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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겁이 별로 없는 편이다. 어릴 때의 경험인지 언제부터인지 모르겠고 내 천성이나 성향인 것도 같다. 사실 사고 후 병원에 있을 때 의사가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엄청난 말을 내게 했을 때 내 기억으로는 딱 3일 식음을 전폐하고 말을 하지 않았다. 생각이 복잡했기 때문이고 내가 왜? 나만 왜? 그런 좌절의 시간이었던 것 같다.
그런데 딱 3일 이었다. 3일 동안 생각이 정리되고 난 뒤 나의 결론은 그냥 휠체어 타고 살면 되지, 어쨌든 살아있잖아였다. 물론 지금까지 27년 동안 장애로 인해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좌절하지 않은 것은 절대 아니지만, 당시를 생각해보면 참 단순하고 겁이 없는 성격 탓에 심각하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부산 토박이인 내가 대구로 대학을 가서 1학년 2학기가 끝나고 겨울이 왔을 때이다. 대구는 부산에 비해 훨씬 덥고 훨씬 추웠다. 부산에서는 구경하기 힘든 눈도 꽤 오는 날이 많았다.
부산 촌년이 대구에서 첫 눈을 본 그날... 아이처럼 뛰어다니며 눈사람도 만들고 싶은, 너무 신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 보자는 생각에 기숙사 바깥으로 나갔다. 눈이 꽤 많이 와서 비장애인이 섰을 때 무릎 정도의 눈이 쌓여 있었다. 그 정도 높이라고 인식을 하긴 했는데 겁이 없는 나는 행동이 앞섰다.
휠체어로 기숙사 바깥을 나가는 순간 휠체어 큰 바퀴의 반이 잠기면서 눈에 푹 빠져서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방학이어서 지나가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나는 꼼짝 없이 눈에 파묻혀 움직일 수 없는 상태로 외쳤다. “도와 주세요~! 도와 주세요~!” ㅋㅋㅋ
그때는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전화를 할 수도 없었고, 내 간절한 외침을 누군가 듣기 만을 바라며 열심히 소리쳤다. 한 10~20분쯤 지났을까 내 목소리를 듣고 나온 건지는 모르겠으나 한 여학생이 나왔고 나를 보고 놀라서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왔다.
드디어 나는 구출되었다. 푸하하~
또 눈이 내린 날, 나는 생초보인 주제에 차를 끌고 나갔다. 기숙사에서 나와 오르막을 오르는 순간... 내 애마는 갑자기 썰매를 타기 시작했다. 핸들도 조정이 안 되고, 브레이크도 무용지물이었다. 나는 너무나 당황했고 아... 이건 무슨 상황이지? 하는 찰나 차는 빙그르르 돌고 돌아~ 길가에 있는 나무를 처박았다. 그 사고로 아빠에게 눈 오는 날 체인도 없이 나갔다고 나는 욕을 엄청 먹었다.
그 외에도 초보 운전 딱지를 겨우 뗀 한 3~4년 간 수많은 사고를 냈다. 속도도 겁없이 많이 내고 다니고 운전에 대한 감도 없이 어떻게 그렇게 빨빨거리며 다녔는지... 급커브 구간 옆에서 같이 커브를 돌던 시내버스를 들이박기도 했고, 유턴을 하다 핸들을 놓쳐서 서 있던 택시를 들이 박고... 브레이크를 늦게 잡아서 신호 대기 하고 있는 차 뒤를 박은 것도 몇 번이나 있었다. 막 끼어들기 하다 접촉사고가 난 적도 몇 번 있었다. 그렇다 보니 아빠가 ‘네 차에는 자석이 있냐' 하시며 맨날 혼이 났다.
▲ 필자가 리더십 교육 회사의 강사로 강의를 하는 모습. ⓒ박혜정
교육 회사를 다니던 때는 지역마다 교육 진행을 해야 해서 대전으로 갈 때였다. 그때도 겨울 눈이 많이 왔고, 대전 통영 고속도로를 타고 가던 중 무주 쯤 지났을 때 트레일러가 눈길에 미끄러져 다른 차들을 추돌하고 차선 전체를 가로막아서 고립된 적도 있었다.
한 4~5시간 차에서 고립되었었는데, 말이 4~5시간이지 정말 힘들었다. 물도 없어서 목이 너무 말랐고, 배도 고픈데 먹을 것도 없었다. 이 사실을 나중에 안 엄마는 교육이고 뭐고 그렇게 눈이 왔는데 겁 없이 갔냐고 뭐라 하셨다.
한번은 아는 지인들과 식당을 갔는데, 그 식당에서 휠체어를 타는 나를 배려해 입구 계단 다섯 칸에 나무 판자를 대서 들어오기 쉽게 해 주셨다. 임시로 만들다 보니 경사가 굉장히 높아서 들어갈 때는 밀어주셨다.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잡아주겠다고 하는 분들에게 나 혼자 내려갈 수 있어요~라며 자신 있게, 겁도 없이 내려갔다. 3분의 2쯤 경사를 내려오는데, 경사가 워낙 높다 보니 휠체어가 앞으로 훅 기우는 걸 느꼈다.
그걸 느끼는 그 순간,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철퍼덕~! 나는 땅으로 그대로 엎어졌고 뒤에서 키득 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쪽팔림도 있었지만 그것 보다 이마가 너무 아팠다. 이 사건으로 벌겋게 혹이 난 이마와 까인 무릎 때문에 한동안 아팠고, 그 뒤로는 경사가 심할 땐 꼭 잡아 달라고 한다.
▲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타고 뉴폴츠 버스터미널로 가다. ⓒ박혜정
우리 엄마가 나중에 듣고 ‘넌 정말 겁대가리가 없구나.’ 하신 일은 미국에 어학연수 겸 여행을 할 때이다.
번지점프나 패러글라이딩 스카이다이빙... 그런 걸 TV에서 보면서 언젠가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2006년 당시에 한국에서는 하반신마비인 내가 할 수 있는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번지점프는 다리에 힘이 없어서 안될 것 같았고, 패러글라이딩이나 스카이다이빙 중에 생각해보니 스카이다이빙이 더 짜릿할 것 같았다.
뉴욕에 있던 나는 뉴욕 근처에 스카이다이빙을 할 수 있는지 알아보았고, 뉴욕에서 고속버스로 한 3시간 거리에 있는 뉴폴츠라는 지역에 'skydive the ranch'라는 업체를 찾았다.
그 업체에 전화를 걸어 내 상황을 얘기하니 할 수 있다고 해서 예약을 했다. 그러고는 뉴폴츠까지 가는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를 예매하고 고속버스 회사에도 휠체어를 타니 리프트 서비스를 신청했다. 그리고 뉴폴츠 터미널에서 그 업체로 가는 버스편까지 다 알아보았다.
▲ 그레이하운드 고속버스 뒤 편의 의자들을 접고 리프트로 탑승. ⓒ박혜정
드디어 스카이다이빙을 하던 날...
완전 설레고 부푼 마음을 안고 4시간 만에 무사히 도착을 했다. 안전 교육을 듣고 나와 같이 묶여 뛰어내려 줄 교관과도 인사를 하고 주의사항을 들었다.
나의 경우는 착지할 때 내 다리로 설 수 없으니 무릎을 아예 묶고 다리를 가슴 쪽으로 감싸 앉으라고 했고 숙련된 교관이 대신 착지를 할 거라고 했다.
두둥~~~ 경비행기를 타고 나서야 실감이 확 나고 심장이 나대기 시작했다. 7000피트(약 2.13km) 상공으로 경비행기는 올라갔고, 나의 교관과 내가 뛰어내릴 차례가 오자 겁대가리 상실한 나도 겁이 나기 시작했다.
▲ 경비행기에서 막 뛰어내리는 모습. ⓒ박혜정
쓰리, 투, 원! 소리와 함께 나의 준비와는 상관없이 내 뒤의 교관은 푸르른 하늘로 망설임 없이 뛰어 내렸다.
허공으로 한 바퀴 돌고 바로 하락하는게 느껴졌고, 난 그때 정말 죽음의 공포를 느꼈다. 이대로 진짜 죽는구나! 그동안 잘 살았나? 이렇게 죽으면 후회되는 일이 뭐지? 파노라마처럼 내 인생이 그 짧은 순간 머리 속을 지나갔다.
▲ 뛰어내리고 죽음의 공포를 느끼던 순간. ⓒ박혜정
그렇게 죽는다고 생각한 순간, 낙하산이 펼쳐지면서 다시 하늘로 솟아올랐다.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한 10~20분은 죽음의 공포가 지나가고 이걸 하기로 한게 정말 잘했다고 느끼기에 충분하고 넘쳤다.
죽는 날까지도 오래도록 내 기억, 마음속에 남을 황홀한 풍경과 산뜻한 바람, 날고 있다는 자유로움... 말로 표현하기 힘든 경험이었다.
라이트 형제가 왜 그토록 간절히 날고 싶어 비행기를 만들었는지를 100% 공감할 수 있었다.
▲ 하늘을 날고 있다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자유로움. ⓒ박혜정
그렇게 날고 있는 자유로움과 황홀함을 느끼고 무사히 나의 교관은 안전한 착지를 해주었다.
땅에 내려와서도 한동안 흥분이 가라앉지 않을 정도로 해냈다는 뿌듯함과 진정 살아있음의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행복한 비행이 끝나고 나의 교관과 바로 옆에서 사진을 찍어주며 함께 했던 교관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얘기하다 보니 친해졌다.
그들이 이른 저녁을 먹자고 제안해서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도 같이 하며 맥주도 한잔하고 많은 얘기를 나눴다. 지금은 연락하진 않지만 뉴욕으로 돌아온 뒤에도 한동안은 친구로 잘 지냈다.
▲ 함께 했던 교관님과 찰칵~ 근처 레스토랑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 ⓒ박혜정
겁이 없어 다치기도 하고 아찔한 상황도 많이 겪는 나를 주변 지인들이나 특히 부모님은 걱정을 엄청 하시긴 하지만... 나는 내가 겁없이 했던 일들이 그냥 재밌었고 좋다.
해서 후회한 일보다 하지 않아서 후회하는 일이 더 많다는 걸 분명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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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박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