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얘기해 볼 인물열전은 폭군 혼군으로 낙인찍혔지만 명군의 모습을 보였던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光海君)입니다
어진이 있는데 정확히 광해인지 모르고 어진대로면 인상이 참 별로시라 영화 광해 포스터로 대신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나라를 말아먹은 선조 자신의 개인적인 원한을 풀기 위해 역모를 꾸민 인조 이 두 명의 병신 같은 새끼들 사이에 끼여 파란만장한 삶을 산 광해군(光海君)의 인물열전 시작해 보겠습니다
그의 본명은 이혼(李琿) 방계 중 처음으로 왕에 오른 선조의 둘째 아들입니다 18살에 분조를 맡아 임진왜란의 영웅이었던 왕자 그거 아세요 조선의 27명의 왕중 실제 전쟁에 참전한 왕은 3명밖에 없다는 거 태조 정종 그 둘은 장수출신이니 그렇다친다면 유일한 참전국왕인 건데 여기서 벌인 활약 덕분에 아버지 선조의 질투를 받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명나라는 칙서를 내려 광해군(光海君)에게 전라도 경상도수비를 맡게 하고 아버지의 실패를 복구하라는 명을 내렸습니다 망명하려고까지 했던 선조 입장에선 엿같은 얘기였겠지만 이일로 선조는 특유의 질투를 보여줍니다 그때부터 선조는 광해군을 냉대합니다 문안도 받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맞나 싶죠ㅡㅡ;;
그러던 중 영창대군이 태어납니다 적장자의 탄생 참 인생 쉬운 거 없다고 그를 지지하던 북인세력마저 대북소북으로 나뉘어 염병질을 합니다 그만큼 지지기반이 비약했던 광해군(光海君)은 아버지선조의 급서로 왕위에 오릅니다 그는 왕위에 오르고 전후복구사업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그의 패위의 명분이 되고 인조가 광해군(光海君)에게 반감을 품게 되는 궁궐증축사업을 벌입니다 근데 당시 왕의 권위는 바닥을 치고 있었으니 그걸 회복하기 위해선 필요한 조치였다고 봅니다 과한 면이 없진 않지만 말이죠 그것도 그의 제위10년부텁니다
그리고 광해군(光海君)은 전란에 피폐해진 민생을 살리기 위해 대동법을 실행하지만 잘난 유학자지주계층의 반대로 경기일원에서만 실행되는데 이것 역시 광해군일기에는 그가 대동법에 부정적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으니 아이러니하죠 근데 그 광해군일기라는 게 인조반정에 성공한 서인의 입장에서 쓰인 거라 다 믿을 순 없죠
역사는 승자의 편이니까요
오리 이원익이 제안했다는데 뭐 어찌 되었든 조광조 이이도 제안했고 당시 왕들이 모두가 거부했던걸 시행한 게 광해군(光海君)이라는 거엔 변화가 없습니다 그 잘 난 인조도 고작 강원도까지 확장했고 전국시행된 건 숙종 때니 거의 100년이 걸린 겁니다 대단하죠 유학자들^^
다음 광해군(光海君)은 실록보관소를 적상산성에 정비설치했습니다 그리고 용비어천가 고려사 신 증동국여지승람 동국신속삼강행실을 재편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조의 지시로 시작된 동의보감편찬을 완성한 것도 광해군(光海君)입니다
마지막으로 중립외교 7년 전쟁에 시달린 백성이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게 그는 명과 청사이에서 실리적인 중립외교를 펼쳐 조선이 또 전쟁에 빠지는걸 막아냈습니다 이게 인조반정의 명분 중 하나가 되었지만 말이죠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생각하는 광해군의 업적은 임진왜란에서 민심을 다잡고 무능한 아버지선조를 대신해 전쟁을 이끈 영웅인 점 실패했든 한정적이었든 민생안정을 위한 대동법의 시행했다는 점 각종편찬산업을 통해 후대의 우리가 당시문화를 볼 수 있게 했다는 점
그리고 나중엔 어찌 되었을지는 모르지만 당시 최소한 백성을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게 한 중립외교입니다
이런 업적에도 그는 인조라는 희대의병신과 존화주의에 비친 사대부들에 손에 폐위되고 18년간의 유배생활 끝에 사망했습니다
그럼 우리 잘난 인조반정의 대의명분을 잠깐 살펴보고 글을 마치겠습니다
인조는 36개의 죄목으로 반정을 일으켰지만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가 보기엔 개인적인 원한과 권력욕 때문에 일으킨 정변이라고 봅니다 역사에 만약이 없다는 걸 보여주듯 인조정권은 친명배금정책으로 일관하다 청나라에 두 번이나 얻어터지고 삼전도의 굴욕까지 한민족에게 안겨주는 뭐 같은 짓거릴 했으니까요
폐모살제 (廢母殺弟)’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하고 동생인 영창대군을 증살 했다인데 조선의 역사에서 태종은 자신의 동생과 처남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고 세조는 자신의 조카 단종과 사육신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습니다 거기에 인조 자신도 자식인 소현세자일가를 멸족시켰으니 자신이 광해군(光海君)에게 씌운 죄도 스스로 범했습니다
대형 토목공사의 강행 이건 같은 시간을 사는 남자도 그나마 인정하는 대목이긴 한데요 두 번의 전란에 죽는 고통이 큰지 노력으로 고생하는 게 큰지는 한번 비교해 볼 만한 거 아닐까요
이상 전쟁영웅으로 시작해서 명군의 자질을 보이다가 몇 가지 실책으로 역사 속의 폭군으로 기록된 인물열전 광해군(光海君) 이야기를 마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