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한 필세로 행초서에 특히 능해 영남서단에 우뚝
경주 심천서예연구실 주인 心泉 한영구(韓永久) 선생
“‘학서봉사난(學書奉師難), 전도득인난(傳道得人難)’이란 문구가 풀이하듯 ‘서예를 처음 배울 때는 스승을 만나기가 어렵고, 서도를 전하고자 할 때는 제자 만나기가 어렵다’는 말입니다”
심천서실 한영구 선생(69)의 서도의 길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다.
건천읍 모량리가 고향인 한 선생은 선친의 권유로 10대 중반 때부터 사서삼경 등 한학과 붓글씨를 시작한 뒤 50년 넘게 오직 한 우물만 판 외골 인생으로 현재는 영남일원 서단에서 우뚝 선 서예가로 불린다.
무산중학교를 졸업한 다음 인근 백석암에 거처하던 고경 스님을 만나 6년 동안이나 한학과 서예를 익힌 선생은 소헌 김만호, 청남 오재봉, 시암 배길기 선생으로부터 서예를 사사해 1972년에 대한민국미술대전 서예부문입선을 시작으로 국전에서 1회의 특선과 7회의 입선을 했다.
1979년엔 신라미술대전에서 문화공보부장관상을, 1980년엔 경북도 미술대전에서 동상을 수상한 경력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비롯해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와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위원, 경북, 경남, 충북, 경기 도전 심사와 운영위원, 경주미협 지부장도 역임한 한 선생은 1973년 당시 이미 ‘서라벌연묵회’란 서실을 열어 제자들에게 한학과 전통서예를 가르쳤으며 인근 포항에서도 ‘포항제철부녀회 서도반’을 만들어 후진양성에 앞장서 왔다.
지난 37년간 배출된 제자들 수만도 5000여명에 이르며 이 중 수십명은 현재 각종 서예대회와 공모전의 초대작가와 추천작가들로 전국 곳곳에서 활동하게 만든 선생은 그동안 경주와 포항, 서울에서 여러 차례의 개인전도 가졌다.
특히 2004년 봄부터는 대구와 포항, 경주지역의 문하생 120여명이 ‘도남서단’이란 서예인회를 구성, 서예전시회를 계속하는 것도 선생이 지역서예인구저변확대에 기여한 공로와 성과다.
선생은 서예5체 가운데서도 특히 전서(篆書)와 행초서(行草書)에서 자신만의 독보적 필체를 구사해 지난 1995년 서울의 백악서원에서 열렸던 개인전서는 당대의 서예대가인 일중(一中)과 동강(東江)으로부터 “지방에 이런 서예가가 숨어있었더란 말이냐”고 하는 극찬을 받았다.
50년 외길 서예인생을 살아 온 선생은 평소에도 강직한 성품에다 필세 또한 강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휘호로는 포항의 ‘해병 충혼탑’과 경주 ‘임란의사 창의비’, 장기 ‘정약용선생 유적비’ 등의 각종 조형물에 녹아 있다. 현재도 올 연말쯤의 칠순 서예전시회를 위해 대형 작품제작에 매달리면서 후진을 위해 매일 여러 시간씩 붓을 놓지 않고 있다.
제6회 경주시문화상을 비롯해 제43회 경북도문화상과 제23회 경북서예대전 초대작가상도 수상한 선생은 “세월의 변천에 따라 언제부턴가 서예로서는 먹고 살기 힘들어진 데다 배우려는 이도 없어 너무나 안타깝다”고 소회를 밝힌 뒤 “죽기 전에 경주에다 반드시 서예관을 하나 건립하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연락처:(054)772-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