 이 유령선 선장 소재를 다뤘습니다.
민담을 소재로 쓴 짧은 소설인데요, 하이네 특유의 냉소와 유머가 담긴 작품입니다. “절개를 지키는 여자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악마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풀릴 리 없는 이런 저주를 내린 것”이라거나 “이 유령선 이야기가 여성들에게 주는 교훈은 ‘감상에 빠져 유령선 선장 같은 남자랑 결혼하면 반드시 신세를 망친다’는 것”이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지요. 바그너는 이 하이네의 작품을 읽고 강렬한 인상을 받아 이를 토대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을 작곡했습니다.
그러나 바그너는 ‘순수하고 열정적인 여성의 사랑이 제멋대로이고 죄 많은 남자를 구원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기 때문에, 또 자신이 평생 그런 여성상을 추구하며 여성편력을 쌓아갔기 때문에 이 소재를 대단히 진지하게 해석했습니다. 작곡가 리스트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바그너는 이 ‘네덜란드인’이 바로 자기자신이라고 밝혔답니다. 낭만주의 특유의 과도한 열정을 이 작품에 불어넣으면서, 극적 긴장을 강화하기 위해 네덜란드 선장(베이스)과 젠타(소프라노) 사이에 에릭(테너)이라는 또 하나의 주인공을 만들어 넣은 것도 바그너의 창작입니다.
1839년 9월, 북해를 거쳐 런던으로 가는 4주 동안 풍랑으로 죽을 고생을 했던 바그너의 체험 역시 이 오페라 안에 절묘하게 표현되었습니다. 어떤 오페라도 바다의 거센 파도와 바람소리를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서만큼 사실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었답니다. 1843년 드레스덴 왕립극장에서 초연된 이 오페라에서 바그너는 유도동기(라이트모티프Leitmotiv : 극중에서 같은 인물 또는 같은 상황이 등장할 때 동일한 선율과 화성을 되풀이해서 사용해 청중에게 각인시키는 기법)를 대단히 효과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오페라의 출발부터 저주의 모티프, 태풍과 파도의 모티프, 젠타의 구원 모티프 등을 알아들을 수 있는데, 특히 노르웨이 선원들의 모티프와 유령선의 모티프가 혼란스럽게 뒤섞이는 3막 ‘유령선 선원들의 합창’ 장면이 압권입니다. 아직 이탈리아 오페라처럼 아리아와 레치타티보 형식을 유지한 작품이지만, 바그너는 이탈리아어가 아닌 독일어로 대본을 썼고 자신의 모국어에 적합한 성악부를 창조해냈습니다.
추천음반 및 영상물
젠타-네덜란드인-달란트선장-에릭 순
[음반] 아냐 실랴, 테오 아담, 마티 탈벨라, 에른스트 코추브 등, 오토 클렘페러 지휘, 런던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및 BBC 합창단, 1968년 녹음, EMI
[음반] 제인 이글렌, 팔크 슈트루크만, 로베르트 홀, 페터 자이페르트 등, 다니엘 바렌보임 지휘, 베를린 슈타츠카펠레 및 국립오페라 합창단, 2001년 녹음, Teldec
[DVD] 리스베트 발슬레프, 사이먼 에스테스, 마티 살미넨, 로베르트 슝크 등, 볼데마르 넬손 지휘,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하리 쿠퍼 연출, 1985년 공연 실황
[DVD] 카타리나 리겐차, 도널드 매킨타이어, 벵크트 룬트그렌, 헤르만 빙클러 등, 볼프강 자발리쉬 지휘, 뮌헨 바이에른 국립오케스트라 및 국립오페라 합창단, 바츨라프 카슬리크 연출, 1974년 제작(영화판)
---------------------------------------------------------------------------------------------------------------------
=== 줄거리 === <게르만신화.바그너.히틀러, 안인희> 부록에서
<제1막> 가파른 암벽 해안
사나운 폭풍에 떠밀린 달란트의 배는 고향에서 11킬로미터 떨어진 해안에 겨우 닻을 내린다. 안전을 확인한 달란트는 키잡이에게 보초를 맡기고 잠자리에 든다. 그런데 키잡이도 잠이 든 사이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의 배가 바로 옆에 정박한다. 운명에 정해진 대로 7년 만에 상륙하게 된 네덜란드 사람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고통스럽게 탄식한다.
갑판에 나온 달란트는 낯선 배를 발견하고 놀라 키잡이를 깨운다. 그들이 네덜란드 사람의 출신을 묻자 그는 멀리서 왔다고만 대답하고는, 넉넉한 보물을 줄테니 달란트의 집에서 하룻밤 묵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엄청난 보물을 보고 놀라는 달란트에게 네덜란드 사람이 자신은 처자식도 고향도 없으니 새로운 고향을 마련해 주면 보물을 모두 주겠노라고 제안한다. 그리고 달란트에게 딸이 있는지를 묻는다.
달란트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있었고, 또 평소 부자 사위를 보는 것이 꿈이었기에 그는 네덜란드 사람의 청을 받아들인다. 때마침 유리한 바람이 불어오고, 달란트는 네덜란드 사람에게 자신의 배를 뒤따라오라고 말한다.
<제2막> 달란트 집의 넓은 방
유모 마리가 지휘하는 가운데 소녀들이 물레를 돌리고 있다. 그런데 젠타만은 물레를 돌리지 않고 벽에 걸린 네덜란드 사람의 초상화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유모에게서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가 붉은 돛과 검은 마스트가 달린 튼튼한 배를 타고 정처 없이 바다를 떠돈다. 이 남자를 구원할 유일한 방법은 지상의 여인 하나가 죽기까지 그에게 정절을 바치는 것뿐. 젠타는 자신이 그를 구원할 여인이 되기를 꿈꾼다.
사냥꾼 에릭은 젠타를 사랑한다. 달란트의 배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 급히 달려온 에릭은 젠타의 아버지가 가난한 자신을 사윗감으로 반기지 않을 경우 젠타가 자기편이 되어줄 것인지를 묻는다. 하지만 젠타는 여전히 몽상에 잠겨 있다. 그러자 에릭은 지난밤에 꾼 불길한 꿈을 이야기해 준다. 꿈속에서 낯선 배가 사납게 파도치는 해안에 정박하고 두 남자가 뭍으로 내렸다. 한 사람은 젠타의 아버지고, 다른 사람은 창백한 얼굴을 한 남자다. 그때 젠타가 그 낯선 사람의 발치에 몸을 던지고 그의 무릎을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그의 가슴에 안겨 키스하더니 두 사람이 함께 바다로 도망친다. 이 이야기를 들은 젠타는 가련한 네델란드 사람과 함께 죽기를 결심하고 에릭은 실망해서 뛰쳐나간다.
그 순간 정말로 아버지가 낯선 남자와 함께 방에 들어선다. 그를 보는 순간 젠타는 놀라 소리치고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달란트는 이 사람이 큰 부자이며 그녀만 동의한다면 다음 날 당장 그를 사위로 삼겠노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서로 뚫어질 듯 바라만 본다. 상황이 바람직하게 돌아가는 것을 눈치 챈 달란트는 두 사람을 남겨 두고 방에서 나간다.
네덜란드 사람과 젠타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그녀에게 사랑을 느끼고 그녀는 그에게 죽기까지 충실할 것을 약속한다. 그때 달란트가 방으로 돌아와 곧 무사귀환을 축하하는 파티가 벌어질 것임을 알린다. 그리고 그는 두 사람이 약혼한 것을 확인한다.
<제3막> 달란트의 집 근처 가파른 암벽이 있는 만(灣)
노르웨이 뱃사람들이 갑판 위에서 술을 마시며 노래를 하고 있다. 소녀들이 바로 옆에 정박한 네덜란드 배로 다가가 술과 음식을 권하지만 그곳에는 새카만 어둠뿐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노르웨이 뱃사람들은 방황하는 네덜란드 사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녀들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한 후 돌아간다. 노르웨이 뱃사람들의 흥겨운 노래 사이로 들려오는 네덜란드 뱃사람들의 유령의 목소리와 같은 노래.
이때 젠타와 에릭이 흥분한 상태로 집 밖으로 나온다. 에릭은 낯선 사람과 약혼한 젠타를 비난한다. 아버지가 여행을 떠나면서 그녀를 자기에게 맡겼을 때 그녀는 자신의 목에 매달려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어찌 사랑의 약속을 깨뜨리려 하는가? 이런 두 사람의 대화를 뒤에서 듣게 된 네덜란드 사람은 흥분하여 자신의 선원들에게 즉시 떠날 것을 명령한다. 젠타가 그를 잡으려 하자 그는 그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자신에게 정절을 맹세했다가 그것을 깨뜨리고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는지를 일러준다. 젠타는 신 앞에서 맹세를 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아직은 구원받을 수 있다.
젠타는 그에게 자신이 바로 그를 구원할 여인이라고 말한다. 에릭은 그녀를 구하기 위해 사람들을 부르고,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네덜란드 사람은 자신의정체를 밝힌다. 영원히 죽지 못하고 떠도는 이 전설적인 사람을 보고 모두들 놀라 물러서는 동안 그는 배를 타고 떠난다. 젠타는 간신히 몸을 빼고 옆에 있는 암벽으로 올라가 죽기까지 그에게 충실함을 외치며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 순간 네덜란드 사람의 배도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다. 잠시 후 멀리서 두 사람의 밝은 모습이 물 위로 나타난다.
---------------------------------------------------------------------------------------------------------------------
=== 작품 해설 : 위기의 유령선을 비출 등대 === <1985 바이로이트 영상물 내지 해설, 정준호>
그리스도교를 대표해, 오스만투르크와 지중해에서 벌인 레판토 해전(1571)으로 일약 부상한 스페인. 스페인과 더불어 중남미를 경영한 포르투갈. 그리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누르고 대서양의 패권을 차지한 영국은 근대 '대항해 시대'를 연 대표적인 국가이다. 그러나 이들 못지않게 새로운 시대를 주름잡았던 해양국가는 네덜란드였다. 17, 18세기 동인도회사를 통해 아시아 무역을 독점한 네덜란드에는 전 세계의 부가 밀려들었다. 렘브란트와 베르메르는 신흥부호를 위해 그림을 그렸고, 델프트의 도자기와 차 문화는 전 유럽의 풍속을 대변했다. 해양국가 네덜란드를 상징하는 것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전설이었다. 그것은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 채 바다 위를 떠도는 유령선에 대한 내용이다. 이 유령선은 유럽인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불안감을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무엇이 그들을 두렵게 했을까?
원거리 무역이 가져온 경제력을 토대로 유럽 사회는 점차 근대로 나아가게 된다. 산업혁명은 박차를 가했고, 불평등한 신분제도와 불합리한 사회제도는 프랑스 혁명으로 이어졌다. 이와 더불어 유럽인들의 삶은 점점 분화되고 빠르게 신화의 세계를 벗어났다. 괴테는 <파우스트 1부>(1806)에서 "노력하는 한, 길을 잃는다"라고 말했다. 스스로의 삶을 개척하는 자발적인 현대인에게 세상은 살수록 고독하고 힘들게 마련이라는 의미이다. 시대의 '방황하는' 젊은이 상은 <젊은 베르테르의 번뇌>(1774)를 낳았다. 사랑을 일상의 도피처로 삼은 베르테르는 자신이 파 놓은 그 사랑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실패한 직장인의 연애담은 빌헬름 뮐러와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아가씨>와 <빈터라이제>까지 이어진다. 그런가 하면 '앙시앙 레짐' 곧 구체제와 낯선 일상으로부터의 '탈출'은 모차르트에게도 <후궁 탈출>(1782)이나 <마술피리>(1791)를 쓰게 했다. 전작은 터키 후궁들의 처소 할렘으로 팔려간 애인을 술탄으로부터 구출하는 내용이요, 후자는 두 선남선녀 파미나와 타미노, 그리고 파파게노가 어둠의 세력인 밤의 여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통과의례를 거치고, 결국은 빛의 현자인 자라스트로에게 구원된다는 줄거리이다.
이런 모차르트나 또 '구출 오페라'로 인기를 끈 프랑스 작곡가 케루비니 등의 영향을 받은 베토벤은 1805년 유일한 오페라 <피델리오>를 발표한다. 정치적인 박해를 받아 수감된 남편을 구출하기 위해 남장을 하고 감옥으로 숨어들어간 용감하고 신실한 아내의 이야기이다. 이렇게 근대의 예술가들은 이 세상에서 무모하게 도전장을 내밀고, 때로는 가능할 법하지 않은 '구원'을 꿈꾸게 된다. '방황', '탈출', '구원' 이 세가지 요소는 낭만주의라는 시대정신의 형태소를 이룬다. 19세기 전체에 걸쳐 문화계에 가장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예술가 가운데 단연 첫 손 꼽을 사람이 리하르트 바그너였고, 방황과 탈출, 구원은 그의 오페라의 뼈대였다. 그 첫 작품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다.
대항해시대 이후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먼 바다를 여행하게 되었고, 전대미문의 낯선 환경과 마주하게 되었던 유럽인들은 공포와 맞서고, 두려움을 달래며, 절망에 적응하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고, 바그너의 오페라는 그런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은 1843년에 작곡되었고, 그해 드레스덴에서 작곡자 자신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대본은 바그너 자신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전설을 토대로 직접 썼다. 이는 악마와 영혼을 놓고 주사위 놀이를 해서 최후의 심판 때까지 북해를 떠돌게 되었다는 폴켄버그 선장의 이야기부터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의 자바 사이를 악마의 도움으로 항해했다는 베르나르트 포케 선장의 얘기까지 다양한 소재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1826년 영국의 대중작가 에드워드 피츠볼은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이라는 소설로 이 이야기를 활자화했고, 1839년 디킨스의 동료작가였던 프레드릭 머리엇은 <유령선>을 쓰는 등 당시 이 전설은 대중에게 폭넓게 파고들어 시대가 주는 긴장감과 불안감을 대변했다.
하인리히 하이네의 <슈나벨레보프스키씨의 회상>이라는 풍자소설도 오페라에 영향을 미쳤다. 뱃사람은 여자를 믿지 말 것이며, 여자들은 낯선 남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이 소설의 내용은 고스란히 바그너의 머릿속에서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전설과 결합되었다. 바그너 자신도 이 오페라를 쓸 당시 북해의 필라우에서 런던으로 가는 항해를 경험한다. 그는 도중에 폭풍을 만나 노르웨이의 피오르에 정박했고, 이 어촌 마을에서 들은 선원들의 노래가 오페라의 모티프로 사용된다.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의 젠타는 바그너의 다음 작품에서도 구원의 여인으로 계속 모습을 바꾼다. <탄호이저>(1845)의 여주인공 엘리자베트, <로엔그린>(1848)의 엘자, <트리스탄과 이졸데>(1859)의 이졸데,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1867)의 에바, <니벨룽의 반지>(1869-74)의 브륀힐데, <파르지팔>(1882)의 쿤드리가 그녀와 마찬가지이다. 젠타는 이 어두운 시대에 불을 밝힐 등대이다.
바그너의 유령선은 오늘날 현실 세계에서 다양하게 모습을 바꿀 수 있다. 그것이 실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인 파생금융상품이면, 네덜란드인은 금융위기를 초래한 월스트리트의 화이트칼라가 된다. 스스로 끊임없이 복제하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유령선이라면 저주받은 사나이는 인터넷의 노예가 된 현대인 개개인이 아닐까? 이스라엘과 중동의 종교분쟁이 그 무시무시한 항해를 대변한다면, 고통받는 선장은 스스로 헤어날 줄 모르는 원리주의 정치인들일 것이다.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7 00:26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7 00:49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5.05.17 23:37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8.02 19:42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6.09.26 11:1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3.02 14:53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9.19 14:38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9.19 16: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