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13,26-33; 요한 14,1-6
+ 찬미 예수님
제가 캐나다에서 공부할 때, 로마에서 공부 중이던 동창 신부님과 가끔 통화를 했는데요, 어느 날, 마침 그날 복음이 바로 오늘 복음이었습니다. 그 신부님이 오늘 미사 중에 복음을 이탈리아어로 읽었는데 너무나 아름다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탈리아어로 뭐냐고 물었더니 “Io sono la via, la verità e la vita.” 라고 말했습니다. 액센트가 중요한데요, la via, la verità e la vita. 이것이 각각 길, 진리, 생명입니다. 왜 작곡가들이 주로 이탈리아어로 오페라를 작곡했는지 알 것 같아요.
그 신부님이 저더러 ‘영어로는 뭐라고 하느냐’고 묻길래 “I am the way and the truth and the life.”라고 대답했는데요, 하나도 멋이 없죠?
라틴어도 이탈리아어와 비슷한데 “ego sum via et veritas et vita”입니다. 길, 진리, 생명 모두 v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무척 연결되어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예수님은 ‘길’이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만 아버지께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를 계시하기 위해 육화하신 말씀이십니다. ‘길’이신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우리는 ‘진리’이신 아버지를 알게 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생명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하느님과의 거룩하고 영원한 친교로 데려가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을 믿고 또 나를 믿어라.”라고 말씀하신 후,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처할 곳이 많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아버지의 집’은 하느님과 누리는 생명과 사랑의 거룩하고 영원한 친교를 의미합니다.
“내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자리를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키릴루스 성인은 예수님께서 우리보다 먼저 가시는 것이, 그 거처를 준비하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거처로 가는 길을 확보하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통로를 준비하고, 전에는 지나갈 수 없었던 길을 평탄하게 닦기 위해서 먼저 가신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안에 당신을 위한 자리와 당신 안에 우리를 위한 자리, 두 가지를 다 준비하고 계시니 당신을 위해서는 우리를 준비하고 계시고, 우리를 위해서는 당신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네비게이션을 보며, 또는 상담을 하며 의논을 하며 자신의 길을 찾고 있습니다. 또 공부를 하고 학원을 가고, 진리를 찾고 있습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며 생명을 찾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 세가지를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너희도 같이 있게 하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이 있는 곳에 우리도 같이 있게 하십니다. 당신의 몸을 영하면서 우리는 영원한 길과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생명을 우리 안에 모시고,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우리가 찾는 것은 모두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만물의 주재자 그리스도, 성 소피아 성당(이스탄불), 1280년 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