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종교 생활을 하고, 열심히 교회를 다니는데도 참된 기쁨과 평안이 없고, 죄책감과 허무감에 시달리고 있지 않습니까? 왜 그럴까요? 과연 성경이 말씀하는 복음을 누리는 신앙생활과 세상에서 말하는 종교 생활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종교는 나에게 필요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만드신 나를 찾으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무엇이든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복음은 되어지는 것을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종교는 나를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처럼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남을 살리기 위해 사는 것이 나를 위해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종교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말합니다. 복음은 이 땅에서의 삶은 영원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그 행복한 영원한 삶을 누리는 유일한 길,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입니다.” 성경에도 보면 당시 유대인의 지도자요, 율법의 대표자인 바리새인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종교생활과 복음생활에 대한 대화가 나옵니다.(요한복음3:1-21)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가 이르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니고데모가 대답하여 이르되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우리는 아는 것을 말하고 본 것을 증언하노라 그러나 너희가 우리의 증언을 받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그렇다면 종교(宗敎)와 복음(福音), 도대체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첫째, 복음과 종교의 차이점을 살펴보자면 그 출발이 다릅니다. 복음은 하나님이 오신 것인데, 종교는 사람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복음은 믿음으로 출발하는데, 종교는 신념과 노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은혜로 출발하는데, 종교는 자기 열심으로 합니다. 그리고 복음은 생명으로 출발하지만, 종교는 일종의 법칙으로 합니다. 그러다 보니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복음은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 권세와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하는데, 종교는 열심과 방법과 자기 만족, 목표, 야망으로 신앙 생활을 그려가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구원자는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가지고 있어야 됩니다. 사탄을 이기신 분은 단 한 분뿐이었습니다. 구원자는 반드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야 되었고(요한복음1:14), 죄가 없으신 분이어야 됩니다(히브리서4:15). 아담의 후손이 아니고 동정녀 탄생을 하셔야 되었고, 그러나 죄의 대가로 반드시 죽어야 됩니다(창세기2:17).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증거로 부활(고린도전서15:3-5)과 구약의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분인 그리스도의 직분을 감당하셔야 됩니다. 셋째,그래서 예수님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는 길, 사탄이 가져다 준 사주팔자, 운명에서 해방되는 길이라는 사실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만이 하나님 만나는 길이요, 죄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사탄의 손에서 해방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영접하는 순간부터 영적 문제는 치유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과거, 습관, 기억하기 싫은 경험, 상처, 성격 등 모든 영적인 것을 치유 받고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환경과 가족, 주변 인간관계, 특별한 사상, 미신, 제사문제 등 도저히 해결되지 않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안 좋게만 번져나가던 환경이 치유 받고 전도의 문으로 바뀌는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육신적인 문제도 방법이나 요행을 찾기 이전에 성령 충만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주시는 새 힘과 용기와 또한 실제적인 치유도 받을 수 있습니다. 넷째, 삶의 방법에 있어서도 종교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내 인생을 살아나가야 하지만 복음은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셔서 사람을 살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가장 행복하고 축복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믿으면 된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누가복음2:10-1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사도행전16:31)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1:16-17)
신분의 비밀→ 불행과 행복의 이유 인간이 그 어떤 노력과 충족된 조건 앞에서도 행복할 수 없는 것은 세가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이후로 사탄이 가져다주는 영적 문제, 그리고 죄로 인해 따라올 수밖에 없는 저주와 재앙의 문제, 그리고 원하지 않아도 가야만 하는 지옥 배경의 문제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가지 근본문제를 해결할 “그리스도”를 약속하시고 보내주셨습니다. “왕, 선지자, 제사장의 직분”을 가지신 그리스도는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사탄의 문제, 저주 재앙의 문제, 지옥 배경의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히브리서2:14-15)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의 자녀요, 의롭다하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할 양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의롭게 된다, 거듭난다”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면 흑암(사탄)과 지옥과 저주의 권세가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를 정죄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양자)로 삼았다는 말은 우리에게 모든 축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구별해 내셨다는 말입니다(로마서8:2).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순간 하나님께서 성령(聖靈)으로 영원히 함께 하시며, 인도하시고, 응답하시고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을 끝까지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승리케 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로마서8:37-39)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분명히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다. 먼저 신분이 바뀝니다.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됩니다. 그리고 마귀의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지옥 백성이 아니라, 천국 백성이 됩니다. 한평생 살아가는 동안 자신도 모르는 사탄의 종노릇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기도응답의 축복과 승리의 축복을 누리는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이 축복을 가지고 사탄이 가져다 준 운명과 팔자에 매여 감추어진 고통에 시달리는 다른 사람들을 살리는 가장 가치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자녀는 영원히 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한복음5:24)
복음의 아빠 찬스
어스름한 저녁에 불자동차가 사이렌 소리를 울리며 급하게 도시 사이를 질주한다. 그 소리를 듣는 아들 거지에게 아빠 거지는 아주 자랑스럽게 말한다. “아들아 나는 저 사람들처럼 불타는 집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얼마나 좋으냐. 이런 아버지를 둔 것을 자랑스러워 하거라”라고 하였다. 무엇인가 이상하지만 대화가 통하는 것을 보니 정말 훌륭한 아빠인 것 같다. 최근 정치인들 사이에서 아버지의 성공을 근거로 자녀들이 누리는 위치적 성공을 두고 아빠찬스라는 말을 많이 한다. 부모가 가진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는 그냥 자연스럽게 자녀들이 누리는 조건이 된다. 학교 가야 하는 시간에 마침 아빠도 벤츠를 타고 출근한다면 그 차를 타고 가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굳이 티코 불러서 탈 이유는 없는 것이다. 부모가 가진 역량의 현실을 통해 사실을 제대로 못보면 금수저니, 흙수저니 하므로 자유시장경제의 원리를 못보게 된다. 그래서 유독히 부의 균등을 누리게 하는 대신 가난의 균등을 누리게 하려는 세계정부의 흐름을 우리나라도 자연히 따를 수밖에 없는듯하다. 그러나 자녀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중요한 아빠찬스의 기회가 된다. 이번에 유럽의 프리미어 리그에서 득점왕으로 최고의 선수로 부각된 골든부트의 손흥민 선수에게도 그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 시킨 아빠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흥민에게 천부적인 실력이 부족한 것을 아는 아빠 손웅정은 주어지는 학교 교육보다 아빠로서 주어지는 가혹한 개인 교습을 중요시했다. 웅정 아빠는 수동적인 상황 즉 주어지는 과제에 만족하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자기 주체로서의 자신감을 갖도록 하면서 스스로가 환경을 통제하고 자기를 잃지 않게 하였다. 보통 축구선수들은 실력을 키움보다 좋은 성적을 내는 일에 우선하므로 무리한 방법을 많이 쓰는데 이런 일을 미리 경험했던 아빠는 흥민에게 그와 다른 방식의 훈련을 몸에 익히게 하였다. 웅정 아빠는 축구를 편집하고 설계하고 디자인 하였다. 눈만 뜨면 축구 프로그램을 생각하고 사소한 아이디어도 잊지 않으려고 메모장을 늘 준비하였다. 독일의 분데스리가에서 혜성 같이 나타난 선수라는 말이 나왔지만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나는 법은 없다. 아빠는 흥민에게 이미 기본기와 몸의 밸런스와 볼 감각 세가지를 기본으로 리프팅과 간결한 볼터치, 양발사용, 나이에 맞는 체력고양 및 슈팅훈련을 쉬임없이 하게 하였다. 어떻게 보면 쉴 수 없는 고생을 시키는 아빠의 모습이지만 그에게는 축구 철학이 있었다, 그는 365일 파종하는 농부로서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열매를 거두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였고 하나를 완벽하게 못하면 절대 둘의 자리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가치를 확인하였다. 그의 오늘은 대한민국 최고의 체육훈장인 청룡장을 수여받게 하였다. 아빠찬스의 아름다운 결과로서 박수를 보낸다. 우리가 시대의 복음을 받았을 때 후대를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당시의 여건으로 불합리한 조건이 아이들에게 미칠 영향은 결코 적지 않은 부담인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복음의 인도를 받았고 자녀들은 그 아빠가 가진 복음의 기회를 자연스럽게 아빠찬스로 맞이했다. 이제는 아빠의 복음이 자신의 복음으로 열매맺혀야 하는 시간표가 찾아 왔다. 할배찬스가 아닌 아빠찬스로 복음이 전달되고 자리 잡아지는 것이야 말로 우리가 인생 성공자라는 중요한 응답이 아니고 무엇일까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