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5. 3 쇠날 날씨: 아침 저녁으로 지리산 자락 바람이 겉옷을 찾게하지만 낮에는 해가 쨍쨍 덥다.
[자연속학교 닷새째-족대질, 고구마순 넣기]
“선생님 내일 집에 가요. 하룻밤만 자면 가요.”
내일이면 집에 간다고 웃으며 말하는 3학년 유찬이 얼굴이 환하다.
곁에 있던 아이가
“선생님도 집에 가서 좋아요?”
“그럼. 그래도 우리 더 놀다 가면 좋겠는데 어떠니?”
“안돼요. 교회도 가야 하구요. 어린이날 선물도 받아야 해요.”
아침 당번이라 일찍 일어났는데 6시다. 벌써 다경이와 호연이는 일어나서 어제 못 쓴 하루생활글을 쓰고 있다. 참 녀석들 높은 학년 되더니 많이 의젓할 때가 많은데 자기 일 처리도 야무지게 한다. 수빈이 모둠이라 수빈이를 깨워놓고 식당으로 가서 아침 준비를 한다. 콩나물국, 오징어채볶음, 달걀장조림, 깍두기김치가 반찬이다. 수빈이가 지안, 남민주, 서민주, 지우를 데리고 와서 일 나누기를 한다.
“지난번에도 너희들이랑 같이 밥 당번을 했는데 오늘도 선생님이랑 하네.”
“선생님이 우리 모둠인 줄 알았어요.”
“그건 아니고 선생님들도 돌아가며 하는데 어쩌다 또 만난 거지.”
아이들이 콩나물도 다듬고, 남민주랑 지안이가 밥을 하고, 지우와 서민주는 상에서 의자를 내리고 행주로 닦고 척척 일을 한다. 달걀 장조림 데우고, 다시마와 멸치 육수에 콩나물을 넣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니 아침 준비가 끝난다.
아침열기 마치고 잠집 근처 묘천으로 가서 물고기를 잡는데 물은 차지만 햇살이 따스해서 아이들이 신이 났다. 통발 놓고 족대질 하고, 돌 갖고 놀고 저마다 잘 논다. 족대로 미꾸라지를 잡아 추어탕을 저녁밥으로 먹어야 해서 열심히 족대질하는데 미꾸라지가 잡히지 않는다. 진흙이 밟히는 곳에 다시 족대를 대고 발로 쿡쿡 밟아올리니 앗 엄청 큰 미꾸라지가 잡혔다.
“애들아 미꾸라지 잡았어.”
아이들이 몰려오고 종민이와 소현이가 들고온 통에 미꾸라지를 담았다. 미꾸라지가 아주 커서 튀어나갈 것 같고 뚜껑 갖고 오는 아이가 오지 않아 민철이가 갖고 있던 족대 그물로 덮어놨는데 아이고 어쩌나 걱정하던대로 미꾸라지가 빠져나가고 말았다. 아이들 아쉬워하는 소리가 크다.
“괜찮아 다시 잡으면 돼. 그래도 진짜 컸는데 아깝긴 하다.”
그러고나서 다시 족대질하는데 미꾸라지는 나오지 않고 팔과 허리만 아프다. 저쪽 갈대밭에서 규태와 족대질 하던 최명희 선생이 “잡았다.” 한다. 금붕어란다. 그쪽으로 아이들이 몰려가고 다시 족대질을 하는데 붕어들이 줄곧 나온다. 다슬기, 우렁이, 재첩도 있다. 누가 놓은 건지 버려진 통발을 최명희 선생이 찾았는데 물고기가 많이 들어있다. 한참 하고 족대질하고 나오는데 아이들 몸이 다 젖었다. 슬슬 걸어나오는데 맨발이라 발이 미끄럽고 힘이 없다. 발바닥이 아프다. 물살이 빠른 곳에 승민이가 중심을 잡고 서있다. “물고기”를 말하는데 “형들이 물고기 가져올 거예요.” 그러니 저쪽으로 건너가고픈 눈치다. 최명희 선생이 건너가는 걸 도와주는 걸 보고 물밖으로 나오니 한주와 성범이가 옷이 다 젖어 춥다고 몸을 떤다. 윗옷을 다 벗기고 송순옥 선생이 건네준 옷을 입히고 숄로 몸을 감싸고 차를 타고 낮은샘 모두 불러 잠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오자마다 옷 다 벗고 목욕하고 승민어머니가 준비해놓은 따듯한 매실차 마시고 침낭 속으로 들어가 쑥 들어가 몸을 덥힌다.
저녁에 먹을 추어탕은 끝내 사온 미꾸라지로 할 수밖에. 선생들이 사온 미꾸라지에 소금을 뿌려 흙을 토해내게 하고 로켓화덕에 불을 붙이는 아이들과 아이들 먹일 생각에 미꾸라지를 만지고 추어탕을 끓이는 선생들이 아름답다.
낮은샘은 점심 먹고 1시간 낮잠을 자는데 형들처럼 놀고 싶다더니 금세 잠을 잔다. 왜 자야 하냐는 녀석들이지만 역시 몸은 쉼과 잠이 필요하다. 한주랑 지안이, 3학년 민주는 안 자고 말똥말똥 눈뜨고 서로 소곤대며 이야기를 하다 빨리 자라는 선생 말에 눈을 감는다. 푹 자고 나니 3시다. 3시 넘어 고구마순을 넣는데 밭흙이 굳어서 애를 먹는다. 아이들이 달라붙어 심으니 금세 다 심긴했는데 땅이 굳어 불량이 많다. 다시 심고 일어서는데 근학이와 송순옥 선생은 따로 한 고랑을 줄곧 심는다. 일하며 따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까닭이 있긴 하다.
자유 시간에는 옷도 미리 정리하고 가방 싸고 내일 집에 갈 준비를 한다. 한참 쉬다 방 청소를 여자방, 남자방 따로 하는데 아이들이 서로 나서서 쓸고 닦고 하는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마음이 즐겁다.
아이마다 옷 챙기고 정리하는데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잘하는 편이다. 1학년들 짐 챙기는 거 다시 보고 아이들마다 옷 찾아주니 기다리던 추어탕 먹을 시간이다. 갑자기 바람이 불더니 빅가 한두 방울 떨어진다. 이번 자연속학교는 날씨가 좋다. 저녁에만 잠깐 비가 오고 낮에는 줄곧 날씨가 좋다. 아이들과 송순옥 선생, 최명희 선생이 끓인 추어탕 맛이 좋아서 다들 더 떠다 먹는다.
밥 먹고 쉬는데 아이가 와서 화장실을 같이 가자고 한다. 집에서 쓰는 화장실처럼 누는 자세가 편하지 않아 옷에 혹시 묻을까봐 다 벗고 볼일을 보고 마무리를 도와준다. 화장실 때문에 서로 더 친해져서 좋다.
방에 와서 일기 쓰고 짐 정리 하고 씻고 마침회를 한다. 하루 되돌아보기, 자연속학교 때 줄곧 애써온 서로 돕는 이야기를 한다. 선생님들에게 고맙고 서로 도움받아 고맙다고 발표하는 마음이 좋다. 그리고 서로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 주로 말투, 기분 나쁜 것, 놀림말, 누구에게 너무 대드는데 그러지 말라는 것, 몸짓, 노는데 방해하지 말라는 것들이 많다.
자연속학교 때는 모둠 선생보다는 모든 아이들을 살피고 챙기는데 그래도 낮은 학년들은 모둠 선생을 주로 찾는다. 이 닦을 때, 화장실 갈 때,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그렇다. 아이들이 빨기에 힘든 빨래는 선생들이 주로 한다. 화장실이 좀 멀고, 놀다가 잊어먹고 가다가, 또는 불편해서 그런 일도 있어서 전혀 문제될 것은 없다. 자연속학교에서 선생은 부모가 된다. 부모 대신 먹이고 입히고 함께 놀고 자고 씻는다. 그래서일까 가는 곳마다 아이들 데리고 다니는 선생들 보고 고생한다는 말을 건네는 분들이 많다. 아이들과 줄곧 사는 노릇이 쉽지 않음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리라. 물론 아이들과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선생들을 겪어보지 못한 탓도 있다.
아이들과 누워 잠을 청하는데 이것저것 떠오르는 게 많다. 틈날 때마다 뜯은 쑥이 꽤 된다. 날마다 조금씩 뜯었는데 떡 해먹을 만한 양이 되나 모르겠다. 매실차 한 잔에 아이들이 다들 줄을 선 것도 기억나고, 푸른샘 동생들을 챙기는 누나, 언니들 손길이 참 살뜰하다는 생각도 든다. 얼굴에 자외선 차단제도 발라주고, 칫솔이 없어졌다고 걱정하고 참 부러운 형제들이다. 옛날 이야기 들으며 내일 만날 부모님 생각에 일짝 잠이 든 아이들 숨소리가 더 편안하게 들린다.
9시 30분 아이들이 모두 잠들고 교사마침회를 준비하는데 김상미 선생이 급히 뛰어온다. 승민어머니가 뭔가에 물렸단다. 선생들이 부리나케 달려가보니 복도에서 승민어머니가 울고 승민이가 울고 있다. 잠자는데 뭐가 갑자기 손을 물었다 해서 손을 보니 부어올랐다. 여자방으로 들어가니 잠이 깬 몇몇 아이들이 “저쪽이 뭐가 있어요.” 한다. 보니 지네가 장판밑에 숨어 있다. 최명희 선생이 수건으로 눌러 지네를 잡아 밖으로 나오니 승민어머니가 많이 놀라서 울음이 그치지 않는다. 엄지손가락이 부어오르고 아프다고 이야기 한다. 시골에서는 흔히 보는 지네지만 처음 당한 어머니가 얼마나 놀라고 아팠을지 짐작이 된다. 시골 산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야 조금 아프고 하루 지나면 가라앉을 줄 알지만 처음 온 자연속학교에서 큰 일을 당한 셈이니 얼마나 놀랬을까. 혹시 몰라 가까운 병원응급실에 가서 진통제와 치료를 받으러 가는데 승민이도 같이 간다. 어미니 우는 모습에 승민이가 많이 놀라 울었지만 금세 어머니랑 학교차 타고 병원에 같이 가는 모습이 대견하다.
조금 뒤에 지난해까지 초록배움터에서 살다 둘레 동네로 이사간 이순규 선생이 부인과 함께 선생들을 만나러 왔다. 지네 이야기 듣고 시골 분 아니면 많이 놀랄을 거라고, 일찍 왔으면 치료를 해서 병원에 안갔을텐데 하면서 함께 걱정을 해준다. 10년전에 이곳에 내려와 사는 부부라 생협에서 일하는 이야기며 농촌 생활 들려주는 이야기가 모두 살갑다. 그런데 사모님 이야기가 재미있다. 지네에 물린 어머니가 얼마나 놀랐을지 안다고,
“그런데 지네 처지에서는 또 얼마나 놀랬을까요. 심지어 죽임을 당했는데.“ 한다.
웃으시며 말하지만 생명과 생태, 자연을 생각하는 말이 절로 나옴을 안다.
“아이들이 물리지 않아 얼마나 다행이예요.”
승민어머니가 아이들 대신 큰일을 겪은 밤, 밤비가 내린다. 고구마순을 심은 뒤라 오는 비가 참 반갑다. 하늘이 농사를 돕는구나. 이순규 선생 부부가 돌아가고 교사들끼리 자연속학교 마지막 교사 마침회를 한다. 아이들 건강, 자연속학교 되돌아보기, 교사들 건강과 속내 이야기까지 시간이 훌쩍 간다. 교사들 호흡이 얼마나 귀한지 서로에게 배우고 함께 가꿀게 많아 좋다.
첫댓글 아이들이 쓴 일지도 흥미롭지만, 선생님이 쓰신 것은 영화를 보는 듯하여 둘 다 재미있습니다.
승민어머니가 여러모로 많이 애쓰셨겠네요.. 힘들고 아픈 경험이 거름이 되어 승민이가
보다 행복한 삶을 누리는데 큰 도움이 되겠지요~~ 선생님들께도 감사와 존경을 보내드려요~
하루 하루 있었던 일을 자세하게 써주셔서 실제로 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과 승민 어머님 큰 경험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