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지속가능한 고향 마을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창고 스크랩 [전설이 된 깡다구] 김영삼의 하나회 숙청 사건
wiki 추천 0 조회 35 16.05.07 13:0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http://todayhumor.com/?humorbest_926806



하나회 숙청.

어릴 때 들은 말.


'김영삼 아니면 하나회 숙청은 불가능했다.'


취임 불과 9일만인 1993년 3월 6일.

이 순간까지 군 수뇌부는 물론

청와대 비서진들까지도 김영삼의 의도를

모르고 있었다네요.


불시기습은 현대전의 기본이야.


1993년 3월 4일 육군사관학교 졸업식 대통령 연설.

(중략)

임무에 충실한 군인이 조국으로부터 받는 찬사는 그 어떤 훈장보다도 값진 것입니다. 

그러나 올바른 길을 걸어온 대다수 군인에게 당연히 돌아가야 할 영예가 상처를 입었던 불행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나는 이 잘못된 것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실추된!!! 군!!!과 육군!!!의 명예를 바로잡고,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국군의 명예와 영광을 되찾는 일에 앞장설 것을 여러분에게 다짐합니다.

 

→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실추된, 군, 육군의 표현에서 강한 어조로 연설을 했는데 이 연설을 통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생각해오던 하나회를 반드시 숙청시키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은 물론, 

하나회 숙청의 뜻을 에둘러서 분명하게 표현했다.

 

1993년 3월 5일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출신이던 육군기무사령부 서완수 기무사령관(하나회, 육사, 중장)에게 지휘계통 무시하지 말고, 

대통령하고 독대하지 말고, 참모총장을 통해서 보고하라고 이야기했다.

 

1993년 3월 8일.

 

대한민국의 제14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문민정부답게 군내 사조직을 숙청하고자 후보시절부터 굳게 다짐하고 있었다.

 

특히나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의 최대 치적인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는 정말 김영삼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고, 

김영삼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한 정책들이었다. 특히, 하나회를 숙청하기까지의 과정은 정말로 김영삼답다고 할까.

 

그러던 찰나, 김영삼 대통령은 당시 권영해 국방부 장관(육사출신, 예비역 소장)에게 

"국방장관께서 정확히 1993년 3월 8일 오전 7시 30분까지 청와대에 들어오도록 하세요."라며 호출한다. 


국방부 장관 권영해를 독대한 상황.


갑자기 부르니, 겁나네요.


김영삼 : 군인들은 그만둘 때 사표를 제출합니까?

권영해 : 사표없어도 명령에 복종합니다.

김영삼 : 아. 그래요. 그럼 됐구만? 내가 육참총장과 기무사령관을 오늘 바꾸겠습니다.

권영해 국방장관 : !!!(놀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함.)  

김영삼 대통령 : 이제 군도 정리해야 하고 이참에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부터 새로 인사를 할 생각입니다. 

그리 아시고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에게 지금 당장 예편 준비를 하라고 하세요. 

새로운 육군참모총장과 기무사령관은 오늘 바로 보임이 될 겁니다. 취임식도 준비하라고 하시구요.

 


하나회 출신 육군참모총장이었던 김진영과 기무사령관이었던 서완수를 군 통수권자 권한으로 전격 전역조치시켰다. 
그렇게 공석이 된 자리에는 非하나회 출신인 김동진 연합사 부사령관(육사 17기)과 김도윤 기무사 참모장을 
각각 육군총장과 기무사령관에 임명시키고, 그날 바로 취임식을 열고, 보임시켰다. 
여기까지 과정이 단 3시간.

 

여기에 이르러서도 이 일이 군 수뇌부 교체 정도가 하나회 숙청 과정 중 하나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김영삼 자신과 몇몇 측근에 불과했다. 

한 가지 웃긴 점은 김영삼 대통령의 명령을 하달받고 시행할 것을 공지한 사람이 바로 김영삼에 의해 잘리는 김진영 육군참모총장이었다. 

이 공지를 요약하자면 군 내 사조직을 해체하라였는데 김진영의 출신이 출신이다 보니 이를 들은 하나회 구성원들은 

그 대상을 하나회가 아닌 학군장교 즉 ROTC 그룹으로 여겼다.


너 숙청.


이때부터 하나회 숙청이 시작됩니다.

이게 무서운 게 불과 12.12 군사반란이

불과 13년전에 있었고, 바로 전대통령이

하나회 신군부의 노태우였죠.


우리 물로 보면 알지?


심지어 3당 합당 후 자신의 지지기반인

민자당조차 신군부 인사들이 꽤 많은

그런 상황이었죠.


3당 합당 결사반대!


보통 사람이라면 이 상황에서 겁나죠.

아닌 말로 서울 근교 신군부 지휘관들이

병력 동원해서 제2의 12.12라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거든요.


이거 한번 더 안한단 보장없죠.



1993년 4월 2일 김영삼 대통령, 별이란 별들은 모조리 떨어뜨리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출신이던 안병호 수방사령관(육사 20기)과 김형선 특전사령관(육사 19기)을 전역시킨 후 교체했다.

 

1993년 4월 8일에는 여기에 하나회 출신들이 득세하던 1군사령관, 3군사령관, 2작사령관까지 모조리 전역조치시키고, 

곧바로 非 하나회 출신의 후임자들을 보임시켰다. 

이런 교체 의도를 권영해 국방부 장관이 알게 된 건 겨우 발표 하루 전이었을 정도로 

이러한 진행은 김영삼과 측근들에 의해 극비리에 진행되었다.

 

또 바로 며칠 후인 4월 15일에는 하나회 출신 군단장, 사단장들 인사까지 벌여서 하나회 출신 장군들을 강제로 전역조치 시키며 몰아냈다. 

4월 동안 벌인 기습적인 세 번의 교체로 군 주요 보직에서 하나회 인사들은 순식간에 싹 다 밀려났다.

 

이런 일이 이어지는 중에 당시 백승도(육사 31기, 당시 교육사 근무. 2004년 준장 예편) 대령이 하나회 명단을 

군인 아파트를 비롯한 곳곳에 뿌리는 일을 벌였고, 이것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하나회의 깊은 뿌리가 제대로 알려지기도 했다. 

장성급까지의 하나회 구성원들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었고 그래서 그들을 대상으로 숙청이 진행되었는데, 

이 하나회 명단 살포와 그 후 명단 확인 소동 등이 일어나면서 하나회 소속 영관급 장교들까지 전부 드러나게 되었고, 

이후 이들 하나회 출신 영관급 장교들은 이전과 반대로 하나회 출신이라는 이유로 진급에서 지속적으로 불이익을 받으며 

차례차례 밀려나게 되었다.

 

전단지 내용은 이랬다.

"정치군인 몰아내자! 하나회가 왠말인가! 문민정부 시대에 아직도 지난날의 정치군인이 고위직을 점하고 있는가? 

군이 진정 새롭게 태어나려면은 순수한 야전군 지휘관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 하나회를 몰아내자!"

 


이후 1993년 7월 9일

그러한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있던 하나회 소속 이충석 함참작전국장(계급은 소장)이 합참 간부 회식석상에서 하나회에 대한 

제거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품고, 대통령이 군을 함부로 대한다며 술기운을 빈 끝에 술병을 집어던지는 등 난동을 부렸다.

 이 소식을 접해들은 김영삼 대통령은 대노했고, 김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이충석 소장은 다음날 가차없이 보직해임 되었고, 

여기에 김영삼 대통령과 주요 지도부는 아예 하나회에 대해 이전의 득세를 모조리 다 없던 것으로 할 만큼의 대대적 탄압을 하기로 한다. 

이후 하나회 출신의 주요 장성들은 진급에서 멀어진 것도 모자라 아예 강제 전역까지 당하는 2차 숙청을 당했으며 

그렇게 하나회 출신 장군들은 군을 완전히 떠나게 되었다. 

또한, 전군에서 하나회 출신 영관, 위관급 장교들을 색출하라는 지시를 내려 하나회 출신 들은 대부분 예편조치, 좌천된다.

 

그 뒤 하나회 출신은 계급을 막론하고 하나회 출신 이라는 이유로 진급과 직위에서 계속 배격당했고, 

그렇게 하나회는 이전의 권력을 완전히 잃고 폭삭 망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김영삼 대통령은 속전속결과 철통보안이라는 전략을 통해서 군의 명예를 더럽히고, 실추시켰던 하나회를 모조리 숙청시켰다. 

하나회의 머리와 심장을 쳐버리는 전략으로 나머지 팔다리가 비틀거리다가 쓰러진 격이었다. 

순식간에 일을 처리하면서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김영삼 대통령만이 할 수 있었던 하나회 숙청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이었기에 가능했다.

 

육군참모총장, 1군사령관, 2작사령관, 3군사령관, 기무사령관, 특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이 줄줄이 전역하면서 건군이래 최초로 


"공군" 출신 장성이 합참의장을 거치고, 국방부장관까지 오르는 기이한 일이 탄생했다. 

즉, 김영삼 대통령이 공군 출신 국방부장관을 만들고 싶어서 된 게 아니라 육군 하나회 출신 장성들을 모조리 전역시켜 버리다 보니 

올릴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국방부의 인사기준에 부합하고 이들 중 가장 서열이 높았던 이양호 前 공군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을 거치고, 국방부장관에까지 오르게 된다. 




(사진설명 - 왼쪽이 참여정부 노무현 대통령 시절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해군" 출신의 윤광웅 국방부장관,

오른쪽이 문민정부 김영삼 대통령 시절 합참의장과 국방부장관을 지냈던 "공군" 출신의 이양호 국방부장관)

 

그러나, 공군 출신이던 이양호 국방부장관과 이후 참여정부 시절 해군 출신이던 윤광웅 국방부장관은 

육군 출신 장성들한테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이런 식이다. 

전투기나 몰던 놈이 혹은 배나 타던 놈이 뭘 알겠냐는 식이다. 

이 둘은 육군 출신들의 공격을 버티지 못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잘렸다. (흠좀무)

 

금융실명제도 속전속결과 철통보안의 전략으로 실시하면서 검은 돈들이 다 끄집어내졌다.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는 김영삼 대통령을 대표하는 치적이었던 것이다.  

 

하나회 숙청을 통해서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가 있었다. 

다시는 하나회 같은 군을 더럽히는 군 내 사조직이 나오질 않길 바라며... 


----------------------------------------------


김영삼 대통령에 엄격한 분들은 이를 '무념무상이기 때문에(라고 쓰고 아무 생각이 없기 때문에 라고 읽는다) 가능했다.'고 하는데요. 

쿠데타 전적이 있는 군부 실세들 쳐내는 건 '무념무상' 과는 거리가 먼 '용기' 가 필요한 거죠. 

이후 하나회 숙청 과정에서 실제 쿠데타설이 돌기도 했다고 하네요.


하나회 군 수뇌부를 제거 과정에서는 국방장관을 비롯한 군 지도부가 쿠데타를 대비해 보름간 밤샘을 했습니다.


-----------------------------------------------


"하나회 숙청이 있잖아요, 제가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게 사실인줄은 모르겠는데 들은 얘기로... 

군에서 인사안을 가지고 왔대요. 대통령한테 보고를, 비서실장이.. 대통령이 보니까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군 인사는 대통령 권한이므로). 

'이거 누가 짜온거야' 했더니 '아, 군에서 짜온겁니다' 

'군에서 왜 이렇게 짜왔어?' '아 지금까지 군에서 관례화되어있어서..' 

딱 비서실장에게, "어이, 국군 통수권자가 누꼬?" "가.. 각하십니다." "뭐 이런 게 다 있어!" 

그날 밤에 별이 오십 개 이상 날아갔다는 거 아니에요"


- 유시민


-----------------------------------------------


--------------------------


짝퉁으로는 축구계에 열하나회라고 있습니다.....;





그도 한때는 정말로 멋진 대통령이었다(유시민)
그리고는 부활했다..~~.. 국회의장을 필두로.
하나회제거와 금융실명제 실행이 김영삼의
치적인건 확실함. 3당합당이라는 배신자
이미지를 벗기위해 취임초기에는 과감한
결단을 많이 한듯.
뒤로갈수록 병신테크를 탄게 아쉬움.
새빨간당 대장이 존경한다던 땡삼!
우리나라에서 군사 쿠데타의 싹을 잘라버린 것만해도 김영삼의 공이 결코 작지 않죠.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는 정상적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잘한거고
김영삼 얘기할 때 3당합당, IMF구제금융은 과이지만 저런 공도 있었다 이정도로만 회자되는것도 충분히 재평가 되는건데

김무성발언 이후로 재평가 얘기만 나오면 일부 사람들이 거품물고 달라듬
하나회 숙청
금융실명제
는 정말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총독부파괴도 잘한일중 하나

그래도 3당합당만 생각하면 아직도 이가갈림. 또 신한국당은 임기말 김영삼을 버리기도했죠. 막말로 김영삼이 3당합당 안해줬으면 노태우 이후로 집권도 어려웠을것들이 IMF때문에 집권 어려워지니까 이회창이 깨고나가서 한나라당 창당.
글 쓰신 분

맨 밑쪽의 /해체과정/에서 '광주폭동진압'이라고 써있네요.
1 / 헉.... 그래요? 언능 수정할께요.. ㅜ.ㅡ
11 병뚜껑 / 큰 실수 할뻔 했네요...  지적 감사합니다...
김대중 曰 : 김영삼 씨는 대단히 어려운 일을 아주 쉽게 생각한다.

김영삼 曰 : 김대중 씨는 아주 쉬운 문제를 대단히 어렵게 생각한다.

두사람의 스타일을 단적으로 비교 한 말이지요...
'직관의 달인' 김영삼 전 대통령........이라고 김용민은 평가했네요..

http://newstice.tistory.com/692
조사과정에서 일베쪽 자료도 있었나봐요. 지금은 수정되었지만 광주ㅍㄷ 이라고 적힌 거 저도 봤습니다. 출처가 어디입니까?
그래도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죠 어떻게 보면.

지리멸렬한 군대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에서, 진짜 민주화운동가가 대통령이 된 문민정부의 시작이었으니.
자신 있었을 껍니다. 내가 암살당하더라도 국민들이 다시금 민주화를 스스로 쟁취하리라라는 믿음.
금융실명제 역시 우리가 지금은 사회구조를 갑을갑을 이러지만, 사실 경제라는 게 갑을병정 이렇게 봐야 돼는 것도 맞구요.
할꺼면 갑을병정 제대로 다 떳떳하게 하는 게 맞죠.
조선총독부 역시 국민들이 아직도 일본 군부세력에 대한 앙금이 확실하게 남아있던 시절이니...시원하게 국민의 뜻을 이뤄주고, 지지율 올려주고.
또 탈권위적인 이미지를 가진 대통령의 시초이기도 했으니까요.

대통령도 국민 사랑을 받아야, 국민 지지를 받아야 빛나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이걸 김대중-노무현이 했다면 백퍼 군사반란 일어났을듯
김무성이  김영삼 재평가 한다니깐
이런게 베스트로 아오. ..

하나회건 나발이건 지금 친일독재
정당 새누리당을 만든 3당합당
주역이 김영삼 아닌가

그리고 김영삼 이름만 들어도 심하게는
욕하는 사람 많다

imf세대들이 김영삼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그 시절을 어떻게 보냈는데

자기 근거지 부산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게 김영삼이다

당장 역대 대통령 호감도 조사 해봐라
명박이 전두환 보다 떨어진 순위

민주화 세력을 군부독재 세력에게
고스란히 내주고 지금의 새누리당을
만든 원흉이 바로 김영삼 3당 합당

보수쪽 제대로된 민주정당 없는이유다

이명박이 이승만 재평가 한다며
뻘짓 하던거 시즌2  인가
저것 말고 잘한 것 다른 일화로는
조선 총독부 건물 철거라고 생각되요.
좋은 대통령도 준수한 대통령도 아니였지만
잘한 것은 잘했다 말하고 싶네요
저 조직이 아직 남아있었으면 쿠테타는 몇 번 더 일어났을걸요.
완전하진 않지만 금융실명제와 함께 제일 잘한 일...  YS니까 가능했던 일이 아닐까 싶음.. 만일 같은 일이라도 DJ가 했으면 분명히 빨갱이 소리 나오고 역풍 엄청 받았을거임..
첫줄만 보면 김영삼이 무슨 대단한 전략가 같은데 전혀 아닙니다
김영삼이 무슨 깊은 생각으로 불시기습을 한게 아니라
그냥 일단 저지르고 보는 성격이라서 우연히 해치운거에요
다른 사건들 보면 패턴이 똑같아요
금융실명제-당일 발표 전까지도 아무도 몰랐음 발표하고 나서야 참모진 보고 한단 소리가 '느그들 놀랐제?'
조선 총독부 폭파-이거 박물관으로 쓰고 있었는데 안에 유물들 보존처리 대책같은것도 없이 그냥 밖으로 빼내고 일단 폭파-_-
김영사미는 그냥 저지르는 겁니다
꼼꼼하게 계획 짜고 대책 마련하고 경우의 수 계산하고 이런게 없어요
운 좋게 성공하면 이렇게 칭찬 듣는거고
실패하면 IMF 같은 역풍을 국민들한테 씌우게 되는거죠
하나회 숙청도 만에하나 일이 잘못되서 군사반란 일어났으면 국민들은 또 다시 긴 암흑기를 맞이했겠죠
결코 칭찬할만한 리더의 모습이 아닙니다
진정한 무념무상은 이분이죠

안철수 "군 인사권, 국방부와 군에 환원하겠다"

http://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93012
우리부대에 나이 가장많은 대령이 하나회 출신이라 진급도 못하고 계속 대령 친구들은 죄다  소장, 중장
가끔 중장이 와도 말까고 이갸기함  자신은 하나회라 승승장구 할줄알았는데 친구랑 신세가 바뀔줄은 생각도 못했겟죠
그래서 그런가 매일 일은 안하고 시간만 때우는듯
일본이 조선총독부 가져가 복원하고 싶다고 하니까 폭파기법으로 부셔버린거 너무 속시원했음...ㅋㅋㅋㅋㅋㅋ
개인적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존경하지만, 김대중 대통령이었으면 YS처럼 저렇게 한방에 하나회를 못날렸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YS는 대단한 쾌남이었죠.

비록 3당 합당이라는 씻을 수 없는 정치적 죄업을 남겼지만(...)
숨쇼다

/ 김영삼의 여러 단점을 이제 보완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봐요.

김영삼의 탈권위적 이미지와 민주투사 + 김영삼의 세계화시대~가 무데뽀였다면, 비교해서 신자유주의적에서의 단점을 알고는 있었던 좀 더 좋은 식견 + 삼당합당(패거리정치)에서, 삼김시대(지역분열)에서 고착화된 정치에 숨막힌 정치인들의 합심과 국민 염원으로 "열린우리당" 이라는 것의 창당 + 또 직관이 아닌 변호사 출신으로서 확실한 사법질서와 원칙론으로 말입니다. (보너스로 충청도민들에겐 세종시로 경제표심을 이끌어내고)

진짜 김영삼의 저런 단점들을 좆나게 싫어하는 국민이었으면 노무현 찍었어야죠. 노무현 지지했었어야죠.
그리고 국민들은 투표했어요. 아직 남아있던 삼당합당의 잔재격 언론인들과 법조인들이 노무현을 압박했고, 바보 만들었구요.
그러나 국민들은 어쩌면 투표는 했을 지언정, 꾸준하게 관심을 갖지는 않았다 내지 저런 언론인들과 법조인들의 압박에
국민들이 좀 노무현의 진가를 제대로 못 봤다~ 라고 봐도 됩니다. 많이들 말하잖아요? 지키지 못해서 미안하다고.

더불어 IMF 외환위기라는 어마어마한 스케일의 경제위기는
김영삼 대통령이라는 일개 인간 따위로 벌어지는 일이 아니죠.
그걸 계속 김영삼 탓이나 김영삼 탓이네 라고"만"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이상한 거에요.
역설적으로 김영삼이야말로 독재가 아닌(이전 대통령들처럼 지 말 하나에 무게 엄청나게 싣는) 그런 대통령이 아닌데,
마치 IMF 위기초래만큼은 독재자처럼 생각을 하는 사람들, 이런 분들은 자기 생각을 고칠 필요가 있지요.
03이의 개병크 3당합당, imf가 우리나라에 엄청난 악재였다면

금융실명제나 하나회 숙청은 엄청난 업적 중 하나라고 할만 합니다.

그래도 전자의 과오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축구판에 열하나회는 왜 하필 국가반란세력인 하나회의 이름을 땄을까? 그게 부러웠나 아님 그 자들을 지지하나?
하나회 숙청과 금융실명제... 물론 엄청난 리스크는 나라의 수장이 준비 없이 하면 안될 일이지만 성공했기에 과감했다고 평가해줘도 아깝지는 않다고 봅니다.
본인 스스로도 대통령 자리가 흔들릴정도로 위험한 일인데 이를 짊어지고 해냈다는 것은 칭찬 받아도 좋지요.
그저 IMF 헬게이트 오픈이 너무 충격이었을 뿐.
당파가 어떻고 정치성향이 어떻고를 떠나서 잘한 것과 잘못한 것을 구분할 줄 아는 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뭐라 해도 김영삼, 김대중은  지들끼리 싸우다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만든 원죄에서 벗어날 수 없음...
노태우 대통령 만들고 지역감정 키운데 대한 책임은 김대중이 훨씬 크지만,
3당 야합으로 김영삼이 역전해버림...그러다 IMF로 쐐기를 박았지..

그나저나 김영삼의 업적이 될지 과오라 할지 모르는 일 하나 있잖어..
노무현을 정치계에 입문 시킨게 김영삼임....
그리고 이명박을 정치계에 입문 시킨 사람도 김영삼임...

이땅의 마지막 보수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이 말기에 욕 좀 먹었지 정치인으로 보자면 대한민국 역사중 전설적인 존재가 될만합니다.
인재등용에 있어서 김영삼을 따를 사람은 없었죠..노무현, 이인제, 이재오, 김문수...그 당시에는 최고의 인재들이였는데..
대통령 함 해먹을라고 크게 변심해서 그렇지 그래도 나름 정의는 있었다고 봤죠.
물론 잘한짓 못한짓 따지면 뭔 업적이 있어도 나라를 무너뜨릴뻔한 imf덕에 결코 잘한인간은 못됨.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