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기일 제사/ 전 성훈
어머니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지 벌써 5년째다. 바로 엊그제 같은데, 무정한 세월은 남은 자의 안타까운 연민의 정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 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세월은 무심한 모습으로 우리 곁을 스치듯 살짝 지나며 사람들 뒷모습을 흘깃 바라본다.
5년 전 그날, 어머니께서 큰 병을 얻어 병원에 입원하신 후, 별다른 치료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장례를 어떻게 치루고, 제사는 어떻게 하나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께서는 당신 음력 생신을 병상에서 맞이하시고 곧 이어진 추석을 보내고 떠나셨다. 햇과일이 풍성한 계절에 좋아하시는 과일 하나 제대로 드시지 못하고 황망히 먼 길을 혼자 떠나셨다. 사는 데 허겁지겁한 자식들 누구 하나 손을 내밀어 홀로 떠나시는 어머니의 길동무가 되어드리지 못했다. 평소에 어머니께서는 ‘화장을 해다오. 그렇게 하는 게 깨끗하고 너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다.’라고 몇 번이나 말씀하셨다. 형제들과 의논하여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화장해드렸다. 수습한 분골은 우리 집에서 가까운 경기도 양주시 울대리 천주교 공원묘지에 모셨다.
어머니께서 떠나시고 얼마 되지 않을 때, 집집마다 제사 문제로 이런저런 다툼이 있고 형제 ‘의’를 상하는 경우가 있다는 기사를 매스컴에서 보았다. 그 기사를 본 지 며칠 지난 어느 날 저녁, 아내에게 제사를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야기를 꺼냈다. 아내는 고민하는 기색 없이 “당연히 제사를 모셔야지요.” 라고 말했다. 아내의 대답이 무척 고맙고 고마웠다. 처가에서는 몇 십 년째 장인어른 제사를 지낸다. 물론 기일에 우리 부부는 늘 참석한다.
작년엔 손녀가, 올해엔 손자가 태어나, 어머니 기일 제사를 작년과 금년 연이어 지내지 않았다. 아내가 장모께 여쭈어보니, ‘자손이 태어난 해에는 제사를 드리지 않는다.’는 말씀이다. 천주교 신자인 나는 관혼상제에 특별한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가정의 길흉사에 가급적 좋은 방편이 있다면 그것을 따라가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다. 어머니 기일 제사를 지내지 못에 죄송스런 마음이 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어머니께서도 충분히 이해하시며 웃고 계시리라 생각한다. 생전에 어머니께서는 ‘집안 대소사는 떠난 사람보다 산 사람을 우선해야한다’고 말씀하셨으니까.
요즘은 내가 부모와 조상을 기억하듯이, 자식과 후손이 그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기대하기 어렵다. 자식과 후손에게 바라지 않으면 않을수록 마음속 허전한 미련을 버릴 수 있지 않을까? 마음을 달래보기도 한다. 이 땅에서 한 생을 살다가 떠나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선인들 말씀에서 가르침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군가 내 곁에 있을 때 더 살갑게 대하고, 내 곁을 떠날 때는 자연의 순리로 받아드리는 여유로운 마음, 미지의 길을 가야하는 내 나이에 어울리는 삶의 태도가 아닐까?
‘떠난 사람은 나날이 멀어지고, 오는 사람은 나날이 가까워진다.’ 거자일소(去者日疎) 내자일친(來者日親), 어머니 기일을 맞이하면서 새삼스럽게 떠오르는 고사성어다. (2017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