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46·사진)이 한국인 최초로 세계적 권위의 맨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을 수상했다.
맨부커상선정위원회는 16일(현지 시각) 밤 영국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한강의 영역(英譯)된 소설 ‘채식주의자’를 2016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으로 발표했다.
이 책을 번역해 해외에 처음 소개한 영국인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29)도 한강과 함께 공동 수상자로 호명됐다.
영어권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힌다.
한강은 "책을 쓰는 것은 내 질문에 질문하고 그 답을 찾는 과정이었다. 때로는 고통스러웠고 힘들기도 했지만 가능한 한 계속해서 질문 안에 머물고자 노력했다"며 "나의 질문을 공유해줘서 감사하다"고 수상 소감을 밝혔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영국 인디펜던트 문학 선임기자인 보이드 턴킨은 "맨부커 인터내셔널을 수상할 충분한 가치가 있는, 잊혀지지 않는 강력하고 근원적인 소설"이라며 “압축적이고 정교하고 충격적인 소설이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보냈다.
맨부커상은 영국 등 영연방 국가 작가에게 주는 상(Man Booker Prize)과 영연방 외 지역 작가와 번역가에게 주는 인터내셔널(Man Booker International Prize) 부문 상으로 나뉘어 수여된다. 작가와 번역가가 상금 5만파운드(8200만원)를 똑같이 나눠 갖는다.
한강은 지난 3월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1차 후보) 13명 중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포함됐고, 지난달 6명의 최종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터키의 노벨상 수상자 오르한 파무크, 체코의 카프카 문학상을 받은 중국 유명 작가 옌롄커, 현재 영 미권에서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은 이탈리아 작가 엘레나 페란테, 오스트리아의 로베르트 제탈러 등 쟁쟁한 경쟁자들을 제치고 최종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에 얽힌 트라우마 때문에 거식증에 걸린 여성이 나무처럼 말라가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한 소설이다. 지난해 영어판이 나온 뒤 영미 언론에서 ‘감각적이고, 도발적이고 격렬하다’는 찬사를 받았다.
영국 번역작가 데보라 스미스(여·28)가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 부문 상을 수상하면서 영국 현지에서도 화제를 모으고 있다.
심사위원장 보이드 톤킨은 16일(현지시각) 런던 빅토리아앤알버트 박물관에서 개최된 공식 만찬 겸 시상식에서 '채식주의자'의 영어번역판을 "놀라운 번역"으로 평가하면서 "이 상은 작가와 번역작가를 완전히 동등하게 평가한다는 점에서 기묘하면서도 뛰어난 '채식주의자'가 영어에 들어맞는 목소리를 찾았다"고 스미스의 번역을 극찬했다.
BBC·가디언·인디펜던트 등에 따르면, 스미스가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7년 전인 21세부터였다. 영어로 번역된 한국 작품이 너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한국어 공부에 매진하게 됐고, 결국 짧은 시간 안에 놀라운 한국어 표현력을 갖게 됐다. 그럼에도 그는 한국어 구사 능력에 대해 "전형적으로 언어를 교과서로 배운 사람처럼 한국어를 말한다"고 겸손해했다.
스미스는 현지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한국문화와 전혀 연관이 없었다. (한국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 한국 사람을 만나본 적도 없었던 것같다. 하지만 나는 독서와 글쓰기가 합쳐진 번역가가 되고 싶었다.그래서 언어를 배우고 싶었다"고 번역의 길에 들어서게 된 계기를 밝혔다.
그는 많은 외국어 중 한국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에 대해 "분명 이상스런 선택이긴 했다"며 "실제로 한국어는 이 나라(영국)에선 공부하거나 아는 사람이 없는 언어이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스미스는 처음엔 독학으로 한국어를 공부하다가 런던대 동양아프리카학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학위를 받고, 이후 박사과정에 진학했다.최근에는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 번역서를 주로 출간하는 틸티드 엑시스 프레스란 출판사를 직접 세우기도 했다.
스미스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영어명 '휴먼 액츠(Human Acts)'도 영어로 번역해 영국 포트벨로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바있으며 배수아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번역했다.
- 아시아 작가로 첫 수상 '쾌거' 1993년 詩人으로 등단… 서정적으로 현실의 폭력성 다뤄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 아버지와 '이상문학상 부녀 수상', 오빠도 소설가인 '文人 집안'… 서점에선 일찌감치 품절 사태
소설가 한강(46·서울예대 문창과 교수)이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의 보이드 턴킨 심사위원장은 16일 밤(현지 시각)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수상작으로 선정한 뒤 "뛰어난 작가가 많고 문학이 번창하고 있는 한국은 왕성한 소설 문화를 지니고 있다"며 "우리가 한국 문학을 더 주목한다면 매우 좋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밝혔다.
2016년 맨 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돼 상패를 받은 소설가 한강(오른쪽)과 번역가 데버러 스미스. /EPA 연합뉴스
미국 하버드대에서 영문으로 발행하는 한국 문학 전문지 '아젤리아'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영준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미국 문인들은 황순원의 단편 소설을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 소설의 특징으로 시적(詩的) 문체와 서정성을 꼽았다"면서 "시인으로 출발한 한강의 소설이 바로 그런 요소를 강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영어권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진단했다. 이 교수는 "한강 소설이 서정적이면서 그와 정반대인 한국 현실의 폭력성도 드러냈기 때문에 '채식주의자'에 대한 현지 서평을 보면 대부분 '충격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46)의 한자 이름은 한강(韓江). 소설가인 아버지 한승원(77)씨가 지은 이름이다. "가장 쉬운 이름이 가장 좋은 이름"이라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했다.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은 연세대 국문과 89학번이다. 졸업 연도인 1993년 '문학과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 등 시 4편이 당선되며 시인으로 먼저 등단했다. 이듬해인 1994년에는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닻'이 당선되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지금까지 장편 6권, 소설집 3권, 시집 1권, 산문집 1권을 발표했으며, 다음 주에 신작 소설 '흰'이 출간된다.
부친은 소설가 한승원씨 - 한강의 아버지인 소설가 한승원씨가 17일 전남 장흥 율산마을에 있는 자택‘해산토굴’에서 잇달아 걸려오는 축하 전화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2005년 이상문학상, 2010년 동리문학상, 2015년 황순원문학상 등 수상. 1988년 '해변의 길손'으로 아버지도 이상문학상을 받은 덕에, 현재까지 유일무이한 '이상문학상 부녀 수상'의 기록을 갖고 있다. 오빠 한동림씨도 소설가이고, 남편 홍용희씨도 문학평론가(경희사이버대 미디어문창과 교수), 남동생도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한 '문인 집안'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것은 세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버림받은 것들에 대한 연민과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세계의 폭력에 대한 경악은 한강 소설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라고 했다.
서점엔 '한강 코너' -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본점에 설치된 한강 소설 코너. 수상 축하 알림판과 수상작‘채식주의자’가 눈길을 끈다. /장련성 객원기자
남편과의 의사소통에 실패하고 점차 식물이 되어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집 '내 여자의 열매'(2000·창비)는 이번 수상작 '채식주의자'의 씨앗을 발견할 수 있고, 인체를 석고로 뜨는 조각가를 통해 육체 안에 감춰진 영혼의 상처를 드러낸 장편 '그대의 차가운 손'(2002·문학과지성사), 말을 잃어가는 여자와 시력을 잃어가는 남자의 만남을 그린 '희랍어 시간'(2011·문학동네), 동리문학상을 받은 장편 '바람이 분다, 가라'(2012·문학과지성사), 죽은 자들에게 빙의하는 형식으로 1980년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창비·2014 창비) 등이 주요 작품이다.
한강의 부친 한승원씨는 "우리 딸 만세!"라며 웃었다. 그는 "그 아이는 어릴 때부터 책을 읽고 어둔 방에서 몽상하는 것을 좋아했다"며 "고등학교 때 영어를 잘해서 영문과에 가라고 했는데, 굳이 소설을 쓰겠다며 국문과를 선택하더니 연세대 국문과에 수석 합격했다"고 딸 자랑을 멈추지 않았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진 17일 오후 6시 현재, 교보문고는 '채식주의자'가 4500부 팔려 전날에 비해 22.5배 증가했다고 밝혔다. 인터넷 서점 예스24 역시 오후 6시 현재 7000부가 팔려 전날에 비해 38배 늘어났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매장에서는 오후부터 일찌감치 품절 사태를 빚었다.
소설가 한강(46·사진)이 장편소설 '채식주의자'로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Man Booker Interna tional Prize)'을 받았다.
'맨 부커 인터내셔널'상은 영국 등 영연방 문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맨 부커상'의 외국 소설 문학상으로, 아시아 작가가 이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며 한국 문학 세계화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앨리스 먼로를 비롯, 이름난 작가들이 이 상을 받아 노벨 문학상에 버금가는 권위가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금 5만파운드(약 8500만원)는 작가와 번역가에게 똑같이 나눠 준다.
맨 부커상 선정위원회는 16일 밤(현지 시각) 영국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박물관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채식주의자'는 압축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로 아름다움과 공포의 기묘한 조화를 보여줬다"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영역해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된 데버러 스미스(28)는 런던에서 한국 문학 전문 번역가이자 틸티드 액시스 출판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그녀는 2010년 런던 대학 소속 '동양 아프리카 연구대학(SOAS)'에서 한국학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하기 시작해 박사 과정까지 마쳤다.
데버러는 지난해 한글로 쓴 산문 '한국 문학과 함께 가는 삶의 여정'을 한국문학번역원이 내는 잡지에 발표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한국 문학은커녕, 한국 음식을 먹어본 적도, 한국인을 만난 적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그녀는 "한국이 상대적으로 부유한 선진국인 것으로 보아 한국 문학계가 활발할 것으로 짐작했다"며 한국 문학 번역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단어 하나하나 사전을 일일이 뒤지며 한국어를 공부했다. 영역본 도입부를 보면, 전세계적으로 인기 있는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의 영역본처럼 간결하면서 기괴한 느낌을 불러 일으킨다.
데버러는 2013년 한강의 소설 '채식주의자'를 4개월 만에 영역해 지난해 1월 영국 포르토벨로 출판사에서 냈다.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심사위원회는 '채식주의자' 번역에 대해 "이 상의 핵심은 작가와 번역자를 동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는 이 낯설지만 뛰어난 책이 영어로도 완벽하게 제 목소리를 냈다고 느낀다"고 호평했다.
데버러는 수상자 발표 직전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본지 5월 16일 자 A25〉에서 "한강이 완벽하게 계산해서 절제된 문체로 인간 본성의 가장 어둡고 폭력적인 양상을 탐사하는 방식에 이끌렸다"고 번역 동기를 밝혔다. 그녀는 한강의 소설 '소년이 온다' 영역본도 올해 초 출간했다. 배수아의 소설 '에세이스트의 책상'과 '서울의 낮은 언덕들'도 영어로 옮겨 곧 출간한다. 배수아는 "데버러는 한국 문학에 내린 축복"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