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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면 동대구 역에서 첫 기차를 타게된다. 오늘은 천안-아산역으로
기차 역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몇가지 사서 배낭에 넣고
끝없이 늘어선 택시중 맨 앞에 서 있는 택시 창문에 노크를 한뒤 대구에서 왔는데 타도 되냐고 하니
타라고 하신다.
금북정맥 봉수산으로 가야하니 충남 아산시 송악면 송학리 길상사로 가자고 하니 요즘 하루 4만원 벌기도 힘든데
나름 조금 멀리 가니 좋아 하신듯하다
그도 그럴것이 이곳 역에서 두시간 동안 기다려 나름대로 장거리를 가니 좋아라 할 수 밖에
택시비 3만 5천원 정도 나와지만 기분좋게 4만원 드린다
길상사 앞에 내려 잠시 길상사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전에 오늘 강행길도 무탈하게 진행할 수 있게 기도 드리고
날짜: 3월 13일
길상사에서 오르면 금북정맥 봉수산까지 40분 이내로 도착한다
임도길이 이어지다가 벌목한곳으로 곧장 올라가면 정맥길의 탑골 고개다
벌목한 곳으로 오르면서 본 동쪽의 광덕산이 우람하게 보이고
보이는곳은 금북정맥 마루금이며 공주시 유구읍 문금리 마을쯤 일듯하다.각흘고개도 산중턱 어디엔가 있을듯한데
사진에서 보이는곳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충남 아산땅으로 흐르는 물이니 현충사 인근에 자리하는 은행나무가 줄지어 서 있는 그곳 앞으로 지나는 곡교천이다.
잠시 가던 걸음 멈추고 아침 일출 삼매에 빠져드니 어디선가 고라니 한마리가 아침 운동하듯 뛰어 다니는데
또다른 녀석이 그뒤를 따르고 바람마져 내앞에 멈춰서는 듯하다
.
탑골 고개에 도착하니 봉수산 정상을 알리는 이정표가 먼저 반기니
평일이라 산객은 없고 잠시 쉬었으니 봉수산으로 올라가 볼까나
유구천은 이곳 정상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니 무작정 내려가야 하지만
정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봉수산이 뒷편에 있으니 그곳에 먼저 가봐야 할것 같다
봉수산 정상 멀리 광덕산이 가까이 보인다
정상석 뒤로 흐르는 물은 모두 곡교천이 되었다가 우리나라 10대 평야가 자리하는 예당평야 아래로 흘러 예산과 당진의 삽교천이 된다.
봉수산 정상에서 본 나무가지 사이로 예산군 대산면 들녁이 보인다.
나뭇 가지만 없으면 예당 저수지가 보일텐데
내일 백월산에서 발원하는 무한천을 걸어야 하는니 저곳 어디쯤에서 보면 이곳 금북정맥 마루금이나 봉수산이 보일듯하다.
봉수산에도 다녀 왔으니 이제 계곡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지난 겨울 바람에 낙엽은 모두 계곡에 쌓여있다.
금북정맥길을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 흐르는 물은 금강으로 우측으로 흐르는 물은 모두 무한천이 되었다가 예당 평야를 지나 삽교천이 되어 서해로 흘러든다
지나간 경로
강행길 94번째 누적거리 7,572km
이틀간 걸어야 하니 오늘 강행길은 가급적이면 천천히 걷는다.
내려온 계곡
낙엽과 푸석한 바위가 많이 있어 조심스럽게 아래로 진행한다
어느 정도 내려 왔지만 아직 이렇다 할 첫 물이 보이지 않고
물은 대부분 이런 너덜 지대속으로 흐르게 마련인데 물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좀 더 내려가보면
정상에서 100미터 정도 내려와 물이 보이는 군요
이 물이 흘러흘러 유구땅을 지나 백제 마지막을 지켜본 공주시 공산성 근처로 흐른다
물은 일순간 없어지고
마른 낙옆만 무성한 계곡길이 다시 이어지고
처음 만나게 되는 비와야 폭포
비가오면 폭포가 되는 폭포
요즘 같은 건기에는 물이 있을리 만무하고
두 계곡이 만나는 곳에서 물은 땅속으로부터 흘러나와 물같은 물이 되어
공주시 유구읍을 지나 신풍면, 사곡면, 우성땅을 지나 평목리에서 금강품에 안긴다.
공주시 유구읍 탑곡리 유구천 최상류의 민가가 있는곳으로
우측으로 금북 정맥길이며 천방산이 바로 앞이다.
내려온 봉수산
앞은 유구천 최상류의 민가
천방산을 배경으로
탑곡리 마을에 들어서니 유구천 발원지라는 안내판이 서 있다
느티나무 아래에 자리하는 샘터지만 사용 안한지 오래되어 물은 먹지 못할듯한데
가만보니 작은 애벌래가 꿈틀 거리는 모습이 보인다
유구천 발원지 샘터에서 본 봉수산과 내려온곳
지나온 탑곡리 마을
물은 실개천따라 아주 깨끗하게 흐른다
탑곡마을에 축사가 있지만 담벼락 아래로 축사 분뇨는 흘러 내리지 않고
소똥향이 바람에 실려 오니 구수하다고 해야 하나
탑곡마을 아래로
천방산과 부엉산에서 흘러온 물이 봉수산에서 흘러온 물과 만나
댕댕이가 어디로 이사를 가려나
자가용에 쓸만한 살림살이 가득실고 어디로 집떠날 채비를 마친 상태다
올여름 삼복 더워 이겨내려면 지금이라도 도망 가는게 만수 무강하는걸 아는모양이다
지나온 강행길과 멀리 조그마한 산은 지나온 봉수산
삼복 더위가 싫어 도망가려는 댕댕이집 앞 임도길따라 들어오면 물한번 건너 사계절 오토 켐핑장이 나타난다. 뭐 특별하게 볼것도 없는데 텐트가 많이 쳐있고 사람들이 자는지 살림 도구만 텐트앞에 널려있다.
이제 좋은길이 이어지나 이런길은 자가용 때문에 별로다 지나가는 자가용들은 대부분 속도를 내서 달리지만 대형 트럭들은 속도를 많이 줄여준다.
아직 이렇다 할 경치는 나타나지 않고 갈대만 무성한 천변을 지난다. 지도를 보니 인근 추계리 마을에 고간원지라는 기와집이 보여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겨
고려 의종때 문극렴의 묘 남평문씨 고려때 중국으로부터 목화씨를 가지고 온 문익점은 문극렴의 후손이라고 한다. 묘는 금계산 아래 있으며 거북이가 알을 낳고서 산을 내려와 앞의 유구천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라 하는 명당터다.
고간원이라는 이름은 잘못된 왕의 정치에 대하여 직간하였던 문극렴의 충의를 "백이 숙제"의 고마이간에 빗대여 붙인 이름이다. 고려때 문극렴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 의종에게 "제발 정신 차리고 백성을 돌보라"며 직간을 하자 의종이 괴심하다며 좌천시켜 고향으로 돌아가던중 유구역을 지나며 자신의 마음을 담은 시 한수를 썻다고 하는데. "주운(한나라때 충신)이 난간 분지름은 명예 구함이 아니었고 원앙이 수레 막음은 어찌 자신을 위해서랴 한 조각 붉은 정성 임금이 몰라주니 여윈말 채찍하여 머뭇거리며 물러 왔네" 라는 시를 남겼다.
중국의 역사는 기원전 하(夏)나라(2070년-1600년전)부터 시작해-근대까지 이어진다. 그 역사속에 가장 살기 좋았던 하나라의 요와 순임금 시설이 있었던 반면 가장 나쁜 폭군이 존재 하기도 했다. 물론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나라를 망친 폭군이겠다. 기원전 역사속의 하나라 말(末) 걸왕과 말희라는 여인이 있었기에 하나라는 탕왕에게 자리를 물러주고, 400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된다. 그 다음 나라였던 상나라(은나라)는 탕왕에 의해 세워져 550년간 이어지다가 은왕조 마지막 주왕때 제후국이 었던 주나라의 무왕에게 멸망한다 우리가 잘알고 있는 강태공이 주나라의 문왕(文王)을 도우고 그의 아들이었던 단(무왕 武王))에게 나라를 물러주게 되어 무왕이 주왕을 죽이고 주나라를 세운다.(주나라 5만대 은나라 70만 싸움)... 은나라 마지막때 백이,숙제 형제가 폭력은 폭력을 났는다며 "주나라 땅에서 나는것은 어떠한 것도 먹지 않겠노라"며 수양산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고사리 뜯으며 살다가 죽었다고 하는 이야기도 이무렵 이야기다.
고간원지 임금께 직간하다가 유배 가거나 형장의 이슬처럼 사라져간 충신이 얼마나 될까 중국 은나라 주왕은 충언을 하던 비간'이란 숙부의 심장을 꺼내기도 하였으며 비간의 임신한 부인의 배를 갈라 태를 보기도 했다 강호라는 충신의 눈알을 빼내고 그 살을 발라 젖갈을 담아 제후국이던 주나라의 서백후 창(문왕)에게 보내자 서백창이 충신의 살을 발라 보낸 젖갈을 보니 애통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 이에 젖갈을 가지고 온 신하가 은나라의 주왕에게 "창이 눈물을 흘리더라"며 간언을 하니 주왕은 창(문왕)을 유리 감옥에 가두게 된다. 그러자 창의 아들 백읍고가 제물을 들고 아버지를 풀어 달라고 하자 무왕은 백읍고를 죽여 살을 발라내고 곰탕을 만들어 창(문왕)에게 먹게하니 창은 알면서도 모든 분노를 삼키며 단숨에 아들의 살이 담긴 곰국을 마신다. 주왕은 누구든 까불거나 대들면 잡아 죽여 살을 바르고 포를 뜨고 젖갈을 담 그거나 곰탕을 만들었으니...
모선문
공주하면 밤이 특산물이며 그중에 단연 최고는 밤 막걸리가 아니겠나 온통 밤나무 단지가 이어지고 밤이란 본디 근본을 뜻한다.오래된 고목이라도 밤나무 뿌리를 파보면 밤나무 껍질이 붙어있다. 제사 상에도 밤이 가장 먼저 올라가는 이유도 근본을 뜻하기에 밤이 가장 먼저고 그다음에 대추가 올라간다. 대추란 자손의 번창함을 기원하기 위해서고...
비올듯한 날씨며 바람은 간간이 불어온다.
멀리 지나온 봉수산 우측으로 광덕산도 고개를 내민다.
금북정맥 절대봉에서 차동 고개로 이어지는 마루금
당진에서 영덕으로 가는 고속도로 유구1교가 보이고
금북정맥 마루금 차동터널로 가는 방향이니 저곳 어디쯤 차동 고개가 있을듯
바로 앞은 공주시 유구읍
차동고개 인근에서 흘러온 고현천이 유구천에 합류하는곳
태봉산 방향과 강건너 우측의 마을 뒤로 금북정맥에서 분기되는 무성지맥 그곳에서 다시 2차 분기되는 금계산-법화산을 지나면 비득재라는 작은 고개가 있는데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이곳을 지나면서 보니 훗날 대단한 장군이 태어날것 같은 명당터라고 해서 사람들을 시켜 비득재를 잘라내니 금 비둘기가 날아가고 전염병이 돌아 지명을 유구(維 바유) (鳩:비둘기 구자)라 했다는 이야기가 있다.물론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유구읍(維鳩邑)에 사람이 살게된건 삼국시대 이전으로 이라 생각이 들며 오래전 공주 사람들이 차동 고개를 넘어 예산땅으로 왕래했을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산의 맥을 잘랐다는 비득재 시간이 된다면 가보고 싶지만 공주로 가서 별도로 볼게 있으니 비득재에 가는건 생략
유구읍의 진산인 관불산 관불산은 멀리서 보면 "부처와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유구읍의 특산물로는 밤과 고추와 버섯 이라고 한다.
지나가야 할 유구천길이 이어지고
유구를 지나며 본 지나온 강길 좌측 관불산 멀리 금북정맥의 천방산과 멀리 봉수산 우측으로 법화산 방향
공주시 신풍면 성대리 방향과 천종산-국사봉 방향에서 흘러온 대룡천이 유구천에 합류하는 지점 이곳에 서고보니 두물이 만나면서 수량이 많아졌고 깨끗해진것같다
좌측은 신풍면 동원2리 마을이고 마을 앞쪽으로 가면 길이 끊어지고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
지나온 임도길
32번 국도 평소교에서 본 유구천 신풍면의 구절산이나 팔봉산 인근에서 흘러온까지 합류 하면서 수량은 더 많아졌고 물은 깨끗하게 보인다.
32번 국도길을 버리고 해월리 마을 밤나무 밭으로 올라와서 진행
강가 둘레로 돌아나와 진행하며 본 풍경 앞에 보이는 해월교를 건너 진행
해월교에서 본 지나온 강가길 물속 풍경은 진흙뻘위로 맑은 물이 흐르는 모습
강 건너 꽃바위 위에 화암정이란 정자가 보인다 유구천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은 정자로 그냥 지나치게 된다면 후회 할듯하다. 지나는길에 막걸리라도 한병들고 올라 목이나 적시고 갔으면 좋겠는데 배낭에는 물만 한병 딸랑 들어 있으니
화암정은 인근 사곡면 사람들이 1935년 일제 감정기때 주민들이 세운 정자로 유구천이 흐르는 꽃바위 절벽위에 세운 정자다 보니 바람의 영향을 덜 받게 지은것으로 보이며 정자에서 보는 조망은 나무가지 때문에 별로다 나무만 없으면 꽤 괜찮은 조망이 나올듯한데
천년고찰 마곡사 맞은편의 무성산(武城山) 이 우뚝하고 나무가지로 인해 조망은 다소 없지만 바람은 아주 좋다. 무성산에는 4km남짓 고려때 쌓은것으로 추정되는 성(城)이 있으며 홍길동의 전설이 담겨있는곳이다. 때는 오래전 홍길동에게는 누이 동생이 있었고 누이 동생은 장사였다고 한다. 어느날 서로 힘 겨루기를 시전 하는데 홍길동은 서울에 갔다가 오는것으로 동생은 성을 쌓기로 합의하고 동생이 성을 다 쌓을무렵 아무래도 길동이 질것같아 어머니가 떡을 해서 동생을 먹이며 잠시 쉬라고 하는데 그때 길동이 서울에 다녀 왔다고 한다. 동생으로서는 억울하지만 그래도 떡이라도 먹으며 쉬었으니 ...
마곡사로 가는 태화교 강건너 보이는 마을은 사곡면 호계리며 좌측 벽계산으로 올라가면 철승산을 지나 마곡사 뒷편 태화산까지 연결된다. 우측으로 무성산이 지척이나 마곡사를 두고 태화산과 마주보는 산이다.
공주시 사곡면 편의점에 들러 뭐라도 하나 사서 먹으며 가면 좋겠지만 오늘 유구천 마치고 공주에서 청양군으로 가야하니 음료수 사는건 포기하고
철승산-태화산 그리고 무성산에서 흘러온 마곡천이 유구천에 합류하는 곳
멀어지는 사곡면을 뒤로 하고
철승산과 마곡산을 품은 태화산 방향
인근으로 사람사는곳이 없는데 누가 이렇게 한건지 알길 없지만 강에는 물고기도 살고 갈대도 살고 이런 쓰레기도 많이 있기 마련이다.
사곡면 하월리 마을에 들어서니 반기는건 온통 배나무다.
"지금까지 이런길은 없었다! 이것은 실크 카펫인가? 잔디인가?" 100대강 다 끝나가니 이런길도 나타나는군요 마치 융단을 깔아 놓은듯 잔디가 곱게 자라며 한동안 푹신한 길이 제방따라 길게 이어진다.
동천포 농원 배나무밭 가장 좋은 자리에 조상님을 모신 농부의 마음이 느껴지는곳 조상을 잘 모셔야 후손이 잘 되죠
당진 영덕간 고속도로
공주시 우성면을 지나 이곳도 그냥 지나치고
36번 동대대교 넘어로 멀리 금남정맥의 계룡의 뒷모습이 보인다.
서천 -공주간 고속도로
비포장 임도길과 고속도로 다리 아래로 지나
홍길도의 전설이 깃든 무성산 뒷편이 보이고 앞은 우성면 방문리 들판과 큰 대형 축사가 몇곳 보인다.
논산-천안간 고속도로가 이어지고 금강이 흐르는곳에 웅진대교가 보인다.
유구가 흘러와 금강품에 안기는곳이 지척이다.
오늘 왜 ! 이러나... 왜 잔디길이 앞에 있는거야 좌측으로 웅진대교가 보이고 그아래는 금강이 흐른다 잔디밭을 고이고이 즈려 밟고
이정도면 거의 잠실 운동장 수준 아닌가 어디 빗물에 떠내려온 축구공 하나 없나
금강 북쪽 산길인 봉수산에서 발원한 유구천이 흘러 흘러서 금강품에 안기는곳 금강은 장수군 뜬봉샘에서 발원해, 진안군 ,무주군 영동을 거처 옥천군,신탄진,공주시, 청양군,부여시, 익산, 군산까지 400km 천리를 흐르며 남한에서 낙동강.한강에 이어 3번째로 긴 강이며 한반도의 중추적인 역활을 하는 중부지부의 속살을 깊이 파고드는 비단강이다 그리고 한많은 백제 700년의 역사를 고이 간직한 슬픈 강이기도 하고
두물머리에서 한장 담고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공주보 구경하러 걸어가본다.
4대강 사업으로 만들어진 공주보 가뭄과 홍수를 막는다고 만들어진 사대강 사업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삽질한 4대강의 길이는 모두 634km 거대한 다림이로 다림질 하듯 곡선보다 직석으로 쭉 펴놨다. 자전거 타고 가는 분들에게는 좋은길이나 걸어서 가는 뚜벅이에게는 지옥같은길이다. 특히 한여름철에 직선길 걷다보면 입에서 단내가 날정도다. 우리나라 10대 평야를 이루거나 이름있는 강은 100여개가 조금 넘으며 길이는 약 1만KM가 안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을 하면서 큰 강은 모두 삽질을 하고 보를 만들었으니 짜잘한것 여러개 손댄것 보다 더 심각한 오염원이 된다. 녹조로 인해 악취가 많이 난다고 해서 지금은 수문을 할짝 열어 두어 물이 시원스럽게 하류로 흘러간다. 녹조가 생기는 요인으로는 햇볕,물,영양분 여름철에 녹조가 많이 발생하죠 바로 햇볕이 강하기 때문이며 영양분은 농업용 비료에서 나오는 질소와 인이 녹조를 만들게 된다.
금강 비단강이라 불리우는 금강은 꼬불꼬불 아름다운 사행천(蛇行川)이며 국립공원과 도립공원을 많이 거느리고 있음에도 대청댐 아래로 금강 물이 더러운건 사대강 사업 영향도 있지만 금강을 맑게 해주는 삼봉산에서 흘러내린 무주 남대천 52km,삼도봉에 흘러내린 초강66km, 속리산에서 흘러내린 보청천72km는 깨끗하게 흘러 내려 왔지만 대청에서 갖혀있는 신세이며, 대청댐 아래 도심으로 흐르는 갑천과 음성과 청주에서 흘러온 미호천89km과 탑정호 아래로 흐르는 논산천 65km은 넓은 평야에서 흘러온 물인지라 상대적으로 더러워 보였다. 여기저기 물이 썩여 흐르는 동안 많이 깨끗해진건지 다리위에서 보는 금강은 그저 깨끗하게 보일뿐이다.
금강이 흘러가는곳 저곳 어딘가 백마강이란 이름으로 흘러 부여앞을 지난다 부소산성 아래 연꽃 형상을 한 낙화암 그곳에서 진짜로 삼천 궁녀가 몸을 던져 백제의 마지막을 더욱 아프게 장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나라가 무엇이고 전쟁이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할것 같다. 100대강 마지막을 장식하기전에 청양군에서 부여로 향하는 물줄기 지천을 찾아 가면서 낙화암에 다시 서야겠다
공주로 들어와 공주시립 병원 앞으로 지나니 경상북도 봉화에서 온 코로나 환자분들을 응원하는 공주 시민분들의 현수막이 가슴 찡하게 만든다. 많은 현수막이 시원한 바람에 펄럭이니 코로나도 금방 바람따라 사라질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고 발길을 웅진산성으로 향한다.
웅진산성 내력
해질무렵 웅진산성에 올라
공주시와 금강교 6,25전쟁 당시 미군 제 24사단 34연대가 1950년 7월 12일금강교를 폭파하고 14일까지 북한군 제 4사단의 진출을 방어한곳
660년 나당 연합군에게 부여 사비성이 함락되자 의자왕은 이곳 웅진성에서 운기조식하며 나당 연합군과 한판 하려고 준비 했지만 백제 멸망 하루전 이곳 성주이던 예식진에게 포로로 잡혀 당나라 소정방 앞으로 끌려간다. 웅진성주 예식진은 의자왕을 배신하고 당나라에 높은 벼슬을 받아 잘 살았고 의자왕은 온갖 망신이란 망신은 다 당하며 중국 북망산에서 쓸쓸하게 죽게된다.
공주보 수문이 열려있어 그동안 악취나던 금강물은 흘러가고 지금은 많이 깨끗해졌다고 한다 강가 중앙에 고운 모래톱이 깨끗하게 보이는 모습
읽어 보시죠
공산성 공북루 금강 남쪽과 북쪽을 오고 가는 문
공주시외 버스 터미널로 가는길에 본 공산성 모습 660년 7월 9일과 10일 논산시 연산읍 신양리 황산벌에서 만 24시간 동안 싸운 계백은 수락산(首落山)에서 전사하고 의자왕은 계백의 전사 소식을 듣고 부여 사비성을 아들 융에게 지킬것을 명하고 웅진성으로 피한다. (의자왕은 전국에 흩어진 군사들을 소집 할 시간도 없이 나,당 연합군이 턱밑까지 쳐들어 와서 정신없었을듯) 사비성에서는 태자 융과 남은 신하들끼리 나,당 연합군에 맞서 싸웠지만 숫자에서 상대가 되질 않으니 태자 융과 대좌평인 사택천복이 "나는 졌소" 라며 항복한다. 웅진성에서 전국 각지의 군사를 모아 2차전을 준비하려했던 의자왕은 믿었던 부하장수 예식진이 배신 예식진이 의자왕을 포박시켜 소정방에게 항복하면서 660년 7월 18일 웅진성은 나당 연합군에 의해 함락된다 2010년 3월 공산성 당나라, 신라 연합군과 백제땅 각지역에서 죽기로 달려와 준 일당백의 백제군과 의자왕의 결의에 가득찬 모습을 상상해 보며 부여시외 버스터미널에서 청양군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청양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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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문극렴의 시 한 수가
배경음악에 섞여 절절한 후기
잘 보다 갑니다.
말하면 뭐하노~~
사람맘도 몰라주고...흥!!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꽃바위 위에 화암정이며~
공주 공산성 모습도
오랜만에 정겹고
다시 나타난 모래톱에
기분좋아지네요.
금강에 안기는 유구천~
댕댕이 이사 어디로 갈꺼나~ㅎㅎㅎ
재밌습니다. 방장님 상상력도.
역사공부를 많이하게됩니다
수고하신발걸음 과 좋은자료
감사함을 전합니다
집에도 못가시고 몇일을
충청도에 머물러 100대강 마무리 하셨죠.
고생 많으셨습니다.
계백장군 하면 저는 젤 먼저 떠오르는게
영화 황산벌 입니다.
이준익 감독, 박중훈.정진영이 주연을 하고
특히 거시기 역활의 이문식 연기는 진짜인지 착각 할정도로 리얼한 연기였죠.
꽤 오래된 영화인데 요즘도 가끔 케이블 채널에서
틀어주면 10번도 넘게 봤지만 또 보고 그럼니다.
영화중 백제군과 신라군의 욕배틀은 몇번을 봐도 웃겨 죽습니다...ㅎㅎ
금북 첫걸음 이른 새벽이라 우왕좌왕 하였는데 코로나 중에도 어김없이 강길 부럽습니다
먼걸음 무탈한 걸음 축하드리구요
한걸음 한걸음 무탈 완주 축하드립니다^*^
방장님 덕분에 역사 공부해가며 정독해봅니다..
충남쪽으로는 100대명산때문에 하루지만 두루다녀온 기억밖에 없네요.
딱 한번 팔봉산에 일반산행으로 다녀왔지만요.
이런, 제 집 앞을 지나셨네요.
알았더라면 사곡 양조장에서 밤 먹걸리 사와서 대접해 드렸을 텐데...
ㅎㅎ
집이 어디시죠
다음에 그쪽으로 가면 필히 연락드리겠습니다
@배병만 저는 공주시 우성면 묵방산 기슭에 삽니다. 유구천은 지척이고요.
공주와 닿는 어느 지점에라도 계시면, 열일을 제치고 달려나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