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워커' 별명 교황 있었다.가톨릭 2000년 바꾼 '촌뜨기'
#궁궁통1
‘조니 워커’라고
아시나요?
스코틀랜드산 위스키의
상품명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톨릭 역사에서
‘조니 워커’란 별명을 가졌던
교황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요한 23세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시골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친근하고 서민적이었으며 탈권위주의적이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개혁 역시 그런 배경에서 나왔다.>
한국인에게는
꽤 낯선 교황입니다.
그런데
가톨릭 역사에서는
아주 큰 획을 그었던
인물입니다.
요한 23세는
1958년부터 63년까지
6년간
가톨릭의 최고 수장인
교황직을 맡았습니다.
그가 교황일 때
가톨릭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했습니다.
2000년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큰 개혁’으로
평가받는 일입니다.
교황이면
그 정도의 개혁은
손쉬운 일
아니냐고요?
아니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바티칸의 개혁에는
크나큰 저항이
따랐으니까요.
#궁궁통2
요한 23세는
시골 농부의
자식이었습니다.
13남매 중
셋째였습니다.
외모도
눈에 띄었습니다.
뚱뚱하고,
키도 작고,
머리는 아주 컸습니다.
거기에다가
뭉툭하고 큰 귀는
종종
웃음거리였습니다.
<요한 23세는 교황으로 선출된 초기에는 외모 때문에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그가 가톨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개혁을 이루어 내리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그가
교황으로 선출된 후에
처음으로
바티칸 베드로 성당의 발코니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
사람들은 웃었습니다.
우스꽝스러운 외모에
시골 촌뜨기의 느낌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런
요한 23세가
가톨릭 역사의 큰 물줄기를
바꾸는,
혁명적인 일을 할 줄은
당시엔
아무도 몰랐습니다.
#궁궁통3
역사적으로 볼 때
교황은 원래
로마의 주교였습니다.
로마 제국의 강성과 함께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의 중심이
됐습니다.
그렇게
2000년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0년에 걸쳐
‘이탈리아 중심’의 시스템이
교회 안에
강고하게 구축돼
있었습니다.
당시에
교황을 뽑는 추기경단은
모두 70명이었습니다.
그중 다수가
이탈리아 출신이었습니다.
추기경단은
이탈리아인만 계속
교황으로
뽑으려고 했습니다
요한 23세는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런
시스템을 부수고자
했습니다.
가톨릭이
‘그들만의 리그’가 아닌
‘모두의 리그’가 되기를
바랐으니까요.
<요한 23세 교황은 로마와 바티칸 중심으로 구축된 가톨릭의 중심 체제를 바꾸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는 우선
추기경단 수를
70명에서
두 배로 늘렸습니다.
새로운 피를 수혈하고
기존의 세력을
쪼그라뜨리기 위한
포석이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주교들에게
75세가 되면
사표를 제출하게끔
했습니다.
종신직처럼 생각하던
그들에게
졸지에
은퇴 정년이 생긴 겁니다.
당시
교황의 개혁 조치에
반발하던
한 추기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로마의 주교(교황)도
나이가 되면
사퇴하는가?”
그만큼
바티칸 내부의 반발이
거셌습니다.
요한 23세의
개혁으로 인해
훗날
폴란드 출신인 요한 바오로 2세,
독일 출신인 베네딕토 16세,
아르헨티나 출신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탈리아인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궁궁통4
요한 23세가
교황이 될 때만 해도
가톨릭 미사는
모두 라틴어로
봉헌됐습니다.
대부분 신자는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요한 23세 교황의 개혁 이전에는 가톨릭의 미사가 라틴어로 진행됐다.
평신자는 알아듣지 못하는, 라틴어 미사가 사제들의 전유물이란 지적이 많았다. >
그런데도
로마에 뿌리를 둔
라틴어가
가톨릭 미사를 지배하는
언어였습니다.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걸 바꾸었습니다.
세계 모든 나라가
자국의 언어로
미사를 드릴 수 있게
했습니다.
당시에는
이게
혁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전 세계 성당에서
미사의 풍경이
달라졌으니까요.
요한 23세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과
자주 만났습니다.
공장의 노동자를
만나기도 하고,
교도소를 찾아가
재소자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요한 23세는
늘 걸어 다녔습니다.
그래서
‘조니 워커(Johnnie Walker)’라는 별명이
그에게 생겼습니다.
그가 쓰던
교황의 이름이
‘요한(John)’이었으니까요.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런 그를
성인의 품에 올렸습니다.
요한 23세가
성인의 품에 오를 때,
무척 이례적으로
기적 심사는
생략됐습니다.
가톨릭에서
성인의 품에 오를 때는
기적이 일어난 예가
있어야 하거든요.
요한 23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개최한
공로만으로
성인품에 오르기에
충분하다는 판단을
받았습니다.
어찌 보면
제2차 바티칸 공의회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요한 23세 교황은 낮은 곳으로, 현장으로 몸소 찾아가는 교황으로 유명했다.
한 교도소에서 그는 "여러분이 나를 찾아올 수 없기에, 제가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철옹성처럼
강고하기 짝이 없던
바티칸의 기득권과 장벽을
허물고
2000년 역사의 가톨릭을
리뉴얼했기 때문입니다.
요한 23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장
닮고 싶어 하는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런
개혁의 원동력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조니 워커’라는
별명 속에
그 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출처: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