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대를 지나 괴테가 76세 넘어 쓴 소설이다.
에머슨이 적극 추천한 책이라서 읽었는데 실망이 크다. 이 책은 우선 일관성이 부족하고 너무 산만하게 구성이 넓어서 이해하기가 매우 어려운 작품이다. 수업시대는 그런대로 빌헬름이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인격을 수양하고 연극에서 사회로 나가면서 자신의 도량을 넓히기 위한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괴테 자신이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쓴것인지 모르지만 광대한 분량에 비해 정말 남는 것은 별로 없다.
어떻게 보면 그 당시 독일의 계몽주의에 탄력을 받고 미국으로 이주해서 세계를 개척하고저 하는 마음으로 글속에는 사회 경제 정치 산업등 총 망라하는 사건들이 벌어지지만 그것을 수습하는 것은 없었다. 마치 플라톤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념적인 흐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실사구시의 구체적인 흐름도 아니었다.
해설편에서는 나름대로 이를 해명하기 위해서 '체념자'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체념이란 더 높은 목표를 위한 개인적 욕망의 용감한 희생을 말하는 것으로 노년기 괴테 사상의 핵심적인 중심을 이룬다. 괴테는 이 소설에 체념자들이라는 부제를 붙이고 있다. 체념자들이란 하나의 연합을 일컫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확실한 삶의 경험을 가진 정서적인 사람들에 대한 명칭이다.
그들 모두는 전에는 체념하지 모한 자들 이었으며 그들 모두는 아직 그들의 분명한 한계에 다다르지못한 사람들과 관계하고 있다. 그들이 체념자가 되기까지의 길과 미로들이 이 소설 속에 삽입된 많은 단편 속에서 묘사된다고 한다. 하지만 이글은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이념 사상 그리고 저자가 우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저 하는 확고한 생각이 무엇이 있다면 그 생각을 독자가 읽었을때 큰 감동은 아니더라도 책을 덮고 난뒤 마음을 울리는 감동이 있어야 된다. 아니 그런 감동이 없다손 치더라도 조용한 울림이 가슴저 밑바닥에서 움트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구성에서 부터 전개 과정 그리고 결말에 이르기 까지 과연 전달 하고저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의 작품 파우스트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말처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보고 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위험성이 있다.
그럼 어떤 식으로 독서를 해야 할까 ? 스스로 섭렵하고 읽는 수 밖에없다. 그런 중에 좋은 책도 만나고 시간 낭비를 하면서 수많은 시간을 들여서 읽지만 실망을 하는 경우도 생겨날 것이다. 지름길은 없다. 하지만 고전이 가장 길게 가고 큰 감동을 주는 것은 만고의 진리이지만 그 중에서도 선택해서 읽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