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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23-29
복이 임할 때 / 김봉수 목사
약100여년 전 네바다 주에 살던 헨리 콤스톸(Henry Comstock)이라는 사람이 버지니아 주에 큰 산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겨우11,000달러를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이 산에서 미국 최대 규모의 금과 은이 발견되었고 그 매장량은 그 당시 평가로 5억불 이상이 되었습니다. 콤스톡씨는 너무 억울하고 분통이 터져 1달 동안 고민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습니다. 5억불의 가치가 되는 땅을 만 불 정도에 팔아 그는 실수를 범했고 가장 소중한 생명을 돈 때문에 억울함에 못 이겨 버린 것은 더 큰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었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랬습니다.
주님을 은 30냥을 받고 판 것이 그의 첫 번째 잘못이라면 자살로 끝을 맺은 잘못은 두 번째 실수였습니다.
세상에는 실패하는 일들이 자주 일어납니다.
건강에 실패하고 후회하는 사람,
사랑에 실패하고 좌절한 사람,
물질에 실패하고 주저앉은 사람,
인간관계에 실패하고 힘들어하는 사람,
이렇게 뭔가 없어지거나 부족해짐으로 실패한 사람들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많아서 실패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시간이 많아서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이 많아서 실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꾀가 많아서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야곱을 보면서 그는 꾀가 많아서 타향에서 고생하는 모습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솔로몬 역시 많아서 실패하는 사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큰복을 받습니다.
지혜가 많다고 하던 스바 여왕까지 와서 솔로몬의 지혜를 칭찬하고 돌아갈 정도입니다.
오늘 본문 24-2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그 지혜를 듣고 그 얼굴을 보기 원해서 엄청난 예물을 가지고 옵니다.
우리가 이 열왕기상 10장을 읽어 내려가면 솔로몬의 부는 다만 부요함을 넘어서 사치에 가까운 인상을 받기까지 할 정도입니다.
어쨌든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것처럼 지혜를 주셨고 그 지혜뿐만 아니라 부와 귀까지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하나님이 주신 복 때문에 실패한 사람입니다.
이 말이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복을 잘못 주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제대로 활용할 줄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는 큰복을 주셨습니다.
창1:28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고 복을 주신 일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그 복을 누리지 못하고 벌을 자초하였습니다.
복을 주신 하나님이 잘못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솔로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 자체에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복 때문에 실패하는 솔로몬이 잘못입니다.
이러므로 바울 사도를 통해 보여주는 빌4:12말씀은 우리의 기도의 제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같이 빌4:12을 찾아봅시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좀더 쉽게 우리말로 이 말씀을 번역한다면
<나는 가난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았고 부유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도 알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사는 법을 배웠다.
내가 배부를 때에든지 배고플 때에든지 풍부할 때에든지 가난할 때에든지 바로 사는 법을 배웠다.>
우리는 이것을 잘 배워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난해도 주를 부인하지 않고, 부해도 주를 놓치지 않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게 복을 주신 것이 오히려 화가 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차라리 좀 가난할 때는 그렇게 주일도 잘 지키더니 어느 날 돈 좀 생기고 자동차도 생기니까 주일날 차를 몰고 다른 곳에 가는 화가 임합니다.
건강이 좋지 않을 때는 기어 기어서라도 교회당에 나오더니 건강해지니까 다른 일 하느라고 바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활용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복을 활용할 줄 모르겠거든 잠언에 나오는 아굴의 기도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바울처럼 모든 상황에 바로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겠거든 잠30:8-9에 있는 것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한 번 찾아봅시다.
<곧 허탄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로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내게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혹 내가 가난하여 도적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함이니이다.>
적당히 달라는 것입니다.
넉넉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적당히만 달라는 기도입니다.
모든 상황에 사는 법을 배우지 못하겠거든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차라리 바로 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그 부로 인해 점점 문제에 빠지게 됩니다.
결국 11장에 가서는 큰 죄 가운데 거하다 그 솔로몬이 하나님의 경고까지 등장합니다.
그러면 솔로몬이 오늘 본문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주신 복을 잘못 이용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합니다.
우리가 솔로몬이 어떤 잘못을 범하고 있는 지를 보기 위해서 신명기를 한 군데 찾아서 읽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같이 신17:16-17을 찾아보도록 합니다.
<왕이 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 것이요. 말을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 것이니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르시기를 너희가 이 후에는 그 길로 다시 돌아가지 말 것이라 하셨음이며,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이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주 읽었던 말씀입니다.
하지만 사울이 왕이 되기까지 이스라엘에는 인간으로서의 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미 신명기에서 왕이 있기 전에 이 명령을 주신 것입니다. 앞으로 왕이 나와도 왕이 된 자는 이 말씀을 꼭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많이 두지 말 것을 세 가지로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말을 많이 두지 말라,
둘째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
셋째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
자 이것을 기억하고 오늘 본문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
26-28절을 다시 한 번 읽어봅니다.
<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솔로몬이 말들을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왕의 상고들이 떼로 정가하여 산 것이며>
11:1도 한 번 읽어봅니다.
<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자 우리 26-28절과 11장 1절을 읽으면서 솔로몬이 그 왕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것을 어겼는지가 잘 나타납니다.
첫째 먼저 말을 많이 둡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들이 말이나 병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도록 하십니다.
때로는 주변국가들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전쟁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에라도 왕들이 말이나 병거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전쟁에 임하기를 원하시면서 왕들은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과 병거들을 모읍니다.
심지어 병거성까지 만들 정도입니다.
둘째 은금을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왕이 재물을 모으기 시작하면 백성들이 고통을 받는 결과로 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입니다.
우리 나라 전직 대통령들이 돈을 모으기 시작하니까 결국 나라가 IMF 위기까지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왕들이 권력을 이용해 재물을 모으기 시작하면 백성들은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 솔로몬은 은이 돌같이 많도록 했다고 합니다.
그뿐입니까?
하나님은 왕들이 아내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권력을 가지면 아내를 두고 싶은 욕심이 반드시 들것이기에 그것은 결국 왕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치 못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고,
좀 더 앞을 내다보면 여러 명의 아내로부터 나온 자녀들로 인해 왕자들의 난까지도 일어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아내를 많이 둡니다.
우리는 그 솔로몬이 얼마나 많은 아내를 두었었는지 압니다.
11장 3절을 보면 후비가 700이고, 빈장, 곧 첩이 300이라는 것입니다.
왕으로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을 셋 다 어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솔로몬이 이 신명기의 말씀을 결코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이방의 왕들이었습니다.
이방의 왕들은 말을 많이 두고, 은금을 많이 쌓고, 아내를 많이 두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고 그것은 그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 솔로몬,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솔로몬은 이방 왕들의 모습을 본받아서는 안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복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이 주신 그 복을 잘 감당하지 못하므로 결국 실패하고 맙니다.
그 일로 인해 우상이 이스라엘에 들어오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법을 떠나 무서운 경고를 받게 됩니다.
헤브리(C. Hebree)라는 사람이 조사를 한 것에 의하면,
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의사의 지시를 이상하게 잘 지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왔으면 의사의 지시에 잘 따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의사가 1 주일을 복용하라고 약을 주면 한 나흘 정도에 끝내버리고 만답니다.
식사할 때의 주의 사항을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병원에서 시키는대로 먹었다가는 굶어 죽기 딱 알맞다.>라고 말하고 환자의 80%가 의사가 먹으라는 양보다 더 많이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사의 지시는 따르지 않으면서 자기의 병세가 호전되지 않는다고 온갖 불평은 다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의 모습이 꼭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지시, 하나님의 말씀은 따르지 않고 현실을 불평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여기 본문의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것은 그의 지혜를 무기력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주신 아무리 귀한 것들이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살아가면 그 모든 것들이 실상은 다 무기력한 것들이 되고 맙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도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면 다 얕은 꾀, 자기를 침몰시키는 꾀에 불과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복이 임할 때 복을 잘 관리하는 것은 정말 귀한 것입니다.
한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자녀를 선물로 주시지 않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자녀로 인해 최소한 고통을 받거나, 자녀 때문에 하나님께 범죄할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녀 때문에 얼마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짓는 지 모릅니다.
아이가 하나님보다 더 귀중해서 아이 보느라고 예배에 빠지고, 아이가 조금 아파도 빠지고, 아이 보느라고 성경 볼 시간도 놓치고, 기도할 시간도 놓칩니다.
자녀를 주신 복이 관리가 안 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무시하면 그 주신 아이 때문에 더 큰 문제만 생길 뿐입니다.
우리에게 복이 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복을 잘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솔로몬은 복을 화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에 보면 그 동사들이 솔로몬의 의지가 담긴 동사들입니다.
솔로몬이 일부러 마병을 <모으매> <두었으며>
은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많게 하였더라>
말들을 애굽에서 <내어 왔으니> 라는 동사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복을 화로 바꾸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반대로 좋지 못한 것 같은 악조건에서 복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바울 사도에게서 그런 것을 봅니다.
그는 복음을 전하다 감옥이라는 악조건, 인간으로서는 정말 너무 좋지 못한 조건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데 빌1:12-13에서 보는 바와 같이 바울은 그 악조건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 감옥에서 그 감옥을 지키는 시위대 대원들과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각도에서 보면 화를 변하여 복이 되게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감옥에서 오네시모라는 사람을 전도한 것도 그 한 예입니다.
사실 신앙의 사람들이라는 것은 악 조건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복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인 다윗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골리앗을 중심으로 블레셋이 쳐들어 왔을 때 온 이스라엘은 떨었습니다.
아주 좋지 못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좋지 못한 상태가 다윗에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다시 체험하고 이스라엘 앞에 나서는 좋은 계기가 된 것입니다.
단 한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는 것,
그것이 바울로 하여금 안 좋은 조건에서 복을 얻게 하고, 다윗으로 하여금 악조건에서 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오늘 어떤 복이 주어져 있습니까?
건강, 재물, 시간, 등 어떤 복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복을 잘 관리하시는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복을 화로 바꾸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혹은 여러분에게 오늘 어떤 어려움, 어떤 고통의 문제가 있으십니까?
그 고통과 어려움의 문제들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오히려 큰복으로 바꾸시는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 사도를 통해 주신 빌4:12을 다시 한 번 읽으면서 오늘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나는 가난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을 알았고 부유한 상태에서 살아가는 법도 알았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도 바로 사는 법을 배웠다.
내가 배부를 때에든지 배고플 때에든지 풍부할 때에든지 가난할 때에든지 바로 사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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