景福34 제36차 文化踏査(5-2); 光化門廣場-光化門-東十字閣-世宗文化會館
光化門廣場
광화문광장은 景福宮과 北岳山 등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眺望하는 空間으로 조성하며,
세종로의 옛 모습인 六曹거리 복원을 통한 歷史·文化體驗 공간으로 재탄생 시키기 위한
사업으로 2008년 5월 착공, 2009년 8월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서 세종로사거리와 淸溪廣場으로 이어지는 世宗路 중앙에 길이 557m,
너비 34m로 조성되었으며 세부구간은 '광화문의 역사를 회복하는 광장' '六曹 거리의 풍경을
재현하는 광장' '한국의 대표 광장' '시민이 참여하는 도시문화 광장' '도심 속의 광장'
'청계천 연결부'로 나누어진다.
世宗路는 太祖 李成桂가 漢陽을 건설할 때 너비 58자 규모로 뚫은 大路로, 정부 관서인 六曹와
漢城府 등의 주요 官衙가 길 양쪽에 있다 하여 ‘육조 앞’ 또는 ‘육조 거리’라 부르기도 했고,
세종로 사거리에 해태석상이 있다고 ‘해태 앞’이라고도 했으며, 또 高宗 39년에 세운 碑殿 때문에
흔히 ‘碑閣 앞’이라고도 불렀다.
또한 광화문네거리 일대는 나지막한 황토언덕이 있다 하여 ‘황토마루[黃土峴]’라 불렀으며,
일제강점기에는 ‘光化門通’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불리다가 1946년 10월 1일 옛 중앙청
정문에서 황토현 사거리까지의 길이 500m구간을 도로로 지정한 뒤 世宗의 廟號를 따서
‘世宗路’라고 이름하였다.
光化門廣場일대 사진

(01) 光化門廣場
忠武公 李舜臣 將軍像-世宗大王像-景福宮-北岳山이 보이고 사진 왼쪽은 世宗文化會館-
정부종합청사이다. 날씨가 맑지 않아 북악산 오른쪽으로 北漢山 普賢峰이 희미하게 보인다.

(02) 광화문광장 淸溪川 發源地에서

(03) 광화문광장 淸溪川 發源地

(04) <淸溪川 發源地> 표석 -2008.11.30 사진-
北岳山 彰義門(紫霞門) 남쪽에 있는 표석

(05) 忠武公 李舜臣 將軍像
花崗石 座臺 위에 세워진 銅像 높이 17m로 1968년 4월에 건립하였다.

(06) 忠武公 李舜臣 將軍像
座臺 뒤쪽에는 [朴正熙 獻納 / 題字 朴正熙 書 / 銘文 李殷相 撰 /
彫像 金世中 作 / 一九六八年 四月 日 / 愛國先烈彫像建立委員會∙
서울신문社 建立]이라는 銅板이 부착되어있다.

(07) 靑銅鑄物 ‘거북선’. 높이 1m, 길이 3m로 座臺 하층부분에 설치하였다.

(08) 前面臺石 양끝에 설치된 靑銅鑄物의 ‘督戰鼓’

(09) 議政府-六曹 배치도에서
광화문에서 볼 때 동쪽(사진 오른쪽)에 議政府-吏曹-漢城府-戶曹-耆老所가 배치되었으며,
서쪽(사진 왼쪽)에는 禮曹/三軍府-中樞府-司憲府-兵曹-刑曹-工曹가 배치되었다.

(10) 世宗大王像과 觀測器具

(11) 渾天儀, 天體의 運行과 그 위치를 측정할 수 있는 天文時計

(12) 測雨臺와 測雨器
世宗 이후부터 朝鮮末期에 이르기까지 降雨量을 測定하기 위하여 쓰인
器具로 世宗 23년(1441) 戶曹가 건의하여 書雲觀에서 測雨器를 제작하고,
다음해에는 測雨에 관한 제도를 제정하여 서울과 各 道의 郡縣에 설치하였다.

(13) 錦營 測雨器 -보물 제561호 複製品-
錦營 測雨器는 憲宗 3년(1837)에 만든 것으로 氣象廳에서 所藏하고 있으며
高 一尺 五寸, 徑 七寸, 重 十一斤으로 원통형의 표면 3곳에 대나무처럼
도드라진 마디가 눈에 띈다.

(14) 해시계, 太陽의 움직임 변화를 측정하여 시간을 측정하는 기구
우리나라에서는 7세기경에 제작된 해시계 파편이 유물로 전해지며, 世宗 16년(1434)에
蔣英實 등에 의해 개발된 仰釜日晷가 대표적이다.

(15) 세종어제 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

(16) 세종대왕 像, 2009년 10월 9일 제막
높이 6.2m(기단 4.2m포함 총 높이 10.4m), 폭 4.3m, 무게 20톤으로
弘益大 김영원 교수 조각작품.

(17) 세종대왕 상 後面
기둥에는 世宗大王의 業績들이 浮彫되어 있고, 基壇에는 ‘세종대왕 연보’를 陰刻하였으며
地下에는 ‘세종이야기’ 전시관이 있다.

(18) 光化門廣場에서

(19) 北岳山과 景福宮 光化門

(20) 景福宮의 正門 光化門
太祖 4년(1395) 9월에 창건되어 鄭道傳에 의해 四正門으로 命名되었고 午門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世宗 7년(1425) 集賢殿 學士들이 光化門이라고 바꾸었다.
壬辰倭亂 때 燒失되어 高宗 1년(1864) 興宣大院君의 景福宮 再建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으나
1927년 조선총독부가 해체하여 경복궁 동문 建春門 북쪽에 이전했으며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1968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했으며, 2006년 12월 전통적인
옛 모습으로 복원공사가 시작되어 2010년 8월에 완공하였다.

(21) <光化門> 현판, 景福宮 重建 때 訓鍊大將 任泰瑛이 쓴 글씨
2010년 10월 <光化門> 현판이 龜裂되어 복구하면서 한글로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경복궁을 중건할 때 훈련대장으로 공사책임자인 營建都監提調를 兼職했는데 그때 쓴
任泰瑛(諡號 靖毅)의 글씨로 결정되었다

(22) 광화문 3개의 闕門 중 높고 큰 가운데 칸은 임금이 행차하는 문이며 천정에는 朱雀을
그려 넣었고 동쪽 문에는 天馬를, 서쪽 문에는 거북을 그렸다.

(23) 임금이 출입하는 가운데 문의 虹霓

(24) 光化門 重層 樓閣 지붕의 추녀와 처마

(25) 광화문 추녀

(26) 광화문 해태상
해태는 火災나 災殃을 물리치는 神獸 또는 辟邪(邪鬼를 물리침)의 의미로 장식되었다.
해태라는 말은 해치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치는 堯舜시대에 세상에 태어났다는 상상의
동물로 그 이름도 해치, 神羊, 識罪, 해타 등으로 불렸다.
옛날부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祥瑞로운 동물로 여겨져 慶熙宮 崇政殿과 景福宮 勤政殿,
昌德宮 延慶堂 등 궁궐 입구에 주로 세워졌다.
한편 서울시는 2008년 5월 해치를 서울의 象徵 아이콘으로 선정하였다.

(27) 광화문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경복궁 담장

(28) 동쪽에서 본 광화문, 앞에 해태상이 보인다.

(29) 東十字閣 -사적 제117호(경복궁에 포함)-
景福宮 外廓 담 동남쪽에 세운 望樓로 石壇은 朝鮮 初의 遺構이며 樓閣은 興宣大院君이
경복궁을 중건할 때 세운 것으로 추측된다고 한다.
서울유형문화재 제13호로 지정되었다가 사적 제117호 경복궁에 포함되어 指定解除 되었다.

(30) 東十字閣, 日帝强占期 때 경복궁 앞으로 길이 나면서 경복궁이 毁撤되고 길 한가운데
동십자각만 남게 되었으며 현재는 社稷路와 三淸路가 만나는 길 가운데 위치하고 있다.
경복궁 서남쪽에는 西十字閣이 있었으나 日帝 때 철거되었다.

(31) 광화문 시민 열린 마당
세종로의 六曹 및 京畿道廳舍 터에 조성한 공원으로 1999년 1월 개장하였으며
총면적 8,948㎡로 열린 마당, 육조 마당, 휴게마당으로 구성되었다.

(32) 광화문 시민 열린 마당

(33) 광화문 시민 열린 마당의 六曹마당
좌우에는 六曹(吏·戶·禮·兵·刑·工)를 상징하는 構造壁을 설치하였으며 벽체 일부에
六曹 거리 및 議政府의 來歷을 기록하였다.

(34) 景福宮 光化門 앞에서 본 世宗路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大韓民國歷史博物館이며 오른쪽에는 世宗文化會館이 보인다.

(35) 빛과 소리의 고향, 漢城情報總局 터
光化門, ‘모든 빛은 이 문을 통해 들어오고 또 나간다’고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이 광화문 거리에 電氣通信發信地인 ‘漢城情報總局’이 자리했던 곳으로
司譯院 건물을 인수, 1885년 9월28일 문을 열고 濟物浦에 첫 電信을 띄웠다.

(36) 片雲 趙炳華(1921~2003)의 詩碑

(37) <빛과 소리의 고향> -조병화-

(38) 世宗文化會館
1972년 서울시민회관이 燒失된 뒤 서울시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1974년 착공하여 1978년에 준공, 개관하였다.

(39) <文化藝術의 殿堂> 朴正熙 大統領 揮毫

(40) 彫刻作品 <詩가 흐르는 서울>, 회관 뒤쪽 ‘世宗 藝術의 庭園’에 있다.

(41) 세종 체임버 홀(Chamber Hall)

(42) 光化門廣場에서 ‘조용하고 외롭게 외치고 있는 젊은이’
- (5-3)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