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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가에 우뚝 솟은 사인암. 단양 출신 우탁 선생이 사인 벼슬을 하며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
수려한 경관에 마음 맞는 벗이 있다면 행복하지 아니하랴? <월간중앙> 독자 30여 명이 단양군 초청으로 1박 2일 동안 단양을 다녀왔다. 출발 당시 서먹하던 일행은 좋은 경치와 흉금을 터놓는 대화 속에 금세 십년지기처럼 친해졌다.
옛말 그르지 않다. 생긴 대로 놀고 이름값을 한다. 단양은 이름부터 심상찮다. 불로불사를 꿈꾸던 도인들이 수련한 '단'을 고을 이름 앞자락에 붙이고 따뜻한 기운 '양'이 그 뒤를 이었으니 단양은 예부터 불로불사의 고장이었음이 틀림없다. 선비와 화가와 명창의 예인들은 단양8경의 수려함을 예찬하였으니 단양은 경치 또한 뛰어나다.
단양 8경을 구경 가자 하니 상주와 서울 친구의 걱정이 태산이다. 그 오지를 어떻게 가며 가더라도 오가는 긴 시간 동안 차 안에서 지칠 테니 가당찮다며 손사래다. "모르면 물어보든가 아니면 알아나 보지 지레짐작으로 겁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소리치니 눈이 동그래진다. 차로 가면 서울에서 두 시간이요 상주에서는 경치 좋은 문경 산양 국도로 가더라도 1시간 반이면 여유 있다고 하니 그제야 짐을 부리나케 챙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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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색다른 고민이 생겼다. 단양에는 팔경을 비롯해 동굴이며 구인사, 소백산, 온달관광지, <광개토대왕> 촬영지 등 볼거리가 너무 많다. 무엇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고민스럽다. 단양은 좋은 산과 물에 지하 동굴과 하늘을 나는 행글라이딩이 있어 육·해·공과 땅속을 두루 볼 수 있는 곳이다.
이해송 문화관광해설사는 단양을 찾는 사람들은 보통 8경을 보면서 짬짬이 가까운 곳을 둘러본다고 하니 그를 따라나선다. 8경은 우열에 따라 번호를 매긴 것이 아니다. 단양은 <정감록>이 꼽은 전국 10승지의 하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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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개국공신 정도전은 단양 사람으로, 그의 호 삼봉은 도담삼봉에서 따왔다고 할 정도로 도담삼봉을 아꼈다. 원래 도담삼봉은 강원도 정선군에 있던 삼봉산이 홍수에 떠내려와 단양에 자리 잡았다고 한다. 으레 좋은 절경에는 그런 전설이 따라붙는다. 영웅호걸의 어린 시절과 태몽에 남다른 이야기가 있듯.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도담삼봉에 사람향기를 불어넣었다. 삼봉의 중앙은 남편봉이요 왼쪽은 첩봉이고 오른쪽은 아내봉이라고. 아내는 첩이 보기 싫어 돌아앉았고 첩은 교태를 부리려 서방님을 향하고. 남편은 처신을 지키려 본처를 바라보는데 위엄을 잃지 않고자 육각정자를 본처 가까이 올려놓았다. 이런 곳에 지은 정자는 호사의 극치다. 나무와 대들보와 서까래와 기와를 배에 싣고 날라 위태로운 곳에서 날밤을 새우며 정자를 지었을 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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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처는 일꾼들의 노역을 걱정하여 정자 짓기를 말렸지만 늦바람이 난 서방은 첩에게 잘 보이려 정자를 계속 지었다. 남편은 본처의 위신을 세워주려고 "당신이 친구들과 놀이하라고 짓네"라며 본처 가까이 정자를 세웠다. 마음 넓은 아내는 질투보다는 일꾼들의 고단함을 걱정하여 고개를 돌리고 남몰래 한숨을 쉬었다. 철없는 첩봉은 제 덕에 정자에서 쉬는 호사를 누린다며 고개를 쭉 빼어들고.
시흥이 잠시 일었으나 이미 빼어난 시인 묵객이 읊은 시서화가 수두룩하니 내가 찍는 방점 하나도 도담삼봉의 명성에 누만 될 뿐이다. 퇴계 이황이 읊은 시를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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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단풍잎 붉고 물은 옥같이 맑은데 / 석양의 도담삼봉엔 저녁놀 드리웠네 신선의 뗏목을 취벽에 기대고 잘 적에 /별빛 달빛 아래 금빛파도 너울지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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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려 가파른 산등성이 300m를 숨찬 기색으로 올라가니 하늘 문으로 통하는 석문이다. 뻥 뚫렸다고 문이 아니다. 어디론가 통해야 문이다. 옛날 마고할미가 물을 길러 왔다가 비녀를 잃어버린 곳이다. 비녀 찾는다고 땅을 판 곳이 99개 다랑이 논이 되었다. 마고할미는 이곳에서 농사를 지어 하늘나라의 양식으로 보냈다고 하니 이곳이 하늘과 통하는 곳이다. 그래서 석문이라 이름 지었을까? 어쩌면 단양이라는 이름이 석문 때문에 생겼을지도 모른다. 불로불사의 신선이 되려는 수련이고 신선은 하늘과 수시로 통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내려온 마고할미는 이곳을 통해 하늘과 교통했을 테니 하늘 문이라고 한들 이상할 것 없다. 석문 어느 곳으로 가야 하늘로 통할지 휘휘 둘러보았으나 범인의 눈엔 보일 리 없다. | |
석문을 돌아 내려오면서 산등성이 정자에 기대 강을 내려다본다. 단양에는 지혜로운 사람이 많겠구나. 차를 타고 오면서 숱한 개울을 봤는데 물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했다. 도덕경에는 낮은 곳으로 흘러가고 다투지 아니한다는 물의 지혜와 겸손을 얘기한다. '지자요수'라 단양 사람들이 부럽다.
석문 올라가는 입구에 노래하는 음악분수가 있다. 한 곡 부르는 금액이 무려 2000원이다. 김동성 현 군수가 싱가포르의 리듬분수를 벤치마킹해 1995년 관광과장 때 설치했다. 당시에는 환경과 수익성 문제로 반대가 심했다고 한다. 앞을 내다보는 눈이 있으면 두렵지 않은 법. 한 곡에 1000원을 받으면 장사가 된다며 밀고 나가 설치하였더니 난리가 났다. 민원이 들어왔다. "2시간 기다려 노래 한 곡 부릅니다." 묘법이 있지. "그럼 한 곡에 2000원 받읍시다." 탁 트인 남한강에서 연인의 눈을 바라보며 노래 부르는 묘미는 해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다.
단양의 여유로움을 즐기기 위해 충주호 여유객이 된다. 충주호 장회나루에서 청풍나루까지의 물길을 따라 유람선이 다니는데 물가 절벽이 장관이다. 나그네는 충주호에 배 띄우던 옛 소요객들을 더듬어본다. 그중의 으뜸은 단양 군수였던 퇴계 이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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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출발하고 얼마 안 있다가 아담한 봉우리를 만난다. 이 봉우리는 커다란 거북 한 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형상이다. 물에 비친 이 봉우리의 바위에 거북 무늬가 있다고 하여 구담(거북이 호수)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구담봉의 풍경을 두고 중국의 소상팔경보다 더 뛰어나다고 한 이가 바로 퇴계 이황이다(단양군 관광지).
유람선 선장의 재미있는 설명에 사람들이 자지러진다. 유람선 선장은 전생에 아마 그 옛날 배 띄워 유람할 때 풍광을 보고 감탄하였던 선비였음이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얘기할 수 없다. 스스로 감동받아야 남에게 감동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생의 감동을 아직도 느끼며 사는 사람이다. 복도 많다.
비는 오고 경관은 좋고 감회는 새로운데 글이 짧아 표현할 방법이 없다. 옛 문장가도 명승지에 남긴 글을 보고 한마디를 더했다. "내가 더 남길 말 없네."
옥순봉의 아름다움은 역시 퇴계 이황의 일화로 대신하겠다. 관기 두향은 당시 청풍군 땅이었던 옥순봉의 절경에 반해 단양군수 이황 선생더러 옥순봉을 단양군으로 속해달라는 청을 넣었다. 청풍군수는 당연히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이황 선생은 두향을 달래줄 심사로 옥순봉 석벽에 일필을 휘날려 '단구동문'이라 썼다. 단구의 관문이란 뜻이다. 후에 그 글을 본 청풍군수가 옥순봉을 단양으로 넘겨주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글쎄. 이황 선생의 글씨가 사람을 감동시킬 만큼 명필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인품이 전설을 만들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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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 우뚝 솟은 사인암은 단양을 대표하는 관광지의 하나로 여러 곳에 자주 등장한다. 그런데 '사인'이란 말이 좀 어렵다. 관광 책자나 설명을 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 선생이 백발가로 유명한 단양 출신 우탁 선생이 사인 벼슬을 하면서 이곳에 머물렀다고 사인암이라 불렀다고 한다. 사인은 대사(大舍)와 사지(舍知)를 통틀어 이르는 말로 고려시대에 내사문하성의 종사품 벼슬이다.
흐르는 물, 앉은 바위를 끼고 수백 척의 바위가 물가를 굽어본다. 물이 깊어야 큰 고기가 들고 오동나무라야 봉황이 날아든다. 이곳에는 무려 228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름을 남기고 싶은 욕망이라기보다 후손들에게 이 풍경을 기억해달라는 뜻일 게다. 국내 최고의 여유로운 장기판과 바둑판이 사인암 앞 큰 바위에 새겨져 있다. 소유하지 않고 자연과 하나 되는 여유를 누렸던 옛 어른들의 호사가 부럽다.단원 김홍도가 사인암을 그리려고 붓을 들었다가 1년여를 고민했다고 한다. 배움 부족한 후학은 오죽하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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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양·영춘·제천·청풍 네 고을을 흘러 드는 물빛은 곱고 힘이 있으며 바위는 크고 웅장하다. 누가 그 바위들의 우열을 말할 수 있을까마는 호사가들은 순위를 매겼다. 네 군 강산 중에서 단양의 하선암·중선암·상선암이 더 빼어나다고 해 '사군강산 삼선수석'이라고 했다. 중선암에 새겨진 충청도 관찰사를 역임한 윤헌주의 글씨다.
종교심 있는 사람들은 하선암의 부처바위에서 공손한 마음을 가졌고 풍류를 즐겼던 시인 묵객들은 중선암과 상선암의 바위에서 묵을 갈았다. 서화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화선지에 옮겼고 명창은 물소리와 바위의 웅장함을 벗하였을 것이다. 석공은 이곳을 다녀간 이의 이름을 글로 받아 바위에 새겼다. 하여 상선암과 중선암과 하선암에는 각각 33명, 140명, 23명의 이름이 남아 있다.
중선암에 제일 많은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중선암 바위들이 더 많았고 머무르기 더 좋았다는 말일 것이다. 아름다움의 우열이 아니다. 우암 송시열의 제자 수암 권상하 선생이 상선암을 그린 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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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과 놀던 학은 간 곳이 없고 /학같이 맑고 깨끗한 영혼이 와 닿고 /그런 곳이 바로 상선암일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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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유물과 자료를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것을 축적해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단양은 새 역사도 만들어간다. 온달관광지도 그중 하나다. SBS는 드라마 <연개소문>을 찍으면서 촬영장 설립에 도움을 달라고 했다. 김 군수는 고심 끝에 예산을 지원하면서 드라마 세트장을 활용할 방법을 고민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진리가 우연을 가장한 필연으로 찾아왔다. 시간만 나면 세트장을 둘러보았는데 어느 날 우연히 멋진 차림의 일본 여성을 만났다.
카투사 출신으로 영어에 능통한 김 군수는 외국인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김 군수는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가 한자로 필담을 하게 됐다. 한참 주고받았는데 알고 보니 일본 유수 여성잡지의 편집장이었다. 그 편집장이 일본으로 돌아가 단양에서 촬영하기도 한 배용준 주연의 <태왕사신기>를 크게 소개했다. 배용준은 일본 아줌마들의 신적인 존재다. 그 뒤로 일본 아줌마 300~500명이 매일 단양을 찾았다. <바람의 나라>와 <천추태후> 등도 촬영하였고 지금은 <광개토태왕>과 <무사 백동수>를 찍고 있는데 입장료 수입이 연 10억여 원에 이른다. 중국어 전공자 진미자 님이 인도네시아 화교에게 말을 건네니 온달관광지는 인도네시아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라고 한다.
주변에는 온달산성이 있고 온달동굴도 있다. 한여름이라 시원한 동굴을 찾아 들어갔다. 온달동굴에는 기기묘묘한 형상의 종유석이 인간의 관점에 따라 붙인 이름표를 달았다. 온달 장군이 담력을 키우고 잠을 자려고 이 동굴을 들락날락했을 것이다. 장군은 저 형상을 보고 뭐라고 했을까? 역사 자료는 생성 당시의 관점으로 해석하지만 사물의 명칭은 현재 역사의 관점으로 명명한다. 우리들이 거북이·용·망부석·해탈문·성모마리아상으로 이름 붙인 바위들을 보면서 장군은 뭐라고 했을까? 아마 통일 대업의 열망과 평강 공주를 떠올리며 종유석을 지나쳤을지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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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프팅이라고 해도 될까? 영화 <돌아오지 않는 강>에서 마릴린 먼로가 뗏목으로 급류를 타고 내려가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문화사대주의인가? 아님 뇌리에 각인된 강인한 스크린의 영향력 때문인가?
래프팅은 단양을 찾는 관광객이 좋아하는 코스다. 장마로 수량은 풍부했고 물길은 거칠었다. 다행히 날씨는 화창했다. 우리 생명을 책임질 래프팅 교관은 몇 번이고 강조했다. "래프팅은 안전합니다." 래프팅 경험이 있는 참가자는 실실 웃었지만 초보자는 물살을 보며 긴장한 빛이 역력하다. "강호동이 입어도 안전한 구명조끼 때문입니다." 순간 웃음보가 터졌다.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체조를 한 다음 안전수칙을 듣고 보트를 들어 강으로 갔다. 맨발로 갔는데 길에 돌이 많아 일행들이 힘들어했다. 길을 닦지 않는 이유가 있는지.
보트를 타는 순간부터 배가 요동쳤다. 교관이 소리쳤다. "구령에 따라 노를 저으세요." "영차! 영차! 언니 예뻐, 오빠 미남, 오리 꽥꽥." 유치원 아이들 소풍 같다. 인당수 물길처럼 사나운 소용돌이가 휘돌았다. 낯빛이 변했지만 여전히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다. 세계 70여 개국을 여행한 강석환 여행가와 아들 찾아 이집트와 캄차카 반도까지 다녀온 일흔 되는 서전수 할머니다. 여행가는 TV에 출연하고 다양한 경험을 해 그렇다 치고 할머니는 래프팅이 처음인데도 두려움이 없다. 할머니의 혈관에는 승려 혜초의 탐험가 구도 정신이 흐르나 보다. 고속안전순찰정이 강 아래위로 다녔다.
교관은 물놀이하자고 배를 뒤집고 일행들을 물에 빠뜨리고, 옆 보트의 일행들과 치열한 물싸움도 한다. 사람들의 잠재된 호전성이 슬쩍 엿보인다. 처음에는 웃으며 물을 뿌리던 사람들이 이제는 보트에 서서 물을 사납게 날리기 시작했다. 재미는 시간을 잊게 한다. 너무 늦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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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자락에 여장을 풀었다. 도시에서는 꿈꾸지도 못했던 풀벌레와 개구리 울음소리, 지혜로운 사람들이 좋아하는 물소리가 들린다. 숙소 앞이 바로 개울이다.
산에서 나는 온갖 소리를 들으니 미물과 인간이 함께 살아감을 알 수 있다. 인연이 다를 뿐 우리는 모두 생명을 지녔다. 저들은 짐승과 미물로 나고, 나는 인간의 몸을 받았을 뿐이다. 산을 아는 사람은 삼라만상이 서로 도움을 주고 있음을 안다. 그래서 산을 아는 사람은 어질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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