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기황후와 우리 동주사공할머니의 관계
<!--[if !supportEmptyParas]--> <!--[endif]-->
요즘 mbc 에서 방영중인 기황후(奇皇后)의 이야기가 우리동주사공(東州使公)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다고 보아 행주기씨(幸州奇氏)의 내력과 당시 고려시대상황에 대하여 몇 가지를 언급하고자 한다. 물론 누구나 검색해 보면 알 수 있는 상식수준이므로 이 방면의 사가들에게는 매우 외람되고 조심스런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고대 중국의 은(殷)나라 말에 주왕(紂王)의 폭정을 간하다가 화를 입은 기자(箕子) 미자(微子) 비간(比干)의 세 현자가 있었는데, 행주기씨(幸州奇氏)는, 조선땅으로 와서 ‘기자조선’(箕子朝鮮)을 세웠다는 그 기자(箕子)를 원 시조로 하여 마한(馬韓)과 백제(百濟) 고려(高麗)를 거치며, 경기도 고양시(高陽市) 행주에 세거하면서 행주(幸州)를 관향으로 삼아 수천년을 이어오고 있다. 조선조(朝鮮朝)에 들어와서도 사단칠정론(四端七情論)으로 유명한 기대승(奇大升) 등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가문이다.
고려말의 기순우(奇純祐)를 중시조로하여, 2세 평장사 기수전(奇守全), 3세 시중(侍中) 강정공(康靖公) 기윤숙(奇允肅)으로 이어졌고, 기윤숙(奇允肅)은 기홍수(奇洪壽), 기홍영(奇洪穎), 기홍석(奇洪碩) 3형제를 두었는데, 둘째아들 기홍영(奇洪穎)이 드라마 기황후(奇皇后)의 친정 조부이고, 셋째아들 기홍석(奇洪碩)이 우리 동주사공할머니의 친정 아버지시다. 따라서 우리 동주사공할머니는 기황후의 당고모(堂姑母:5촌)인 셈이다.
정중부(鄭仲夫)로 시작하여 이의민() 최충헌(崔忠獻) 김준(김준) 임연(林衍)으로 이어지는 고려 무신정권으로 고려가 혼미를 거듭하고 있을 때 밖으로는 몽고(元)의 외침을 받아 강화도(江華島)를 제외한 전국토를 유린당하여 백성은 신명을 보존할 수 없었고, 살아남은 자들도 저들의 사나운 야욕에 제물이 되고 말았다. 이때 기황후(奇皇后)도 공녀(貢女)의 신세로 몽고에 끌려갔다가 기연으로 천신만고 끝에 순제(順帝)의 정비(正妃)가 되어 기철(奇轍) 등 기씨들이 한때 천하를 호령하고 호강을 누리긴 하였으나 망국의 한까지는 지울 수 없었을 것이다.
원나라도 왕권의 찬탈과 홍건적의 발호로 차츰 쇠락의 길을 걸었으며 고려에서도 공민왕(恭愍王)의 반몽정책(反蒙政策)으로 원나라와 기씨세력을 축출하게 되자, 우리 동주사공파도 이 역사의 흐름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으며, 왜구(倭寇)의 출몰과 신돈의 패악으로 고려가 망국의 길을 걷자 우리가운도 기울어 더욱 침체가 심화되지 않았나 싶다.
<!--[if !supportEmptyParas]--> <!--[endif]-->
첫댓글 이 短文은 나의 要請에 의하여 竹軒(허봉무)이 작성한 것임을 밝혀 둔다. 東州使公(許程)의 부인이 幸州奇氏임에 유의하면서 奇皇后의 드라마를 보면 더욱 재미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우리가 매년 진천추향시 동주사공이하3대의 설단앞에서 독축할 때 : "高麗고려/銀靑光祿大夫은청광록대부/吏部尙書이부상서/僉議府贊成事첨의부찬성사/勅授東州使칙수동주사/府君神位부군신위; 夫人부인/幸州奇氏행주기씨/神位신위"라고 고유축을 올린다.
幸州奇氏(행주기씨)라 하면 조선조 퇴계(이황)와 四端七情 논변(論辯)으로 유명한 고봉 奇大升이 연상됩니다. 고려말의 인물 기홍영(奇洪穎)이 기황후(奇皇后) 친정 할아버지이고, 기홍영의 동생 홍석(洪碩)이 우리 東州使公(程) 配位(幸州奇氏)의 친정 아버지이니 우리 동주사공할아버지는 기황후의 당고숙(堂姑叔.5촌) 즉,기황후는 동주사공의 처당질녀(妻堂姪女)가 되군요. 몽고에 貢女로 끌려가서 황제의 正妃가 된것이 드라마틱합니다.
<조선일보>(2014.3.5.A29)에 의하면 : 1333 고려출신으로 원나라 궁녀가 되어 권력을 잡기까지(1335년 원 순제의 후궁, 1339년 황태자 아유시리다라 출산, 1340년 원나라 제2황후, 1365년 원나라 제1황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