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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송아지 주조(1-5)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에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것들에 더 의지하게 됩니다.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 물질과 건강을 잃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사랑하는 우상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곤 합니다.
1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 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가매 4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아론이 보고 그 앞에 제단을 쌓고 이에 아론이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1-5)
모세가 시내산에 오래 머물자 이스라엘 백성은 그가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금송아지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고, 아론은 그들의 금 장식품을 모아 송아지를 만들고 제단을 세웁니다. 백성은 그 송아지를 섬기며 이를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한 신으로 여깁니다.
(1) 우상 제작을 위한 금모으기(1-3)
모세가 오래도록 산에서 내려오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초조해졌습니다. 아론에게 운집하여 대책 마련을 요구했습니다. 시내산의 하나님을 대체하여 가나안으로 인도할 신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백성들은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이 어찌되었느냐’고 투덜거립니다. 겉으로는 모세를 지칭하지만, 은근히 모세를 지도자로 임명한 하나님에 대해 비아냥대고 있습니다. 시내산 기슭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하나님을 배신합니다. 사실상 자신들의 종교를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식양과 디자인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만든 하나님의 형상과 제단과 그것에 대한 신념이 모여 거짓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계시 종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하늘의 초월적 법과 질서를 진리로 믿지만, 자연 종교는 스스로 관찰하고 파악한 자연의 내재적 원리와 법칙을 진리로 삼습니다. 백성들은 당장의 안전과 보호 속에 자신들을 인도할 구체적인 신을 필요로 했으며, 그 신은 가시적으로 눈에 보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황금 송아지는 인간의 욕망이 빚어낸 신입니다.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천상의 왕의 통치하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은 이를 불안해하며 눈에 보이는 지상 왕을 갖기 원하는 패턴은 반복됩니다(참조. 삼상 8:5). 아론은 영적 지도자로서 자격 미달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집단적인 종교적 타락 앞에서 속수무책이었으며, 적극 동조하는 모습마저 보였습니다. 이것은 타락한 백성을 단호하고 엄중하게 꾸짖은 뒤 하나님 앞에 머리를 숙여 자신의 목숨을 걸고 탄원 기도를 드린 모세와 극명하게 대조됩니다.
여기서 백성들이 요구한 신은 복수 ‘신들’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4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금송아지에 더하여 부수적으로 여러 신의 형상들이 만들어졌는지도 모릅니다. 혹은 금송아지의 형태가 다른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 암시되듯이 반인반수(satyr)와 같은 복합적 형상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아마 더 그럴듯하게는, 금송아지는 하나지만 그들은 다른 민족들처럼 송아지 신에 덧붙여 많은 신들을 필요로 했을 수 있습니다. 신들이 많을수록 평안과 안전은 더욱 잘 보장되리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아마 황금 송아지는 그리크지 않았을 것입니다. 가나안 일대의 신전에서 발견된 청동 송아지상들은 한결같이 불과 20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이며, 또한 백성이 모은 금의 총량은 단순히 금귀고리만을 빼서 녹인 소량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성령의 감동 속에서 백성들이 가진 대부분의 금붙이를 모은 금이 1톤가량인데, 이것 역시 가로 세로 높이 37센티미터 정도의 양에 불과합니다.
“우리를 인도할 신”은 문자적으로 ‘우리 앞에 걸어갈 신들’입니다. 즉 시내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할 신들을 만들고 싶어 합니다. 8절에서 백성들은 그 금송아지 신이 바로 애굽에서 자신들을 구원한 신이라고 선포하고 찬양합니다. 전율을 느끼게 하는 극단의 배신입니다. 그들은 아론에게 자신들을 위한 신들을 ‘만들라’(아사)고 요청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합니다. 말 그대로 ‘만들어진 신’입니다.
아론은 신의 형상을 제작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금귀고리를 빼서 금을 모으라고 지시합니다. 애초에 백성들이 모은 금붙이는 성막 건설에 쓰일 봉헌물이 되어야 했지만, 지금은 우상 제작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2) 송아지 형상의 주조(4-5)
소는 고대근동 지역에서 풍요와 다산의 신으로 숭배되었습니다. 특히 고대 애굽의 멤피스에서는 황소의 신 ‘아피스’가 숭배되었고, 온에서는 역시 황소의 신 ‘므네비스’가 숭배되었습니다.
5절에서 아론은 제단을 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라고 선언합니다. 여기서 분명히 아론은 금송아지 형상을 여호와를 형상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또한 아론은 자기 멋대로 여호와의 절기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절기는 하나님의 시간표로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시고 모세를 통해 선포되어야 하지만, 아론은 율법의 중계자를 넘어 스스로 율법의 창안자를 자처하고 있습니다. 송아지 형상을 여호와로 칭함으로써 그분의 신성한 이름을 모독하고, 불법적 제단을 쌓아 신성한 공간을 더럽히며, 절기를 임의로 지정해 신성한 시간을 오염시키는 죄를 범하고 있습니다.
금송아지 예배(6-8)
하나님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인간의 방식으로 종교적 행위를 왜곡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보여줍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성경의 원칙을 신뢰하며, 자신의 신앙 생활을 정확히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정의와 심판을 깊이 이해하고, 신앙의 진정성을 유지하며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지키는 것이 필요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6이튿날에 그들이 일찍이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6-8)
아론이 절기로 지정한 이튿날이 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론이 임의로 제단을 쌓은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명백히 시내산 언약식에서 모세의 제단 축조(24:4)와 대조됩니다. 또한 아론의 제단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축제의 향연을 즐긴 것은 여러모로 24장의 언약식과 대조됩니다. 언약식에서도 백성들은 많은 소를 잡아 번제와 화목제를 바쳤고, 모세는 그 피를 제단과 백성들에게 절반씩 나누어 뿌렸으며, 그 후 모세와 미래의 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산 위에 올라가 잔치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이 지금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를 드리며 그 언약식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6절의 ‘뛰어놀다’의 의미를 종교적 축제의 광적인 음란행위로 보는 번역본(NIV, CJB)과 학자들이 많습니다(Childs; Durham; Rashi). 반면에 다른 사람들은 고대 근동의 정상적인 종교 의식의 순서에 따른 질서정연한 홍겨운 연회가 개최된 것으로 봅니다(Hamilton). 이 동사의 의미론적 범주를 볼 때, 둘 다 가능한 해석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인용하는 고린도전서 10:7-8에는 그들의 종교 축제에 떠들썩한 음란행위가 수반되었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떠드는 소리가 전쟁의 소음과 같았다는 사실(17)은 축제의 성격을 짐작케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시내산 정상에서 산 아래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모세는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즉각적인 하산을 명하십니다(7).
7절의 동사 ‘부패했다’(쉬헤트)는 파괴를 내포하는 단어입니다(참조. 창 6:11,12). 하나님께서는 노아 시대의 그 타락한 땅을 ‘파괴할 것이다’(쉬헤트)라고 말씀하시고(창 6:13),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서도 동일하게 파멸의 심판(쉬헤트)을 예고하십니다(창 18:28,31,32).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탄원(9-14)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후 하나님이 진노하셨지만, 모세의 간절한 중재로 재앙이 거두어졌습니다. 이 사건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신실하게 유지하고 타인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중요함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믿고 의지하는 것이 신앙의 핵심임을 일깨워줍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중재를 본받아 자신의 믿음을 깊이 새기고 하나님과의 언약을 신뢰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9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10그런즉 내가 하는 대로 두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를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모세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르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어찌하여 애굽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가 자기의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는 악한 의도로 인도해 내었다고 말하게 하시려 하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주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의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9-14)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든 후, 하나님이 그들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십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절히 중재하며, 그들의 구원을 위해 아브라함, 이삭,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상기시킵니다. 결국 하나님은 모세의 중재를 받아들여 그들에게 내리려던 재앙을 거두십니다.
(1) 하나님의 진노(9-10)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목이 뻣뻣한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구약 전체에서 여러 차례 나타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에 대한 매우 적절한 표현입니다. ‘나를 내버려두라’는 말은 그들을 멸망시킬 결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나타냅니다. ‘내가 패역한 백성을 버리고 모세, 너를 통해 큰 나라를 만들 것이다.’ 이것은 사실 아브라함과의 언약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한 것이었는데(창 12:2), 그 언약을 파기하고 약속의 계승자를 바꾸시겠다는 선언입니다.
(2) 모세의 탄원과 하나님의 응답(11-14)
모세는 자신을 통해 대안적 나라를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했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걸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했습니다(32:32). 뜻을 돌이켜 달라는 기도는 선지자들의 전형적인 탄원 형식입니다. 모세는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여기서 출애굽기 6:8 이후에 잠시 중단된 아브라함을 비롯한 조상들과 맺은 언약이 재등장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스스로 조상들에게 선언하셨던 약속들을 상기시키며 자비와 용서를 구합니다. 모세의 결사적 탄원의 기도와 중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않으십니다(14).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셔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 특별한 관계에 따라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시고, 그분을 최고로 높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금송아지와 같은 우상은 결코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당신이 섬기는 공동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모세처럼 사심 없이 중보기도를 통해 공동체의 회복을 위해 힘써야 합니다. 당신의 충성과 중보기도가 하나님의 공동체가 바르게 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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