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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慶의 시 이정환
새로운 작품을 찾아 읽는 일은 즐겁다. 3장으로 잘 직조된 알곡의 시조를 만나 마음 깊이 음미하노라면 입가에서 저절로 미소가 번진다. 《시조21》겨울호에서도 그러한 기쁨을 안겨주는 시편들이 마음을 끌어당기고 놓아주지 않는다. 강력한 시적 자기장이 온 사방으로 벋고 있는 것을 느낀다. 오래 전 누군가가 시를 소우주라고 말한 것은 참으로 옳다. 우리는 좋은 이야기가 드문 세상을 살고 있다. 새봄에는 두루두루 선한 이야기, 유익한 일들로만 가득하였으면 한다. 우리의 귓전에 경사스러운 일들만 소리소리 쌓인다면 얼마나 삶이 윤택해질까. 인생살이가 비록 비극적인 데가 많지만, 세상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먼저 백이운 시인의「가을날 문경 가서는」을 보겠다.
우리 생에 가을 단풍 몇 번이나 보겠다고 장작불 타던 날처럼 아등바등할 것인가 가을날 聞慶 가서는 단풍 들지 말 일이다. 듣고 묻지 않아도 경사스런 그 무슨 일 젊은 도공과 도공 부인 가마에 淨火 올려 받아든 찻그릇들로 소꿉놀이 하는 날들. 도심산중 첩첩 숨어 철모르고 철을 보낸 귀먹은 팽객에게 老茶 한 잔 권했거니 가을날 문경 가서는 聞香이나 할 일이다. -백이운, 「가을날 문경 가서는」 전문 지명의 이채로움에서 비롯된 세 수 한 편의 시조가 매우 훈향 높은 문학적 성취를 일구어 내고 있다. ‘우리 생에 가을 단풍 몇 번이나 보겠다고’라는 첫 수 초장이 명치끝을 치며 시종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진정 그렇지 않은가. ‘장작불 타던 날’처럼 아등바등 사는 일이 부질없는 것이다. 유한의 목숨, 제한된 시공간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자의 애환은 깊고도 넓다. 그렇기에 ‘가을날 문경 가서는 단풍 들지 말 일’이라고 시의 화자는 외친다. 탐방 장소가 ‘聞慶’이기 때문이다. ‘젊은 도공과 도공 부인 가마에 淨火 올려//받아든 찻그릇들로 소꿉놀이 하는 날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도심산중 첩첩 숨어 철모르고 철을 보낸/귀먹은 팽객’에게 ‘老茶 한 잔 권했’기 때문에 ‘가을날 문경 가서는 聞香이나 할 일’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즉 차 향기를 귀담아 듣고 오겠노라는 말이다. 실로 聞慶의 시, 聞香의 시로서 인생의 깊이를 잘 녹였기에 그 훈향이 천리를 가고도 남을 듯하다. 소재는 다르나 조동화 시인의「말」은「가을날 문경 가서는」과 일맥상통한다. 1 한 사흘 조선 솥에 밤낮으로 장작 지펴 뼈가 푹 무르도록 우려낸 사골곰국 뚝배기, 썬 파를 곁들인 진하고도 보얀 말 2 암꽃 수꽃 못 만나 씨가 없는 청도반시 거기다 인공을 더한 주황빛 감말랭이 쫀득한 고 단맛처럼 혀에 챙챙 감기는 말 3 멸치젓 찹쌀풀에 고춧가루 듬뿍 넣고 갓 절인 보랏빛 갓 오지독에 잘 버무려 삼동을 삭혀야 제격인 쌉쌀하고 매콤한 말 -조동화, 말 전문 말에 대한 진지한 탐색은 곧 인생에 대한 경외감으로 이어진다. 요즘과 같이 거친 말들이 횡행하는 때에 이와 같은 작품은 경종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다만 「말」과 같은 작품을 애써 찾아 읽거나 진중한 삶을 위해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 드물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말」에는 ‘사골곰국, 감, 갓’이 각각 등장한다. 대상들을 붙잡고 집요하리만치 치밀하게 형용하며 의미 부여를 하고 있다. 시인이 얼마나 천착에 깊이 몰입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가 이번에 함께 발표한 「봉인」,「읍천리 주상절리」,「떨켜에 관하여」등도 결코 예사롭지 않는 작품들이다. 언어의 연금술사다운 풍모가 가감 없이 드러난다.「봉인」에서는 눈송이들의 다른 모양과 사람마다 다른 지문의 각양각색을 통해 신의 섭리와 창조의 비밀과 놀라운 사랑을 잔잔한 어조로 환기시킨다.「읍천리 주상절리」는 동해 양남 마을의 부채꼴로 누워 있는 ‘주상절리’를 노래하고 있다. 직접 눈으로 보면 입이 따악 벌어질 지경이다. 그처럼 아름답다. 그 모습에서도 시인은 신의 손길을 절감한다. 그러나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주상절리의 아름다움을 극명하게 그려낸다. 범수의 솜씨가 아니다. 조동화 시인은 인생 후반기에 이르러서도 시조의 꽃을 피우는 일에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인다. 탄탄한 구성과 정교한 수사, 탐색의 깊이 등은 신진들이 특히 본받을 점이다. 다음은 소시집에 수록된 이지엽 시인의 시조「국화」다. 학생들이 집으로 가고 연구실에 혼자 앉아 문 쪽 바라보다 머무느니 국화 한 다발 시들어 푸석한 얼굴 누가 꽂아두고 갔을까 갑자기 내가 무서워진다 주위를 둘러본다 어느 행간 헤매다가 나는 주저앉은 것일까 한 계절 가는 것도 모르고 꽃 있는 줄도 모르고 유리창 밖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보면 그도 흠칫 놀랄까 먼지처럼 늙는 生을 보고 내 마음 금간 화병의 물을 가는 늦은 저녁 -이지엽,「국화」전문
무척 애절하고 애끈하다.「국화」는 사소한 일상에서 느낀 소회를 담담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학생들과 함께 할 때는 들끓는 시간이다. 하지만 연구실에 혼자 남으면 문득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을 수가 있다. 그 때 시의 화자는 문 쪽에 있는 국화 한 다발을 본다. ‘시들어 푸석한 얼굴’이다. 그 모습에서 자신을 떠올리게 되었을 것이다. 나 혼자라는 생각 끝에 무서워져서 주위를 둘러본다. 그러면서 ‘어느 행간 헤매다가 나는 주저앉은 것일까’라고 되뇐다. 주저앉은 지점이 어디쯤일까. 한 계절이 가는 것도 모르고 꽃이 바로 눈앞에 있는지도 모르고 쫓겨 산 자아를 돌이켜 본다. 아, 사는 것이 결코 이런 것이 아닌 데 하고. 그 뒤 셋째 수에서는 ‘먼지처럼 늙는 生’이라는 자조 섞인 자탄을 보인다. 참으로 속절없고 덧없다. 하지만 결구 ‘내 마음 금간 화병의/물을 가는 늦은 저녁’을 통해 고독과 하릴없음은 해소된다. 물론 ‘내 마음 금간 화병’이라는 구절에서 아픔은 비치지만 물을 가는 일을 통해 상처 혹은 아픔은 천천히 치유된다. 내 일찍 알았다면 슬프지 않았겠다 도리깨에 터져 나온 잘 여문 낱알같이 아픔이 길이라는 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내 일찍 보았다면 힘들지 않았겠다 여든여덟 애를 태워 벼가 익는 한여름을 쏟아낸 구슬땀방울 좀 더 일찍 보았다면 내 일찍 들었다면 섭섭하지 않았겠다 여윈 부리 터지도록 아침을 물어오는 사는 일 노랫소리를 좀 더 일찍 들었다면 -전연희,「내 좀 더 일찍」전문 전연희 시인은「내 좀 더 일찍」에서 만각의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누구인들 그러지 않겠는가. 삶은 후회와 회한의 연속인 것을. 완벽한 아름다움이란 것이 지상에 존재하지 않듯 완벽한 인생살이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알고, 보고, 들은 것에 대하여 ‘도리깨에 터져 나온 잘 여문 낱알, 여든여덟 애를 태워 벼가 익는 한여름을/쏟아낸 구슬땀방울, 여윈 부리 터지도록 아침을 물어오는/사는 일 노랫소리’에 빗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제 때 알았다면 슬프지도, 힘들지도, 섭섭하지도 않았을 터이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인생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좀 더 일찍’ 알고, 보고, 듣는 일은 실상 지난한 일인 것이다. ‘그녀는’을 ‘그년’으로 줄여 쓴 건 쿠테타다 ’그년‘을 ’그녀는‘으로 돌려놓는 혁명을 하라 괴리에 얽힌 저 거리 쿠테타와 혁명 사이 -김강호,「NG 모음.1」전문 김강호 시인의「NG 모음.1」은 시원스럽고 통쾌하다. 역발상의 한 표본이다. 천착과 사유의 깊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단시조 연작 중의 첫 작품이다. 초장의 전복적인 발상이 이채롭다. 말이라는 것은 이처럼 묘한 것이다. 때에 따라 내밀한 생명력을 가지기도 한다. ‘‘그녀는’을/‘그년’으로/줄여 쓴 건/쿠테타다‘라는 대목은 실소를 자아내게 하면서도 말에 대한 강력한 각성을 불러일으킨다. 빛깔이 사뭇 다르지만 앞에서 살핀 조동화 시인의「말」과 연계지어 생각해 보아도 좋겠다. 이번에 보여준 김강호 시인의 시도는 그가 새로운 정신적 수맥을 찾는 과정에서 비롯된 퍽 의미 있는 수확이다. 잠 덜 깬 마을 쪽에 안개 휘장이 촉촉하다 실눈 뜬 새벽빛이 설핏 번진 틈으로 원시의 어디쯤인가 신발 벗고 걸었다 고요의 이마를 치며 날아가는 백로의 부리 희고 단단한 말을 까르륵 떨어뜨렸다 풀벌레, 목청을 빼내어 그 말을 받아냈다 투명한 성대 풀어 시를 읊는 냇물 앞에 가만히 허리 굽혀 찌든 낯을 씻었다 꿈꾸는 지붕이 두엇 내밀하게 흘렀다 -백점례,「물방울 마을」전문 최근에 백점례 시인은 첫 시집『버선 한 척』을 펴내었다. 아래는 필자가 쓴 작품 해설의 한 부분이다. 백점례 시인은 사물과 세계의 비의를 개성적인 가락과 비유로 육화하는 능력이 돋보인다. 그래서 그의 첫 시집은 괄목상대다. 모르기는 몰라도 그의 등장은 시조문단에 새로운 개성의 출현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도토리 키 재기 하는 곳에서 군계일학의 면모로 나타나서 주위를 능히 압도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첫 시집『버선 한 척』의 전편을 면밀히 살피고 난 후 내린 단언이다. 그의 시선은 무척 다채롭다. 현실을 직시한다. 내면 탐색과 더불어 현실의 여러 가지 문제들을 탐구하고 육화하는 일에 진정성과 능숙함을 보인다. 그만큼 그의 기량이 어느 정점에 올라섰다는 방증이다. 그는 어떠한 소재를 주어도 어려움 없이 형상화할 수 있는 공력을 지닌 시인이다. 오랫동안 절차탁마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 까닭일 것이다. 바탕이 잘 닦여 있어 흔들리지 않는 힘을 갖췄고 그렇기에 추동력이 있다. 또한 일상에서 잘 쓰지 않는 새로운 낱말들을 발굴하여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는 것에도 주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은 신인으로서 가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물방울 마을」이 보여주고 있는 장면은 제목이 암시하듯 젖어 있다. 시의 화자와 자연이 한 호흡을 이루고 있는 것이 여실히 보인다. ‘고요의 이마를 치며 날아가는 백로의 부리’가 ‘희고 단단한 말을 까르륵 떨어뜨’리고 그것을 곧장 ‘풀벌레’가 ‘목청을 빼내어 그 말을 받아’내는 일련의 연쇄적 의미망이 흥미롭다. 이 대목에서 자연이 또 다른 자연과의 은밀한 교감을 가지는 것을 본다. 이러한 미적 정황은 첫 수와 끝수에서도 잘 드러난다. ‘시를 읊는 냇물 앞에/가만히 허리 굽혀 찌든 낯을 씻’음으로써 마침내 자연과의 혼연일체에 이른다. 또 다시 봄이다. 새 봄에는 진실로 봄꽃처럼 환하고 눈부신 ‘聞慶의 시’가 수없이 새로 태어나서 온 누리에 널리 퍼뜨려졌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