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레포트>
찬란한 문화의 터전, 백제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20100624 이민선
고등학교 때, 국사공부를 하면서 많은 역사 유적들을 사진 속에서 만났다. 그리고 나중에 대학에 가게 되면 그것들을 꼭 실제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처음으로 떠나는 춘계답사가 매우 기대되고 설레었다. 알찬 답사를 위해 답사지 제작 작업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어떻게 보내야 3박 4일이라는 시간이 유익하게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였다. 그러던 중 문득 국사교과서에서 중요하게 공부했었던 것들 중에 몇 가지를 선정하여 중점적으로 살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에서 공부하는 것과 직접 보고 들으며 공부하는 것이 어떻게 다른지 비교해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다 완벽하게 그 문화유산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특히, 이번 답사의 테마였던 백제문화권은 그 어느 시기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던 시대였기 때문에 알아보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그래서 3박 4일의 일정동안 적어도 하루에 하나의 답사지는 심도있게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 온화한 백제의 미소, 서산 마애 삼존불(瑞山磨崖三尊佛像)
답사 첫째날 두 번째 코스, 서산마애삼존불을 보기 위해 산에 올랐다. 그 전까지 내가 서산마애삼존불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은 이 불상이 삼국시대 불상의 특징인 미소를 머금은 듯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불상이라는 정도였다. 그러나 실제로 불상의 모습을 보니, 왜 이 불상을 ‘백제의 미소’라고 부르는 지 알 수 있었다. 온화하고 부드러운 그 미소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너무 생생하여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사람의 웃음을 본떠서 만든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까지 생겼다. 또한 불상이 절묘하게 비바람을 피하는 위치에 조각되었고 빛의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는 점은 색다른 매력을 느끼게 했다.
서산 마애 삼존불은 백제의 7세기 불교조각사를 여는 대표적인 상이라고 한다. 가운데에 본존인 여래(如來) 가 서 있고, 좌우에는 본존의 어깨높이만한 협시보살이 서있다. 특히 본존의 왼쪽 보살상은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이다. 한 다리는 내리고 한 다리만을 반대편 무릎에 올려 반가부좌를 한 상태를 취하고 있는데 뺨을 괴고 생각하는 자세로 앉아있다. 이러한 미륵반가사유상은 7세기 초 무렵 삼국에 공통됐던 신앙경향을 나타낸다고 한다. 그래서 이는 이 마애불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령왕릉(武寧王陵) 을 가슴에 품은, 공주 송산리 고분군(宋山里古墳群)
답사 둘째날, 보슬보슬 비가 내리는 가운데 공주 송산리 고분군에 도착하였다. 공주 송산리 고분군 내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역시 무령왕릉이다. 무령왕릉은 고등학교 때 매우 중요하게 강조되었던 부분이었다.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은 벽돌무덤으로써,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무덤. 그래서 답사 전부터 무령왕릉은 가장 기대되는 코스 중 하나였다. 내부에 박물관이 잘 되어 있어서 능 안에서 출토된 여러 가지 유물들을 볼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그리고 비록 비가 오긴 했지만 그것에 관계없이 밖에서 직접 무령왕릉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다.
무령왕릉은 1971년에 송산리 고분군의 배수로 공사 중에 우연히 발견된 무덤으로 백제 제 25대 무령왕과 왕비의 능이다. 한반도에 존재하는 고분들은 대체적으로 무덤의 피장자가 누군지 알려주는 기록을 남기지 않는데, 무령왕릉은 무덤의 주인공을 알려주는 묘지석이 발견됬다는 점에서 특별하다고 한다. 한편, 무령왕릉에서는 백제문화를 연구하는데 도움이 되는 수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주로 왕과 왕비 주변에 있던 각종 장신구들과 금관장식, 귀고리 등으로 약 3000여점이나 된다고 한다. 이것은 백제 미술의 귀족적 특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뿐만 아니라 무령왕릉의 내부는 중국 남조의 영향을 크게 받아서 연꽃 등 우아하고 화려한 백제 특유의 무늬를 새긴 벽돌로 쌓여졌다. 그래서인지 무령왕릉만의 독특한 매력도 느낄 수 있다.
-신이 빚은 최고의 작품, 백제 금동 대향로(百濟金銅大香盧)
답사 셋째날 방문했던 국립 부여 박물관에는 많은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였던 것은 역시 백제 금동 대향로였다. 언젠가부터 나에게 ‘백제문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백제 금동 대향로였다. 섬세하고 정교한 그 모습은 사진만으로도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역시, 직접 눈으로 본 것과 사진으로만 보는 것은 정말 다르다는 것을 이 금동대향로를 통해 가슴 깊이 깨달았다. 사진만으로는 절대 그 아름다움을 담아낼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태껏 느껴보지 못했던 우아한 분위기와 생동감은 끊임없는 찬사를 이끌어냈다. 말 그대로, 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완벽한 작품 그 자체였다.
백제 금동 대향로는 능산리 절터에서 출토된 향로로, 현재 국립 부여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이 향로는 동체는 연꽃봉오리로, 뚜껑은 산모양으로 만들어 많은 물상을 등장시켰으며 정상에는 봉황을 아래에는 용을 배치하였다. 이로보아 이 향로는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상상의 동물들과 어우러져 살고있는 신선세계, 이상향을 닮게 만들었다는 전형적인 박산향로(博山香爐) 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찬란한 불교문화의 터전이었던 백제에서 도교사상을 담고 있는 이 향로의 의미는 더욱 특별하게 느껴진다. 게다가 백제 금동 대향로만의 다양한 표현성과 상징성은 어느 시기의 향로보다도 탁월해서 백제인의 탁월한 예술적 감각과 독창성을 주목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 백제 금동 대향로는 위덕왕이 아버지인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즉, ‘효’의 측면에서 이 향로는 유교적 성향을 띄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하나의 향로에서 이렇게 다양한 사상과 의미를 찾아 볼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상적인 미륵불국토 건설을 위해, 익산 미륵사지(寺址石塔)
신라의 황룡사와 함께 가장 규모가 크다고 여겨지는 백제의 미륵사, 그리고 목탑 형식을 취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이 두가지는 백제의 불교 문화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체크 문항 중 하나이다. 답사 마지막 날에 방문했던 미륵사지는 비교적 황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 터만으로도 충분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미륵사지는 백제시대의 사찰터로 백제 무왕 때 창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미륵사의 명맥은 통일신라시대까지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후 삼국유사를 편찬할 때까지 미륵사가 남아있었다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미륵사는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주변국가를 복속시키고 궁극적으로는 미륵불국토를 구현하고자 하는 신앙적인 염원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한편, 미륵사지와 관련하여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미륵사지 석탑인데, 이 미륵사지 석탑은 우리나라 최대(最大), 최고(最古)의 석탑으로 알려져 있다. 미륵사지 석탑에서 시작된 석탑의 흐름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을 지나, 불국사 석가탑에까지 이르게 된다. 최근 미륵사지 석탑에서 사리장엄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백제 무왕대의 왕비가 선화공주가 아닐 가능성을 새롭게 제기하기도 한다.
끝으로...
태안마애삼존불을 시작으로 개태사까지, 3박 4일의 모든 답사 일정은 끝이 났다. 첫 답사라 그런지 예상했던 것 보다 3박4일의 답사 일정이 고되고 힘들었지만, 이번 답사는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준 좋은 경험이었다. 백제의 중심인 불교 문화에 친근하게 다가간 기회가 된 것 같아 기뻤고 교수님의 생생한 설명이 덧붙여져서 유익했다. 또한 앞서서 중점적으로 설명했던 답사지 외에도 왕흥사지, 무량사, 마곡사 등 이번 기회로 새롭게 알게 된 곳들이 많아서 좋았다. 특히, 궁남지는 이번 답사로 인해 처음 알게 된 곳이었는데 나중에 다시 방문하고 싶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임금이 그곳에서 풍류를 즐겼을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나도 부러웠다. 또한 꽃들이 만개한 가운데에서의 궁남지를 떠올리니 비가 온것이 진심으로 아쉽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이번 답사에서 가장 중요하게 느꼈던 것은 역사란 책으로만 공부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책을 통해 공부하는 것은 무척이나 수동적인 행동이며, 나 스스로 능동적으로 보고 느끼며 직접 탐구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을 배우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태까지 말로만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 직접 발품을 팔아 서 역사에 다가간 적이 없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무왕과 선화공주의 쌍릉을 볼 수 있었던 것도 좋았지만 익산 고도리 석불 입상을 보지 못한 것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한 나름대로는 열심히 돌아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생각처럼 자세히 관찰하고 탐구하지 못한 것 같아 후회도 된다. 하지만 이제 막 첫 답사를 끝마친 상태이고, 앞으로의 답사는 철저한 예비조사를 통해 더 많이 배우고 느낄 수 있는 귀중한 경험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