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고라 적고 보니 좀 그렇다. 논문 분위기에 차마 받잡기 민망. 사전에 없는 미고(微察.미미한 고찰)도 감당키 어려울 터인데...
아무튼 얼마 전(2021.02.18) 서울신문에 눈길을 끄는 기사가 하나 떴다.
우리말로 주고받는 70분짜리 오페라…대구오페라하우스 가족 오페라 ‘마술피리’
대구오페라하우스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가족 오페라 ‘마술피리’를 24일부터 공연한다... 2016년부터 가족 오페라로 재해석해 선보여 어린이들도 환상적이고 동화 같은 줄거리를 만나고, 더욱 극적이고 다채로운 음악으로 처음 오페라를 접하는 이들도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대구시민주간을 축하하는 공연이기도 해 코로나19 시기에도 많은 시민들이 문화를 즐길 수 있도록 전석 1만원에 25일부터 28일까지 네 차례 공연한다.
우리말로 주고받는 오페라. 줄여서 우리말 오페라.
평소 오페라에 관심이 많은 낭만배달부가 ‘우리말 오페라’란 용어에 꽂혔다. 뭐지? 레치타티보 또는 아리아, 혹은 그 둘 다 우리말로 번역해 올린 작품? 뭐, 두 마디 여섯 음절이 그리 어려운 말은 아니니까.
해당 오페라를 이해하려면 포탈 자료, 너튜브 영상, 심지어 대본까지 적잖은 공을 들여야 한다. 맹탕 빈손으로 앉으면 대체 뭔 일이래? 내용을 파악할 도리가 없다. 따라서 우리말 공연 소식은 반갑기 그지없다.
우리말 공연은 예전에도 가끔 있었다. 가깝게는 2015년 7월 흰물결아트센터가 <마술피리>를 올렸고, 2011년 1월 오티엠컴퍼니가 세실극장에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올린 바 있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고.
우리말 공연에 대한 반응?
당연히 엇갈린다. 국적불명의 오페라가 돼버렸단 반응과 이해에 도움이 되었다는 반응으로. 관람 후기의 댓글에선 (수준/품격을 논하기에 앞서) 주로 우리말 공연의 실효성 논쟁을 벌이고 있다. 갑론을박 톤을 높이고 있는 이들은 전문 지식&용어로 무장한 마니아들로 보인다.
그건 그렇고 우리말 오페라. 우리말... 오페라... 왠지 껄끄럽다. 따로 떼놓으면 전혀 안 불편한데, 붙여 놓으니 살짝 불편하다. 억지춘향으로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우리 + 오페라〕였다면 안 그럴 텐데. 그럼 우리말 오페라가 아닌 우리 오페라(이하 K-오페라)는 없나?
있다. 그것도 많이.
효시는 현재명이 5막으로 창작한 <춘향전>이다. 1950년 5월 부민관(지금의 국립극장)에서 올려졌다. 이듬해 10월에는 김대현의 <콩쥐팥쥐>, 1954년에는 현제명의 두 번째 작품 <왕자호동>이 공연되었다. 이후에도 공석준의 〈결혼〉, 이영조의 〈처용〉 등이 우리 예술인들에 의해 무대에 올랐으니, 이것들이야말로 가장 소극적 의미(빼박?)의 K-오페라다.
한국적 소재로, 한국인이 작곡하고, 한국배우가 공연한 오페라.
이런 것들만 K-오페라일까? 만약
한국적 소재를 외국인들이 만들면?
이국적 소재를 한국인들이 만들면?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K-POP. 그와 연관된 퀴즈로 K-오페라의 정체성을 짚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QW28YKqdxe0
NiziU 『Make you happy』 M/V
퀴즈를 풀기 위해 잠시 니쥬(NiziU)를 소개하면
2020년 6월 30일 한국&일본에서 동시 데뷔한 9인조 걸그룹이다. 박진영의 JYP 엔터가 K-팝 글로벌화를 위한 각개전략의 일환으로 서바이벌 프로그램 ‘Nizi Project’를 통해 인원을 선발했다. 타깃을 일본 시장으로 설정한 만큼 멤버 전원을 자국인들로 구성했고, 소니뮤직과도 협업했다. 첫 미니음반 《MAKE YOU HAPPY》의 공식 뮤비는 (2021.02.22. 기준) 너뉴브 조회 수 2억3천만을 넘어섰고, 우리말 버전 뮤비도 조회 수 4천만을 넘었다.
동영상 속 니쥬의 음악은 K-POP인가 J-POP인가?
K-POP이라하기엔 전원 일본 멤버에, 활동무대가 일본이란 점이 걸린다.
J-POP이라하기엔 소속사가 한국에 있고, 트레이닝 과정이 한국식이란 점이 걸린다.
그럼 K&J-POP? 이도 저도 아니면 글로벌 짬뽕-POP??
쉽지 않은 퀴즈다. 몇 개 예를 더 가져와보자.
2003년 미국 노스리지 캘리포니아주립대가 우리의 심청전을 재해석한 퓨전연극 <심청>을 들고 방한했다. 교포 교수 한 명이 기획에 조언을 주었다지만 스태프&배우 모두 남의 나라 사람들이다. 창극도 아니고 판소리는 더욱 아닌 퓨전 <심청>, 이 작품은 K-연극인가?
1986년 한국의 유니버설발레단은 창작 발레 <심청>을 발표했고, 뉴욕의 링컨센터 등 해외 13개국에서 200회 이상 무대에 올렸다. 연출은 러시아 마린스키 발레단에서 초빙한 올레그 비노그라도프다. 이 창작 발레 <심청>은 K-발레?
장르를 불문하고 종합예술작품의 정체성(국적)을 따지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다. 모티브가 되는 근원 작품/사상/설화 등을 따져야 하고, 기획부터 제작까지 스태프와 공연자들의 출신을 따져야 하고... ...
오페라로 폭을 좁혀도 쉬운 일이 아니다.
오페라는 1영감 있는 감독의 지휘 아래, 2화려한 무대장치를 배경으로, 3뛰어난 성악가들이, 4적절한 곡조를 연주하는, 5장중한 선율에 맞추어, 6문학적 사상/감성이 깃든 내용을, 7예술적 대사/노래로 관객을 홀리는 예술 장르다.
밑줄의 모든 조건을 우리 예술(인)으로 충족하면 당연히 빼박 K-오페라다. 조금 양보하면 두어 가지가 빠져도 K-오페라로 볼 수 있다. 단, 1의 감독과 4의 곡조 그리고 6의 내용은 한국인이고 한국적인 것이어야 한다. (지극히 개인적 견해임)
우리말 오페라에 생소하고 어색한 느낌을 갖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우를 바꾸어 생각해보자. 우리에게도 오페라와 유사한 형식의 창극이 있는 바, 창극 <심청전>이 외국 배우들에 의해 현지 언어로 공연 중이라 가정해보자. 자국의 언어로 불리어지는 한국의 판소리에 현지인들이 느낄 당혹감이 상상되지 않는가. 이런 당혹감은 이미 판소리를 접해본 이들조차 비껴가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말 오페라’에 당혹감을 느끼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예술인들은 왜 어색하고 정체성 애매한 우리말 오페라를 시도하는가.
낭만배달부는 나름의 힌트를 (한때 수많은 움짤을 유발했던) 산수유 광고 카피에서 얻어 보았다. “오페라, 정말 좋은데...어떻게 설명할 방법이 없네.”
정말 좋음에도 불구하고 (대중과 유리된 채) ‘그들만의 오페라’가 돼버린 현실이 안타까운 나머지 시도해보는 것이 아니겠는가.
실효 논쟁?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고. 뜨거운 가슴으로 시도해보는 열정 앞에서 그런 게 무슨 필요가 있을까. 당장에야 개그 혹은 코미디로 보일 수도 있겠으나, 그런 것들이 모이고 모여 밑거름이 되는 것 아니겠는가.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네, 수원왕갈비통닭입니다.”
영화 <극한직업>에서 고반장 류승룡이 던진 맛깔난 대사.
갈비면 어떻고 통닭이면 어떠랴. ‘이런 맛’만 낼 수 있다면.
K-오페라가 ‘이런 맛’ 낼 수 있는 날이 오길 손꼽아 기다려본다.
첫댓글 쏙쏙 이해가 되는 예시들에 '맞네.그러네~' 하면서 저 또한 음악은 듣는 사람이 좋으면 되지 또 뭣이 중헌디~~^^
왕갈비 통닭이 먹고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