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속에서도 고객의 지갑을 열기 위한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된다. 고객의 라이프사이클에 맞춰 영업시간을 파괴하는 타임마케팅이 활발해지고 있다. 말하자면 업체들의 영업시간에 맞춰 고객이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찾는 고객들의 시간에 철저하게 업체들이 제품 판매 시간을 맞추는 것이다.
누구보다 이른 아침에 하루를 시작하는 '얼리 버드(Early Bird)족', 24시간 밤낮없이 바쁜 하루를 살아내는 '올 데이(All Day)족', 낮보다 밤이되면 더욱 말똥말똥해지는 '올빼미족' 등 갈수록 다양해져만 가는 라이프스타일. 낮과 밤의 경계가 사라져버린 소비자들에 맞춰 기업들 역시 영업시간을 파격적으로 당기거나 늦추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아침을 잘 이용하면 성공이 보인다
지난 6월2일 오전 7시 무렵 서울 종로. 파고다, YBM 등 대표적인 외국어학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이곳은 꽤 이른 시간인데도 불구하고 향학열에 불타는 '얼리 버드'들로 북적거린다.
학원가야 원래 부지런한 샐러던트(공부하는 직장인)들이 모여드는 곳이긴 하지만 최근 들어 이곳의 아침 풍경은 더욱 부산해졌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아침형 인간' 열풍이 다시금 거세지자 황금같은 아침시간을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며 얼리 버드에 도전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얼리 버드족들이 늘어나면서 학원가나 사무실이 밀집한 지역 주변의 패스트푸드점이나 커피전문점도 덩달아 바빠졌다. 매장의 문여는 시간을 앞당기는 것은 기본. 아침 신메뉴 등을 강화하며 얼리 버드 잡기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가장 적극적으로 아침 시장 붙잡기에 나서고 있는 업체는 다름 아닌 맥도날드. 지난해 2월부터 전국적으로 아침메뉴인 '맥모닝'을 출시하며 대대적인 광고를 펼쳐왔다. 현재 맥도날드는 오전 11시까지 전국의 맥도날드 매장에서 '맥모닝' 메뉴만을 판매하고 있다. 가격 역시 2900원에서 3700원으로 저렴한 편이어서 간편하게 아침식사를 해결하고자 하는 직장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염혜지 한국맥도날드 팀장은 "맥모닝 출시 이후 오전 4~11시 매출이 100% 이상 급증했으며 전체 매출 역시 두자릿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며 "얼리 버드족이 늘어나면서 아침 식사를 간편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반영한 결과가 주효했다"고 평했다.
던킨도너츠 역시 지난해부터 '아침&베이글' TV광고를 시작하며 아침시장 공략에 온 힘을 쏟고 있는 모습이다. 그 결과 지난 1월의 베이글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5배 이상 급증했다. 오전 7시~낮 12시까지의 매출 비중 역시 30%를 거뜬히 넘어서며 아침시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타임마케팅의 효과를 톡톡히 발휘하고 있다. 올해 5월부터는 아침시간이 특히 바쁜 직장인들을 위해 '주문 1분 안에 요리'가 가능한 핫브레드 메뉴를 출시, 아침 마케팅을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커피전문점으로서는 최초로 7시 개점을 선언한 스타벅스 역시 얼리 버드족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한 아침마케팅으로 성공을 이뤄낸 대표적인 사례다. 오후 1시까지 판매되는 스타벅스의 주요 아침 메뉴는 각종 샌드위치와 경기미떡.
박한조 스타벅스 홍보팀 사원은 "광화문, 여의도, 강남, 신촌 등 주요 오피스 매장 및 대학가, 학원가 매장의 아침 고객수가 올 들어 20% 이상 늘었다"며 "이들을 위해 아침 메뉴를 보강하는 것은 물론 매장 내 조리 기구를 개선하여 보다 빠른 시간에 고객들에게 원하는 음식을 제공하는 등의 아침 마케팅은 앞으로 더욱 강화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처럼 얼리 버드족들이 늘어면서 신용카드사들도 이들을 공략하는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카드가 신한카드의 '아침愛카드'. 스타벅스, 파스쿠찌, 크라제버거 등에서 오전 10시까지 최대 20% 할인을 해주는 서비스가 제공된다. 대형할인마트에서도 정오까지 10% 할인을 받을 수 있다.
◆밤을 낮처럼 활용하라
아침 식사를 거르기 십상인 바쁜 얼리 버드들을 대상으로 주로 외식업이 주를 이루는 아침형 마케팅과는 달리 직장인들의 퇴근 후 심야 시간대를 노리는 저녁형 마케팅은 외식업, 유통업, 공연문화산업 그리고 미용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 소공동의 롯데백화점 영플라자는 보통 백화점들보다 한시간 정도가 늦은 9시 반이 되어서야 문을 닫는다. 10대와 20대가 주요 고객이라는 점을 고려해 젊은층의 라이프스타일에 맞게 영업시간을 변경한 것이다.
경기 용인시의 수지 죽전동에 위치한 신세계 죽전점도 지난해 영업시간을 오후 10시까지로 조정했다. 주변이 대부분 베드타운인데다 맞벌이 부부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고려해 퇴근 후 집 근처에서 여유있게 쇼핑을 즐길 수 있도록 고객들의 시간을 철저하게 배려한 마케팅 전략인 셈이다.
2005년 패스트푸드점으로서는 최초로 24시간 영업 매장을 운영했던 맥도날드는 현재 전체 매장의 94%까지 24시간 영업 매장을 확대해 가고 있는 중이다. 그 결과 맥도날드는 밤 12시부터 새벽 6시까지의 매출은 2008년 1분기를 기준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8% 이상 늘어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과를 얻어내기도 했다.
'올 데이족', '올빼미족' 등 낮과 밤 구분없이 자신의 성향에 따라 자유롭게 시간을 활용하는 현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분석한 결과를 마케팅에 반영한 것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최근에는 버거킹, 롯데리아와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는 물론 탐앤탐스 등의 커피전문점까지 24시간 영업 매장을 늘려가고 있는 추세다.
늦은 밤에도 언제든 자유롭게 들러 머리를 손질할 수 있는 24시간 미용실도 등장했다. 1~2년 전부터 이대입구와 논현동, 명동 등에 하나둘 들어서기 시작한 24시간 미용실은 바쁜 직장인, 밤늦게까지 공부하는 수험생 등에게 특히 호응을 얻고 있다. 이대 앞에 위치한 PnG 헤어캐슬이 대표적인 24시간 미용실이다.
정우현 PnG 헤어캐슬 사장은 "주말밖에는 머리할 시간이 없을 만큼 바쁜 고객들을 위해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이 이렇게까지 좋은 반응을 얻을 줄은 몰랐다"며 "퇴근 후 늦은 시간이 특히 많이 붐비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고객들이 각자 스케줄에 맞춰 원하는 시간에 자유롭게 들러 머리를 손질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