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전선에 철길은 녹슬어도 핏줄은 녹슬지 않는다-
글쓴이 : (성심여고) 함혜경
날짜 : 2006.01.21
-5가지 'ㄲ'의 법칙 저자 신순범님의
꿈 깡 꾀 끼 끈 에 도전하라」중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휴전선에 철길은 녹슬어도 핏줄은 녹슬지 않는다
-이산가족을 생각하며
김영식은 이제 자전거도 탈 수 있다.
28년 전 그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전기톱이 그의 왼쪽 다리를 맹렬한 기세로 잘라버린 것이다.
눈깜짝할 사이의 일이었다.
1976년 2월 27일, 동대문구 휘경동에 있는 부림목재에서
근무하던 김영식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바깥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경 공장으로 돌아와 전기톱의 스위치를 넣었다.
그때 눈앞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는 것 같았다.
그는 허리를 굽혀 그것이 무엇인가 확인하려 했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한켠에 쌓여 있던 원목더미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한꺼번에 무너져내렸다.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그의 몸뚱이는 맹렬한 기세로
돌아가고 있는 전기톱 아래로 떠밀려 갔다.
순식간에 그의 다리 하나가 톱밥 더미 위로 날아갔다.
그 다리가 수술실로 옮겨진 것은 사건 2시간 후였다.
그 전에 다리는 톱밥과 피로 엉겨붙은 불순물들을 제거하고
소독한 후 얼음통 속에 넣어졌다.
피가 엉겨 혈관이 막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항응고제를
투여한 뒤, 톱날에 으깨어진 살과 뼈를 도려내고,
잘린 핏줄은 꿰맬 수 있게 처치되었다.
이 단계에서 절단된 양쪽 환부에서 각각 약간의 뼈가 잘려졌다.
이윽고 두 뼈 사이에 압박판이 부착되었고, 6개의 나사못이
뼈와 쇠판을 이었다.
곧이어 정맥과 동맥의 자잘한 혈관들이 하나하나 맞추어졌다.
이 혈관들은 다시 봉합시키는 데는 710모노필라멘트 나일론이라는,
거미줄처럼 가는 실이 사용되었다.
첫 번째 수술에서 가장 힘든 작업이 시작되었다.
피가 통하지 않으면 그 부분의 조직이 썩기 때문이다.
얼마 후 김영식의 다리에서 마침내 피가 돌기 시작했다.
의료팀은 팽팽한 긴장 속에서 다시 근육을 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신경의 봉합뿐이었다.
신경이 이어져야만 잘려졌던 다리가 완전히 기능을 회복하게 된다.
무려 7시간에 걸친 1차 수술을 성공리에 끝마친 경희의료원팀은
신경 봉합을 위한 2차 수술을 잠시 미루었다.
시간을 두고 환자의 상태를 봐야 했기 때문이다.
의료팀은 돌아가면서 환자 옆에서 밤을 샜다.
그들의 불안은 환자 만큼이나 컸다.
보름이 지나도록 환부에는 아무 이상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다시금 아문 환부가 메스에 갈라졌다.
머리칼처럼 미세한 신경들이 하나하나 이어졌다.
봉합 수술이 끝난 후 의료팀이 말했다.
잘린 다리의 기능이 70~80퍼센트까지는 재생될 것이라고.
완전히 잘려진 다리를 봉합시키는 수술이 이처럼 성공적으로
끝난 것은 우리나라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쓰러졌던 날로부터 꼭 369일 만에 김영식은 자신의 방으로
되돌아와 몸을 눕혔다. 이제는 걸을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게 되었다.
현대 의학이 이룩한 기적이었다.
우리는 어려운 수술을 훌륭히 성공시킨 경희의료원팀에게
찬사를 보내는 동시에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되새기려 한다.
그것은 바로 잘려진 다리는 김영식 자신의 것이었기에
다시 붙여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의 뼈요, 그의 살이요, 그의 핏줄이요,
그의 신경이었기 때문에 봉합이 가능했다는 말이다.
아무런 부작용도 없이…….
우리나라 그의 다리처럼 강대국의 날카로운 톱날에 의해
허리가 두 동강 났다.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그 일이 일어났다는 점도
김영식의 경우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 민족 모두가 의료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다르다면 다르다.
김영식의 사고가 자의에 의한 것이 아니었듯이,
우리 민족이 당한 분단의 아픔 역시 우리의 의사와는 무관했다.
김영식의 다리는 다시 몸통과 완전히 결합했지만,
우리 민족의 다리는 아직도 완전한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비록 7.4 공동성명과 6.15남북공동선언까지
남북간의 가열찬 노력이 있었지만, 통일은 아직 요원해 보인다.
처음 허리가 잘렸던 날, 그 아픔은 아직 생생하고, 날이 갈수록
골수 깊이 스며든다.
우리 국민들 중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프로를 보고 눈물짓지
않은 이가 없을 것이다.
아내가 남편을, 부모가 자식을 만나볼 수 없었던 천만 이산가족의
고통과 신음 소리는 잘린 다리에서 뿜어져나오는
붉디붉은 핏줄의 울부짖음이었다.
인적 사항이 씌어진 피켓을 받쳐들고 화면을 향해 앉은 그들은
굵은 빗줄기도, 뜨거운 태양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립고 그리웠던 내 남편, 내 아들 딸, 내 형제를 찾는 행렬은
갈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누가 이들에게 분단의 비극을 안겨주었는가?
신혼에 헤어진 부부가 백발이 되어서야 만나야 하는 이 아픔,
고아원으로, 남의 집 양녀로 전전하며 배고픔과 외로움 속에서
자신의 성(姓)도 잃고 살아야 했던 형제.자매의 오열, 이산가족의
한(恨)은 멀리 바다 건너 이민을 떠난 이들도 빠뜨릴 수 없다.
만날 수 있는 이들은 그래도 늦게나마 한을 풀 수 있었다.
그러나 아예 만날 수 없는 이들의 가슴은 얼마나 피멍이 졌겠는가?
혹시나 하며 막연한 희망을 붙잡고 밤을 지새우는 핏줄의 아픔은
이 지상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
남북의 동포들은 한시 빨리 접합되어야 한다.
악몽과도 같은 붉은 병마에서 벗어나 민족의 대접합 수술을
시작해야 한다.
김영식의 접합 수술을 맡았던 의사는 모두 7명이었다.
그러나 동강난 우리 민족을 접합하려면 우리 모두가
집도의여야만 한다.
확신하건대 원래 한몸이었고 한핏줄이었던 이상,
그 접합이 실패할 리는 없다.
불구의 몸을 완전한 것으로 하는데 무엇을 아끼며, 주저하겠는가?
우리 모두가 메스를 들고 나설 때
민족 대접합의 수술은 기필코 성취될 것이다.
핏줄은 결코 녹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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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현대의학의 힘으로 재생에 성공한 의료진에게 박수를 보내면서도 가슴이 찡해오네요...거기에 노래까지...오늘은 글과 함께 노래도 배달을 해야겠네요...
이 글을 민중의 소리 블로그에 올렸더니 대문에 올랐더군요...^^ 그런데 아쉬운 것은 댓글이 하나도 없었다는 겁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