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예정지역에 미리 땅을 조금 사놓고 개발을 방해하며 많은 돈을 받고 파는 행위’를 지칭하는 알박기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다는 사실이 입맛을 씁쓸하게 한다.
요즘 나오는 재테크 서적에는 표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알박기를 재테크 수단의 하나로 보고 있는 것 같다. 이런 영향 탓일까.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굵직한 개발계획 발표 후 예정지역 주변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개발예정지를 매입하는 것에 국민이 얼마나 큰 매력을 느끼고 있는지를 알게 한 사건이었다고 생각된다.
알박기가 적당한 선에서 그치면 좋지만 지나치면 형법상 부당이득죄가 성립돼 처벌을 받을 수 있다.
예를 들어 1평이 조금 못되는 약 3㎡의 땅을 시가의 174배인 3억5000만원을 받고 재건축합에 넘긴 중개사사무소 직원이 부당이득죄로 지난 2003년 5월 서울북부지검에 구속기소되었다.
지난해 검찰의 의욕적인 단속에 힘입어 알박기 사범이 속속 기소되면서 알박기 사범에 대한 처벌수위가 올라갈 것으로 예상됐지만 법원은 최근 그러한 경향에 제동을 거는 판결을 했다. 대전지방법원 천안지원에서는 얼마 전 시가 4억5000만원의 토지를 40억원에 아파트 시행사에 매각해 기소된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간 법원의 경향을 생각해 볼 때 시가의 8배가 넘는 약 35억원의 이득을 남긴 피고인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법원은 위 판결을 통해 자연인이 아닌 법인을 상대로 한 경우에는 ‘사람의 궁박한 상태를 이용’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부당이득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또한 위 판결이 명시적으로 판시한 것은 아니지만 피고인들이 토지를 96년부터 상당한 기간에 보유하고 있었다는 점도 고려대상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처벌의 대상이 되는 알박기 행위와 정당한 투자행위와의 구분이 모호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위와 같은 판결은 언젠가는 나올 판결이었다고 생각된다.
다만 현재로서는 알박기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하급심 판례가 더 많기 때문에 위 판결 하나만으로 섣불리 법원의 기준이 어떠한 것이라고 점치기는 힘들다. 대법원의 해석을 담은 판결에 의해 정리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혼란이 계속된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의미있는 대법원 판례가 나올 것이다. 그러나 최근 건설교통부가 알박기를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발표함으로써 이는 기약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현재 계속 중인 사건 외에 추가로 기소될 알박기 사범은 거의 없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개정 주택법은 개발예정지의 90% 이상을 확보하고 토지소유자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 사업시행자에 대해 토지수용권과 유사한 매도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될 경우 알박기에 해당할 만한 행위는 모두 매도청구권에 의해 소화되게 될 것이므로 더 이상 처벌이 문제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자료원:파이낸셜뉴스 2005.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