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주니어를 데리고 동강으로 향했습니다.
11월부터 이어진 사고들이 마무리가 되는 것 같기도 해서, 그리고 2월에 이어진 연속 빵꾸때문에 심란해진 기분도 달래고자...
사실, 밤 늦게 가기에는 꽤 무서운 산길입니다.
그래도 아침의 산공기를 마시며 유유자적 술한잔 하는 기분을 꼭 맛보고 싶어서 무리해서라도 금요일에 들어갑니다. :)
예상 도착시간이 거의 밤 10시로 나옵니다만, 저 지점부터 목적지까지의 길이 산길이라서 내비게이션이 거의 한시간을 예상시간으로 잡기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좀 익숙해 져서 30분이면 끊기는 합니다만... 마나님이 같이 타고 있었다면 뒤에서 속도를 줄이라고 계속 압박을 넣었을겁니다. 하하.
늦은 저녁을, 간단히 라면으로 때웁니다. 맛있는 치킨도 곁들였으니 억울하진 않겠죠. :)
그리고 다음날입니다.
사실, 날씨 걱정을 좀 했습니다.
워낙 종잡을 수 없는 날씨를 보여주는 산동네이기도 하거니와, 수/목요일에 눈과 비가 많이 왔다그래서요.
다행히도 저희가 가는 날은 땅이 거의 말라있었고, 일기예보도 금토일 맑음으로 좋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산자락에 안개가 올라타고 있네요. 이 모습을 보려고 이 깊은 곳을 들어오는거지 싶습니다.
안개를 보며, 아침 찬공기를 맞으며 커피를 한잔 마십니다.
아홉시쯤 되니 아들녀석이 나옵니다. 뜬금없지만, 떡볶이를 해먹기로 하고 이거저거 다 때려넣고 아침식사를 합니다.
그리고 강가로 나갔습니다.
와..............
날씨가 정말..........
시리도록 맑았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물감을 펴바른 것 같은 파란 하늘입니다.
그 와중에 달도 떠있네요.
동쪽 하늘에 걸려있는 저 희끄무레한건 하현달입니다.
구름 한 점 없는 더없이 파란 하늘에, 그믐을 향해 달려가는 달이 걸려있는, 기묘한 광경입니다.
그 파란 하늘을 이불삼아 강가의 자갈밭에 누워봅니다.
바람은 차갑지만, 하늘이 워낙 맑아서 겨울은 그늘 속으로 자리를 피했나봅니다. 햇살이 닿는 곳은 아직 이르지만 봄날의 느낌이 납니다.
음... 술취해서 뻗어있는 거 아닙니다. 강변에 떠내려온 변사체도 아니고요.
햇빛 받으며 누워있을 뿐입니다. :)
두 달 정도 지나서 날이 조금 더 따뜻해지면 저 강가에 의자 하나 박아놓고서는 물에 발을 담그고 한 잠을 청해보겠지만, 바람이 차갑듯 물도 차갑습니다. 아니, 이동네의 물은 그냥 차갑다가 아니라 아예 얼음장입니다. 자갈밭에서는 봄냄새가 나는데, 그래도 물살에는 아직 한겨울이 묻어있습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서 아무 소리도 안날 것 같지만...
물이 자갈을 어르는 소리,
숲에서 들려오는 이름모를 새소리,
그 소리들이 절벽에 울려서 들려오는 소리,
자갈밭에 누워서 귀를 기울여 보면 의외로 소란스럽습니다. 이 소란스러움과 친구가 되는 법을 아이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만 저조차도 친구가 되기는 고사하고 그 옆에서 겨우 자리잡고 서성이는 수준이라 아이에게 그걸 가르쳐주기가 참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갈을 주워들고 물수제비 뜨는 방법이라도 알려주려고 했지만, 운동신경이라고는 개나 줘 버린 것 같은 제 몸뚱이는 그 자갈을 냅다 물속 바닥에 꽂아버립니다. 자기는 잘 할 수 있을거라면서 아들이 돌을 집어들고 던져보지만, 그 피가 어디가겠냐 싶습니다. 껄껄 웃으며 다시 돌바닥에 눕습니다.
토요일 낮에 지인 분의 가족이 도착해서 같이 시간을 보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서로의 삶의 결이 다르고 방향도 다르고 가지고 있는 아픔도 모두 다르다는 것을 깨달아가면서 누군가와 친구가 된다는게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결과 방향이 비슷하고, 같은 아픔을 공유하는 사람과는 설령 처음보는 사람이라도 깊은 속내를 터놓게 된다는 것도 배우게 됩니다.
게다가 저쪽 집의 아들과 저희 아들은 같은 나이, 둘이서 잘 놀고 있으니 그 모습을 보는것도 즐겁고요.
일요일입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청령포를 가 보기로 합니다. :D
지인들끼리 술마시러 놀러올 때에도 물론 영월을 지납니다만, 그 때는 다슬기해장국을 먹으러 가는거고요.. 하핫...
아이들과 같이 오게 될 때는 뭔가 기억에 남을만한 장소를 골라서 더 가봅니다. 예전에는 한반도면의 한반도 지형을 갔더랬고, 고씨동굴도 갔더랬고, 라디오스타 박물관도 갔더랬고... 그리고 오늘은 청령포입니다.
단종의 유배지라고만 들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단종은, 역사에 대해서는 큰 관심이 없던 제게는 그저 "태정태세문단세"의 그 "단"일 뿐이었습니다. 교과서에서 지나가는 단종은 그냥 그정도의 비중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와 함께 청령포를 방문해야 하니, 단종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을 살았는가 정도는 알고 가야겠다 싶어서 찾아봤다가 조금 많이 놀랐습니다.
단종은 태어날때부터 원손(=왕의 적장손)이었던, 조선왕조에서 유일하게 "완벽한 정통성"을 가진 왕이자, 희대의 천재라던 세종대왕과, 그에 못지 않았던 문종을 아버지로 둔, 그래서 그 자신도 어릴때부터 주변의 기대를 한껏 받았고, 어렸고 짧은 치세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후대에서도 높이 평가하는 왕이라더군요. 그리고 그 이상의 불운을 같이 받았던 비운의 왕입니다. 아이와 함께 긴 시간을 이야기할만한 주제이지 싶어서 쭉 찾아보고 있네요.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던 돌산, 그리움을 달래려 쌓았던 돌무더기 등등 모든 자리에 이야기가 있고 그 모든 이야기가 안타깝습니다.
특별히 울타리까지 있는 저 소나무는, 단종이 저 갈라진 곳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네요.
그 때는 작고 어린 나무였던 모양입니다.
조카를 몰아내고 세조가 왕이 되었지만, 왕의 흠을 감추려는 많은 사람들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세조의 과는 적지 않게 알려졌고, 완벽한 정통성을 갖고 있는 왕에게서 정당한 이유 없이 왕위를 빼앗아간 이유로 후대에서 단종을 노산군에서 다시 단종으로 복권시키는 등, 바로잡히기 위한 과정은 있었습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안타까운게 사그라들지는 않지요. 오래 살았다면 세종대왕 이상의 명군이 되었을거라는 문종과, 그 적자인 단종의 명이 짧았던 게, 어찌보면 이후 조선왕조가 개판이 되는 데에 일조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무엇보다, "왕의 적손으로 태어나서, 세손이 되어 세자가 되었고 그렇게 정통성을 갖추고 왕위에 오른 조선 왕"으로는 단종이 유일한 왕이라는 데에서 좀 많이 놀랐습니다. 그 이후의 나머지는 그야말로 막나가는 집안이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러네요. 고종이 선대 왕의 17촌이라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또한번 깜짝 놀랐... -_-;;; (17촌이면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엮인건지도 모를거같은데 왕위를 잇다니 이 무슨 개족보가...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렇게 짧게 역사를 배우고...
영월이라서, 주니어가 "영월역"을 가야한다고 해서 지인분들과 저기서 헤어졌습니다.
영월역은...
참 예쁘네요. :)
물론 완전 한옥은 아니고, 한옥의 탈을 쓰고 있는 신식건물이긴 하지만서도...
유리로 도배되어 있는, 도심의 어느 건물같은 다른 역사들과는 확실히 차별점이 있습니다.
스탬프도 잘 찍었고요...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
저는 피로회복 드링크와 비타민 드링크를 얼음컵에 담아서 졸음을 달래가며 서울로 향합니다만....
이녀석은 완전히 골아떨어졌네요.
영월에서 돌아오는 네시간 중 세시간을 저러고 숙면을 취하더란.... 허어....
그렇게 무사히 복귀했습니다.
친척의 과욕, 그리고 자신을 보호해 줄 보호자가 없었던 비운이 겹치면서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된 단종은 태백산의 산신령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영월 인근지역의 민간신앙에서 모시는 신이 단종인 경우가 많다더군요.
4월쯤 단종문화제를 한다고 하는데, 그 때 쯤에 아이와 다시한번 가 볼 생각입니다. :)
첫댓글 맑은 하늘을 보면서
물소리,물속자갈소리,새소리,물수제비~
자갈밭에 누운것처럼 제 등이
차가워 지는것도같습니다
자세한 표현에 그대로 전달됩니다
단종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었습니다
아들과의 여행은
미래의 부자간에
풍성한 이야기꺼리와 함께
많은것을 공유 할것같습니다
보는 저희들이 다~
행복합니다
자갈밭이, 의외로 따뜻했어요. :) 햇살을 받아서 살살 데워졌더라구요. 따땃한 자갈, 차가운 바람.. 모두 좋았습니다.
명현이가 한껀했내요
영월역 스탬프를 찍었내요
조금 더 있으면 머리가 굵어졌다고 아빠와 같이 안갈려고 할것입니다
지금 재미있는 부자간의 추억 많이 담어세요
안갈려고 하면 다른 기차역을 미끼삼아 데리고 나올려구요. 하핫. 다음번에는 원주역입니다. :D
오래전에 가족나들이로 영월에 가서 지인도 만나고 한반도 지형도 보고 청령포도 다녀 왔었는데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자식을 둔 어미입장에서 생각하니 얼마나 무섭고 참담 했을까 생각하니 지금도 가슴이 아파 오네요
우리의 역사가 참 부끄러움이 많은 역사입니다 명현이와 좋은 추억 많이 만드셔요 아이가 크면 같이 할 시간도 성년이 되면 더더욱 같이할 시간이 없는듯 해요
이야기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안타깝습니다.
살아남아서 장성했다면 세종에 버금가는 명군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도 해봅니다. 살아남은 자의 관점에서, 살아남은 자에게 유리하도록 각색되는 역사 속에서도 수많은 이들이 더없이 애달퍼했기에 복권까지 되어 능에 모셔지지 않았나 싶어요.
글 너무 재미있게 잘 쓰셨어요ㅋㅋ
저는 몇해 전 그쪽으로 갈일이 있었는데 차마 청령포는 못갔습니다ㅠㅠ
단종의 그 한많은 삶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거든요ㅜㅜ
수필한편 잘 읽었습니다 아드님도 귀여워요ㅋㅋ
아무생각 없이 갔다가 많은 생각을 하고 오게 되더라구요..
좋은 말씀 잘 읽고 마음에 새겨봅니다.
저도 아이와 함께 가 보겠습니다.
저는 아무 정보가 없이 갔지만 단종의 생애에 대해 미리 예습이라도 하고 갈 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곳에 여름에 갔었는데 슬픈역사가 있던곳이라 숙연했던 기억과 함께 질경이가 얼마나 많았던지 그 기억이 새롭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