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아함경 제8권
213. 법경(法經)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을 위하여 두 가지 법을 연설하리니 자세히 듣고 잘 사유하라.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眼과 色이 둘이요, 耳와 聲, 鼻와 香, 舌와 味, 身과 觸, 意과 法이 둘이니,
이것을 두 가지 법이라 하느니라.
혹 어떤 사문 바라문은
'이것은 둘이 아니다. 사문 구담이 말한 두 가지 법은 둘이라 할 수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마음대로 말하는 두 가지 법은 그저 말로만 있을 뿐이어서
물어 보아도 알지 못하여 의혹만 더할 것이니,
그것은 경계가 아니기 때문이니라. 무슨 까닭인가?
眼과 色을 인연하여 안식(眼識)이 생기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觸이며,
촉을 인연하여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受]이 생긴다.
만일 이 느낌의 발생·느낌의 소멸·느낌에 맛들임·느낌의 재앙·느낌에서 벗어남을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면,
탐욕신(貪欲身)의 촉을 심고, 진에신(瞋恚身)의 촉을 심으며,
계취신(戒取身)의 촉을 심고, 아견신(我見身)의 촉을 심으며,
또한 모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심어서 자라게 할 것이니,
이렇게 하여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모두 발생하게 되느니라.
이비설신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을 인연하여 의식이 생기고, 세 가지가 화합한 것이 촉이며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앞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
다시 眼은 色을 인연하여 안식을 일으키고,
이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이 촉이며,
촉을 인연하여 괴롭거나 즐겁거나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 생긴다.
이 모든 느낌의 발생·소멸·맛들임·재앙·벗어남에 대해서
사실 그대로 안다면, 이렇게 안 뒤에는
탐욕신의 촉을 심지 않고, 진에신의 촉을 심지 않으며,
계취신의 촉을 심지 않고, 아견신의 촉을 심지 않으며,
모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심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모든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이 소멸하면
완전 괴로움뿐인 큰 무더기가 소멸하나니,
이비설신도 마찬가지이며, 뜻과 법에 있어서도 또한 그와 같으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二一三) 如是我聞。 一時。佛住舍衛國祇樹給孤獨園。
爾時。世尊告諸比丘。當為汝等演說二法。諦聽。善思。何等為二。眼.色為二。耳聲.鼻香.舌味.身觸.意法為二.是名二法。 若有沙門.婆羅門作如是說。是非二者。沙門瞿曇所說二法。此非為二。彼自以意說二法者。但有言說。聞已不知。增其疑惑。以非其境界故。 所以者何。緣眼.色。眼識生。三事和合。緣觸觸生受。若苦.若樂.不苦不樂。若於此受集.受滅.受味.受患.受離不如實知者。種貪欲身觸.種瞋恚身觸.種戒取身觸.種我見身觸。亦種殖增長諸惡不善法。如是純大苦集皆從集生。如是耳.鼻.舌.身.意.法。緣生意識。三事和合觸。廣說如上。 復次。眼緣色。生眼識。三事和合觸。觸緣受。若苦.若樂.不苦不樂。於此諸受集.滅.味.患.離如是知。如是知已。不種貪欲身觸.不種瞋恚身觸.不種戒取身觸.不種我見身觸.不
種諸惡不善法。如是諸惡不善法滅。純大苦聚滅。耳.鼻.舌.身.意法亦復如是。 佛說此
經已。諸比丘聞佛所說。歡喜奉行。
상윳따니까야 제4권 육처를 위주로 한 가르침
S35 육처 상윳따
쌍(雙) 경1(S35:92)
Dvaya-sutta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쌍에 대해서 설하리라. … <S35:23 §3> …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쌍인가?
눈과 형색,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와 법 – 이를 일러 쌍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는 이런 쌍을 버리고 다른 쌍을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말로만 떠벌리는 것일 뿐이다. 만일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그것은 그들의 영역(경계)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Saṃyutta Nikāya 35
9. Channavagga
92. Paṭhamadvayasutta
“Dvayaṃ vo, bhikkhave, desessāmi. Taṃ suṇātha. Kiñca, bhikkhave, dvayaṃ? Cakkhuñceva rūpā ca, sotañceva saddā ca, ghānañceva gandhā ca, jivhā ceva rasā ca, kāyo ceva phoṭṭhabbā ca, mano ceva dhammā ca—idaṃ vuccati, bhikkhave, dvayaṃ.
Yo, bhikkhave, evaṃ vadeyya: ‘ahametaṃ dvayaṃ paccakkhāya aññaṃ dvayaṃ paññapessāmī’ti, tassa vācāvatthukamevassa. Puṭṭho ca na sampāyeyya. Uttariñca vighātaṃ āpajjeyya. Taṃ kissa hetu? Yathā taṃ, bhikkhave, avisayasmin”ti.
Saṃyutta Nikāya 35
Connected Discourses on the Six Sense Bases
92. The Dyad (1)
“Bhikkhus, I will teach you the dyad. Listen to that….
“And what, bhikkhus, is the dyad? The eye and forms, the ear and sounds, the nose and odours, the tongue and tastes, the body and tactile objects, the mind and mental phenomena. This is called the dyad.
“If anyone, bhikkhus, should speak thus: ‘Having rejected this dyad, I shall make known another dyad’—that would be a mere empty boast on his part. If he was questioned he would not be able to reply and, further, he would meet with vexation. For what reason? Because, bhikkhus, that would not be within his doma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