튜니지의 정식 명칭은 튀니지 공화국(Republic of Tunisia)이다.
국토의 면적은 16만 3610 km², 인구는1,073만명(2012)이다. 국교는 이슬람교로 국민의 98%가 수니파 교도이다.
공용어는 아랍어이나 불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좋은 자연환경을 갖추고 있으며,
육지 면적의 27.8%가 농경지이고, 36.3%가 목초지, 5.4%가 삼림지대이다. 1인당 국민소득은 $3.397(2007)이다.
-알제리아와 튀니지 국경 검문소를 지나 튀니지로 내려가는 계곡-
** 국경 검문소 주변 모습(촬영 금지)을 찍은 컴팩트 카메라를 분실하여
위의 사진이 국경 부근의 최초 사진이다.
-튀니지 입국 후 맨 처음 만난 마을-
-눈 덮인 산등성이를 돌아가면......-
** 산등성이에서 계곡 아래를 향해 고대 도시가 펼쳐져 있다.
두가 유적(Dougga)
튜니스로 부터 남서쪽 110 km 지점에 위치한 두가는 튀니지에서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으로
1997년 12월 6일 UNESCO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고대 로마의 도시이다.
유적은 튀니지 북서 지역 비옥한 우에드 칼레드(Oued Khalled) 계곡의 요지인
고도 571 m 의 언덕 정상에 있다. 로마가 누미디아를 합병하기 전에 6세기 이상 존재 해 온
두가는 누미디아 왕국의 첫 번째 수도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로마의 지배 하에서는 번창하였지만
비잔틴과 이슬람 시대에 쇠락하였다. 남아 있는 이 유적은 로마가 지배하던 누미디아 도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다.
-고대 도시 두가(Dougga)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원형극장-
** 원형극장은 스탠드 짓기에 편리한 경사지에 건설 하는것이 통례인데
이곳에는 고지 정상에 가까운 위치를 선정하였다.
-콜로세움 형태의 스탠드 뒤쪽 외벽-
-3,500 석의 원형극장 스탠드-
** 무대는 말끔히 복원한 것으로 보이며 무대 앞 가까이 까지 낮은 계단식 좌석이 설치된 것이 특이하다.
주민의 수가 5,000명을 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대단한 규모이다.
-무대에서 본 원형극장 전경-
** 간간이 흩뿌리는 빗물이 무대 위에 고여 있다.
-무대 뒤의 코린트 식의 열주-
-원형극장 오른편에서 본 모습-
**두가(Dougga)의 옛 이름은 티가(Thygga)로 누미디아(Numids혹은 Libyans)인이 건설하였다.
카르타고에 점령당하였으나 후에 누미디아의 왕 매시니사(Massinissa)가 통치 하다가
AD 105년에 시저(Caesar)에 의해 로마의 아프리카 속주가 되었다.
- 수조-
** 모든 구성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춘 이 도시는 17세기 이상의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공공건물 터-
** 이 유적은 누미디아, 카르타고, 헬레니즘 그리고 로마 등의 각기 다른 문화를 훌륭하게 통합한 본보기 이다.
-제우스 신전(Capitol)으로 가는 대로-
** 두가 유적은 약 25 헥타에 걸쳐 신전, 개인 거주지, 극장, 목욕탕 등이 포장 도로로 연결되어 있다.
-주피터 신전의 옆 모습-
** 신전 벽의 조적의 예(例)에서 놀라운 기술을 엿 볼 수가 있다, 현대의 철근 콘크리트 기둥을 대신하는
돌 기둥을 작은 석재들 사이에 세웠음을 볼 수가 있다. 그러한 조적 기법은 신전 벽이 1700 여년 간 온전히
보존된 이유일 것이다. 20세기 초의 자료에는 벽체 상부가 조금 허물어져 있었다.(검게 보이는 부분)
-주피터 신전과 아우구스트 사원-
-아우구스트(Auguste) 사원-
** 원형극장에서 주피터 신전으로 내려 가다 만나는 반원형의 사원에는 Templede la Piete Auguste라는
조그마한 안내판이 서 있다. 아우구스트 사원은 이곳 뿐만이 아니고 과거 로마제국의 여러 곳에서 보인다.
-주피터 신전(Capitol)-
-10 m 높이의 거대한 코린트식 기둥의 주피터 신전-
** 신전 오른편으로는 포장된 넓은 광장이 있다.
-주피터 신전의 정면 모습-
** 이 신전은 주피터(Jupiter=제우스), 주노(Juno=헤라) 그리고 미네르바(Minerva=아테나) 3神에게 헌정 되었다.
-왼편 광장에서 본 주피터 신전-
-신전 왼편 광장 Forum-
-Forum을 둘러 싸고 서 있던 열주의 주초 만이 주위에 놓여 있다.
-신전 아래쪽에서 올려다 보이는 주피터 신전-
** 신전은 좁다란 정상에 올라 서 있는 듯한 시각 효과로 보이지만 양쪽으로 거대한 광장을 거느리고 있다.
-바람의 광장(square of the winds)-
** 신전 오른 편에 있는 대리석 포장의 행사용 광장이다.
-바람의 광장 앞의 조각상-
-조각상-
-상점 터-
** 바람의 광장 동쪽에 자리 잡은 상가 터로 맞은편에 일정한 크기의 상가가 보인다.
-도시 서쪽 외곽에 위치한 다르 라쉐브(Dar Lacheb)의 문(door of the Dar Lacheb)-
** 다르 라쉐브(Dar Lacheb = the house of Lacheb)가 확실하게 밝혀진 바는 없으나
애스쿨파피우스(Aesculpapius = gr : Asclepius)에게 봉헌된 성소로 추정된다.
다르 라쉐브는 AD 164~166년에 건설되었다.
(필자 註 ; 애스쿨파피우스(Aesculpapius)=로마의 약(medc)과 치유의 신)
-포토 포인트(Photo point)-
** 도시로 들어오는 입구에서 제일먼저 올려다 보게 되는것이 주피터 신전이다.
주피터 신전을 프레임에 넣기에 딱 좋은 소재가 된다. 이 사진은 홍보용 사진과 같은 각도에서 찍은것이다.
-유적 지킴이가 서 있는 다르 라쉐브의 문-
** 문 기둥 앞에 관리인이 서 있다.
-도시 서쪽 주거지와 공공건물 터-
-도시 서쪽 교외로 이어진 대로-
-목욕탕 지역-
-중앙 광장-
- 내성 과 주변 건물-
** 티가(Thygga)는 로마의 속주가 된 후 두가(Dougga)로 개명되고 261년 식민지가 되었다.
2~4 세기에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다 비잔틴 통치시 쇠퇴하여 반달(vandal)족의 침입을 받았으나
부분적으로 복구 되었다가 곧 영구히 버려졌다.
-판석이 뜯겨 나간 남북 중앙 대로와 주변-
** 호박돌이 딩구는 대로는 분명 반들반들한 판석이 깔린 포장도로 였을 것이나
지금은 한 장의 판석도 보이지 않고 기초로 깔아 놓았던 호박돌만 남아 있다.
-우물과 모자이크-
** 우물 가에 남아 있는 모자이크는 천년을 비바람 속에서도 견디어 왔다고 증언하고 있는 듯 하다.
-개인 주거지에 남아 있는 모자이크-
** 이러한 아름다운 모자이크는 곳곳에 아직도 다수 남아 있다.
-성문이 보이는 내성의 외관-
-공공건물 터-
-주거용 건물 터-
**두가는 북아프리카에 있는 아프리카-로마 도시 중에서 가장 잘 보존된, 아울러 고대의 일상생활이
어떠했는지 이례적으로 잘 보여주는 유적지로 평가받고 있다.
-내성 성벽-
-도시 외곽 포장 도로망-
-작은 돌로 옹벽 쌓기 기술-
** 앞서 주피터 신전 벽에서 그 예를 보았듯이 대로 변 옹벽 쌓기도 작은 석재들 사이에
돌기둥을 세움으로서 작은 돌들이 한쪽으로 쏠리거나 빠져나가는 현상을 방지하였다.
도로의 반쪽의 판석이 없어진 것은 다른 곳에 쓰기 위해 뜯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도성 외곽 순환 대로-
-완전하게 보존된 말굽형 공중변소-
** 공중변소에서 남.녀 용 구분을 보지 못하였다.
-공공건물(신전?)-
**아프리카에 있는 로마의 지방 행정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덜 중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두가에는 대부분이 2~3세기에 지어진 놀라운 공공건물이 많이 남아 있다.
-유적지 서쪽으로 태양은 이미 떨어지고 마지막 노을만 남아있다.-
** 유적지를 답사하는 동안 간간이 비도 내리고 바람이 차거워 카메라를 든 손을 호호 불어가며,
찍은 사진들은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나왔으나 유적지는 무척 어둑 컴컴한 날씨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