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존의 춤, 고요의 언어
춤과 명상을 결합한 교육의 선구자 바브라 딜리
글 스텔라 박
몸으로 깨어나는 수행
춤추는 명상, 살아 있는 순간
미지의 것은 친구가 되고, 부조리는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두려움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빈 공간의 가장자리에 서서 스스로 기꺼이 첫걸음을 내딛을 때,
언제나 그 걸음에는 무구한 용기의 빛이 함께한다
- 바브라 딜리-
현존의 예술가, 바브라 딜리
바브라 딜리(Barbara Dilley, 1938~ )는 무대 위에서만 빛나는 예술가가 아니었다. 그녀는 춤과 명상, 예술과 교육, 수행과 리더십을 하나로 엮은 통합적 존재였다. 미국의 현대무용가이자 안무가, 나로파 대학교의 총장이며 명상적 예술교육의 선구자였던 그녀는 몸으로 사유하고, 움직임으로 깨닫는 길을 개척했다. 뉴욕의 무대에서 시작된 그녀의 춤과 명상은 나로파 대학으로 이어졌고, 그곳으로부터 ‘몸으로 배우는 불교’가 탄생했다. 그녀는 예술과 수행의 언어를 하나로 엮으며, 인간 존재의 미묘한 진동을 탐구했다. 예술가이자 수행자인 그녀가 추구한 것은 몸으로 표현하는 명상이었고 지금 이 순간에 완전히 살아 있는 현존의 춤이었다. 움직임은 그녀에게 단지 몸의 표현이 아니라, 마음의 확장과 깨달음의 통로였다. 지금 이 순간, 몸이 깨어 있을 때 마음도 깨어난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몸은 지금 이 순간, 무엇을 알고 있는가?”라고.
전쟁의 그림자 속에서 태어난 감각
1938년, 미국 미시간 호수 남단. 전쟁의 불안이 세상을 감싸고 있을 때, 바브라 딜리는 태어났다. 전쟁은 그녀에게 단순한 역사적 사건이 아니었다. 그것은 공기 중의 긴장, 신문 속 사진, 영화관의 뉴스릴을 통해 스며든 무언의 체험이었다. 그녀는 훗날 회상했다. “그 전쟁은 나를 직접 건드리지 않았지만, 내 몸은 그 진동을 기억했어요.” 어린 시절의 불안은 이후 그녀의 춤에서 타인의 고통에 공명하는 감각적 민감성으로 전환되었다. 예술은 세상을 느끼는 또 다른 방식이었고, 그녀는 몸으로 세계를 배웠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춤을 배우기 시작했다. 10세 즈음에는 미국 리퍼토리 발레의 창립자 오드리 에스티(Audrée Estey)와 헬렌 프리스트 로저스(Helen Priest Rogers)에게 사사하며, 고전 발레의 기초와 예술적 규율을 익혔다.
뉴욕, 자유와 질서의 춤
1960년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를 졸업한 뒤, 그녀는 뉴욕으로 향했다. 그녀는 1960~1975년 뉴욕에서 활동하며 Merce Cunningham 컴퍼니(1963–68)와 The Grand Union(1969–76) 등 현대무용의 핵심 단체에서 주요 무용수로 활약했다. 그녀는 ‘구조적 즉흥(structured improvisation)’이라는 새로운 무용 언어를 탐구했고, 1971년에는 즉흥과 협업을 중심으로 한 앙상블 ‘The Natural History of the American Dancer’ 를 창립해 현장 실험을 이어갔다. 자유와 질서, 형식과 즉흥 사이에서 그녀는 ‘팽팽하면서도 느슨한 동시에 존재하기’라는 역설적 감각을 익혔다. 그 시기부터 그녀의 춤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몸을 통한 수행의 탐구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수행이 예술을 통합한 나로파 대학
1974년 여름, 콜로라도 볼더의 나로파 연구소(Naropa Institute) 에 초청받은 그녀는 티베트 명상가 초귙 트룽파 린포체(Chögyam Trungpa Rinpoche)를 만난다. 그 만남은 그녀의 예술 인생의 전환점이 된다. 무용 스튜디오는 더 이상 연습실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사원이 되었고, 움직임은 기도로 변했다. 그녀는 무용/움직임 연구 프로그램을 설계하며, 예술과 명상이 만나는 교육 철학을 구체화했다. “몸은 마음의 집이다. 움직임은 그 집이 숨 쉬는 법이다.” 이 말은 그녀의 가르침 전체를 요약한다.
나로파 대학교에서 그녀의 교육철학은 ‘체화된 자각’이라 불리며, 춤/움직임 교육과 명상/마음챙김을 통합한 방식으로 평가받고 있다.
1985년부터 1993년까지 나로파 대학교의 총장으로 재직한 그녀는 행정가이자 수행자였다. 그녀는 학교를 단순한 학문기관이 아닌 살아 있는 수행 공동체로 이끌었다. 규율은 경직이 아니라 명료함의 틀이었고, 자유는 해체가 아니라 관계의 예술이었다. 그 안에서 학생들은 몸으로 사유하고, 마음으로 움직이며, 예술로 깨어나는 법을 배웠다. 딜리의 리더십은 권위가 아니라 깊은 경청과 현존의 힘으로 작동했다.
1994년, 그녀는 다시 교단으로 돌아와 2015년 은퇴할 때까지 수많은 세대의 학생들을 가르쳤다. 같은 해 출간한 『This Very Moment: teaching thinking dancing』은 40년의 가르침을 집대성한 회고록이자 교본이다. 그녀에게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는 행위가 아니라 존재로 가르치는 일이었다.
저서,『This Very Moment』, 몸으로 깨어나는 문장
바브라 딜리의 저서,『This Very Moment』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명상적 예술교육의 핵심 철학을 담은 수행 지침서이자, 몸의 언어로 쓴 명상록이다. 트룽파 린포체에게서 배운 불교의 언어와 은유는 춤의 문법으로 옮겨졌고, 몸과 마음이 동일한 주의의 장에서 깨어나는 과정을 세밀하게 그렸다. 그녀는 예술을 수행으로, 수행을 예술로 옮겨놓았다.
독자는 이 책을 통해 앉기–움직이기–함께하기의 세단계를 따라가며, ‘현존의 훈련’이 어떻게 예술과 일상 속에서 실현되는가를 배우게 되고, 자신 안에서도 ‘움직이는 명상’이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바브라 딜리의 수행과 예술
1. 관조(觀照)적 춤 수행 (Contemplative Dance Practice)
그녀의 가르침은 춤과 명상이 하나로 호흡하는 자리에서 피어났다. 그녀에게 몸은 수행의 현장이며, 무대는 깨달음의 연습장이었다. 그녀가 창안한 Contemplative Dance Practice(CDP)는 그 철학의 결정체다. 세 단계로 구성된 이 실천은 ‘앉기–움직이기–함께하기’의 순환으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의 Sitting Meditation은 호흡과 함께 내면의 공간을 감각하며 존재의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간이다. 이어지는 Personal Awareness Practice에서는 각자가 자신의 몸의 언어를 찾아 자유롭게 움직인다. 마지막 단계인 Open Space는 여러 존재가 함께 움직이며 서로의 리듬을 느끼는 공명적 즉흥 장(場)이다. 명상과 예술, 개인과 공동체가 이 구조 안에서 하나로 이어진다.
2. 사물의 명상, 손의 깨달음
바브라 딜리는 일상의 테이블 위에서도 수행의 세계를 발견했다. Tabletop Red Square Practice는 붉은 천 위에 사케잔, 리본, 잎사귀, 해골, 수정 같은 사물들을 배치하는 의식이었다. 그녀는 그것들을 ‘동맹자(Allies)’라 불렀다. 사물들은 단순한 오브제가 아니라, 존재의 질서를 드러내는 거울이었다. 그녀는 학생들에게 “무엇이 어디에 놓이고 싶어 하는 가를 들어라.”고 말하곤 했다. 그 순간, 손의 움직임은 마음의 움직임이 되었고, 배열의 질서는 내면의 고요함과 맞닿았다.
3. 균형의 연습, 물 한 숟가락
Carrying a Spoonful of Water는 명상의 본질을 몸으로 배우는 과제였다. 숟가락에 물을 담아 방을 건너 그릇에 옮기는 동안, ‘너무 팽팽하지도, 너무 느슨하지도 않은’ 마음의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 물이 넘치면 조급함이 드러나고, 떨어지면 무심함이 드러난다. 그녀는 말했다. “호흡은 숟가락의 물이고, 의식은 걸음의 균형이다.” 이 단순한 행위는 중도(中道)를 체화하는 법문이 되었다.
4. 나무 아래 누워, 세계의 숨을 듣다
어느 날 요가 수업 중, 한 문장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나무 아래 누워봐요(Lie under a tree.)” 그녀는 체크무늬 천과 책, 노트를 들고 공원으로 나갔다. 나무 아래 누워 기다리고, 듣고, 허용하며 작은 괴물같은 생각들을 부드럽게 통과시켰다. 그때 쉼은 단순한 정지가 아니라, 삶의 리듬과 다시 맞물리는 신뢰의 행위였다. 바람이 지나가고, 잎이 흔들릴 때마다, 자연은 또 하나의 스승으로 다가왔다.
5. 계보의 나무와 몸의 기억
불교 수행에서 배운 ‘계보(Lineage)’의 개념은 그녀의 예술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피어났다. 그녀는 종이봉투를 펼쳐 자신의 ‘예술적 계보나무(Lineage Tree)’를 그렸다. 자신을 거쳐간 스승과 예술가들, 그리고 몸을 통해 이어져온 전승의 숨결이 그 안에 있었다. “내가 어디에서 와서 무엇을 물려받았는가.” 그녀는 학생들에게 묻곤 했다. 그 작업은 과거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여기에서 살아 있는 관계의 지도를 그리는 일이었다.
6. 과거로 들어가는 문, 사진이라는 포털
1954년의 흑백 사진 속, 발레복을 입은 한 소녀. 그것은 그녀의 첫 무대, 프린스턴 발레였다. 그러나 딜리에게 그 사진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었다. 그것은 ‘사진이라는 포털’, 즉 과거의 몸이 현재의 몸에게 말을 거는 수행의 문이었다. 그녀는 사진을 바라보며 움직였고, 기억은 다시 생생한 감각으로 돌아왔다. “예술의 순간은 과거가 아니라, 지금-여기서 다시 살아난다.”
7. 공간의 기억, 방의 스승
1976년, 나로파 대학교의 새 홀에서 열린 리허설.
그 방은 과거에 무도회장이었고, 사진관이었으며, 한때는 불교 법당이었다. 그녀는 그 공간을 “이 방(This Room)”이라 불렀다. “이 방은 나의 스승이었다.”
그녀에게 공간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수행의 파트너였다. 장소가 변해도, 그 안의 깨어 있음은 이어졌다.
8. 사건의 한가운데로 돌아가기
부엌 선반 위에는 샴발라의 슬로건 카드가 있었다.
“지금 이 순간(This Very Moment).” 분주한 생각들이 몰려올 때마다 그 문장이 그녀를 현재로 불러냈다. 춤의 즉흥 속에서도, 마음의 잡음이 고개를 들때마다 그 말은 길잡이가 되었다. 수행은 특별한 법당 안이 아니라, 리허설과 설거지,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서 이어졌다.
9. 하나의 그물, 세계로 퍼지는 호흡
2018년, 세계 30여 도시에서 동시에 열린 International Contemplative Dance Practice Day.
시애틀, 볼더, 아테네, 네팔, 멕시코시티, 브라질, 스위스… 서로 다른 시간대의 사람들이 같은 리듬으로 ‘앉기–움직이기–함께하기’를 행했다. 그녀는 말했다. “이 연결의 그물이 계속 이어지기를.” 그날의 사진 속 얼굴들은 수행의 장을 넘어, 인드라망의 빛처럼 세계 곳곳을 잇고 있었다.
10. 유산 — 노력 속의 기쁨, 지금으로 돌아오는 기억
바브라 딜리의 예술은 결국 몸으로 배우는 불교였다. 그녀는 말했다. “큰 노력의 시대는 나를 단련했고, 기쁨의 시기는 나를 투명하게 했다.” 진정한 노력은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오는 부드러운 기억이다. 그녀에게 예술은 수행이 되었고, 수행은 자비가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기도처럼 남았다.
“모든 전쟁이 멈추고, 평화가 우리의 숨결 안에 있기를.”
늙어감도 수행
그녀의 춤은 여전히 우리를 부르며 지금 이 순간, 바로 여기에서 깨어나라고 속삭인다. 이제 황혼의 나이인 그녀는 노화와 수행, 병과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다룬 인터뷰에서 나이가 들면서 자신의 욕망, 경쟁심, “젊은 자아와의 관계” 등을 재고하며 “늙어감” 을 수행의 장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다. 평생 몸과 마음의 연결과 통합을 실천한 아름다운 존재, 바브라 딜리는 두 아들, 벤자민 로이드와 오웬 본듀란트를 두었으며 두 손자, 그리핀(Griffen)과 엘라 로이드(Ella Lloyd)가 있다. 가족은 언제나 그녀의 예술과 수행의 근원이 되었고, 그녀는 일상 속에서도 ‘몸으로 사랑하고 마음으로 듣는 법’을 가르쳤다. 그녀의 삶은 우리에게 일러준다. 늙어감 또한 하나의 춤이며, 그 춤은 고요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