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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시려 안달나신 하나님 민6:22-27
주신 말씀 민6:22-27절을 중심으로 [복 주시려 안단나신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7월의 마지막 주일 주님 주시는 은혜의 시간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본문은 본격적인 가나안 행군을 위한 이스라엘의 군대 편제가 이루어진 상황 하에서 진영을 유지하는 관련 율법 가운데 제사장의 축도관련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참 좋으신 하나님이셔서 보호와 은혜와 평강이 험악한 광야를 진행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인 성도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여 주심으로 성도들로 세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고 현실의 삶을 살 수 있도록 확신을 주고 있습니다.
본문은 한마디로 구약의 축도로 신약의 축도인 고후13:13과 쌍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 원하실까요?
첫째로 복 주시고 지키시길 원하십니다. (22-24)
6:1-21 나실인의 규례에 이어 제사장의 축복 기도법을 말씀하시는 것은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하나님의 군대로써 새로운 진용을 갖춘 이스라엘 백성이 진정 거룩한 면모를 갖추기 위해서는 나실인의 서원과 같은 개인적 헌신도 필요하지만, 전 백성을 대상으로 하나님의 권위를 힘입은 제사장의축복 기도도 반드시 요청되고 있다는 것입니다.(22)
23절은 하나님은 아론과 그 아들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도록 지시하는 내용입니다. 축복하여(תברכו테바르크)는 무릎을 꿇다는 의미에서 시작된 말로 복을 구하는 자가 무릎을 꿇고 간구하는 모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 단어는 미완료형으로 제사장의 축복기도가 단회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도들은 목사에게 기도 제목을 구체적으로 알리고 목사는 성도를 위해 계속해서 무릎 꿇고 과거에도 축복했고 현재도 축복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게속해서 축복할 때 간절히 구하는 기도가 응답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사장의 축복권은 스스로의 권위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복의 근원되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과의 말씀과 권위에 근거한 권위로 하는 것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호와는... 원한다]는 말이24-26절에서 세 번이나 나옵니다.
여호와를 주어로 3번 사용한 것은 비록 제사장이 축복하지만, 복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 자신임을 잊지 말고 그 주시는 복이 3 즉 완전하고 충만하게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되 계속해서 복을 주시고 지키시되 계속해서 지키시고 그 얼굴로 비추시되 계속해서 환하게 비추어 주시고 그 얼굴을 드시되 계속하여 그 얼굴을 드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주의할 것은 점층법이 사용되어 복이 그 얼굴로 비추시고 즉 여호와께서 깊은 사랑으로 이스라엘의 운명에 관심을 가지시고 빛이 대지에 새 생명을 주시듯 이스라엘이 앞날을 돌보아 주실 것을 축원하며, 더 나아가 그 얼굴을 드사 즉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내리시는 순간적 모습까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반드시 성취될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점층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되 점점 더 큰 복받을 자리로 나가게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외부적인 위협으로부터 안전하며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비추어 주시므로 은혜를 경험하게 되고, 여호와께서 그 얼굴을 드심으로 완전한 평강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24절은 3단어 25절은 5단어 26절은 7단어로 구성되어 이스라엘을 향하신 하나님의 복이 점점 더 확장되어가고 12지파가 빠짐없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24절에서 특히 주목할 것은 네게 복을 주시고는 יברכך(예바르카크)는 [너를 계속해서 복을 주소서]라는 의미로 여호와께서 계속해서 복 주시기를 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구약의 복(ברך)은 영적인 측면을 전제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소유, 성공, 번영, 생산, 건강과 장수와 같은 현실적 행복도 포함하고 있습니다.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וישמרך;웨이쉬레레카)는 지키다. 살피다는 뜻 שםר(솨마르)이 발전하여 조심스럽게 주의를 기울이다, 주의하여 돌보다는 의미에서 감찰하다, 돌보다는 뜻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 지키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항상 살펴보시며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켜 주실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질병이나 재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없이는 살 수 없는 백성임을 한 순간이라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누구보다 더 필요한 백성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주실 수 있는 온 우주의 주인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풍성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주실 풍성한 복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풍성한 복을 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기만 하면 넘치도록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그릇을 깨끗하고 크게 준비하면 준비한 만큼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을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시길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 주시는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믿음과 순종의 그릇을 크고 깨끗한 그릇으로 준비하는 성도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때 은혜를 받습니다. (25)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향해 얼굴을 마주하시고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은혜를 베푸시려고 얼굴을 비추셔도는 사람이 하나님의 얼굴을 외면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얼굴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실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있습니까?
여기에서 비취사라는 יאר(야에르)는 원형 오르(אור)는 비추다, 밝아지다는 뜻인데 사역형으로 쓰여 단순히 어둠을 밝힌다는 의미에서 무지했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일깨우고 절망과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자를 새로운 소망의 길로 인도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순수한 영이시므로 형체가 없으시므로 얼굴 (פנים판임)이 없으신 분이시지만, 인간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인간의 모습에 비유하여 묘사하는 신인동형동성론적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얼굴은 가시적인 형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이 그의 백성에게 향한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즉 이는 그의 백성을 보호하기 위한 하나님의 특별하신 관심과 남다른 애정을 표현한다 할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절대지존하신 하나님의 얼굴을 본 자는 즉각 사망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는 것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통해서만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기도하는 자에게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예배를 통해 성도를 만나시고 함께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기 원하는 자들은 말씀과 기도와 예배를 소홀히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삶을 라틴어로 코람데오(CORAMDEO)의 삶이라 합니다. 히브리어 אלפנ 알판아이 즉 하나님의 면전에서의 삶이 민수기의 주제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코람데오의 삶 즉 알판아이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전능하신 주권을 인정하고 무슨 일이든 하나님께서 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믿고 거룩하게 구별된 삶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하는 자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수 밝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 사람들 앞에 얼굴을 비추고 계십니다 .
그런데 은혜 받기 원하시는 사람들이 정작 하나님 앞에서의 삶인 말씀읽기, 기도, 예배자의 삶을 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기 위해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의 삶을 살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예배하기를 즐겨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차고 넘치도록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아론과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광야 길에서 먹을 수도 없고 마실 수도 없고 햇볕이나 전갈 같은 독충들의 공격과 이방인들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는 아무런 방호벽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시기 위하여 축복하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40년 광야 생활 동안 변함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배가 고파 기진할 땐 만나를 내려 먹게 하시고, 목이 말라 갈증으로 죽어갈 때 반석에서 생수를 터지게 하시고 목마름을 면하게 해 주셨습니다. 더위에 지치면 구름기둥으로 밤에 추울 땐 불기둥으로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자기 백성이 부족할 때 채우시고 필요할 때 공급하시는 은혜의 하나님이심을 믿으시면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채워주시고 공급하실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은혜 베푸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시므로 무언가 부족하고 필요하면 하나님께 나아가 구하면 무엇이든지 풍성하게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게 될 줄 믿습니다.
정말 우리의 삶에 필요한 것이 있고 갈급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 나아가 풍성한 은혜를 구하시기 원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것을 구해도 많은 것을 구해도 꾸짖거나 외면하지 않으시고 받을 만한 그릇 깨끗한 그릇 즉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구별된 삶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구하여 받음으로 영육간에 부요하고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셋째로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 (26-27)
아론과 그 아들들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해 하나님께 평강 주시기를 축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살던 애굽을 떠났지만, 젖과 꿀이 흐른다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황량한 광야길을 방황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에 평안이 없고 불안만이 가득하여 불평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불안함이 사라지고 평안함을 얻기를 원하였기에 하나님께서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의 평강을 축복하라 한 것입니다.
평강 שלום샬롬은 전쟁없는 평화, 단순한 인사말로도 사용되지만, 대부분 평화의 언약과 관련되어 사용됩니다. 평화의 언약 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사이에서도 맺어진 언약입니다.
이중 하나님과 맺어진 평화의 언약은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는 완전한 충족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여기에서는 제사장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쁨과 평화와 형통함을 누리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삶의 평안을 얻기 위해 자연으로 떠나거나 샤색과 명상을 통해 철학이나 다른 종교를 통해 마음의 참된 평안을 얻으려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다른 불안과 공포 그리고 변함없는 현실로 낙심하게 됩니다.
최근 하버드 출신 파란눈의 승려인 현각 스님이 한국 불교가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으로 타락하고 외국인 승려들인 자신들을 조계종의 장식품으로 삼은 것에 실망해서 한국을 떠나겠다고 하여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이 세상 어디에도 참된 평안이란 없습니다. 그러나 단 한곳에는 사람들이 찾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 그곳은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참 평안과 평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과 모든 문제 해결의 열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슬픔과 걱정, 불안과 공포 때문에 참평안이 없는 자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면 그곳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 평안을 맛보게 될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이 아닌 참평안, 일시적이 아닌 영원한 평안을 원한다면 하나님 안에 있는 참평안을 누림으로 어지럽고 불안한 세상에서 가장 평안하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지 않으면 축복 받은 사람들이 엉뚱하게 자신을 축복한 제사장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그에게 감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목회자나 다른 사람이 자신을 위해 기도해 주었다고 하나님 보다 목회자나 자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에게 먼저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을 무시하는 처사가 됩니다.
중보기도자가 다른 사람을 위해 중보기도했다고 성도들로부터 감사와 영광을 가로채면 그 죄가 가볍지 않기에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참중보자는 예수님 한 분 뿐이십니다.
목회자들이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도 반드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사람들 앞에 복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께 우선적으로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며 찬양하게 해야 합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무엇 보다 먼저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영광을 돌리고 찬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높임을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에 채워지는 모든 복에 대해 항상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감사의 조건들을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27절은 복의 근원이 하나님이심을 알라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축복하는 것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지만 실제로 복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짐승은 자기에게 먹이는 주는 사람을 따르고 사람은 자신에게 복을 주는 사람의 말을 따르고 복종하기 마련입니다.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복의 근원이 누구인지를 바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이 누리는 복의 근원을 바로 알지 못하니까 교회일보다 회사일이 더 중요하고 ,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보다 회사 상사의 지시 명령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오판하고, 자기 출세나 이익을 위해 세상 것들에게 충성하게 됩니다.
자신에게 물질의 축복과 사회적 성공을 주시는 분이 누구인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회사 사장같고 상급자 같지만 물질과 인생의 출세 명예 건강의 복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으로 부터 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부터 삶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일을 우선순위에 두게되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변치 않는 복의 근원이 되어 주실 줄 믿으시길 축원 합니다.
이제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해 주시기 원하실까요? 복 주시려고 안달이 나셨습니다.
첫째로 복 주시고 지키시길 원하십니다. (22-24)
둘째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할 때 은혜 주시길 원합니다. (25)
셋째로 참 평안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라 (26-27)
하나님께서는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자 즉 코람데오의 신앙 즉 알폰아이의 삶을 통해 메 순간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는 각오로 거룩하게 성별된 삶을 통해 말씀 기도 에배의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 되어 주실 줄 믿는 성도되시길 축원 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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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생명의 말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좋은 주일 주님 만나 큰 은혜의 시간 되시길 축원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설교 감사합니다.
목사님 설교 감사합니다.
복과 축복을 구분 못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면서 안타까와했는데,
목사님은 복과 축복을 구분하여 주신데 대해 큰 은혜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