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일출 명소, 왜목마을
생각보다 많은 차들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다들 이렇게 바쁘게 사는구나. 왜목마을에 도착한 시간은 일출 직전. 멀리 빠져나간 바닷물이 서서히 뭍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바다와 접한 하늘의 절반을 구름이 가리고 있었다. 아쉽게도 해가 떠오를 위치는 구름이 자리한 곳. 칼바람이 불었다. 구름이 밀려가기를 바랐 다. 하늘이 서서히 밝아왔다. 높은 하늘은 보랏빛으로 물들고, 낮은 하늘은 주황으로 물들었다. 그러고 보면 하늘이 가장 아름다운 시간은 시작과 마지막 무렵이 다. 우리의 삶도 그랬으면 좋겠다. 오메가를 그리며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해는 고사하고, 구름 위로 모습을 드러내는 해도 볼 수 없었다. 해도 없는 일출이었다. 그럼에도 충분히 아름다웠다. 코가 시렸지만 하늘의 색깔처럼 가슴도 아름다운 색으로 물들었다. 노트에 적은 여러 개의 결심에 하나를 추가하기로 했다.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나를 위한 여행 떠나기.
김대건 신부 탄생지, 솔뫼성지
솔뫼성지로 차를 몰았다. 솔뫼는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 산’이라는 뜻의 우리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마른 예수님의 십자가상이 눈에 띄었 다. 그 뒤는 산은 아니었지만 이름 그대로 솔숲이었다. 솔숲 사이를 걸었다. 그늘 언저리 곳곳에 잔설들이 남아 있었고 숲 건너에는 김대건 신부의 동상이 자리하 고 있었다. 김대건 신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이다. 그가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 솔뫼성지다. 동상에서 다시 마당 쪽으로 걸으니 그의 생가가 나온다. 1821년 그가 태어났을 때는 이미 그의 증조할아버지와 작은 할아버지가 순교한 다음이었다. 그의 아버지도 그가 열여덟일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고 이듬해는 당고모 도 서울 포청에서 순교했다. 김대건 신부는 열다섯에 마카오로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9년 후 사제 서품을 받은 후 귀국했고 선교 활동에 힘썼다.
하지만 이듬해 6월에 체포되었고 같은 해 9월에 한강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그의 생가 마당에는 의자에 앉은 황동상 하나가 있었다. 2014년 한국을 찾은 프란치 스코 교황이 같은 자리에서 기도했고,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조각한 동상이었다. 계획에도 없던 합덕성당에 들러보기로 했다. 솔뫼성지에서는 차량으로 불과 10 분 거리. 계단 위에 자리한 합덕성당은 빛을 품은 듯 역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붉은 벽돌로 이뤄진 외벽은 소박하면서도 고풍스러웠다. 김대건 신부의 집안이 이 곳에서 천주교를 받아들였으니, 그의 신앙의 뿌리라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큰 의미를 담고 있는 성당이었지만 내부도 소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마치, 세상 살이 별 거 없다고 말하는 듯도 했다.
‘상록수’의 탄생지, 필경사와 심훈기념관
이어서 찾아간 곳은 심훈기념관이었다. 기념관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길은 마을 안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 만난 초가집 하나. 소설가이자 시인, 영화인이었던 심훈이 머물던 공간이다. 서울에서 태어난 심훈은 32세에 당진으로 내려와 집필 활동을 했다. 그는 자신이 살던 집의 이름을 필경사라고 붙였다. 글을 쓰는 집이 란 의미다. 그의 집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가옥 구조였다. 초가집이었지만 집안에 욕실과 화장실을 들였다. 창문에는 화분을 올려 놓을 수 있는 베란다 구 조물도 설치했다. 지금이야 이상할 것 없는 구조지만 당시로서는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
심훈의 대표적 소설인 ‘상록수’가 태어난 곳도 필경사다. 50일간 집필에 몰두해 탈고했고 동아일보 소설 공모전에 출품했다. 당선작으로 뽑힌 ‘상록수’는 이광수 의 ‘흙’, 김유정의 ‘봄봄’, 이태준의 ‘농군’, 박성화의 ‘고향 없는 사람들’과 함께 우리나라 대표적 농민문학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그는 필경사에서 4년간 생활했고 서른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필경사 뒤는 밭이었고 그 뒤편으로는 산업도로가 가로지르고 있었다. 그리고 멀리에는 산업단지의 굴뚝들이 수증기 를 내뿜고 있었다. 그 너머가 바다겠지만 보이지도 않았다. 하지만 심훈이 이곳에 살고 있을 때는 필경사 바로 아래가 바다였다. 말하자면 필경사는 바닷가 언덕 에 자리한 집 한 채였다. 심훈은 글이 써지지 않을 때면 이곳에서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곤 했었다. 지금도 마을 어른들은 필경사 아래서 굴을 따던 기억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01 02 01 심훈기념관 / 02 심훈기념관 內 심훈 관련 자료
필경사 옆 심훈기념관은 심훈의 생애와 그의 작품들을 차근차근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많은 전시물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것은 그가 직접 사용하던 책상으로 작 가의 고뇌를 고스란히 간직한 유품이었다. 그리고 유리장 안에서 발견한 추도문. 추도문을 작성한 사람은 김현강.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알수 없다. 시를 닮은 그의 추도문 중 일부이다.
우리들은 그 모습 그 음성 어듸서 다시 차즈오릿가. 저는 靑山에 물어보앗소이다. (중략) 아~ 귀에 쟁쟁 눈에 生生!!
밖은 여전히 쌀쌀했다. 마을을 빠져나오자 내비게이션은 언젠가 바다였을 산업도로를 안내하고 있었다. 심훈이 배를 타고 지나갔을 그곳. 세월은 무심히도 흘렀 고 그 사이 지도는 여러 번 옷을 갈아입었다. 그럼에도 해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떠오르고, 순교자가 태어난 곳은 더 큰 신앙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심훈의 ‘상록수’는 문학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 우리가 귀하게 여겨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은 날이었다. 당진이 또 하나의 가르침을 준 셈이었다.
놓치면 아까운 맛집- 우렁이박사
- 동의보감에 의하면 우렁은 약재로도 사용될 정도로 몸에 좋은 음식이다. 쌈장과 조리된 우렁은 상추와 싸먹는 것이 최고 궁합이다. 삽교천방조제에서 가까운 신당교차로 인근에는 우렁쌈밥집들이 여럿 모여있다. 그중에서도 ‘우렁이박사’는 2대째 내려오는 대표 맛집. 이곳의 쌈장은 상추쌈에 듬뿍 올려도 짜지 않을 정도다. ‘우렁이박사’에서는 쌈에 마늘장아찌 한 알을 곁들일 것을 추천한다. 쫄깃한 우렁의 식감과 아삭한 마늘이 잘 어우러진다.
- 주소:충남 당진시 신평면 서해로 7439
- 전화번호:041-362-9554
- 가격: 박사네정식 12,000원, 우렁이무침 10,000원, 특우렁이덕장 10,000원, 특우렁이쌈장 7,000원
함께 들러보세요!- 아미미술관
- 폐교를 개조한 미술관이다. 하지만 그저 그런 미술관쯤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1년 내내 최고 수준의 미술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회화는 물론이고 사진, 조각, 설치미술 등 전시 분야도 다양하다. 전시장 뒤편에는 창고를 개조한 카페도 자리하고 있다. 옛 교실에서 사용하던 의자에 앉아 마시는 커피도 새롭다.
- 주소:충남 당진시 순성면 남부로 753-4
- 전화번호:041-353-1555(http://amiart.co.kr)
- 관람시간:10:00~18:00(동절기 17:30분 폐관/연중무휴)
- 관람요금:성인 5,000원, 청소년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