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따라잡기] 작품 번호
'Op' 'K' 'D'… 클래식 음악에 붙이는 '주민등록번호'래요
작품 번호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4.11.04. 00:30 조선일보
지난 9월 모차르트(1756~1791)의 미발표 작품이 작곡가 사후 233년 만에 공개됐지요. 모차르트가 10대 초반인 1760년대 중후반에 작곡한 것으로 보이는 12분 길이의 현악 3중주 작품이에요. 7개의 짧은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악보는 모차르트 전문 연구 기관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의 모차르테움 재단이 작곡가의 작품 목록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찾아냈습니다.
1770년 이탈리아를 여행하던 14세 무렵의 모차르트 초상화. 최근 발견된 현악 3중주는 이 시기에 모차르트가 작곡한 곡으로 추정됩니다. /위키피디아
지난달에는 미국 뉴욕 박물관에서 폴란드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쇼팽(1810~1849)이 20대 초반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왈츠의 악보도 발견됐습니다.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 곡을 연주한 영상도 화제를 모았죠. 작곡가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 발견된 미발표곡들은 과연 어떤 절차를 거쳐서 공식 작품으로 ‘인증’을 받게 되는 걸까요.
필적과 악보 재질, 편지까지 검증하죠
라파엘로나 다빈치 같은 화가들의 그림으로 추정되는 작품이 발견되면 미술계에서 진위를 둘러싸고 치열한 검증 작업과 논쟁이 벌어집니다. 결과에 따라서 그야말로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기 때문이지요. 악보는 그림만큼 가격이 오르지는 않지만, 모차르트나 쇼팽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악보가 발견되면 음악계에서도 비슷한 검증 과정을 밟게 됩니다.
지난 9월 모차르트 사후 233년 만에 공개된 현악 3중주는 최근 음반으로 녹음했어요. 7개 짧은 악장으로 구성된 12분 길이 작품이에요. /도이치그라모폰
작곡가의 필적과 악보의 재질을 따지는 건 기본이고, 작곡가의 편지나 전기 같은 기존 사료에 작품이 언급되어 있는지 살피는 교차 검증도 필수적입니다. 최근 발견된 모차르트의 현악 3중주 악보 역시 이런 절차를 거쳐서 모차르트의 친필이 아니라 1780년대에 작성된 사본으로 추정된다고 연구진이 발표했지요. 쇼팽의 왈츠 역시 악보의 재질과 작곡가의 필적, 작곡 양식 등에 대한 검증을 거쳐서 1830~1835년에 작곡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뉴욕 박물관측은 밝혔습니다.
이런 미발표곡들은 작곡가의 작품 번호를 받을 때 ‘최종 공인’을 받게 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주민등록번호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이치입니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작곡가들의 작품 번호는 라틴어로 ‘작품’을 뜻하는 ‘오푸스(Opus)’ 숫자입니다. 약자(略字)로 ‘Op.’라고 표기하지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은 ‘Op. 67′, 교향곡 6번 ‘전원’은 ‘Op. 68′, 교향곡 9번 ‘합창’은 ‘Op. 125′로 적는 방식입니다.
작품 번호로 작곡 시기 가늠할 수 있어
작품 번호와 작곡 순서가 그대로 일치하는 건 아닙니다. 작곡가마다 기악곡에는 작품 번호를 붙이지만 성악곡에는 빼놓기도 하고, 활동 초기에는 꼬박꼬박 번호를 붙이다가 나중에는 안 붙이기도 하지요. 또한 작품 출판을 미루거나 깜빡 잊는 경우도 생기고, 반대로 이미 발표한 작품을 폐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베토벤의 경우에는 작품 번호 없는 작품들(WoO)을 별도로 모아놓기도 했습니다. ‘WoO’는 ‘작품번호가 없는 작품’이라는 뜻의 독일어 약자죠. 공식 작품 번호가 없는 베토벤의 곡 가운데 가장 유명한 피아노 소품이 바로 ‘엘리제를 위하여(WoO 59)’입니다.
작품 번호를 정리하면 작곡 시기를 쉽게 가늠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례로 작품 번호가 붙어 있는 베토벤의 ‘운명’(Op. 67)과 ‘전원’(Op. 68)은 비슷한 시기에 작곡한 중기 걸작으로 1808년 12월 22일 같은 날 나란히 초연됐지요. 마찬가지로 ‘합창’(Op.125)은 1824년 베토벤의 후기작이라는 걸 작품 번호만으로도 유추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작곡가 스스로 작품 번호를 붙이지 않아서 사후에 후대 학자들이 정리한 경우입니다. 우선 바흐와 헨델 같은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은 대체로 ‘바흐 작품 번호(BWV)’나 ‘헨델 작품 번호(HWV)’처럼 딱딱하고 재미없는 약칭이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작품 번호(Werke Verzeichnis)라는 독일어의 머리글자를 딴 이름입니다.
‘음악의 아버지’답게 바흐는 1000여 곡의 방대한 작품을 남겼는데, 작곡 순서가 아니라 장르별로 작품을 분류한 것이 특징입니다. 종교음악인 칸타타가 바흐 작품 번호(BWV) 1~224번이고, 건반 음악은 BWV 772~994번, 관현악곡은 BWV 1041~1071번으로 분류하는 방식이지요. 헨델의 작품 번호 역시 장르별로 나눈 건 같습니다.
음악학자 이름 따 작품 번호 붙이기도
다음으로는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뒤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음악학자의 이름을 따는 경우입니다. 모차르트가 대표적인 경우인데 모차르트의 작품 번호 앞에는 ‘K’라는 약자가 붙습니다. 모차르트 사후에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음악학자 루트비히 리터 폰 쾨헬(1800~1877)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그래서 ‘쾨헬 넘버’라고도 부릅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음악학자 루트비히 리터 폰 쾨헬. 모차르트의 작품 번호는 그의 이름을 따서 '쾨헬(K) 넘버'로 불려요. /위키피디아
쾨헬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모차르트 작품 목록을 끊임없이 정리해서 지금까지 9차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최근 발견된 현악 3중주 역시 ‘무척 짧은 소야곡(小夜曲)’이라는 별명과 함께 ‘K.648′이라는 작품 번호를 새롭게 부여받았습니다. 모차르트의 작품으로 비로소 공인받았다는 뜻이지요. 반면 쇼팽의 짧은 왈츠는 아직 작품 번호를 받지는 않았습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발견된, 쇼팽이 작곡한 것으로 추정되는 왈츠의 악보. 중국 피아니스트 랑랑이 이 곡을 연주한 영상도 화제가 됐어요. /뉴욕 모건 도서관 박물관
쾨헬처럼 대가들의 작품을 성실하게 정리한 것만으로도 이름을 남긴 음악학자들은 적지 않습니다. ‘가곡의 왕’ 슈베르트(1797~1828)도 사후에 작품을 정리한 음악학자 오토 에리히 도이치(1883~1967)의 이름을 따서 작품 번호 앞에 ‘D’라는 약칭을 붙입니다. ‘교향곡의 아버지’ 하이든(1732~1809)의 작품 번호 앞에도 네덜란드 음악학자 안토니 판 호보컨(1887~1983)의 이름을 따서 ‘호보컨(Hob)’이라는 약칭을 붙이지요.
네덜란드의 부유한 사업가 집안 출신인 호보컨은 공학에서 음악으로 전공을 바꿨어요. 그 뒤 바흐부터 브람스까지 작곡가들의 악보들을 5000여 종이나 수집했는데, 그 가운데 하이든의 교향곡과 실내악, 피아노 소나타 등이 1000여 종에 이르렀지요. 결국 호보컨은 자신의 자료를 정리할 개인 사서를 고용했는데 그 사서가 바로 슈베르트의 작품을 정리한 도이치였습니다.
김성현 문화전문기자 편집국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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