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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연구개발 50년 우리가 이룬 성과
작성일: 2020-09-07 13:37:58
국방연구개발 50주년, 미래를 기획하라!(4)
– 국방과학연구소의 개발 성과를 중심으로 –
기무현 국방과학연구소 수석연구원
2020년은 국방과학연구소가 창설 50주년을 맞는 해다. 1970년 8월 6일, 국방과학연구소가 출범했다. 그리고 50년 후 우리나라는 세계 9위의 국방과학기술력을 자랑하는 방산수출국으로 당당히 자리 잡았다. 정부의 중화학입국 정책과 그에 따른 방위산업 기반의 구축, 그리고 정부의 국방연구개발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되어 국산무기 연구개발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여기에 국민들의 성원과 우리 군의 지원, 방위산업체 및 학계와 민간 연구소의 협조가 더해졌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국방과학연구소는 지금까지 국방연구개발의 구심체 역할을 맡아 노력해왔다. 국방연구개발의 중심에 있었던 국방과학연구소가 이룬 성과를 중심으로 우리 국방연구개발 50년을 돌아보며 그 성과를 알아본다.
• 국방연구개발의 시작 - 국방과학연구소 출범
6·25전쟁 종전 이후로 북한의 무력도발과 군사적 위협은 끊이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9년 미국은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동맹국의 자주국방능력 강화를 통해 미국의 국방비 부담을 감축하고자 하였다. 주한 미군의 감축과 안보위협 증대가 예상되는 가운데 자주국방이 강조되면서 방위산업의 육성과 국방 과학기술 연구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그리고 이것을 선도적으로 이끌 연구소가 필요했다.
1970년 7월 23일 대통령령 제5225호로 국방과학연구소 설립준비위원회 규정이 공포됐고, 준비과정을 거쳐 1970년 8월 6일 대통령령 제5267호로 국방과학연구소가 정식으로 출범했다. 우리나라 국방연구개발의 공식적인 첫 걸음이었다. 물론 연구소 출범 이전에도 각 군의 연구소와 학교에서 소규모의 연구와 시험이 이루어지기도 했지만, 이제 연구개발 체제를 갖추고 정식으로 국방연구개발을 시작한 것이다.
국과연은 45명의 인력으로 단출하게 시작됐다. 당시는 기본병기 제조기술도 없었지만, 국방연구개발 자체가 생소했다. 당면한 과제는 방위산업 육성을 위한 연구개발체제의 확립, 민수장비의 군용화 문제 연구, 군 병기·장비의 유지정비 문제 연구 등이었다.
특히 보유 병기와 장비의 효율적 유지 및 정비를 위한 부품 공급, 군 공창(工廠)의 수리 및 재생 능력 등의 해결이 시급했다. 국과연은 우선 방산업체들의 생산 품목, 시설 현황, 능력, 실적, 장차 확장계획, 군수산업으로의 전환에 필요한 소요 등을 검토했다. 또 사관학교 교관과 군내 학위자로 연구요원을 충원하고 해외 과학기술자를 유치하여 연구개발체계를 갖춰 나갔다.
[그림 1] 연구동 기공식과 국과연 본관
그리고 중기계획(1971~1976)을 세워 국방연구개발에 착수했다. 1차 목표는 총포, 탄약, 통신기, 차량 등 기본병기를 국산화하고, 다음 단계로 전차, 항공기, 유도탄 및 함정 등 정밀무기의 국산화능력을 갖추는 것이었다.
• 번개사업 - 국방연구개발 첫 성과
국과연은 홍릉에 부지를 마련하고 연구동 건설에 들어갔다. 동시에 공작공장과 곡사화기 및 투하탄 시험장 등 야외시험장 건설에도 착수했다. 기본병기조차 외국에 의지하는 상황에서 모든 것을 신속하게 추진해야 했다.
1971년 12월, 국과연 건물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긴급병기 개발지시가 떨어졌다. 예비군 무장화 등을 조기 달성하기 위한 기본병기 개발지시였다. 번개사업이라고 명명하였는데, 사업명에서부터 국방연구개발의 긴급성이 드러났다.
번개사업은 3차례에 걸쳐 추진됐는데, 1차로 칼빈 소총, 기관총, 박격포 M1소총, 수류탄, 지뢰 및 로켓발사기 등을 모방개발하여 시험사격을 수행했다. 비록 모방이기는 하나 당시 여건으로는 시제개발이 매우 어려웠다. 밤낮없이 노력했지만 첫 시제품에서 보완사항이 많이 도출됐다. 1차 번개사업의 첫 시제품 품목은 [표 1]과 같았다.
[표 1] 번개사업 시제품 목록
결함을 보완하여 2차 사업을 수행했고 3차 사업을 통하여 양산을 준비했다. 3차 단계에서 시제품이 당시 군원품과 동등한 성능을 보였다. 비로소 소총 등 기본 병기의 국산화를 달성한 것이다. 3차 번개사업에는 통신장비와 개인장규류 등도 포함됐다.
[그림 2] 번개사업 성과물 전시
번개사업을 수행하면서 제작공정과 검사기기를 포함한 품질관리 및 생산체제를 갖추어 나갔다. 원자재의 점검, 필수 전문장비 및 공정간 계측장비의 확보를 포함한 생산준비 상태의 확인, 그리고 공정 간의 검사와 조립시험 등의 경험을 축적했다.
특히 무기제작에 적용된 군사규격(MIL SPEC) 개념은 방산업체의 품질관리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하게 만들고 품질제도 확립에 큰 영향을 줬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방산업체에 개발 및 생산기술이 축적됐고, 그 기술들은 민수산업으로 파급되어 우리나라 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 기본병기의 국산화 단계(1970년대)
번개사업으로 짧은 기간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기는 했지만, 역설계에 의한 모방제작으로는 국방연구개발능력의 확장 효과는 미미했다. 국과연은 곧 연구개발체제를 갖추고 기본병기부터 국산화해 나갔다.
◆ 총포
소총은 모든 군인이 사용하는 기본 중의 기본 병기다. 국과연은 1972년부터 소총을 포함한 소화기의 연구개발에 착수했다. 5.56mm 구경의 한국형 소총은 개발 후 한국군 무기체계로 채택돼 양산됐다. 이것이 바로 K2 소총이다. 5.56mm 분대급 기관총은 K1A 기관 단총으로 양산되어 군의 전력증강에 기여했다.
소화기와 함께 화포개발도 진행했다. 1972년에 우선 105mm 곡사포, 106mm 무반동총, 4.2인치 박격 포의 국산화부터 시작했다. 모방개발한 것이었는데 1973년 시사회는 성공적으로 치렀지만 부대 운용과 정에서 결함이 드러났다. 원점으로 돌아와 연구개발을 다시 시작했고 1976년에 완성하였다. 이러한 실패와 극복을 거치면서 국과연은 무기체계 개발에 대한 자신감을 쌓았다.
◆ 탄약
당시 소화기탄은 군에서 생산했고, 국과연은 기술지원과 시험평가를 중심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국과연은 몇몇 분야의 연구개발을 시도했는데, 비록 모방개발이었지만 우리 군이 사용하기 알맞도록 수류탄의 형상을 수정했다. 또 발사용 유탄과 박격포탄, 신관도 개발했고, 살상효과와 사거리를 증대시킨 4.2인치 고폭탄도 개발했다. 각종 105mm 야포탄과 155mm 야포탄, 국내 최대구경인 8인치 곡사포용 고폭탄도 모방개발 했다. 이 중 일부분은 3차 번개사업의 한 부분으로 수행한 것이다.
그 밖에 1970년대에 전차포탄, 함포탄, 대인지뢰 및 대전차지뢰, 각종 투하탄도 개발 완료했다. 이러한 성과는 안정적인 군수물자 확보와 수입대체에 기여했고, 오늘날 방산물자 수출의 한 부분을 담당하는 밑거름이 됐다.
◆ 통신·전자·광학
번개사업의 일환으로 AN/PRC-6K 소대용 무전기를 개발했고 이를 개량하여 AN/PRC-6AK의 개발과 양산에 성공했다. 그 외에도 70년대에 전신전화단말기 KAN/TCC-29, 델타변조다중화장비 KAN/TCC- 29, 단파무선전신타자기세트 AN/GRC-142K 등 다양한 통신장비를 모방 또는 독자 개발했다.
통신기 외에도 지뢰탐지기, 소형 함정용 전자전장비 등도 독자 개발했고 휴대용 및 전차용 레이저 거리측정기, 야간 관측경 등도 개발했다. 이러한 개발경험은 후속으로 개발된 고성능 다기능 전자장비의 개발에 활용됐다.
◆ 기동·공병장비
한국형 전차개발은 기존전차를 개조하는 사업으로부터 출발했다. 국과연은 M48 전차를 M48A5호, M38A1 전차를 M48A5 및 M48A3로 개조하여 우리 군의 전투력 증강에 기여했고, 전차를 독자 개발할 능력을 축적했다. 개조하면서 구축한 품질보증과 시험평가 기술 그리고 일부 구성품 개발기술은 향후 한국형 전차의 국내개발 기반이 됐다. 이와 함께 군용차량 표준화를 위한 노력도 병행했다. 또한 군사원조에 의존하던 도하장비, 긴급활주로 복구키트도 모방 개발하여 보급했다.
◆ 화생방·물자
국과연은 1970년대에 화학작용제 탐지키트와 화학작용제 자동탐지경보기를 개발하고 보병용 방독면, 전차방독면, 항공방독면 등을 모방개발했다. 보호의, 방독장비도 개발하고 집단보호 표준장비인 여과기, 침수막문, 역류방지변, 공기압력조정기 등도 순차적으로 개발했다. 신경작용제, 피부제독키트 등 개인 제독 및 피부재처리 키트도 완전 국산화했다.
국과연은 방탄 헬멧, 전투식량, 피복, 낙하산, 방탄복 등의 연구개발도 수행했다. 지금은 민간업체가 경쟁력과 능력이 있어 더 이상 국과연의 주도나 연구개발이 요구되지 않으나 당시에는 이러한 물자 분야에서도 국과연의 역할이 요구됐다.
◆ 유도병기
유도병기의 개발은 국방과학연구소 출범 시부터 주요 목표 중 하나였다. 극비리에 기획하여 모방개발, 성능개량, 독자무기 개발의 3단계로 추진하기로 했다.
미국의 Nike-Hercules(NH)를 모델로 백곰 개발에 착수했다. 외형은 미국의 NH와 동일했지만, 재설계된 추진기관의 성능에 맞추어 공력가열 해석, 구조해석, 구조시험 및 풍동시험 등으로 시스템의 안정성을 입증하고 제작했다. 유도조종장치는 반도체화하여 신뢰성을 향상시켰고 탄두 및 추진기관도 국내 기술로 제작했다. 또한 사격통제 장비를 국내기술로 설계 제작했으며, 추적레이다는 반도체화했다.
1978년 4월에 최초 비행시험을 실시했고 이어 9월에 공개시사회도 성공적으로 치렀다. 백곰의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7번째 미사일 기술 보유국이 됐다. 이 개발 성공은 훗날 현무 시리즈 지대지유도탄 개발의 토대가 됐다.
[그림 3] 백곰 발사장면
국과연은 백곰과 함께 중거리급 로켓도 개발했다. 사거리 20km급 다연장로켓은 백곰과 함께 공개시사회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전력화됐고, 국군의 날 행사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그 외에도 경대전차로켓용 추진기관을 개발 후 사격하여 개발가능성을 확인했고, 2.75인치 로켓탄 등의 개발은 업체주도 개발의 기반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 기타
1970년대에는 국방연구개발 능력이나 경험이 부족 하여 항공무기나 해상·수중무기에 도전은 어려웠다. 항공무기 분야에서는 500MD 헬기 조립생산, F-5E/F의 조립생산 등이 추진됐고, 수중무기로는 미국의 어뢰와 기뢰의 모방 시제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러한 과정을 거쳐 축적된 기술과 경험으로 자기감응기뢰와 항공기투하 부설기뢰 개발을 이뤄냈고, 80년대에 한국형 대잠호밍어뢰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잠수정도 개념설계와 기본설계를 마쳐 80년대를 준비했다.
• 국방연구개발의 도약기(1980~1990년대)
1980년대 초반, 국과연은 구조조정으로 인해 일시적인 시련을 겪었다. 정원의 1/3에 해당되는 많은 연구원들이 국과연을 떠났고 국방연구개발도 침체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내 국내·외 안보환경이 급변하면서 국과연의 역할이 재부상했다. 긴장된 남북관계로 대북 우위의 군사력 증강과 자주국방 구현이 요구됐기 때문이다.
국방능력 확충이 강조되면서 국과연은 고도정밀병기 개발을 요구받았다. 우리나라 여건에 부합되는 무기체계를 적시에 개발하고 경제적으로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무기체계의 개발 및 시험평가, 방위산업 기술 육성 및 선도, 국방과학기술 관리 등이 추진됐다.
그에 따라 각종 연구개발관리제도가 보완됐고 연구개발 투자도 1981년 486억 원에서 1990년 1,517억 원, 2000년 3,725억 원으로 급증했다. 연구개발비는 국방비 대비 2.8%까지 확대됐다. 이 시기에 현무사업 재개와 천마 등 고도정밀 유도무기 개발이 이뤄졌다. 또 유도무기 시험장과 화포시험장을 확충하고, 해상시험장, 기동시험장 등 연구개발 인프라 구축도 활발하게 진행됐다.
1979년 국과연 부설로 설치된 국방관리연구소는 1986년 한국국방연구원법 제정에 따라 독립법인체로 발전했다. 또한 1981년에 국과연 부설기구로서 출범한 국방품질검사소는 1989년 명칭을 국방품질관리소로 변경했고 훗날 국방기술품질원으로 성장했다. 초창기 국과연과 함께 했던 이 기관들은 현재 국방정책분야와 국방품질기술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1980~2000년 기간 동안 국과연의 도약기를 맞아 연구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됐으며, 그 기간 동안의 주요 성과는 다음과 같다.
◆ 지상무기 분야
∷ 총포
국과연은 9mm 권총, 12.7mm K6 중기관총, 40mm K201 유탄발사기, 40mm K4 고속유탄기관총 등을 개발했다. K4 고속유탄기관총은 국내에서 4번째로 개발된 소화기이며 이로써 우리 군의 화력지수가 크게 증가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때 개발된 60mm 신형박격포, 81mm 신형박격포는 실전 배치됐다. 현시점에서 그 무기를 신형박격포라고 부르는 것은 조금 어색하지만, 당시로서는 신형이었다. 105mm 견인곡사포 개발은 수출로 이어져 국산 무기의 우수성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자주곡사포는 기술 도입으로 시작하여 마침내 국산화에 성공했다. K55 자주포는 1,000여 문이 전력화됐고, 이러한 국산화 노력은 향후 세계 유수의 K9 자주포의 개발로 이어지게 된다. 국과연은 1989년에 개념 형성연구를 통하여 155mm 자주곡사포의 최대발사속도, 사거리 등을 확정하고 1989년 정부주도 독자개발안을 제안했다. 1992년에 탐색개발에 착수하여 최대 사거리, 최대 발사속도, 급속사격 가능성 등 핵심 성능의 개발 가능성을 확인했고, 1996년 실용개발에 착수했다.
1997년부터 시작한 시험평가 기간 중 4,100여 발의 사격과 1만 3,800km의 주행시험 등을 철저하게 실시한 결과, 명품 K9 자주포가 탄생했다. K9 자주포는 아시아 최초로 독일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전력화된 신형 155mm 자주곡사포다. K9 자주포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터키, 인도, 폴란드, 핀란드, 노르웨이 등 각국에 수출되고 있으며 현존하는 155mm 자주포 중 가장 경쟁력 있는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그림 4] K9 자주포 사격장면
30mm 자주대공포체계인 비호도 이 기간에 개발됐다. 성공적으로 개발하고 시험평가를 무난하게 통과하였으나 개발 후 위협상황의 변화로 주목받지 못하고 전력화가 지연됐다. 그러나 최근에 비호는 방산업체주관 개발을 통해 신궁을 탑재한 비호복합체계로 변모했고, 마침 세계적으로 드론의 위협이 증가하여 드론 대응에 적합한 무기로 주목받으면서 유력한 수출상품으로 거듭났다.
[그림 5] 수출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비호복합
이 기간 중 20mm 발칸 대공포와, 35mm 오리콘 대공포 성능개량은 업체주관으로 이뤄졌다.
∷ 탄약
탄약분야 기술은 80년대 들어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국과연은 사거리 연장 2.55mm 소총탄, 20mm 기관포탄, 30mm와 35mm 대공탄약, 40mm 저속유탄 등을 정부주도 또는 정부관리 사업방식으로 개발했다. 이중목적 고폭탄, 4.2인치 박격포용 고폭탄, 연막탄, 81mm 박격포탄 등을 개발했고, 155mm 곡사포탄 및 사거리 연장탄, 연막탄, 조명탄 등 각종 탄약도 성공적으로 개발했다. 이 포탄들의 성능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아 많은 물량이 수출됐다.
전차탄으로는 대전차고폭탄, 날개안정철갑탄이 생산 보급됐고 무반동총용 고폭탄도 독자 개발했다. 각종 함포탄과 대전차 지뢰도 국내개발에 성공했다. 특히 지하침투탄도 독자 개발하여 국내외에 뛰어난 탄약개발의 능력을 과시했다. 신관개발도 활발히 이루어져 유도무기와 각종 포탄에 활용됐다.
∷ 기동·공병장비
기동장비 분야는 80년대에 터닝 포인트를 맞이했다. 군의 강력한 소요제기로 국과연이 한국형 전투장갑차 개발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때, 미 군원장비인 M113을 운용하면서 정비를 통하여 얻은 기본 개념과 경험이 도움이 됐다. 한국 독자기술로 개발한 K200 전투 장갑차는 K200A1으로 성능개량 됐고, 구난 장갑차(K288), 박격포탑재 장갑차(K242, K282), 발칸탑재 장갑차(K263), 전투지휘용 장갑차(K277), 화생방 정찰장갑차(K216) 등으로 계열화됐다. K200은 동남아 국가에 수출되었고 유엔 평화유지군 장비로 채택되어 다수 수출됐다. K200 기술은 향후 자주대공포 비호와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마의 섀시 개발에 활용됐다.
[그림 6] 국군의 날 퍼레이드에 참가한 K200
그 밖에 군 표준차량 개발과 계열차량 개발도 활발히 이뤄졌다. 이 때 개발된 차량은 5톤 트랙터 트럭, 106mm 포차, 1/4톤 토우 탄약차, 1/4톤 구급차 등 10종에 달했다. 각 계열차량 개발로 군 기동력과 전술작전 능력이 크게 향상됐고, 후속 전술차량 능력 독자 개발능력이 축적됐다.
또 당시 M48 전차를 사용하던 우리 군은 신형전차의 보급을 원하고 있었다. 그 갈망으로부터 한·미간 협상과 기술협력을 거쳐 일명 88전차 즉 K1 전차가 탄생했다. 국과연은 개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독자모델의 전차 개발을 준비하였으나, 국방부 전차 사업단이 개발을 주관하면서 기술지원 역할에 머무르게 됐다. 개발에 9년이 소요됐고 1988년 양산에 들어갔다.
K1전차가 개발되고 이어 계열화가 진행됐다. 구난 전차, 교량전차 등이 정부관리 업체주도로 개발됐다. 그 외에 전차 도저키트, 지뢰제거 롤러 등 공병장비 등이 전력화됐는데, 기간과 예산 문제로 대부분 기술도입 생산방식으로 추진됐다. 그러나 국과연은 이 기간 중 습득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차기전차 개발을 준비했다.
◆ 유도·로켓무기 분야
∷ 백곰 개량형(NHK-2)과 현무 지대지유도탄
국과연은 백곰에 이어 개량형(NHK-2)에 착수했으나 국과연 사업조정과 1983년 감축개편으로 사업이 중단됐다. 그러나 같은 해 아웅산 테러 사건을 계기로 장사거리 지대지유도탄의 개발 요구가 제기됐고, 국과연은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여 1987년 개발을 완료했다. 개발사업명은 북방을 지키는 신 ‘현무’였다.
현무는 기본적으로 백곰 개량형의 형상을 유지하면서 성능개량과 일부 구성품을 최신화하는 방향으로 추진됐다. 당시 유도무기 생산 및 운용경험이 부족하여 국과연은 생산, 부대 창설, 운용요원 교육 및 정비 지원까지 맡았다. 이어 2차, 3차 생산의 기술지원과 운용 기술지원임무도 수행했다.
∷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마
1980년대 중반 방공유도무기의 해외 의존을 탈피하기 위해 육군은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를 소요제기 했다. 국과연은 당시 국내개발은 무리라는 우려 섞인 시선을 이겨내고 단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마’ 개발에 성공했다.
[그림 7] 천마 발사 장면
방공유도무기 개발에는 다양한 기술이 요구됐는데, 단거리함대함 유도무기인 해룡으로부터 유도탄 및 구성품 기술, 백곰과 현무사업으로 확보된 풍동 등 실험실과 인프라, K200과 비호사업에서 축적된 시스템 통합경험이 활용됐다.
그러나 탐지레이다와 추적레이다 기술은 미미하여 해외기술협력이 요구됐다. 국방과학연구소의 40여 개연구실, 그리고 13개 주요 방산업체와 11개 연구기관, 대학교 등이 참여하여 11년의 개발기간이 소요됐다. 천마사업은 당시로서는 대형사업으로 선행개발예산만 900여억 원에 달했다. 천마는 많은 물량이 생산 배치됨으로써 우리나라에 유도무기 산업이 정착되는 계기가 됐다.
이 기간에 국과연은 현무와 천마 외에도 단거리함대 함유도탄 ‘해룡’과 다련장 로켓 ‘구룡’도 개발했다. 해룡은 1986년 성공적으로 시험평가를 마쳤으나 작전 운용환경의 변화 및 획득가격 상승 등의 이유로 전력화는 진행되지 않았다. 또 1978년 시사회 후 전력화된 구룡Ⅰ의 사거리 연장이 요구되어 1982년에 구룡Ⅱ를 연구개발에 착수했고 1989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그 밖에 경대전차 무기(K-LAW) 등을 개발하기 위해 선행연구를 수행했으나 긴급 도입사업으로 변경되어 개발을 착수하지 않았다.
◆ 항공기 분야
항공기 분야 연구개발은 1970년대 말 기만용 무인항공기 연구개발로부터 시작한다. 지금은 무인기 또는 드론으로 불리지만 당시의 호칭으로는 무인항공기였다. 외국으로부터 관련 기술을 전수받아 개념설계와 상세설계를 마쳤지만, 1983년 사업이 중단됐다. 소요 군의 필요성 재검토에 따른 것이었다. 국과연은 사업 중단 이후에도 자체 비행시험을 수행하여 기술과 경험을 축적했다. 이는 추후 훈련기 개발 등에 중요한 경험으로 활용됐다.
1982년부터 국과연은 훈련기 개발 가능성 검토를 위해 기초연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초등훈련기의 경우 국내 개발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고, 이를 토대로 1983년 항공기 외형 및 시스템 구성 개념연구를 시작했다. 여러 설계안 중 최적안을 선정하고 1988년 본격적인 탐색개발에 들어갔다. 첫 항공기 개발에는 많은 기술적 난관이 있었고, 시험시설도 부족하며 해외 발주도 지연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이를 극복하고 시제기를 제작하여 기본 시험을 수행했고, 1993년에 선행개발, 1997년 실용개발 단계를 거쳐 1998년 개발을 완료했다. 이것이 바로 KT-1이라고 불리는 기본훈련기다.
[그림 8] KT-1 라인업
최종 완성된 시제기는 항법과 엔진부에 전자식 통합계기가 적용됐고, 착륙장치의 성능개선, 자동러더조종장치 추가, 사출장치 성능개선 등 개발과 시험과정에서 지적된 모든 개선사항이 적용됐다. 국과연은 불만족 사항이 모두 해소됨을 확인하고 ‘군 사용 가’ 판정을 받아 장장 11년에 걸친 연구개발을 마무리했다.
KT-1은 양산되어 우리 공군의 훈련기로 사용되었으며, 인도네시아, 터키, 페루 및 세네갈 등에 100대 가까이 수출됐다. KT-1 개발로 확보한 기술은 T-50 고등훈련기 개발에 적용됐고 한국형 전투기 KF-X 개발의 밑거름이 됐다.
국과연은 고등훈련기 개발을 위해 절충교역 등을 활용하여 기술을 축적해 나갔다. 1992년 탐색개발에 착수했는데, 체계개발 시 국제공동개발 방안을 강구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체계개발단계는 업체주도/국제공동 연구개발로 결정되어 탐색개발 시 획득한 자료와 기술을 체계개발업체에 이관했다.
체계개발은 1997년에 착수됐고, 국과연의 역할은 공군의 사업관리를 지원하는 기술관리 수준으로 축소됐다. 회전익 분야는 큰 잠재수요에도 불구하고 진전은 더뎠다.
1987년에 비로소 기술분석 및 기초연구를 수행하게 됐으나 기술부족으로 독자개발은 추진하지 못하였고 2000년대까지는 기술도입생산으로 결정된 사업의 기술을 지원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편으로는 육군 군단용 정찰용 무인항공기 ‘비조’ 개발도 수행했고 1999년에 기술시험과 운용시험을 마쳤다. 비조는 요구성능을 충족하여 2000년 ‘전투용 사용 가’ 판정을 받아 전력화됐다.
◆ 해상·수중무기 분야
∷ 잠수함·수상함
국과연은 1970년대 말에 마친 설계를 바탕으로 소형 잠수함을 건조하여 군에 공급, 후속 양산사업의 기술지원을 담당했다. 그리고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잠수함 획득방안 조사연구과제를 수행했다. 해군의 잠수함 획득사업인 209사업과 214사업에 참여하면서 선진국의 중잠수함 설계기술을 일부 확보했다.
수상함의 경우 국내 조선산업의 발전으로 함정건조는 방산업체에서 수행했다. 국과연은 내충격능력 향상 등 특정 기술분야에 집중하여 기술지원을 담당했다.
∷ 중어뢰 ‘백상어’
어뢰는 초기에는 모방개발 방식으로 경어뢰를 개발하여 전력화했고, 이때 획득한 기술과 경험을 바탕으로 중어뢰 개발에 도전했다. 1998년에 사업승인을 받고 1990년부터 개발에 착수했는데, 이는 국산 어뢰를 보유하고자 하는 해군의 강력한 의지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미국이 중어뢰 판매 불가를 천명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그림 9] 중어뢰 ‘백상어’(좌)와 시험장면(우)
국과연은 중어뢰의 순수 독자개발을 추진하여 1998년 개발을 완료했고, 선진국 수준의 어뢰개발능력도 보유하게 됐다. 이 중어뢰는 ‘백상어’로 명명되었고, 중어뢰 개발이 성공적으로 진행되면서 경어뢰 ‘청상어’ 개발도 착수했다.
∷ 기뢰 및 기타 무기체계
이 기간 중 해상·수중 분야에서의 또 다른 성과는 기뢰분야이다. 기뢰는 작전운용상 은밀성이 매우 중요하다. 국과연은 잠수함 획득사업에 맞추어 기뢰개발을 추진하여 전력화에 기여했고, 이 기뢰는 잠수함에 탑재 운용중이다. 그 밖에 폭뢰도 국산화 개발했다.
또 소노부이, 선배열 탐지센서 등 수중탐지 분야의 연구를 수행하여 어뢰 탐지 및 항만감시체계 개발을 위한 기술을 축적했다. 함정용 20mm 발칸포, 40mm 쌍열함포 등 어뢰대항응향체계도 개발했다. 또한 호위함급 전투체계 도입생산에 기술지원 방식으로 참여하여 함정전투체계 기술을 축적했다. 이로써 독자 함정 전투체계 개발이 가시화됐다.
◆ 통신·지휘통제·초고주파·전자광학 분야
∷ 통신
국과연은 번개사업의 일환으로 소대용 무전기를 개발했지만, 80년대 들어 전자통신 기술이 발전하여 발전추세에 맞는 성능향상, 소형경량화 및 저전력화가 요구됐다. 1983년에 신형 무전기(AN/PRC-85K) 개발에 착수하여 1986년 개발을 완료했다. 또한 차기 FM 무전기(AN/PRC-999K 등) 개발도 착수했다. 1985년에 선행개발, 1988년에 실용개발에 착수하여 1990년에 양산에 들어갔다. 동급 외산 무전기에 비해 성능이 조금도 부족하지 않았다.
[그림 10] 개발된 통신 단말기
이러한 무전기들은 다량으로 수출되어 향후 해외 통신시장에 진출하는 길잡이가 됐다. 아울러 차기 AM 무전기(AN/PRC-950K), 전술용 전송장비(GXC-99K), 전술용 전자식교환기(SB-30K), 연대급 이상용 전술용 교환기(TTC-95K) 등도 독자 개발했다. 방산업체의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교환기의 경우 실용개발은 업체 주도로 진행됐다. 이 기간에 SPIDER로 불리는 전술 통신체계는 국과연 주도로 선행개발을 수행했으나 기술이 성숙됨에 따라 실용개발 단계에서는 업제주도로 변경됐다. 위성통신체계 개발은 소요가 확정되어 개발에 착수했다.
∷ 전자전 및 기타
포클랜드 전 이후 전자전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국과연도 전자전장비 개발에 착수했다. 먼저 소형함정용 전자전장비(KDJ-10)를 개발하여 전력화했고, 이어 대형함정용 전자전장비(KDJ-25)도 개발하여 탑재했다. 병행 개발한 항공기용 전자전장비(ALQ-88K)는 실용 개발단계에서 일부성능보완을 거쳐 ALQ-88AK라는 형식번호를 부여받고 전력화됐다.
국과연은 지뢰탐지기도 개발했다. 그 외에 사격제원 계산기를 개발하여 다련장로켓과 155mm곡사포부대에서 운용했으며 대대급 포병지휘를 전산화한 포병사격지휘장비, 소형함정용 사격통제장비도 개발하여 실전배치했다.
∷ 레이다·전자광학
레이다 분야에서 국과연은 기술도입생산 및 운용유지 기술지원을 수행하면서 각종 해외 레이다의 기술 조사, 개념연구 등으로 기술적 기반을 닦았다. 또 기초 연구를 수행하여 평판배열안테나를 제작했고, 한편으로는 비호사업에 참여하고 탐지레이다 국산화를 지원했다. 레이다의 국내 독자개발 필요성은 높아지고 있었으나 국내개발 의지를 구현할 레이다 개발 사업은 도출되지 않았다.
국과연은 전자광학 분야에서 초기에는 쌍안경, 레이저거리측정기 국산화에 주력했으나 주간광학분야는 이내 방산업체로 이관하고 열상장비에 집중했다. 1990년에 열영상장비 개발에 착수하여 1996년 개발에 성공하였고, 열상장비(TOD TAS-970K)가 전력화되면서 우리 군의 야간감시능력이 대폭 신장됐다. 전차 조준경용 레이저거리측정기의 국산화대체를 위한 개발도 성공하여 전력화시켰다.
그 외 광섬유, 레이저 경보장치, 전자광학추적, 영상 정보처리 등의 분야에서 기술 개발이 추진됐는데, 이것들은 2000년대 차기전차, 군사위성 등의 사업에서 꽃을 피웠다.
◆ 화생방·물자·소재 분야
∷ 화생방·물자
이 기간에 화학자동경보기(KM8K1, KM8K2), 부착형 화학작용제 탐지지, K1 방독면을 개발했고, 집단보호장비용·전투차량용·K1 전차용 가스입자여과기(각각 KM6A1, KM8A3, KM13A1)를 순차적으로 개발하여 보급했다. 그 외 수용성 제독제, 생물학 제독제, 피부제독 키트와 개인제독 및 피복 재처리키트도 개발했다.
신경작용제 치료제와 자동주사기, 그리고 해독제와 함께 키트화한 신경작용제 해독제 키트를 개발하고 전력화했다. 그 외 군 급식 및 식량분야에서 식단, 저장시험기법, 포장재, 야전급식체계 기술지원 등의 성과가 있었다.
∷ 소재
국방소재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국과연은 1987년 소재개발 사업기구를 발족시켜 체계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 기간 중 개발된 대표적인 개발 소재들은 HgCdTe 적외선 탐지소자, 전파흡수재료, 고강도 마레이징강, 텅스텐 관통자, 장갑·방탄재료 등이며 특성 평가 기술 등 관련 기술도 같이 개발됐다.
• 국방연구개발의 성숙기(2000~2010년대)
2000년대에는 IT 산업 등 산업기술이 급격하게 발전했고, 경제규모가 비약적으로 커졌다. 강해진 국력에 발맞춰 국방비 및 국방 연구개발 규모도 커졌다. 또한 기술의 발전으로 무기체계의 복잡도가 크게 증가했고, 무기체계의 단가와 개발비용도 치솟았다.
Fast Follower로서 지금까지 대북 위협에 초점을 맞췄던 국방과학연구소와 국방연구개발에도 새로운 도전이 주어졌다. 국내 연구개발 무기체계에도 높은 성능과 함께 경제성과 수출경쟁력이 요구된 것이다.
그때까지 소총, 유도무기로부터 피복, 방독면, 급식 체계까지 아우른 국과연 사업은 백화점식 연구개발로 더 이상 지지를 받지 못하였다. 방산업체의 기술이 발전하고 경험이 축적되면서 국과연은 체계사업은 과감하게 방산업체로 이관하고 핵심 소요기술 개발에 주력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런데 컴퓨터·IT 산업 등이 발전하면서 무기체계에서는 소위 C4ISR/PGM이 부각 됐다. 즉 감시정찰·지휘통제·정밀타격과 시스템 통합이 중요시됐다. 이에 따라 무기체계의 복잡도와 정밀도, 다기능성이 크게 증가했고, 그러한 상황에서 체계개발의 방산업체 이전에 따른 기술적 리스크, 사업 관리 문제도 검토해야 했다.
결국 국과연은 고 리스크 체계개발과 전략·비닉 체계의 연구개발, 핵심기술에 주력하기로 하였고, 무기체계 개발은 방산업체에서 담당하는 것으로 수차례 정리됐다. 그러나 국방연구개발사업의 안정성 등 현실적인 이유로 많은 사업이 국과연 주도로 진행됐다. 국방연구개발 역사가 30년이 지나 성숙기에 진입한 이기간 동안의 국방연구개발성과를 개발된 무기체계 중심으로 돌아본다.
◆ 유도·로켓무기 분야
∷ 방공유도무기
천마 개발 성공으로 방공유도무기 개발에 대한 자신감과 경험을 축적한 국과연에 새로운 방공유도무기 개발의 기회가 주어졌다. 다양한 국가로부터 도입하여 운용하던 휴대용대공유도무기의 운용과 군수지원 등에서 문제점이 드러나 국내개발 당위성이 부각됐기 때문이다. 국산무기를 향한 소요군의 의지도 작용했다. 휴대용대공유도무기는 90년대 말에 체계개발에 착수해 2004년 개발을 완료했다. 이 새로운 유도탄은 신궁이라고 명명됐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적외선탐색기를 탑재한 대공유도무기 개발국가가 됐다. 신궁은 군의 훈련사격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고, 방공유도무기로 첫 해외수출도 됐다. 소요 물량이 많아 수입 대체 효과도 뛰어난 것도 장점이다. 신궁은 비호에 탑재하여 비호복합체계(Hybrid BIHO)를 구성하며 이것은 해외에서 관심이 많아 수출이 유력한 무기체계다.
천마로 복합유도무기의 개발 가능성을 확인한 국과연은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 ‘천궁’의 개발에 도전했다. 중거리지대공유도무기는 우리나라 주력 방공유도무기체계이기 때문에 그 개발이 갖는 함의는 매우 크다. 1998년에 개념연구, 2001년에 탐색개발에 착수했다.
탐색단계에서 수 차례 실패를 딛고 2006년 체계개발에 착수했다. 다기능레이다, 수직사출발사 등 새로운 개념의 복합무기체계 개발은 기술적으로 큰 도전이었다. 체계개발 단계의 개발비도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5,000억 원 수준이었다.
천궁은 1년여 간의 시험평가 과정에서 대부분의 표적을 직격하는 등 뛰어난 성능을 보였고 이는 직격이 요구되는 탄도탄 요격체계 개발의 발판이 됐다. 천궁은 2011년 개발 완료됐고 전력화되어 우리나라 방공을 책임지고 있다. 천궁은 명중률, 다표적교전 능력, 신속배치 및 기동성, 생존성 등이 뛰어나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보이며 수출도 예상되는 세계 수준의 방공유도무기이다. 천궁에서 개발된 다기능레이다 기술, 사출발사 기술 등은 타 사업에서 긴요하게 활용됐다.
[그림 11] 천궁(다기능레이다, 수직발사대, 교전통제장비)
천궁 사격시험을 참관하여 가능성을 확인한 군은 천궁이 개발중임에도 전격적으로 천궁 개량형인 저고도탄도탄 요격무기체계의 소요 제기를 추진했다. 그 결과 천궁 개발완료 다음 해인 2012년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천궁 개발의 경험을 이어받아 개발했으므로 탐색개발 등의 단계 없이 곧바로 체계개발에 돌입했다. 탄도탄 요격체계 개발은 총알로 총알을 맞춘다는 비유가 있을 정도로 고난이도 사업이지만 천궁 개발성공으로 인한 신뢰도 작용했다.
국과연은 1,600여억 원의 아주 적은 예산으로, 기존 천궁에 레이다의 탄도탄 탐지추적능력을 보완하고 교전통제장비에 탄도탄 교전 알고리즘을 추가하여 개발하기로 했다. 단, 요격탄은 탄도탄 표적 요격에 적합하도록 새로 개발했다. 구성품 시제를 마치고 체계통합한 후 2016년 2월 탄도탄 표적 요격시험을 실시하여 직격하였다.
[그림 12] 천궁 발사 및 명중 장면
우리나라는 미국, 프랑스에 이어 순수자국 기술로 저고도에서 탄도탄 직격을 성공시킨 세 번째 나라가 됐다. 이후 모든 시험사격과 시험평가사격에서 모두 명중하며 시험평가를 통과하고 2017년 개발완료됐다. 이 무기체계는 천궁 Ⅱ로 명명됐고, 많은 나라에서 관심을 보여 수출상담중이다.
넓은 바다에 떠있는 함정은 대함유도탄 등 공중공격에 매우 취약하다. 숨을 곳도, 의지할 데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 방어하여야 한다. 지금까지 함정방어무기는 해외에서 도입하여 운용하였으나, 국내 기술이 성숙된 지금은 국내개발 무기체계를 장착하는 것이 당연했다. 해군은 단거리 함정방어시스템으로 대함유도탄방어유도탄 ‘해궁’을 소요제기했다. 마침 국과연은 천궁 개발을 통해 다표적교전기술과 유도탄의 비행중 표적포착 기술 등은 확보한 상태였다.
[그림 13] 해궁 발사장면
2011년 개발에 착수하였으나 해면클러터 및 해상 환경이라는 암초에 걸려 사격시험에 몇 차례 실패했다. 명중률 미달로 사업중단의 우여곡절을 거쳐 재사격, 재시험의 고비를 넘어 2018년 운용시험평가 사격을 통과하고 개발에 성공했다. 해궁은 이중탐색기, 즉 적외선영상탐색기와 초고주파탐색기를 모두 장착한 세계에서 유일한 함정방어유도무기이며 그 성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해궁은 호위함, 상륙함, 수송함 등등 각종 함정에 탑재하여 함정보호역할을 담당할 것이다.
∷ 대함·대잠 유도무기
함대함 유도무기 ‘해성’은 1996년 탐색개발 착수, 1998년 체계개발에 착수하여 2003년 개발완료됐다. 전부터 대함유도탄의 국내개발 욕구가 있었으나 마이크로웨이브 탐색기 등의 기술적 리스크를 우려하여 해외도입을 거듭하다 드디어 국내개발하기로 용단을 내린 것이었다. 국과연은 탐색개발을 통해 기술적 리스크를 해소하고 지체 없이 체계개발에 착수했다.
제트엔진과 탐색기 분야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여 국산화를 이루었고 이어 비행시험에도 성공했다. 이후 규격화 및 전력화까지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해성은 전천후 장거리 공격능력과 해면밀착공격, POPUP공격, 재공격 등 다양한 종말공격 방법을 보유한 세계 최첨단 대함유도무기 중 하나이며 우리나라 유도 무기 중 최초로 수출됐다.
대잠유도무기 ‘홍상어’는 구축함에서 수직으로 발사된 어뢰가 적 잠수함이 있는 해상으로 날아가 낙하산을 이용해 투하된 뒤 수중에서 주행해 표적을 공격하는 개념의 무기이다. 이러한 추진체계는 물속에서 느릴 수밖에 없는 어뢰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다. 홍상어는 2003년에 개발 착수하여 2009년 완료됐다. 홍상어는 개발과정에서 어뢰의 추진전지문제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전력화 후에도 시험발사에서 표적타격에 실패하여 수차례 확인시험을 해야 했다.
결국 2014년 시험사격한 3발이 모두 명중해 논란이 종결됐다. 홍상어는 미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된 로켓발사어뢰체계로, 우리 해군의 대잠 작전반경 확대에 기여했다.
∷ 대지 유도무기
해군은 대함유도탄 해성을 대지공격용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해성의 비행방식이 순항유도탄과 같기 때문에 육상용으로 개량하면 훌륭한 대지공격용 순항유도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함정에 따라 탑재할 수 있는 발사대가 상이하므로 수직발사형과 경사발사형 두 가지 형태의 유도탄을 개발하기로 했고, 2011년에 개발에 착수하여 2017년에 완료했다.
그 명칭은 ‘해룡’으로 정해졌다. 유도탄 성능은 이미 입증된 것이었으니 육상비행방식과 표적에 적합한 탄두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했다. 비행시험을 무리 없이 성공하여 기간 내 개발을 완료할 수 있었다. 이로써 우리 해군이 적의 지대함 유도탄 공격권 밖에서 연안 표적이나 내륙의 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육상용 단거리용 지대지유도무기로는 전술지대지 유도무기(KTSSM)가 있다. 갱도진지 및 유개화 진지를 최단시간에 무력화할 무기로 소요제기됐고, 국과연은 2014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9년 완료했다.
[그림 14] 전술지대지유도무기의 시험장면
이 유도무기는 널리 알려진 미국의 ATACMS와 동급의 유도무기이며 정확도가 뛰어나다. 또 토사와 콘크리트 벽을 관통하고 동작하는 탄두와 신관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전술지대지유도무기는 전력증강에도 크게 기여할 뿐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파급효과가 큰 무기체계다.
∷ 유도로켓
소형 고속선박으로 해상침투하는 표적에 대한 대응 방안으로 2.75인치 로켓을 활용한 무기체계가 고안됐다. 이 분야는 2000년대 중반에 미측과 공동연구를 통해 어느 정도 기술이 축적됐고, 응용연구를 통해 영상 탐색기 기술도 준비된 상황이었다.
비궁은 2.75인치 로켓에 영상탐색기를 탑재하여 발사 후 망각방식으로 운용하며 동시에 다표적을 타격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2012년 착수하여 2016년 완료했다. 비궁은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발사 후 망각방식의 2.75인치 로켓이며 미 국방부의 무기체계평가 프로그램인 FCT Foreign Comparative Test도 통과하여 우수성을 인정받았고 해외에도 수출됐다.
또한 군은 고속정에서 해안포 동굴진지 타격에 적합한 무기체계가 필요한 것으로 보고 130mm 유도로켓 소요를 제안했다. 대부분의 기술이 확보된 상태였으므로 바로 체계개발에 착수했다. 2013년 착수해 만 4년이 채 안 되는 2017년에 완료했다. 이 유도로켓은 저비용, 운용편이 등을 고려하면 해외수출 전망이 밝다.
∷ 대전차 유도무기 ‘현궁’
현용 대전차무기의 노후화 및 제한사항을 해소하고 표적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한 발사 후 망각형 대전차무기가 요구됐다. 국과연은 성능 우위, 소형·경량화, 국산화, 저가화, 운용신뢰성의 5대 목표를 가지고 2007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5년 완료했다.
현궁은 다양한 전장환경에서 성능과 신뢰성이 보장된 무기체계다. 현궁은 보병대대의 전투력을 2배, 무기효과지수는 6배로 증대시켜 전투력의 극대화에 기여했으며, 해외수출도 진행중이다.
◆ 통신·전자전·지휘통제·정보 분야
∷ 통신
운용중인 SPIDER를 대체하고 전술 C4I 등 응용체계에 통신 기반을 제공하기 위한 새로운 전술정보통 신체계가 필요했다. 일명 TICN 체계로 불리는 이 시스템은 기간망전송체계, 기간망교환접속체계, 망제어체계, 전투무선망체계, 전술이동통신체계, 보안관제체계와 지원부수장비로 구성된다.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어 2003년 개념연구 착수부터 2016년 체계개발 종료까지 무려 13년이 소요됐다. 개발에 민간의 성숙된 IT 및 이동통신기술이 최대한 활용됐다. TICN 체계로 우리 군은 한국적 지형에 적합한 통신수단을 확보했고, 3군 통합망 구축으로 작전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시켰다.
군 위성통신체계(아나시스, ANASIS)는 대전자전 및 보안기능을 보유하고 전·평시 육·해·공군의 통합된 지휘·통제·통신이 가능한 군 위성통신체계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1996년 개념연구에 착수하여 2007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그림 15] 아나시스 체계의 운용개념
아나시스 체계는 통신위성, 위성운용국, 지상단말장비로 구성됐다. 지상으로부터 약 3만 6,000km에 위치한 정지궤도 통신위성의 중계기능을 이용하여 지상단말 사용자 간에 안전한 대용량의 음성·데이터·화상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통신서비스를 제공한다.
∷ 전자전
전자전은 육상, 해상, 공중에서 모두 일어날 수 있다. 전자전 장비는 선진국에서 철저한 보안과 통제 속에서 개발되는 첨단비닉장비이다. 국과연의 개발 역사를 따라 공중, 해상, 육상 순으로 개발내역과 성과를 알아본다.
1990년대에 개발했던 항공기용 전자전장비 ALQ-88AK를 운용 간 소프트웨어 지원하면서 신형 전자방해장비를 개발했다. 형식번호는 ALQ-200이며 KF-16D 전투기 및 RF-4C 전술정찰기에 장착해 전자 전투환경에서 공격임무, 공대공임무 등 항공작전 수행시 적의 미사일과 대공포 공격으로부터 아군항공기를 방어할 수 있다.
또 해상작전헬기용 전자전 지원장비도 개발했다. 형식번호는 ALR-200K이며, 위협 신호를 조기에 탐지·식별해 조종사에게 전시·경보하고, 모함에 데이터링크를 통해 전송한다. 이 기술은 한국형 기동헬기인 수리온의 생존 장비인 경보수신기 개발에도 적용됐다.
함정용 전자전 장비 분야에서는 KDJ-10와 KDJ-25의 개발경험을 살려 호위함급 이상의 대형함정용 전자전 장비를 개발했다. 2001년에 개발 완료했고, 사업명은 SONATA였다. SONATA는 해상환경에서 전자정보를 수집하고, 적의 미사일과 사격통제 레이다의 위협으로부터 아군 함정을 보호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지상전술전자전장비-Ⅱ 사업은 적 전술지휘통신망을 탐지, 방탐, 감청 및 전파 교란하는 차량형 통신전자전 장비를 개발하는 사업이었다. 개념연구나 탐색개발 없이 2005년 곧바로 체계개발에 돌입하여 2011년 완료했다. TLQ-200K/201K의 형식번호를 부여받은 이 장비는 통신대역에서 국내 최초로 개발되는 전자전 장비로서 선진국 장비와 대등한 성능을 달성했다.
2007년에 착수하여 20011년에 개발 완료한 전술정찰정보수집체계(ARD-300K)도 있다. 이는 RF-16에 장착해 전·평시 적 위협 방사체의 레이다 신호를 탐지 및 수집하고 전자기술 특성자료를 분석해 전자전장비 위협식별자료 및 전자정보 생성에 필요한 기초 자료를 제공하는 장비다.
701체계는 북한/주변국의 통신 및 전자장비 신호와 미사일 발사 관련 계기신호의 정보수집능력 증대를 위한 독자적인 공중 신호정보 수집체계로 2011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8년 개발을 완료했다. 701체계는 임무항공기와 기동형중계소, 지상종합처리시설로 구성되고 각각의 하부에 방대한 장비가 있다.
701체계는 국내 최초로 개발된 항공기용 신호정보 수집체계로서 우리 군의 독자적인 정보 자주화 능력 및 작전수행능력을 증대시켰으며, 이로써 미사일 발사 관련 계기신호 및 미사일 화염신호에 대한 탐지 및 경보 능력을 확보했다. 또한 각종 핵심기술을 확보로 선진국 수준의 신호정보수집장비 설계 및 제작 능력을 보유하게 됐다.
∷ 지휘통제·정보
IT와 SW 기술의 발전으로 방산분야에서도 업체주도 개발이 가능해졌고 일부에서는 민간 기술의 우위 영역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부대 간 정보 생산 및 유통 과정을 자동화하여 실시간으로 분석, 결심, 전파하는 군사정보통합처리체계(MIMS)와 각 군 전술C4I체계, MIMS 등을 통합연동하는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CCS)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방산업체에서 체계개발을 주관하고 국과연은 특정분야 기술지원을 담당했다.
KJCCS의 경우 국과연은 2003년 개념연구를 수행하여 운용개념과 체계규격을 정립했지만 체계개발과 성능개량은 업체주관으로 진행됐다. 국과연은 체계개발 과정에서 기술지원을 담당했다.
데이터링크는 네트워크 중심전이 강조되는 현대전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한국군 전장환경 및 무기체계에 적합하며, 센서, 지휘통제 및 타격체계 간 전술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 위한 한국형 합동전술데이터링크체계(JTG-110K) 개발이 요구되어 2009년 개발에 착수했다. 체계는 전술자료처리기, 전술상황전시기, 통신장비, 네트워크 관리기, KICC 교육장비로 구성됐는데, 민간에서 발전한 IT 기술과 통신기술이 접목됐다. 이 사업은 단계사업으로 추진되어 2014년에 1단계가 완료됐다.
또 레이다 등 탐지체계와 방공무기, 방공지휘통제소 등을 연동하여 통합방공을 지원하는 방공지휘통제경보(C2A)체계도 개발했다. 이 사업은 2010년에 착수하여 2017년에 완료했다.
[그림 16] 한국형 합동전술데이터링크체계 운용 개념도
그 밖에 지상전술무기체계 간 근실시간 디지털 전술정보교환이 가능한 육군 전술데이터링크 프로토콜 기술(KVMF), 국방 데이터공유환경(SHADE) 관리자동화 기술, 사이버 침입탐지 및 공격탐지기술 개발 등 보안과 정보통신 분야의 많은 성과가 있다.
◆ 감시정찰·항법 분야
∷ 전자광학
국과연은 전투기에 외장 POD형으로 탑재하는 전자 광학영상장비(Tac-EO/IR)를 개발했다. 전자광학영상장비는 전술정찰 소요표적에 대한 EO/IR영상을 획득하고 데이터링크를 통해 근실시간으로 지상에 전송한다. 2007년 개발에 착수하여 2013년에 개발완료했다. 이로써 군의 주·야간 전술정찰 영상정보 근실시간 획득 체계 구축에 일조했고, 국내 최초로 전투기에 탑재하는 전자광학체계 개발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기술적으로 차기전차 조준경과 레이저경고장치, 차기 호위함과 유도탄고속함의 전자광학추적 장비, 한국형 기동헬기 항법용 전방관측 적외선장비(FLIR)와 레이저경보수신기(LWR) 등을 개발하여 전자 광학 감시정찰분야의 괄목할 만한 성장이 있었다.
∷ 레이다
레이다 분야는 감시정찰 장비로서가 아닌 주로 무기체계의 탐지추적센서로 개발하는 방식으로 발전이 이루어졌다. 대표적인 경우가 천궁의 다기능레이다이며 이 3차원 위상배열교전레이다는 레이다 분야의 모든 최신 기술이 구현된 것이다.
개발초기에 해외 기술협력을 통해 도움을 받았지만 이내 기술을 국산화하고 정착시켜, 천궁Ⅱ 개발 시 탄도탄 탐지·추적·교전 기능까지 수행하도록 독자적으로 성능을 개량했다. 이 기술은 항공기용 AESA 레이다 국내개발의 배경이 됐다.
그 밖에 유도탄 고속함용 탐색레이다와 추적레이다, 호위함용 탐색레이다와 추적레이다 등도 개발했다.
∷ 항법
전장에서 PNTPositioning, Navigation, Timing 정보가 중요시되면서 항법기술이 매우 중요하게 됐다. 국내에서는 주로 유도무기에 항법센서 등이 적용되면서 항법기술이 발전했다. 지상장비에도 연동작전을 위해 위치 및 표적정보 교환이 요구되고, 정확한 위치정보 교환을 위한 지상항법장치 적용이 확대됐다. 항법기술은 모든 국가가 전략적으로 보호하는 기술이다. 국과연은 모든 유도무기의 항법시스템을 독자 개발했으며, 유도무기의 지상장비용 및 각종 플랫폼용 항법장치도 개발했다. 천궁의 지상항법장치, 한국형 기동헬기의 항법장치, 포병용 자동측지장비 등이 그것이다. 최근에는 MEMS 기반 항법센서와 항법장치를 개발하여 유도무기에 적용했다.
◆ 지상무기 분야
∷ 총포
국과연은 세계적 소총을 목표로 복합형 소총개발에 착수했다. 이중총열구조로 5.56mm 소총탄과 공중폭발탄을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는 신개념의 소총이었다. K11이라고 불린 이 소총은 2008년 시험평가를 마치고 규격승인을 받았으나 이후 양산과정에서 품질문제로 전력화가 중단되는 아픔이 있었다.
소화기, 전차포 등 총포 분야는 방산업체의 기술이 충분히 성숙되어 향후에는 업체주관의 개발과 성능개량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한다.
∷ 전차·장갑차
국과연은 2000년대에 들어서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순수 국내기술에 의한 세계적 수준의 차기전차 개발에 도전했다. 1995년 개념연구부터 시작하여 탐색개발을 거쳐 2008년 K2 전차의 체계개발을 완료했다. K2 전차는 기동력과 방호력, 연동작전능력이 뛰어나다. 특히 신형 특수장갑과 능동방호장치를 탑재하여 생존성이 뛰어나며 정밀 추적장비, 장포신과 날개 안정분리철갑탄으로 무장하여 높은 파괴력을 갖췄기 때문에 세계 최고수준의 전차로 평가된다. 이러한 장점으로 K2 전차 기술은 해외로 수출됐다.
[그림 17] K2 전차 사격장면
1980년대에 개발한 K200의 수명도래에 대비하고 미래 디지털 전장환경 하에서 입체 고속 기동전 수행을 위해 신개념의 전투장갑차가 요구됐다. 국과연은 1990년대 초반에 수행한 개념연구를 기반으로 개발에 나섰다. 1999년 탐색개발에 착수하여 2007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K21 보병전투장갑차로 우리 군의 기갑 및 기계화부대의 전력이 크게 증강됐다.
그 밖에 고기동 하이브리드 전술차량 개발 등 성과가 있으나 향후 이 분야의 연구개발 중심은 방산업체로 이동할 것이고, 국과연은 로봇 등 무인화 및 자율 전투체계, 지능화, 방호기술 등에 집중할 것이다.
∷ 레이저·전자력 추진
레이저·전자력 추진은 전 세계적으로도 기술이 성숙되지 않아 무기체계화가 늦춰지고 있다. 국과연은이 분야의 후발주자이지만 격차 극복과 무기체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에너지 레이저 분야에서는 고에너지 레이저 발사 장치, 발진기, 추적조준기술, 빔 제어기술 등을 산학연 합동개발하며 레이저 요격을 시연하는 수준까지 도달 했다. 전자력 추진분야도 전열추진, 플라즈마 점화, 전자력 발사 및 탄체가속, 장거리 탄체추진 기술개발과 전원소자 국산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해양·함정무기 분야
∷ 함정 전투체계 및 수중음향탐지·정보체계
미국의 이지스Aegis로 널리 알려진 함정전투체계는 독자 전투력 확보에 핵심요소다. 국과연은 1990년대부터 준비를 시작하여 함정전투체계 독자개발을 착수했다. 수송함으로부터 소형 전투함으로 그리고 중대형 함정 전투체계로 개발을 확대해 나갔다.
독도함으로 알려진 대형 수송함(LPX) 전투체계를 2007년 완료했고, 유도탄고속함용 전투체계인 검독 수리-A 전투체계를 2008년, 호위함급 전투체계를 2012년 완료했다. 전투체계 국산화는 전투체계와 연동되는 레이다, 광학추적기 등 센서와 유도탄, 함포 등 무장에 미치는 영향이 커서 그 의미는 매우 크다. 개발중인 한국형 구축함의 전투체계까지 완성하면 온전한 전투체계 독자개발능력을 확보하게 된다.
[그림 18] 울산급 전투체계 운용개념도
또한 국과연은 해군 음향정보관리체계를 개발해 전력화함으로써 수중감시정찰 능력과 대잠수함전 작전 수행능력 향상에 기여했다. 항만 감시체계도 개발하여 해군 전력증강에 기여했다. 또 예인음탐기체계와 호위함급 선체고정형 음탐기도 개발했다. 전투함용 능동소나를 독자 개발함으로써 선진국 기술종속으로부터 탈피하고 한반도 해역 작전환경에 최적화된 장비개발을 위한 기반을 확보했다.
∷ 어뢰·어뢰방어체계 및 기타
1990년대에 중어뢰 백상어를 전력화하면서 개발에 착수한 경어뢰는 2004년 ‘전투용 사용 가’ 판정을 받아 완료됐다. 청상어라고 명명됐는데, 청상어는 홍상어의 어뢰로도 사용됐다. 청상어와 백상어는 실사 과정에서 명중하지 못하는 사례가 있어 국과연은 보완 시험을 통해 전지, 소프트웨어 등을 개선했다. 또 새로운 잠수함에 걸맞는 선유도중어뢰가 요구되어 중어뢰-Ⅱ 개발에 착수하여 2019년에 개발을 완료했다. 이로 말미암아 신형 잠수함의 대함/대잠 작전능력이 크게 신장될 것으로 기대된다.
자함의 생존성을 제고하기 위해 어뢰방어체계도 요구됐는데, 자항식 기만기는 국과연에서 탐색개발까지 수행하고 이후 체계개발은 업체주도로 개발됐다.
∷ 함정·잠수함
우리나라 선박 건조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기 때문에 함정 건조에 국과연 주관은 불필요했다. 국과연은 전투체계와 무장에 주력했다. 최초 잠수정은 국과연이 주관하여 개발했으나 이후 중형급 이상은 해군이 관리하고 업체가 주관하여 기술도입생산으로 이루어졌다. 2000년대 들어 기술이 축적되자 잠수함도 국내독자개발이 추진됐다.
2004년 국과연의 개념설계 수행 후 건조는 업체 주관으로 진행되면서 국과연은 기술관리와 기술지원을 담당했다. 잠수함의 탑재장비 중 전투체계와 소나체계 등은 별도 개발했다. 잠수함 개발과정에서 국과연은 수중발사장치와 관성항법장치 개발을 주관했고 산·연주관으로 개발하는 연료전지 체계, 대용량 추진전동기, 충전발전기, 음향무반향 코팅재를 종합하는 임무도 수행했다.
◆ 항공기 분야
∷ 고정익 항공기
국과연은 기본훈련기인 KT-1을 개발하고 고등훈련기를 탐색개발까지 마쳤지만 체계개발은 업체주도로 추진됐고, 국과연은 기술관리 지원업무를 담당했다. 한국형 전투기, 일명 KF-X 보라매도 국과연 주관으로 탐색개발을 2012년까지 마쳤지만 여러 논의를 거쳐 체계개발은 업체주관으로 결정되어 추진하게 됐다.
어느 기관이 주관하든 첨단 전투기 개발은 국책사업이 될 수밖에 없고, 또 독자 개발을 추진한다는 것은 리스크의 경중을 떠나 그만큼 국가의 기술력이 올라섰다는 방증이라고 볼 수 있다.
∷ 회전익 항공기
노후화된 기동헬기를 대체하기 위해, 방위사업청 KHP사업단 주관으로 국과연 등 3개 개발주관기관이 참여하여 후속기종을 개발하게 됐다. 국과연은 기동헬기에 탑재되는 임무탑재장비 개발을 맡았다. 맡은 분야는 통신·피아식별계통, 항법계통 등 21개의 구성품과 체계통합 그리고 임무컴퓨터 통합 소프트웨어다. 개발된 품목은 시험평가를 통과하여 2012년 전투용 적합 판정을 받았다.
또한 500MD 등 육군 운용 공격헬기의 노후화에 따른 대체전력 확보를 위해 소형무장헬기 개발이 요구 됐다. 국과연은 2011년에서 2012년까지 1년 반 동안 탐색개발을 수행하여 체계 요구도를 확정했다. 이후 소형무장헬기 체계개발은 업체주관으로 추진됐다.
∷ 항공무장
항공기 탑재용 일반목적폭탄(MK-82)의 사거리를 증대시키고 폭격 정밀도를 향상시킬 수 있는 중거리 GPS 유도키트 개발이 요구됐다. KGGB(유도폭탄)는 주장비, 지원장비 및 임무계획 소프트웨어로 구성되며, 주장비는 중거리 GPS 유도키트(비행보조키트, 꼬리날개 키트), 지원장비는 명령통신장비, 체계점검장비 및 전원공급장치 충전장비로 구성됐다.
[그림 19] 중거리 GPS 유도폭탄 시험장면
국과연은 2007년 사업에 착수하여 GPS유도키트를 개발하고 유도폭탄의 항공기 장착 및 운용적합성을 입증까지 마쳤다. 개발은 2012년에 완료됐다.
∷ 무인기
적 종심지역에 대한 독자적인 영상정보수집을 위해 중고도 정찰용 무인기체계(MUAV)가 요구됐다. MUAV 체계는 비행체, 지상체, 데이터링크, 그리고 임무장비 EO·IR과 SAR로 구성됐다.
국과연은 2008년에 탐색개발에 착수하여 비행체와 지상체를 개발했다. 2012년 활주시험, 비행시험 등을 수행하여 대체로 양호한 평가를 받았다. 2013년에 체계개발에 착수했지만 구성품 도입지연과 일부 기술적인 문제가 있어 어려움을 겪었고, 이제 모두 극복하고 개발완료를 앞두고 있다. 개발이 성공하면 EO·IR과 SAR를 탑재한 중고도 정찰용 무인항공기를 확보하게 되므로, 정밀영상 획득 및 정찰임무의 지속수행이 가능할 것이다. 또한 후속 무인기 개발을 위한 기술도 축적하게 된다.
◆ 화생방 및 기반기술
화생전 위협이 증가하면서 원거리에서 광역의 화학작용제 운(雲)을 조기에 탐지해 경보할 수 있는 원거리 화학자동경보기의 연구개발이 요구됐다. 국과연은 2008년 원거리 화학자동 경보기 개발에 착수했다. 화생방정찰차 사업과 연계하여 시험을 진행하는 관계로 사업이 약간 지연되어 2012년 개발완료됐다. 원거리 탐지에 의한 사전 조기경보능력을 보유함으로써 화학전에서 전투원의 생존성 보장을 통해 군 전력 유지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화생겸용자동탐지기도 개발했다. 신형화생방정찰 차에 탑재해 신속히 화학작용제를 탐지·식별하고, 생물학작용제를 탐지·분류할 수 있는 무기체계로 2008년 개발에 착수했다. 2011년 개발을 완료했으나 신형화생방정찰차 개발완료 시까지 잠시 대기했다. 이후 신형화생방정찰차에 탑재하여 운용시험을 수행하여 2015년 사업을 종결하였다. 그 밖에 생물독소감시기도 개발했다.
그 외에도 추진분야에서 고체추진과 공기흡입추진 시스템 개발 성과는 각 무기체계에 적용하고 있고, 고에너지분야도 연구개발중이다. 탄두·신관도 탄약, 유도무기, 어뢰 및 기뢰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하며 용도에 맞는 탄두·신관 개발능력을 갖추고 있다.
소재분야도 용도에 맞게 금속·세라믹·복합재료 등을 개발하여 활용한다. 분야는 방호·방탄복용 방호소 재, 유도탄의 IR돔과 세라믹레이돔, 장갑재 등으로 다양하다. 스텔스 재료와 관련 기술도 실전 적용한 바 있으며 성능향상을 위해 개발중이다. 군용전원도 열전지를 개발하고 표준화하여 각종 무기에 적용하고 있다.
• 오늘 그리고 맺는말
오늘날 우리의 K9 자주포는 세계방산시장에서 인정받고 K2 전차도 최상위급 주력전차로 분류되며 총포 탄약과 전투차량도 우수한 품질을 인정받고 있다. 함정, 어뢰, 전투체계, 소나 등 해상무기체계도 한국의 해상상황에 맞춰 개발됐다. 우리의 유도무기는 가성비도 높고 성능도 최고 수준이다. 첨단 전투기와 AESA 등 항공무장에도 도전하고 있다. 국방연구개발 50년의 성과는 잠수함으로부터 함정과 항공기, 위성까지, 소총으로부터 유도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하다. 모두 열거하기에는 지면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개발한 주요 무기체계를 연대별로 개략 소개했다. 또 소개하지 못하는 성과들도 있다. 지면 여건상 분야별 대표적인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성과를 소개했지만, 기술적인 성과도 많다. 하나의 무기체계 완성을 위해 수많은 기술이 요구된다.
무기체계 연구개발의 배경에는 국방기술의 발전이 큰 역할을 했다. 개념이나 구상이 성과로 결실을 맺으려면 단단한 기술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과연이 집행하는 예산에 핵심기술 연구개발비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한다. 핵심 국방과학기술연구를 위해 국과연은 풍동실험실, 모의비행실험실 등 70개의 전문 연구실을 유지하고 있다.
방산업체의 기술발전은 더욱 중요하다. 든든한 산업 기반은 튼튼한 경제력과 함께 무기체계 개발성공 가능성을 높여 준다. 국방과학기술은 결국 방산업체를 통하여 구현되기 때문이다.
앞에 열거한 국방연구개발 50년의 값진 성과는 우리 산업의 기술과 능력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가능했 다. 초창기에는 군사기술과 방위산업이 산업기술을 리드했지만 최근에는 민수기술이 방산을 앞서 나가는 분야가 많아지고 있다. IT와 통신분야는 이미 방산업체에서 뛰어난 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더욱 확대될 것이다. 또한 무기체계가 복잡·다기능·첨단화되면서 국방과학기술과 민수기술의 경계가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방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에 대한 숙고가 필요하다.
국방과학기술력은 그 나라의 기술력의 총체이고 국력이다. 국방기술력 보유 순위는 강대국 순서이며 선진국 순서이기도 하다. 국방과학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는 이제 상위 10개국 안에 드는 나라가 됐다. 불모지에서 시작된 국방연구개발은 국민의 성원, 정부의 의지 그리고 국과연과 방산업체의 노력으로 오늘날 세계 9위 수준으로 성장했고, 이제 7위를 목표로 하고 있다.
기본병기를 모방 제작하던 수준은 탄도탄요격무기, 항공기 등의 첨단무기체계를 독자개발하는 수준으로, 단순 물자를 수출하던 수준은 첨단 유도무기, 함정, 항공기를 수출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미 K9 신형자주포, 천궁, 비궁 등 일부 무기체계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일부 분야에서는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나섰다.
그러나 앞으로 가야 할 길은 멀다. 국과연은 다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점에 섰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 일류이고, 급속한 기술 변화로 전쟁의 판도를 뒤집는 게임 체인저Game Changer 기술이 등장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러한 변화에 맞추어 국과연은 일반무기체계 연구개발을 과감히 축소하고 비닉무기와 첨단국방과학분야에 연구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전략·비닉 사업이라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많지만, 국과연, 방산업체 등 국방연구개발 관계자들은 사명감으로 연구개발에 임하고 있다.
국방연구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국과연과 방산업체를 향한 따뜻한 시선과 격려를 소망해 본다. 국방 연구개발 50년을 맞이하면서 앞으로의 50년은 어떠할지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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