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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인가 밥주걱인가?
어제 온라인으로 시험을 보는데 곤란한 상황이 생겼습니다.
시험지 답안을 열심히 작성하는데 갑자기 묵상 내용이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요즘은 생각이 떠오를때 메모하지 않으면 잘 떠오르지 않아 놓쳐버린 묵상이 여러개 있어서 참 곤란했습니다.
그래도 시험중이라 시험 끝나면 생각나겠지 하다가 역시나... 까먹었습니다;;;;;;
뭐였지.. 뭐였더라.. 시험이 끝나고 기도후 새벽까지 고민하다가 생각이 났습니다^^
잘 갈려진 날카로운 칼은 공격용 무기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칼집에 들어가서 드러나지 않습니다. 가끔씩 칼집에서 나와도 주변에서 다칠까봐 주위에 가질 않습니다.
그래서, 칼에게 인격을 부여한다면 칼의 입장에서는 평소는 외롭습니다.
하지만, 생명이 위태로울 때 주인과 소중한 사람들을 지켜 줄 수 있습니다.
밥주걱이 있습니다. 평소에 많은 사람에게 밥을 퍼주어 나누는 모두가 좋아하는 역할을 합니다. 늘 사용하던 밥주걱이 없으면 찾게 됩니다. 항상 사람들의 곁에서 친근한 관계로 사람들을 격려하고 힘을 줍니다.
하지만, 밥주걱으로 생명을 지킬 수 는 없습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도 칼같은 사람, 밥주걱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평상시 날카로워서 그 주변에 사람이 없는 사람도 다 사명이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로인해 위기를 벗어나게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경험하고서 그를 다르게 보기도 합니다.
늘 사람들을 격려하고, 따뜻한 밥 한끼 같은 위로를 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밥풀이 묻더라도 그것으로 사람들을 먹이고, 세워주고, 힘을 줍니다.
그래서 늘 밥주걱 곁에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잘 살펴보면 의외로 칼같은 사람과 밥주걱 같은 사람이 친한 경우를 봅니다.
쓰임새는 다르지만 모두가 필요한 역할입니다. 서로의 사명을 인정해 주어야 합니다.
칼로 밥을 멉을 수 없고, 밥주걱으로 싸울 수 없는 것처럼 말이죠.
‘펑상시 건강을 챙겨주는 vs 전쟁시 생명을 지켜주는’의 개념이 아니라
‘펑상시 건강을 챙겨주는 & 전쟁시 생명을 지켜주는’ 협력의 개념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8:28
* 카카오톡 채널 '골목길 묵상'
목자의 마음
똑같은 상황인데 너그럽게 이해하거나, 질책할 수 있습니다.
상황은 같지만
1) 상대방이 처한 입장을 아느냐 vs 모르느냐
2) 내가 어떤 위치인가에 따라서 마음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2)번의 입장"에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목회자로 부르심에 순종한 이후 예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상황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예전에는 율법적인 잣대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했다면,
지금은 사랑과 이해의 마음에 좀 더 가까워 졌다고 할까요?
예를들어, 예배 때마다 늦게 나오는 성도가 있다고 칩시다.
그 성도는 매번 예배 중간, 때로는 설교 후반에 겨우 나옵니다.
같은 성도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이해하지만 매번 늦나?’ ‘한 10분만 일찍 출발하면 안되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저도 예전에는 상황을 이해는 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예배에 참석해서 잠시 얼굴만이라도 보면 좋겠다...’
‘1분이라도 참석해서 직접 얼굴보고 기도하고, 인사나누면 좋겠다...’
제가 다니는 목회대학원에서 매주 목요일 온라인 기도회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학업의 영성점수에 포함이 되고, 학교에서 저에게 시스템 운영을 맡겨주셔서 제가 출석 관리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문자를 받습니다.
“부회장님, 제가 좀 늦게 참석해요.... 제가 중간에 나가야 해요... 몇분까지 출석 인정이 되나요?”
그럼 저는 이렇게 대답을 드립니다.
“1분이라도 참석하세요. 주님께서 그 마음을 아시잖아요”
예전같으면 “최소한 30분은 참석하셔야 합니다”라고 못을 박았을텐데...
저도 요즘은 조금씩 변해갑니다^^;;;;;;;
이런 것이 목동의 마음일까요?
그래서,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양치는 목동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알려 주신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 마음을 두라. 잠언27:23
13.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5.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복음 20:13,15
* 카카오톡 채널 '골목길 묵상'
말씀으로 꺾여야 연결 된다
카타르 월드컵에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중꺾마 : 중요한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승리를 했습니다. 이것은 대결할 상대방이 있을 때 중요합니다.
하지만, 협력의 관계에 있을 때는 이야기가 좀 달라 집니다.
겨울철의 난로 연통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집이나 캠핑장에서 난로를 설치할 때 반드시 연통도 설치를 해야 합니다.
연통을 설치하지 않으면, 나무나 연탄에서 나오는 미세먼지와 가스로 인해 위험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연통을 잘 살펴보면 양쪽 끝이 조금씩 얇습니다. 왜냐면 다른 연통과 결합을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꺾이는 부분의 연결 부위는 주름이 진 부품이 필요합니다.
요즘은 처음부터 그렇게 나오지만, 예전에는 그냥 일자로 된 연통이었습니다. 그런 연통을 연결하려면 연결 부위 한쪽을 가위로 조금씩 잘라 오므려서 끼워 넣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당연히 똑같은 크기의 연통을 조립할 수 없겠지요.
초보자는 가위로 자르지 않고 억지로 끼워넣다가 손을 다치거나 우그러져서 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신앙과 인간관계도 비슷합니다.
공동체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결되는 부위에 있는 누군가의 양보가 필요합니다.
내 주장을 좀 굽히고 다른 사람을 배려해야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고 좋은 인간관계가 맺어집니다.
처음에는 ‘왜 내가 굽혀야 하나?’라고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양보해야 틈이 없이 단단하게 연결이 됩니다. 그리고, 연통 모양을 자세히 보시면 원래 모양의 연통이 굽혀진 부분을 감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내가 양보할 때 상대방이 나를 어려움에서 보호해 준다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서로의 뜻을 굽히지 않으면, 연통의 틈이 벌어져,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나오는 죄의 찌꺼기들을 밖으로 뿜어내지 못합니다.
오히려, 틈으로 다시 새어나온 죄의 찌꺼기들에 취에서 쓰러져 버릴 수 있습니다.
굽혀야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주름이 있어야 서로를 연결해 줄 수 있습니다.
*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에베소서2:21
* 카카오톡 채널 '골목길 묵상' :
정죄함은 없다
남대서양에서 쪽배를 타고 아마존 강을 향해 가던 선원들이 있었습니다. 폭풍을 만나 파선한 배에서 겨우 탈출한 선원들은 가까운 곳에 브라질이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는 아마존강 하구를 향해 노를 저었습니다.
탈출선에 실었던 얼마 안 되는 식량을 아껴먹으며 몇 날 며칠을 버틴 끝에 마침내 저 멀리 작은 언덕이 보였습니다. 이틀째 물을 마시지 못했던 선원들은 언덕에 서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마지막 힘을 짜내어 외쳤습니다.
“저희는 난파된 선원들입니다. 여기서 얼마나 더 올라가야 물을 마실 수 있습니까?”
언덕에 서 있던 사람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지금 물을 뜨세요. 여기가 아마존 강 한복판입니다.”
오랜 항해로 지친 선원들을 살릴 생명수는 배 주변에 충만했던 것입니다. 아마존 강과 바다가 이어지는 광활한 하구는 7만 평이 넘기 때문에 예로부터 바다로 착각하는 선원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우리도 이와 같은 실수를 하고 있지 않을까요? 하나님은 이미 용서하셨고, 은혜를 부어주셨음에도 인간적인 생각으로 스스로를 정죄하고, 은혜를 거부하는 것은 겸손이라는 이름의 교만함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완벽한 구원을 이루신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누리십시오. 아멘!
주님! 나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지켜주시는 주님만을 신뢰하게 하소서.
다함이 없는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의심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은밀한 선행
읽독일의 존경받는 목회자 프레드릭 오버린 목사님이 시골 여행 중이었습니다.
외딴 길가를 걷다 심한 눈보라를 만나 길을 잃은 목사님은 어딘지도 모르는 벌판에서 얼어 죽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마차가 목사님을 발견하고는 멈춰 돕기 시작했습니다.
마부는 목사님을 위해 급히 불을 피우고 따뜻한 차와 음식을 마련했고 그치지 않는 거센 눈보라를 뚫고 가까운 마을의 숙소까지 데려다 줬습니다. 마부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목사님은 감사를 표하며 마부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마부는 이름을 밝히지 않고 마차를 끌고 사라지며 오히려 질문을 던졌습니다.
“목사님은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이름을 아시나요?
그 사람의 이름을 알려주신다면 저도 제 이름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목사님은 “오른손이 하는 선행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뜻이 무엇인지를 그 마부를 만난 뒤에야 진심으로 느낄 수 있었다”라고 훗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진정한 선행에는 나의 의가 드러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마음을 따라, 하나님이 명하신 방법대로 진실된 선행을 실천하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만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하소서.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말씀처럼 조용히 도웁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끝이 없는 밧줄
독일 시골 마을의 농부 베른하르트는 어느 날 숲속을 산책하다 밧줄을 발견했습니다. 산등성이 너머까지 구불구불 연결된 밧줄은 어디서 시작됐는지 눈으로는 확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호기심이 생긴 베른하르트는 마을 남자들을 모아 밧줄이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알아보는 ‘탐험대’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순전히 호기심을 풀기 위해 남자들은 밧줄을 따라 탐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떠난 여정은 하루가 몇 주가 되고, 몇 주가 몇 달이 됐지만 누구도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을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추수의 계절도 돌아오고 있었지만 그보다는 밧줄이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아내는 것이 남자들에게는 더 중요했습니다.
무엇보다 몇 달이나 시간을 허비했는데 아무 결과 없이 그대로 돌아간다는 것은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탐험대는 자존심을 버리지 못하고 끝도 없이 이어지는 밧줄을 언제까지고 따라갔습니다.
독일의 작가 스테판 아우스가 쓴 ‘밧줄’이라는 소설의 내용입니다.
이미 하나님을 통해 얻게 된 확실한 구원을 두고 쓸모없는 호기심에 현혹되어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슬처럼 사라질 세상의 욕망을 멀리하고 확실한 구원과 나침반을 주신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행복에 집중하십시오. 아멘!
주님! 죽음 이후의 영원이 존재함을 잊지 않고 살아가게 하소서.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믿음에 어려움을 겪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하나님이 돌보신다
프랑스의 정치인 샤르니가 나폴레옹을 비판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나폴레옹이 황제로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시대였기 때문에 샤르니는 감옥에서 생을 마감하겠다고 생각해 감옥 벽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아무도 날 돌보지 않는다.’
어느 날 감옥 바닥을 뚫고 나온 작고 푸른 새싹이 샤르니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단단한 바닥을 뚫고 자란 새싹에 감동받은 샤르니는 마실 물을 아껴가며 길렀습니다. 도저히 자라날 수 없는 곳에서 어떤 꽃보다도 아름답게 자라난 새싹을 보며 샤르니의 마음은 긍정적으로 변했습니다.
샤르니는 감옥 벽면에 썼던 이전의 문장을 지우고 이렇게 적었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다.’
샤르니의 꽃은 간수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타고 귀족들에게까지 알려져 나폴레옹의 아내 조세핀까지 감옥을 찾아와 꽃을 구경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꽃을 키운 사람은 나쁜 사람일 수 없다”라며 남편을 설득한 조세핀 덕분에 샤르니는 기적처럼 석방되었고 감옥에서 키운 꽃을 옮겨 심어 평생 기르며 하나님의 은혜를 한순간도 잊지 않았습니다.
길가에 핀 꽃도 하나님은 그냥 버려두시지 않습니다. 어떤 피조물보다 나를 가장 아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한순간도 잊지 마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은 결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심을 알게 하소서.
힘든 순간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숫자로 나타내라
15개의 숫자를 무작위로 섞어서 잠시 보여준 뒤에 순서대로 다시 적는 실험이 있었습니다.
참가자들은 대부분 10개 이상을 맞출 수 있다고 자신했지만 말처럼10개 이상을 맞추는 사람은 1%에 불과했습니다.
이 실험처럼 사람의 기억력은 매우 부정확함에도 많은 이들이 어떤 일이든 ‘제대로 기억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과학적인 수사와 CCTV의 보급으로 최근 밝혀진 바에 따르면 목격자의 증언이 사실과 다를 확률은 70%나 된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잘못 증언한 증거가 있음에도 사람들은 “그럴 리가 없다”, “내가 똑똑히 봤다”라고 주장한다는 사실입니다.
기억력의 판단 오류는 실생활에도 이어집니다.
미국 사람들은 매달 쓰는 카드 대금을 30%나 적게 기억하고 있다고 합니다. 알코올 중독자들은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2배를 마시고, 다이어트 중인 사람들도 음식 일기를 적을 때 생각보다 많은 양을 먹고 있다는 사실에 놀란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일에 나는 얼마나 자주, 그리고 오래 헌신하고 있습니까? 기도와 말씀, 그리고 전도를 위한 교제의 시간을 하루에 얼마나 보내고 있는지 체크해보고, 더 많은 시간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드리십시오. 아멘!
주님! 주님과 함께할 시간을 더욱 열망하게 하소서.
주님과 충분한 교제의 시간을 가지고 있는지 시간을 체크해봅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미리 보낸 편지
세계 2차 대전 때 프랑스 공군으로 입대한 병사가 있었습니다.
총탄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몰랐지만 병사는 몸을 아끼지 않고 최전선에 나섰습니다.
병사의 유일한 안식처는 한 달에 2, 3번 도착하는 어머니의 진심 어린 편지뿐이었습니다.
병사는 자신의 희생이 사랑하는 어머니를 지킬 수 있다는 마음으로 두려움 없이 전투에 나섰고 가장 높은 등급의 ‘레지옹 도뇌르 훈장’까지 받았습니다.
전역을 하고 집에 돌아오니 사랑하는 어머니는 입대 후 얼마 뒤에 세상을 떠났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위암 증세가 심각해진 어머니는 전쟁터에서 고생하는 아들을 위해 무려 2백여 통의 편지를 준비해 미리 부쳤던 것입니다.
프랑스의 세계적인 소설가 로맹 가리가 훈장을 받고, 전역 후 외교관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생전에 큰 사랑을 보여줬던 어머니 덕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어머니가 미리 편지를 썼듯이,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성경이라는 영원하고 확실한 사랑의 편지를 남겨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가장 확실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인 말씀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아멘!
주님! 유일한 구원의 방법인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사랑을 깨닫게 하소서.
주님이 구원해주신 생명을 주님을 위해 사용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과 책임감
하버드 의대 연구원 질 볼트 테일러는 성공을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중요한 연구에 매진하면서도 강의를 하러 전국을 다녔고, 학술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논문 연구도 쉬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에 눈을 뜨자 시야가 뿌옇고, 사고능력이 멈췄습니다. 지나친 혹사로 뇌출혈이 일어나 중추 기능이 저하되어 뇌가 기능을 멈춘 상황이었지만 거짓말처럼 어머니의 휴대폰 번호만은 떠올랐습니다.
어머니의 빠른 조치로 테일러는 목숨을 건졌지만 뇌에 큰 손상을 입어 오랜 기간 재활을 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제대로 읽지도, 쓰지도 못하는 처지가 비참해 눈물을 흘리는 딸에게 어머니는 따스한 위로를 전했습니다.
“엄마가 옆에서 평생 보살펴줄게.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할 테니 걱정하지마.”
말처럼 8년간 곁에서 재활을 도운 어머니의 헌신으로 테일러의 뇌는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사고 이전의 일들을 다시 감당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됐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기에 8년의 세월을 헌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이보다 더 위대하며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독생자를 주시면서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신 그 사랑을 외면하지 말고 돌아오십시오. 아멘!
주님! 저를 구원하기 위해 모든 것을 버리신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게 하소서.
끝까지 나를 포기하지 않으신 주님의 사랑처럼 영혼들을 포기하지 맙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사랑의 약속
미식축구팀 버팔로 빌스의 대표 선수 크리스 스필먼이 돌연 감독을 찾아와 당분간 은퇴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아내가 암에 걸려 투병 중입니다. 아프고 힘들 때 언제나 곁에 있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지금은 무엇보다 그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근육이 찢어지는 부상도 참고 팀을 위해 헌신했던 선수였기 때문에 감독, 동료, 팬들은 그의 아내를 향한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의 은퇴로 팀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거두고 있던 시즌 중반, 한 기자가 지금이라도 복귀할 의사가 있냐고 물었습니다.
“내가 팀을 위해 희생했던 것은 팬들과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 못한다면 다시 미식축구를 할 수도 없습니다.”
크리스는 아내의 항암치료를 응원하기 위해 삭발까지 했습니다.
결국 아내는 세상을 떠났지만 크리스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내의 곁에 머물며 약속을 지켰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했던 크리스처럼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주셨습니다.
세상에 충만한 하나님의 귀한 사랑을 외면하지 말고 약속을 지키신 구원의 은혜를 감사로 받으십시오. 아멘!
주님! 끊을 수 없는 주님의 사랑만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님께 드린 서원을 최대한 지킵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어린이를 위해 헌신한 교육자
평생을 어린이를 위한 교육에 헌신한 위대한 교육가 페스탈로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의 일입니다.
스위스 정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육가인 페스탈로치의 사상을 기리기 위해 동상을 제작했습니다.
조각가는 온화한 표정의 페스탈로치가 무릎을 꿇고 어린이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도안을 그렸는데 페스탈로치 일가는 ‘그의 교육이념과는 차이가 있다’며 반대했습니다.
친지들에게 불만사항을 물으며 페스탈로치의 삶을 들었던 조각가는 사람들이 반대한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페스탈로치는 ‘일평생 어린이를 위해 헌신한 교육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어린이를 위해 헌신한 교육자’였던 것입니다.
조각가는 페스탈로치가 어린이와 함께 하늘을 바라보는 구도로 동상을 제작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어린이를 성장시키고자 했던’ 페스탈로치의 정신이 잘 드러났다고 사람들은 평가했습니다.
어린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세상의 미래입니다.
장래 우리 가족과 사회와 공동체와 나라와 세계의 일꾼입니다.
예수님처럼 일찍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총을 받으며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더욱 많아지도록 관심을 갖고 지원과 기도해주십시오. 아멘!
주님! 자라나는 다음 세대들이 믿음 안에서 바르게 성장하게 하소서.
교회 교육 부서를 위한 행사에 헌신하며 후원합시다.
<김장환 큐티365/나침반출판사>
전갈과 개구리
‘전갈과 개구리’라는 우화가 있습니다. 개구리가 강을 건너려는데 헤엄을 치지 못하는 전갈이 나타나 자신을 등에 태워달라고 부탁합니다.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워줬습니다. 그런데 강 한가운데를 지나는 도중 전갈이 개구리에게 독침을 쐈습니다. 개구리는 쓰러지며 물었습니다. “내가 죽으면 너도 죽을 텐데 왜 독침을 쏘았냐.” 죽어가는 개구리에게 전갈이 말했습니다. “이게 내 본성이야.”
죽을 줄 알면서도 독침을 쏜 전갈의 행동이 참 안타깝습니다. 전갈의 변명 아닌 변명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우리 역시 주님 앞에서 전갈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인 중에 오이 알레르기를 가진 분이 있습니다. 오이를 먹으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몸에 두드러기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이런 존재입니다. 죽는 줄 알면서도 하나님을 거절합니다. 인간의 본성은 결국 죄를 짓고 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쩔 수 없는 인간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오늘 더욱 새롭습니다.
박지웅 목사(내수동교회)
지금 무엇을 보고 있나요
추운 겨울, 새들이 먹을 것을 찾아 앙상한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무에는 먹을 것이 하나도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먹이를 찾지 못한 새들이 다른 곳을 향해 날아가는데 저 멀리 달팽이 한 마리가 새들이 떠난 나무를 향해 힘겹게 기어오고 있습니다. 날아가던 새가 그 모습을 보고 소리칩니다. “달팽아, 나무 위에는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으니 수고하지 말고 돌아가.” 그러자 달팽이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응, 그건 나도 알아. 그런데 내가 저 나무 위에 올라가 있을 때 쯤이면 열매가 달려 있을 거야.”
인간은 두 가지 눈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보이는 것을 보는 눈과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살아갑니다. 믿음의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며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보면서 살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살고 있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도 행복도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과 행복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지금 무엇을 보고 계십니까.
이장균 목사(순복음강남교회)
조침문
조침문(弔針文)이라는 고대 수필이 있습니다. 일찍이 문벌 좋은 집으로 출가했다가 슬하에 자녀도 없이 과부가 돼 바느질을 낙으로 삼던 유씨가 시삼촌에게서 얻은 마지막 바늘이 부러지자 그 섭섭한 심회를 누를 길이 없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금년 시월 초십일 술시(戌時)에, 희미한 등잔 아래서 관대(冠帶) 깃을 달다가, 무심중간(無心中間)에 자끈동 부러지니 깜짝 놀라와라. 아야 아야 바늘이여, 두 동강이 났구나. 정신(精神)이 아득하고 혼백(魂魄)이 산란(散亂)하여, 마음을 빻아 내는 듯, 두골(頭骨)을 깨쳐 내는 듯, 이윽토록 기색혼절(氣塞昏絶)하였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만져 보고 이어 본들 속절없고 하릴없다.”
유씨 부인 바늘 같지는 않아도 우리 삶을 위해 희생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칫솔도 그중 하나입니다. 비록 우리가 샀고 우리의 힘으로 이를 닦기는 하지만 더러운 치아를 우리가 사는 날까지 지켜 주는 소중한 존재입니다. 이렇게 우리 삶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라보아야 할 것들로 가득합니다. 우리 삶을 위해 헌신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알고 산다면 우리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게 될 것입니다.
조주희 목사(성암교회)
부활 화분
부활절이면 모든 교회는 부활 달걀을 나눕니다. 중세기 수도원에서 부활절 아침에 수도사들이 달걀을 먹은 데서 시작됐다는 유래도 있고,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졌던 구레네 사람 시몬이 달걀 장수였다는 데서 비롯됐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달걀 껍질은 딱딱한 무덤을 상징하고 그 딱딱함을 뚫고 새 생명이 탄생하는 것이 부활을 연상하기에 참 좋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생명력 있는 달걀을 나누지 않고 삶거나 구운 달걀을 나누는 것일까요. 아마 편의성 때문이겠지요. 그래도 생명력이 사라져 버린 달걀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부활 달걀 대신 ‘부활 화분’을 나누고 있습니다. 나눠준 부활 화분을 한 해 동안 길러서 다음 부활절에 ‘부활 화분 콘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이번 부활절에도 작년에 나눈 부활 화분이 많이 출품됐습니다. 조그만 화분을 드렸는데, 큰 화분으로 변해서 왔습니다. 주님을 대하듯 했더니 이렇게 자랐노라며 쑥스럽게 고백하는 분도 있습니다. 성도들이 가져온 부활 화분으로 교회는 꽃밭, 행복한 생명의 꽃밭이 되었습니다.
김종구 목사(세신교회)
제비뽑기
고대 국가에서 첫 왕은 신화적인 방식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왕의 권력은 신적인 절대 권력이 됩니다. 그와 비교하면 이스라엘의 첫 왕은 아주 흥미로운 방법으로 결정됩니다. 그것은 바로 제비뽑기입니다. 제비뽑기는 그저 복불복으로 운명에 맡기는 게 아닙니다. 제비뽑기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며 또한 인간이 직접 참여해서 선택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투표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뜻에 맞는 지도자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하나님 뜻에 맞는 지도자일까요.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 자신을 잘 아는 것입니다. 곧 겸손이지요. 겸손한 사람이라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람을 존중할 수 있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하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때 선택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교만해졌을 때 하나님께 버림받았습니다. 사무엘은 사울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을 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죄와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버렸기 때문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삼상 15:23, 새번역)
서재경 목사(수원 한민교회)
지도와 나침반
지도와 나침반은 길을 찾을 때 꼭 필요한 도구입니다. 현재 위치와 방향을 알려주는 유용한 기능이 있지만 각각 사용처가 다르기도 합니다. 산에서 길을 잃었다면 지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사막에서 길을 잃었다면 나침반이 필요합니다. 사막은 지형이 계속 바뀌기 때문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지도와 나침반이 필요할 때가 많습니다. 한 치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기후환경의 문제, 전쟁의 위기, 인공지능(AI) 기술의 빠른 발전은 우리의 내일을 가늠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뭔가를 결정하고 선택을 해야 합니다. 무엇을 보고 가야 할까요.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빌 3:14)
사도바울은 부르심을 따라 살았습니다.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언제나 푯대를 향하고 있었고 가장 고상하고 위대한 소명을 따라 살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의 지도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는 나침반이 되어 주십니다. 지도와 나침반에 주목하며 영적 순례의 길을 힘차게 걸어가시길 축복합니다.
안광복 목사(청주 상당교회)
용서
오염된 옷은 벗어서 세탁을 하면 됩니다.
찢어진 옷은 수선을 하면 됩니다.
수선할 범위를 넘어서면 버리고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욕심과 미움, 다툼으로 얼룩져 오염된 옷은 내 스스로 깨끗하게 세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찢어진 옷은 내 스스로가 아닌 전문가에 맡겨야 합니다.
때로는 그 옷을 버리고 새 옷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도 욕심, 미움, 다툼은 우리 스스로 추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타인으로부터 받은 상처와 그로인한 마음의 아픔은 스스로 해결 할 수 없는 때가 많습니다.
전문가를 찾아가야 합니다. 좋은 전문가를 만나서 상담을 하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상처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제대로된 길을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그 전문가와 전문가를 통한 방법을 알려주시는데,
전문가는 예수 그리스도 이시며,
해결방법은 용서... 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위로를 받으시고, 예수님을 통한 용서로 상처를 벗어버리고 새 옷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 옷을 입을 자격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랑합니다^^
☞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모든 사람을 용서하오니 우리 죄도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하라. 누가복음11:4
☞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골로새서3:9
☞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고후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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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우선순위
한 경제학과 교수가 마지막 강의 시간에 탁자 위에 유리병을 올려놓고 골프공과 자갈, 모래 등도 늘어놨습니다. 교수는 먼저 골프공을 유리병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물었죠. "유리병이 가득 찼나요." "가득찼습니다"라는 대답이 나오자 교수는 자갈로 골프공 사이를 메꾸었습니다.
"이제는 가득 찼을까요?" 또 "네"라는 대답이 나왔죠. 하지만 교수는 모래를 넣어 나머지 빈틈을 채 웠습니다. "이제는 유리병이 가득찼겠죠?” 학생들의 대답이 없으니까 교수는 유리병에 음료를 따랐습니다. 넘칠 것 같았지만 음료가 모두가 그 사이로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이 의아한 표정을 짓자 교수가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이 유리병은 여러분의 인생을 뜻합니다. 골프공은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합니다. 가족, 자식, 건강, 친구. 이들은 우리의 인생을 풍요롭게 하죠. 여러분 곁에 무엇하는 남지 않은 때가 오더라도 말이죠."
"자갈은 그 밖의 것들입니다. 여러분의 직업과 집. 취미 같은 나름대로 의미있는 것입니다. 모래는 인생의 일부분이며 사소하고 자잘 한 일들입니다.“
여전히 아리송한 표정을 짓는 학생들에게 교수는 이야기합니다.
"이 유리병에 담는 순서를 거꾸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모래를 먼저 넣는다면 자갈이나 골프공이 들어갈 자리가 없겠죠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소하고 자잘한 일들에 시간과 에너지를 탕진하면 정말 중요한 일을 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까 제일 먼저 골프공부터 신경쓰세요. 자녀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가끔 배우자와 나가서 근사한 식사를 하세요. 그렇게 해도 나머지 일을 할 시간은 충분합니다. 우선순위만 잘 정한다면 나머지 일들은 자갈, 모래처럼 공과 공 사이로 알아서 자리잡으니까요”
정말로 중요한 것이 있고, 당장에는 중요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이 대부분입니다. 우리의 삶과 신앙 속에서도 정말 중요한 것을 먼저 해야 합니다.
11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한 해가 지나기 전에 정말 중요한 것을 중요한 자리에 되돌려 놓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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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마음
어제 퇴근후 아들들의 건강을 위해 상체 근지구력 운동을 했습니다.
저희 아들들은 서로 다툴 경우 건강을 위해 1년에 한 두 차례 정도 근력훈련을 합니다.
평상시에는 기회가 없었는데, 엄마가 다투지 말라고 충고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빠 앞에서 다투길래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훈련 방법은 간단합니다.
1. 양 발을 어깨 넓이 만큼 벌리고 선다.
2. 양쪽 팔을 중력과 수직 방향으로 올린다.
3. 이 때, 상박부를 양쪽 귀에 밀착 시키면 효과가 더욱 좋습니다.
5분~10분 정도면 운동효과가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중력과 반대 방향의 자세라서 쉽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자세가 유지되다가 팔이 내려가고, 양 손을 잡아보고, 몸이 뒤틀리고, 기댈곳을 찾고, 헐리웃 액션으로 팔을 잠깐 내려보기도 했다가... 경험해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겁니다.^^
아빠 입장에서는 이렇습니다.
처음에는 5분만 제대로 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고 장난치는 바람에 10분으로 늘었습니다.
그리고, 뉘우치지 않고 불평을 해서 15분으로 늘었습니다.
또, 눈속임을 하다가 걸려서 20분으로 늘었습니다.
그런데, 10분이 지나자 5분씩 늘어날 때마다 아빠 마음도 좋지는 않았습니다.
운동이긴 하지만 애들이 힘들까봐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자세로 시간에 맞추면 끝나는데 장난인줄 알고, 불평하고, 눈속임하고, 아빠는 제대로된 운동을 통해서 아들들의 체력을 길러주고 싶은데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시기 위한 과정으로 훈련의 시간이 필요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평소처럼 자신들의 생각대로 해석했습니다.. 조금 힘든 상황에 마주하자 불평을 합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은 잘하고 있다고 하나님의 눈을 속이려고 했습니다.
딱~~!!! 걸린 겁니다. 훈련기간이 늘어나버렸습니다.
우리들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은 없을까요?
여호와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하오리니 주는 기사를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행하셨음이라. 이사야 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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