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니가 어린시절 매주 목욕탕 에 함께 다녔지.
아버지가 연도 만들어서 함께 날리고
썰매도 만들어 주고
어른이 되고 아버지하고 목욕 한번도 못가본 게 한으로 남는 사람 많아.
너 초등학교 4학년때 는 포경수술도 아버지와 함께 했지.
엄마는 옷장사 한다고 새벽 4 시면 집을 나서는 날이 많았었지.
그때 어린 애들 만 놔두고 새벽시장에 가는것은 불가능 하지.
동대문 다녀오는데 계산동서 5시간 걸렸거든.
아버진 햄 구워서 니 도시락 싸주고
아침 먹여서 학교 보냈지.
채소반찬 안 먹는 니 도시락 반찬은
늘 진미채 어묵 계란 소시지 를
바꿔가며 싸주었었지.
아버지는 무료한 하루를 채소농사를 지었단다.
부동산 땅투기 로 40년전 돈 2000만원을 잃고
술에 취하는 날도 많았었지.
채소농사 하는것을 나도 수고한다.
고맙다 고 생각을 전혀 안했어.
취업을 안하는 것 만 불만 이었었단다.
그 시절 내가 동대문시장 봐다 가게로 와서 물건을 진열 하고나면 아버지가 자전거로 내려왔지.
난 동대문에서 아침 식사 시레기국 백반 먹기도 하고 안먹은 날은 가게로 와서 컵라면 먹고
아버지가 내려오면 일단 커피 타주고
점심땐 뚝배기찌개 끓여서 점심 해주고,
어떨땐 삶은 오징어넣고 비빔국수 해주고,
아버진 신문보면서 손님좀 받고
오후간식타임 땐 샌드위치 만들어 먹이고 저녁때는 집에가져갈 반찬 만들어서 들려주고 했지.
아버지가 배터춰 죽이려고 하느냐 고
농담 할 정도로 잘 먹였단다.
아버지 미워도
먹이는것 만큼 은 내가 잘 해주었었지.
여러날의 술 과음 술주정 폭언 등 때문에 미웠지.
그리고 아버지가 개도 키웠지.
외삼촌이 그레이트덴 을 가져오는 바람에 키우기 시작했어.
벤 하고 진이, 생각나지?
그놈덜이 새끼를 8 마리나 낳았고 외삼촌이 새끼들 가져가고 얼룩 이 루기는 우리가 키웠고
또 두마리 중도에 죽은 놈들 있었자나? 이름 이 생각이 안 나네.
아! 누나가 기억 하네 위니, 하니, 였었어.
그 하얀개 하니 죽고 너 엄청 울었었어.
위니는 교통사고로 죽 고 하니는 홍역 앓다 죽었지.
위니는 회색 에 밤색 점있는 얼 룩이고 하니는 하얀개 였지.
그레이트 덴 종류 인데 에미젖도 못 먹 게 된 사정 이 생겼다고 외삼촌 이 어린것들을 데려 왔더라.
내가 솜이불 덮어 재우고 분유 먹여 키웠었지.
애견 사랑 이 외삼촌 하고 나하고 비슷해.
외삼촌은 체구가 작은데 한강 난지도 에서 "용해중기" 라고 하는 모래자갈 퍼내서 큰차로 내다 파는
사업을 했었고 거기서 개들 을 키웠었어.
외삼촌은 중동 고등하교 나오고 한양대 공업경영 학과 를 나왔고 진호 하나 낳았었지.
진호 돌 지나고 진호에미는 이혼하고
할머니가 70세 넘었는데 육아를 했지.
사춘기때 부터 계모가 돌봤어.
그 진호형을 계모 가 키웠었는데 다 커서 자살 했지 않냐?
계모대문에 말 로 상처받고 우울증 이 있었나봐.
고등학교 졸업후 한전에 기술 훈련생 으로 들어 갔다가 군대 갔었지.
그런데 휴가 나왔다 들어가면서 16층 빌딩 에서 뛰어내려서 죽었지.
명절이면 너희들 하고 깔깔 대던 명랑하던 진호가....
개 키울때 아버지가 박촌 농협에 까지 자전거를 타고 가서 돼지사료를 한 포대식 사와서
마당 에 큰 양은솥에 늙은 호박썰어넣고 내가 시장닭집에서 닭대가리 한보따리 얻어다주면
끓이다가 돼지 사료를 넣어서 죽을 쑤었단다.
지금도 그 닭대가리 주던 닭집 아저씨가 고맙고 미안해.
그땐 과일 한봉 지라도 사다 줄 줄을 몰 랐었네.
그걸 큰 프라스틱 통에 네 통으로 담아놓고 냉장고에 두고 큰 개들을 몇일 먹이고 또 끓이고
또 끓이고 개를 먹였었지.
그때 정성이 부모에게 그렇게 공들였으면 효자 될번 했다고 말했었지.
지금 생각 해보니 대단한 정성 으로 개를 키웠구나.
그런데 술만 마시면 개를 안돌보니 내가 힘들어서 개를 정리 했었지.
철거전 에 개 4마리를 80 만원 엔가 팔았고 개집 보상도 200 만원 나와서 아버지가 봉현네랑 인호네 좀 나누어 주었단다.
아버진 뭘 하면 꼼꼼스레 해.
내가 덜렁이지.
지금 생각하면 손녀딸 유리 같이 엉망진창 습관을 가진 나를 길 들이느라 엄청 싸운것 같아.
어릴때 엄마네가 잘 살아서 늘 식모가 있었잖아.
청소도 않해보고 설거지도 제대로 안해보고 컸지 뭐냐.
음식도 대충 쉽게만 하고.
엄마 어린시절 계동집은 2층집인데
방이 아홉개 점포가 3개 있었지.
그 집에 사는동안 나는 영수이모랑 방을 네번 바꾸었는데 우린 책한권도 안옮겼지.
할머니 하고 식모 하고 다 해놓고 우린
몸 만갔지.
내가 그렇게 커서 너희들도 일을
시키는 걸 안했지.
윤경이 너무 일 안시켰더니 시집가서
나서방 엄청 부려먹어.
음식쓰레기 분리수거 설거지가 다 나서방담당 이라니 미안하드라.
내가 윤경이를 외할머니가 나 키우듯이 야단도 안치고 일도 안시키고 키운게
잘못인거 같은데..
좌우간 나서방도 착해.
아버지가 한 말이 있었어.
윤경 이 신랑 될 사람 좀 힘들거라고 ㅎ ㅎ
그래도 잘 견디고 사는게 신통 하지.
정리정돈도 나서방 이 잘 하고.
넌 요리도 잘하고 버리기도 잘하고 살 림 도 요리도 잘하는것 같구나.
아버지가 압력솥에 늘 밥해서 밥통 에 퍼놓고 니 밥을 챙겨 주었으니
너도 다 보구 배운거지.
요즘 아버진 절대로 전기 쿠쿠 밥솥밥을 안해.
밥솥 이 말을 해서 이지.
밥솥이 " 따끈따끈한 백미 밥을 시작 합니다"
이러면 아버지가 "뭐라구?' 하면서 못 알아들어.
노인이 되면 기계음을 못 알아 듣는대.
"잠시후 증기를 배출하겠읍니다." 이러면 또 "뭐라구" 놀라면서 절대로 쿠크밥솥을 싫어 하는거야.
이젠 아버지도 82세 노인 이잖니?
40 넘어서 널 낳고 천하를 얻은 듯이 행복 해 하던 아버지 란다.
니가 아버지가 무슨 일을 했었는지 얘기 해달 라 하는 바람에 개키우던 추억 까지 생각 났다.
글도 몇년만에 써보게 되니 오타도 많이 나지만 재미도 있구나.
안그랬으면 엄마도 암 말 못하고 그냥 치매 걸 릴번 했어.
코로나 시절이라 수요사생 모임이 2년간 없다보니 그림 그릴 의욕도 떨어지고
유리 돌보러 가지않을 때부턴 잠이 안와서 수면제를 8 개월 복용 했드니 치매 걸리겠어.
어제 그제 한 일들이 생각이 안 나더라.
그래서 수면제 끊고 눈만 감고 밤새 누워 있으면 잠이 들었다가 깼다가 하면서 아침이 오더라.
잠을 푹 자지 못하니 낮에 매카리가 없어.
여튼 수면제는 끊으려고 한다
아버진 아직 혼자 염색하고 목욕도
혼자 하니 감사 한다.
허리협착증 은 매일저녁 안티프라민 로션바르고 종일 전기방석뜨신거 허리뒤에대고 작은 안마기계 엉치 맛사지 로 버틴단다.
앞으로 유지가 잘돼야 할텐데
지금이 그나마 감사한 시기 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