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잔인성의 승리
슈테판 츠바이크(Stefan Zweig)
<어제의 세계(The World of Yesterday)> (1942)
오스트리아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의 회고록 <어제의 세계>는 세기말 빈에서 보낸 청춘 시절, 그 잃어버린 세계에 바치는 애가이다. 또한 제1차 세계 대전에 뒤이어 잠시 평화로운 막간의 시기 후 대재앙을 일으키는 히틀러가 등장하고 유럽대륙이 제2차 세계대전에 휘말리면서 닥친 참상에 대한 소름끼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출간된 지 75년이 넘은 츠바이크의 이 책은 문명이 얼마나취약한지, “이성의 지배가 얼마나 빠르게 가장 광포한 잔인성의 승리”에 자리를 내줄 수 있는지에 대한 잊히지 않는 경고로 읽힌다. 주의를 촉구하는 이 이야기는, 불안하게도 유럽과 미국에서 국가주의와 극우 정치가 부활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약화되고 있는 오늘날 상황을 감안할 때 더 이상 시의적절할 수가 없다.
츠바이크가 어렸을 때 그리고 나중에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 작가로서 성공을 거두었을 때 알았던 세계가 틀림없이 21세기 초반을 살아가는 많은 독자들의 심금을 울릴 것이다. 츠바이크는 질병을 정복하고 “인간의 말을 순식간에 전 세계로 전송하는 과학의 기적으로 진보가 불가피해 보이면서 가난 같은 대단히 심각한 문제도” 더 이상 극복하지 못할 일로 보이지 않던 시대와 장소에서 성장한 이야기를 썼다.
낙관주의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무성했던 희망을 상기시킨다)가 아버지 세대에 영향을 미쳤다고 츠바이크는 회상한다. “국가와 종파 사이의 차이와 경계가 점차 공통된 인간성으로 녹아들어 사라지고 모든 인류가 가장 소중한 평화와 안전을 공유하리라고 그들은 정말로 믿었다.”
젊었을 때, 츠바이크와 친구들은 커피하우스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예술, 사상, 개인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는 최신의 것, 가장 새로운 것, 가장 화려한 것, 가장 색다른 것의 최초 발견자가 되려는 열정을 품고 있었다.”
사람들은 히틀러가 나타내는 위험을 빨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츠바이크는 이렇게 썼다. “히틀러의 책을 읽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소수 작가들은 그의 강령에 빠져들기는커녕 겉만 번드르르하고 과장된 그의 글을 조롱했다. 게다가 신문들은 독자들에게 나치 운동이 곧 실패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불길한 징후가 쌓이고 있었다. 독일 국경 근처에서 험악한 청년 무리가 “누구든 즉각 동참하지 않는 자는 나중에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협박하며 자신들의 복음을 전했다.” 게다가 “화해의 시대가 그토록 힘겹게 수습했던 계급과인종 사이의 숨은 균열과 틈이 다시 벌어져 곧 심연과 깊은골”로 넓어지고 있었다.
히틀러가 집권한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익숙한 삶, 일상과 습관을 포기하길 꺼려하며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여전히 부인하는 상태에 있었다고 츠바이크는 지적한다. 사람들은 “법이 확고히 자리 잡고 있고, 의회의 다수가 그에게 반대하며, 모든시민이 자신의 자유권과 평등권이 엄숙히 확인된 헌법”에 의해 보장된다고 믿는 국가에서 독일의 새 지도자가 “무력으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20세기에는” 이런 광기의 분출이 “계속될 수 없을 것”이라고 되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