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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관심
#궁궁통1
고(故) 김응국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독교 복음의
가장 무서운 적은
탈레반도 아니고
이슬람도 아니다.
다름 아닌 자아다.”
고 김응국 목사는 생전에 "기독교 복음의 가장 무서운 적은 다름 아닌 자아다"고 말했다. 중앙포토
김 목사가 지적한
자아는 에고를
말하는 겁니다.
구약의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할 때
숨결을 불어넣었습니다.
그 숨결은 히브리어로
‘속성’을 뜻합니다.
다시 말해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신의 속성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안에는
이미
신의 속성이 흐르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이스라엘 갈릴리에 있는 예수와 베드로의 동상. 예수는 자기 십자가를 통과하며 자신의 에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길을 일러주었다. 백성호 기자
김 목사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자아(에고)를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저는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궁궁통2
기독교 출판사의 편집국장을
역임한 김 목사는
자신이 겪은 일화를
하나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출판사에서
매일 아침 출근하면
직원들과 함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예배의 주제는
늘
자기 십자가였습니다.
하루는 한 직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껏 나는
‘교회 다니는 사람’이었지,
‘예수 믿는 사람’은 아니었다.
십자가는
예수 혼자만 죽는
십자가인 줄 알았다.
왜 자아(에고)가 죽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에고를 사랑하는 것이
왜 죄인 줄도 몰랐다.”
예수에게 십자가가 있었듯이, 우리에게는 나의 십자가가 필요하다. 백성호 기자
기독교 역사 속의
이름난 수도자들은
하나같이
자기 십자가를 묵상하며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왜 요즘
한국 교회에서는
‘자기 십자가’란 말은
갈수록 듣기가 힘들고,
그 대신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의 축복’이란 말만
자주 들리는 걸까요.
거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궁궁통3
사람들은 대부분
에고를 위해 살아갑니다.
그게
자신의 전부라고
생각하니까요.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그게 전부가 아님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갈릴리 호수에 노을이 지고 있다. 예수는 이 일대를 돌아다니며 하늘의 소리를 전했다. 백성호 기자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는 날마다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무슨 뜻일까요.
자신의 에고를
날마다
십자가에 올린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자신의 잣대,
자신의 고집,
자신의 욕망을
무너뜨리는 겁니다.
왜
그래야 할까요.
그걸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본질에,
신의 속성에
더 가까워지기
때문입니다.
에고가 무너질 때
우리 안에
잠자고 있던
신의 속성이
비로소
깨어나기 때문입니다.
#궁궁통4
김 목사는
신학교를 졸업한 뒤
무려 26년 동안
십자가를 고민했다고
하더군요.
“이해가 안되더라.
가령
운전학원에서
운전 대신 노래를 가르치면
어떻게 되겠나.
누가 운전을 배우러
오겠나.
수능 영어학원에서
영어 대신 웅변을 가르치면
누가 학원에 등록을 하겠나.
그런데 기독교가
회개와 죄사함,
자기 십자가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데
왜 사람들이
기독교로 모이는 걸까.”
김 목사는
그렇게 물음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답을
이어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걸어갔던 길을 '비아 돌로로사'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에 있는 십자가의 길 표석이다. 백성호 기자
“요즘 사람들이
십자가를 짊어지는
예수의 수난을
어떻게 보는지 보라.
예수의 수난에 대해
동정의 시선을
보내고 있더라.
그게 아니지 않나.”
제가 물었습니다.
“무엇이 더 필요한가요?”
“예수님처럼
자아의 손바닥을
관통하는 못 자국,
자아의 옆구리를
관통하는 창 자국을
느껴야 한다.
그건 그냥
느껴지지 않는다.
자아가 죽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거다.
기독교인은
그런 식으로
자아를 부정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김 목사는
뽕잎과 실크 이야기를
예로 들었습니다.
“뽕잎에서
실크가 나온다.
그런데
뽕잎이 실크가 되려면
누에의 뱃속을
통과해야 한다.
뽕잎 입장에선
뽕잎이 죽어야
실크가 되는 거다.
그런데
뽕잎이 자아를 긍정하고
자아를 계발하는 데 매달리면
뽕잎에만 머물 수밖에 없다.
실크가 될 수 없다.”
자기 십자가가 빠진
기독교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습니다.
그런 기독교는
누에의 뱃속으로
들어가지 않는
뽕잎과 같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실크가 되지 못하는
뽕잎과 똑같다고 했습니다.
500년 전
마르틴 루터의 시대에만
종교개혁이 필요했던 건
아닙니다.
종교가
본질을 잃고
궤도에서 벗어나는
모든 순간에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김 목사는
거듭 강조했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런 때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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