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프린스 대사
가을의 기도
김 현 승
가을엔 기도하게 하소서
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나의 영혼 구비치는 바다와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와 같이
가을이 온다고 한다. 많은 가을이 왔고 많은 가을이 갔다. 가을이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가을을 기다리는가.
가을을 노래한 시인이 많지만 우린 먼저 윤동주 시인을 생각하고 또 김현승 시인을 생각한다.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이 그렇고 김현승의 <가을의 기도>가 그렇다. 오는 9월 7일에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에 주한 유럽연합(EU) 대표부 도리안 프린스(Prince.49)가 <가을의 기도>에 곡을 붙이고 외국인 소프라노가 한국어로 이 노래를 부른다. 프린스 대사는 무대에 올라 파이프 오르간 반주까지 맡는다고 한다. 장소는 서울 명동 성당이다. 콘서트는 이름하여 'EU 음악회' 프린스 대사가 한국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자리라고 한다. 아, 가을은 이렇게 시가 가곡으로 불려지는 계절인가. 그것도 한국인이 아닌 외국인이 작곡하고 외국 소프라노가 한국어로 부르는 가을.
9월은 가을의 문턱을 넘는 달이다. 또 이렇게 가슴 설레는 9월이 온다. 사람들은 생업에 시달려 저마다 생활전선에 정신없이 매달려 9월이 온 것을 모르고 살아간다. 그러나 퇴근길에 무심히 바라본 하늘이 저렇게 높아진 것을 보고 가을이 당도한 것에 놀라게 되느니...
가을엔 비종교인이라도 손을 모아 기도하게 된다. 무언가 그 기도는 모국어로 신을 찾게 되는지도 모른다. 우리가 일상 쓰는 모국어지만 그러나 가을에는 그 모국어가 시가 되는지도 모른다. 근간에 우리들은 외국어를 난발하며 살아왔다. 김현승 시인은 모국어를 사랑하는 가을이 되기를 권한다. 모름지기 모국어를 사랑하는 9월이 되었으면 좋겠다.
가을엔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기도 하다.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미지의 사람. 마음에 간직했던 한 사람을...꽃나무들이 열매의 단맛을 위해 이 마지막 비옥한 시간을 신은 하사해주었다. 신에게 감사하고 비옥한 시간에 감사할 일이다. 김현승 시인은 가을엔 홀로 있어야 할 계절이라고 했다. 지난 여름과 태풍과 장마를 거쳐 바다와 백합의 공짜기를 지나 마른 나뭇가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까마귀처럼 홀로가 되는 것이 진정 자신을 찾는 가을이 아니겠는가. 9월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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