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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추절에 감사해야 할 이유(신 16:9-12)
맥추 감사절이란 보리를 거두는 때 드리는 감사 절기입니다. 과거 우리나라에 처음 복음이 전해지고 교회가 세워질 당시는 농경 사회였고 그때는 전 국민의 절대 다수가 농업에 종사하였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 초창기부터 자연스레 보리를 수확하여 감사절을 지켰던 것입니다. 그래서 맥추감사란 너무도 자연스러웠습니다. 그 때는 서민들에게는 보리가 주식이라 말할 정도로 배고픈 시절이었습니다. 보릿고개란 말이 있을 정도로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픈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초기 한국교회 신앙인들은 그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나라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 좀 더 나아가 정보화사회로 전환되면서 일반인들이 보리 추수란 말은 너무 먼 옛날 이야기처럼 느껴진지가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그처럼 변하였다 해도 우리는 과거 신앙 선배들이 간직했던 복된 믿음의 유산, 곧 열악하고 빈궁한 가운데서도 감사를 잃지 않았던 신앙을 본받고 계승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오늘 맥추감사주일을 바르고 은혜롭고 복되게 지킬 수 있는 길입니다. 이에 더하여 반드시 생각해야 할 것은 성경에서 가르치는 맥추절의 의미와 맥추절에 우리가 감사해야 할 이유입니다. 여러분, 성경에서 가르치는 맥추절이란 어떤 것일까요? 출애굽을 기념하는 무교절이 끝나는 다음날이 주일인데 그 때를 초실절이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처음 익은 보릿단을 묶은 채로 하나님 앞에 드리었기 때문입니다.
다시말하면 초실절에 보리추수가 시작되어 7주동안 보리추수와 이어 밀추수를 하게 되는데 오순절이 되면 거의 곡식 추수를 마치고 포도부터 시작하여 무화과, 석류, 올리브, 대추야자로 이어지는 여름실과의 추수를 대비하는 때가 바로 오순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은 보리와 밀을 거두고 하나님 앞에 감사하며 절기를 지키는 날입니다.
이와 관련된 신명기의 규례, 즉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맥추절을 지켜야 하는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신 16:10-12)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당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 예물을 드리되 자원함으로 드리며 이스라엘 신앙 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며 이를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이는 자원함과 연합, 기쁨의 축제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맥추절을 이처럼 지켜야 하는 것은 그 날이 그만큼 뜻 깊고 복된 날이기 때문입니다. 실제 성경을 보면 이 날의 중요성을 더하는 여러 가지 사건들이 다양하게 제시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몇 가지 중요한 사실을 통하여 오늘 맥추절에 감사할 이유를 찾아 진정으로 하나님앞에 감사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이 날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음으로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을 할 때가 언제였습니까? 출애굽기를 보면 바로 유월절 즉 종교력 1월 14일이라고 명시하고 있습니다(출12:6). 이후 홍해를 건너 수르 광야를 지나 엘림을 거쳐 신 광야를 통과하여 시내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출애굽기 19:1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고 진술됩니다. 여기서 삼 개월이 되던 날은 석 달이 지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3월 1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그 이후 19:11을 보면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를 감안하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시내산까지 오는 데 한달 보름이 걸렸고 거기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성결케 되고 모세가 시내산에 등정하여 새로운 언약인 돌판계시 십계명을 받은 때가 출애굽 한지 오십일째 되는 날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하나님의 나라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선택하고 구원해 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 7:7,8) [7]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너희는 오히려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8] 여호와께서 다만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말미암아, 또는 너희의 조상들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의 권능의 손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내시되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속량하셨나니
저들이 괜찮은 백성들이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저들을 부르셨을 때는 애굽의 노예백성이었습니다. 저들에게 구원받을 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저들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여기서 기뻐하신다는 말의 원어의 뜻은 “열렬히 사랑하다, 갈망하다, 매달리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사랑하신 것입니다. 물론 그 이전에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저들을 조건없이 사랑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괜찮은 사람이라서가 아닙니다. (엡 2:8,9)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감사뿐 인 것입니다.
저는 지난 주에 장종택목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분은 미국에서 사시다가 한국에 영구귀국한 찬송사역자이십니다. 이분에게 딸이 셋이 있는데 둘째 딸 온유가 희귀병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는데 아이의 뇌가 정지되고 숨만 쉬는 아이였습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린아이가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부모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탄식을 하며 통곡합니다.
하나님 앞에 다 드리고 한국에 와서 진정한 복음을 전하려고 왔는데 결국 이렇게 딸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 앞에 불평과 원망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어째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셨습니까? 차라리 부모인 내가 죽는 것이 낫지 자식이 딸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야말로 지옥체험입니다. 하나님께 원망하려고 막 입을 벌리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말씀을 주시더랍니다. “너 이래도 나를 신뢰하니?”
그 때 장목사님은 주저주저하고 대답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평소에 그렇게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을 믿습니다. 라고 외쳤지만 실상 십자가의 현장 앞에서 그말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때 깨달은 진리는 “믿음은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이 듣고 계속 듣고 고백하고 있지만 그것만 가지고 믿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코 암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때 깨달은 진리는 바로 이처럼 고통하는 아버지의 마음, 처절하게 밑바닥까지 내려온 아버지의 마음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고 고통하면 절규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고통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저역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아이의 고통을 경험하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깨달았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 독생자 외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 끝없는 하나님의 긍휼, 그 사랑 때문에 그 눈물 때문에 오늘 우리가 주앞에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결국 그런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은 그 목사님의 딸을 기적적으로 죽음에서 살려주셨습니다. 중환자실에서조차 할 일이 없어 일반병실로 옮겨서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던 어느날, 8살 먹은 온유가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하면서 울면서 의식이 회복되고 죽었던 뇌가 살아나고 의식이 돌아왔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그 때를 생각하면서 불렀던 장종택목사님의 찬양이 “생명과 바꾼 주의 사랑을”이라는 찬양입니다. 그분은 이런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간증했습니다. 온유가 타던 자전거를 보고 많이 울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아빠와 함께 타자고 요청했는데 바쁘다고 피곤하다고 제대로 함께 하지 못한 것이 그렇게 후회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온유가 함께 자전거를 타는 그날이 오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통곡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평범한 일상생활이 얼마나 큰 복인지 깨닫지 못했던 그가 뒤늦게 깨달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그렇게 불평하고 귀찮다고 하던 평범한 그일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은혜인지를 깨닫고 감사할 수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날마다 먹을 수 있는 만나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불평을 합니다. 먹을 것이 어떻고, 사는게 어떻고, 오늘 우리의 평범한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다는 것을 깨닫고 오늘을 감사하고 오늘을 누리면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이 날에 새 곡식을 얻었음으로 감사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서 한 달쯤 되었을 때에 신 광야에 도착했습니다. 이때 그들이 애굽에서 나올 때 가지고 나왔던 양식이 다 떨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먹을 양식으로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셨습니다(출 16:4). 그 때부터 저들은 광야에서 씨를 뿌리지 않고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나님이 주신 하늘 양식을 배불리 먹을 수 있었습니다.
그 만나는 새벽마다 내렸습니다. 광야 40년동안 저들은 하늘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신 8:3)에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으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먹어야 산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을 통해서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하시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날마다 새벽마다 만나를 거두어 먹었던 것처럼 오늘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날마다 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서 영혼의 약식을 먹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자는 영혼이 살아납니다.
시편 19편 7절이하의 말씀처럼 (시 19:7-10)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8]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시도다 [9]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10]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
다윗이 말씀을 대하는 태도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그래서 정금보다 더 사모하고 꿀송이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도 신앙의 원동력이 말씀이니까 말씀을 날마다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신앙생활이 가능한 것입니다. 이처럼 맥추절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이 진정한 언약을 맺은 날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지고 심령에 새겨짐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영혼이 소성하고 우리의 눈이 밝아져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맥추절을 맞이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을 주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며 더욱 더 말씀가운데 살기를 다짐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을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펴십시오. 어디서든지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는 능력입니다.
아무리 직분이 있고 교회를 오래 다니고 지식이 충만해도 오늘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혼의 양식으로 먹지 못하면 영적인 삶은 무력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덮어놓고 믿는 어리석은 외식자가 아니라 생명의 샘가를 펴서 믿는 살아있는 신앙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올해가 우리가 아는 것처럼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이전에 캐톨릭교회는 성경을 덮어 놓았습니다. 성경책이 라틴어로 되어 있어서 사제들조차 라틴어를 제대로 습득하지 않은 사람들은 성경의 내용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로마교황청에서 얼마든지 외식과 위선으로 사람을 속이고 거짓말로 사람들을 현혹시킬수 있었습니다. 로마에 있는 성베드로성당을 건축하면서 건축비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건축비를 모금하기 위해서 저들이 꾸며낸 교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면죄부를 파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이단들이 천국가는 티켓을 파는 것처럼 저들은 면죄부를 팔아서 죄를 면하고 천국에 들어 갈수 있다고 현혹했습니다. 그것의 진실을 아는 사제들 가운데 몇몇이 들고 일어나 진리를 외쳤습니다. 그리고 성경을 시민들의 손에 들려 주기 위해 성경을 영어로 독일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로마교황청은 큰 일 났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인데 거짓된 가르침이 들어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성경을 번역하거나 그것을 전하는 사람들을 찾아내어 살해하였습니다. 성경책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즉결처형을 시켰습니다. 그 때 그들이 성경을 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책 66권을 한권씩 따로 떼어서 외우고 백성들에게 성경책을 들려주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이름을 롤라드라고 합니다. 성경책이 된 사람들입니다.
성경책을 들고 다니는 것이 아니라 한권씩 암송하는데 66명이 함께 모이면 성경 66권을 다 전할 수 있었습니다. 롤라드, 목숨을 걸고 성경을 증거했던 사람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에게 성경책이 손에 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책을 듣고 읽고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책을 놓치 않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언제 그 만나가 그쳤습니까?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곡식을 거두는 날 만나가 멈추었습니다. (수 5:12) "또 그 땅의 소산물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소출을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곡식을 파종하는 일은 꿈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430년 동안 한번도 자기 땅에 씨를 뿌려보지 못했으며 열매를 거두지도 못했습니다.
그 모든 것은 바로의 소유였습니다. 광야에서는 사십 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만나를 먹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와서 씨를 심어 수확하여 첫 열매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첫 열매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의 감회가 얼마나 새로웠겠습니까? 그들은 이것이 누구로 말미암아 거두게 된 것인지를 분명히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감격과 감사로 하나님 앞에서 맥추감사절을 지켰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우리에게 주신 건강이나, 우리가 배운 바 지식이나 기술과 재능, 그 모든 것으로 인해 얻은 명예와 권세,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처음 열매를 거두고 맥추절을 지켰을 때의 감격을 헤아려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 하나님, 우리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며 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날을 지켜야 하겠습니다.
3. 이 날에 성령 충만을 받았음으로 감사했습니다.
맥추절은 칠칠절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그것은 유월절 이후 일곱 주가 지난 날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 날은 신약에서는 오순절로 불립니다. 여러분, 오순절에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이 날은 사도행전 2장에 기록된 것처럼 성령이 교회 위에 임한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말씀하신 것은 성령님이십니다. 그러기 전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다는 말씀입니다. 제자들은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메시야라고 해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더니 이제 죽고 떠나겠다고 하시니까 앞이 캄캄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덤으로 말씀하셨던 것이 바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너희는 고아와 같이 버려두시지 않고 하나님께서 늘 함께 계시고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특히 부활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계신 다음 마지막 승천하실 때 다시 약속하십니다.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며 그리하면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행 1:4,5). 그리고 성령을 받으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전혀 힘쓴 것이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이제 마지막 소망은 예수님이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40일을 세상에 계셨습니다. 그리고 10일이 지났습니다. 그러면 무슨 날입니까? 유월절에 돌아가셨으니까?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 바로 오순절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분부를 따라 마가 다락방에서 120명의 성도들이 함께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 오순절에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그 기도하는 이들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으며 성령세례를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는 주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게 하신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성령을 가리켜 '보증'이라고 일컬었습니다(고후1:22). 여기서 보증이란 한마디로 우리가 어떤 집이나 물건을 살 때 확실히 그것을 살 것을 약속하는 보증금이라고 보면 됩니다. 이를 이처럼 보증이란 말에 빗대어 설명한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것을 확실히 보장한다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약속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 안에 거하게 하셨다면 그래서 자기 백성으로 삼으셨다면 한 번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을 버리시는 일이 있겠습니까? 여러분, 누가 자기가 마음을 먹고 어떤 집이나 물건을 사기 위해 보증금을 치렀다 해보십시오. 그가 그 집이나 물건을 잊거나 포기할 수 있습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은 우리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어떠한 상황속에서도 성령 하나님은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깨닫게 하십니다. 우리의 죄악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십니다. 뿐 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성령은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삶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여러분, 갈 5:22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열매는 바로 하나님의 인격입니다.
(갈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자연적으로 맺어지는 열매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말씀하신 8복도 한결같이 심령이 온유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고 긍휼히 여기고 마음이 청결하고 화평케하고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박고, 다 무엇입니까? 심령의 변화입니다. 이처럼 성령이 역사하실 때 우리를 변화시켜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통해 우리를 변화시키고 그다음 성령의 역사는 권능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권능은 영적인 권세요,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이러한 모든 은사의 최종적인 목적은 영혼구원입니다. 영혼을 살리고 키우고 고치는 생명사역을 하라고 은사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곁에 오신 성령님, 그분이 온전히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시고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저와 여러분이 성령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사모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 주실 것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앞에 엎드려 기도하는 일에 힘쓰시오. 그러면 여러분에게 성령세례가 임하실 것입니다. 성령세례는 옛날에 받았다고 하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마치 자동차의 기름과 같아서 한 번 넣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계속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며 성령의 재충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셔서 오늘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내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게 하시니 우리가 이 맥추절, 오순절에 하나님 앞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여러분, 참으로 맥추절, 즉 오순절은 이처럼 구속사적으로 뜻 깊은 일이 이루어진 날입니다. 이 날 이스라엘은 율법을 받았습니다. 또 처음 열매를 거두었습니다. 아울러 바로 이날 성령께서 구원의 보증으로 성도들 가운데 강림하셔서 구원 역사, 교회 역사를 태동케 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처럼 뜻 깊은 맥추절의 의미를 바로 헤아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점점 어두워져가는 이 세상 가운데 말씀에 듣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열매를 맺는 삶을 살고 성령의 충만한 역사를 드러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되새기며 오늘의 오순절과 맥추절을 체험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감사하는 오늘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