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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松 건강칼럼 (320)... 전라도 ‘맛’ 紀行
박명윤(보건학박사, 한국보건영양연구소 이사장)
전라도 ‘맛’ 기행(紀行)
필자는 금년에 춘추가 95세이신 장인어른(李鍾恒 前 국민대학 총장(1968〜1971)을 모시고 아내와 서양화 화가인 막내딸과 함께 지난 11월 11일(월요일)부터 14일까지 3박4일 동안 전라남북도(전주-고흥반도-순천-고창-군산)를 자동차편으로 약 1200km를 여행하였다. 여행기간 동안 전라도 전통음식 ‘맛’을 음미(吟味)할 기회가 있었다.
장인(1919년 1월 生)께서는 필자가 태어나기 전인 1938년에 대구고등보통학교(현 慶北高)를 졸업(20회)하셨으므로 필자(1939년生, 39회 졸업)의 19년 선배가 되신다. 大邱高普 졸업 후 당시 우리나라 엘리트 10명만이 입학할 수 있는 만주(滿洲)건국대학 정치학과 제1기로 입학하여 1943년에 졸업하였다. 강영훈 전 총리는 건국대 제3기 졸업생이다. 이종항 박사(法學)님은 경북대 교수, 문교부 고등교육국장, 국립중앙도서관장, 국민대 총장 등을 역임하시면서 우리나라 교육발전에 이바지하셨다.
대구고보 동창생으로 가까이 지내시던 신현확 전 국무총리(2007년 별세), 김준성 전 부총리(2007년 별세), 정수창 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1999년 별세)님은 세상을 떠나셨다. 장인께서 건강하게 장수(長壽)하시는 비결은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소식(小食)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맛있게 잡수시며, 매일 약 1시간 30분씩 걷기운동을 하시고, 저녁 8시부터 약 8〜9시간 취침을 하시며, 학자로서 전문서적 등 독서를 즐기시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갑자기 초겨울 날씨를 보인 11월 11일 아침에 서울을 출발하여 전라북도 전주에 도착하여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전주여행 1번지인 ‘全州 한옥(韓屋) 마을’을 구경하였다. 국제슬로시티(slow city) 한옥마을은 도심권에 위치한 국내 최대 규모의 한옥마을로 조선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역사의 숨결이 곳곳에 녹아있는 마을이다. 700여 채의 한옥과 함께 다양한 전통문화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마을에는 경기전(慶基殿), 풍남문, 오목대, 전주향교(鄕校) 등 조선시대 유산이 즐비하게 있으며, 사적(史蹟) 제288호로 보존되고 있는 전동성당(殿洞聖堂)은 한국 천주교 순교(殉敎) 1번지로서 로마네스크 건축양식과 순교자를 채색화한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눈길을 끌고 있다.
경사스러운 터에 지어진 궁궐이라는 뜻을 담고 있는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조선왕조의 상징으로 태조 이성계 어진(御眞)이 봉안되어 있으며, 경기전 정전(正殿), 전주사고(全州史庫), 전주이씨의 시조 이한과 시조비인 경주 김씨의 위패를 봉안한 시조사당인 조경묘(肇慶廟) 등이 있다. 이성계(李成桂)는 전주이씨 시조 이한의 21대 후손이다.
전주 한옥마을이 처음 문을 연 2002년에는 관광객이 연간 31만명에 그쳤으나 매년 관광객이 늘어 올해는 510만명이 넘을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전주 한옥마을의 성공은 선택과 집중의 성과라고 전문가들은 평하고 있으며, 국내 여행의 새로운 트랜드로 자리 잡고 있다.
첫날 저녁은 전주향토음식업소로 지정된 전주비빔밥 명가(名家)인 ‘고궁(古宮)’에서 전북대 철학과 진성수 교수 가족 5명과 함께 환담을 나누면서 ‘전주전통 비빔밥’을 돌판불고기와 해물파전을 곁들여 맛있게 먹었다. 밑반찬들도 맛깔스럽고 깔끔하였다. 전주비빔밥은 사골국물로 지은 밥과 30여 가지의 재료들이 아름다운 오방색(五方色)으로 어우러져 조화로운 맛을 낸다. 비빔밥은 젓가락으로 고루 비벼서 먹으면 맛이 더욱 좋다. 식사 후 호텔로 돌아와서 이상휘 전북대 윤리교육과 교수님과 따끈한 차 한 잔을 나누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튿날 아침은 한옥마을에 인접한 호텔(Core Riviera Hotel) 식당에서 다슬기로 끓인 국물에 콩나물과 밥을 넣은 ‘콩나물국밥’을 먹었다. 전주 콩나물국밥은 뚝배기에 밥과 콩나물을 넣고 갖은 양념으로 끓여 내거나, 뜨거운 국물에 밥을 데워내는 두 가지 맛이 있다. ‘모주(母酒)’ 한잔을 곁들이면 아침 해장국으로는 제격이다.
아침 식사 후 전라남도 보성만(寶城灣)과 순천만(順天灣) 사이에 있는 고흥반도(高興半島)로 향했다. 고흥은 175개의 크고 작은 섬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다이아몬드형 반도이며, 남쪽으로는 다도해(多島海)가 그림처럼 펼쳐지는 청정해역(淸淨海域)이다. 고흥반도를 ‘지붕없는 미술관’이라 부르는 이유는 자연이 빚어낸 수많은 걸작들이 곳곳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로 우주선 발사에 성공한 나로우주센터와 우주과학관이 고흥군 봉래면 외나로도에 있다.
고흥에는 연세대학교 교목실장 겸 연세대학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하신 박명철 목사님이 퇴임 후 외나로도에 거주하고 계시며, 필자가 한국청소년자원봉사센터 소장 재임 시 함께 일한 김정배 박사(교육학)가 시호도에서 청소년 수련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오랜만에 두 분을 함께 만나 정겨운 시간을 보냈으며, 고흥읍 소재 식당에서 ‘장어탕’ 점심을 먹었다. 청정해역에서 잡은 장어 맛은 아주 좋았다.
고흥에서 순천으로 이동하여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개최된 2013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Suncheon Bay Garden Expo 2013) 현장을 방문하였다. ‘지구의 정원(Garden of the Earth), 순천만’ 주제로 지난 4월 20일부터 6개월간 열렸으며, 관람객들은 23개국 83개 정원을 만나볼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박람회 폐회식에 참석하여 성공적인 개최에 찬사를 보냈다.
세계 5대 연안 습지의 중심 순천만 갯벌과 갈대밭에는 수많은 생명체들이 자라고, 철새들이 날아와 쉬어 가는 곳이다. 정원박람회장은 도심과 순천만 사이에 조성되어 팽창하는 도심에서 순천만을 보호하는 에코벨트(eco-belt) 역할을 하고 있다. 박람회조직위원장 이만의 전 환경부장관의 주선으로 조직위 간부의 안내를 받아 한국정원을 관람하였다. 국제박람회 폐막 후 2014년 4월 새로운 형태로 개장할 때 까지 한국정원을 포함한 일부 지역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순천 시내에 위치한 호텔(Ecograd Hotel)에 여장을 풀었다. 2년 전에 문을 연 에코그라드호텔은 건물 전체 외관을 통유리로 마감하여 객실에서 시원한 전망과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녁 식사는 ‘불고기 특화거리’가 있는 인근 광양군에서 58년 전통을 이어온 ‘시내식당’을 찾아 불고기를 먹었다. ‘광양식 불고기’는 얇게 썰은 불고기를 센 불에 살짝 구워먹어야 제일 맛이 좋고, 불고기 몇 점을 넣어 끓인 광양 불고기 전통국인 ‘빨간국’을 곁들여 밥을 먹으니 맛이 더욱 좋았다.
아침 식사는 호텔 2층에 위치한 식당에서 뷔페 식사를 했으며, 객실 요금에 조반이 포함되어 있었다. 순천만 갈대밭에 가서 잠시 구경을 한 후 보성군 벌교읍으로 갔다. 벌교는 고흥반도와 순천, 보성을 잇는 삼거리 역할을 담당한 교통의 요충이다.
벌교 ‘외서댁 꼬막나라’ 식당에서 ‘꼬막 정식’을 먹었다. 1인분 15,000원인 꼬막정식에는 꼬막회무침, 꼬막탕수육, 꼬막전, 양념꼬막 등으로 푸짐한 상차림이 나왔다. 꼬막은 참꼬막, 새꼬막, 피꼬막 등 세 종류가 있으며, 임금이 먹는 수라상에 진상되거나, 조상의 제사상에 올리던 것이 참꼬막이다. 꼬막은 찬바람이 부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가 제철로서 11월부터 3월까지 주로 생산된다.
점심 식사 후 식당 부근에 위치한 ‘조정래 태백산맥 문학관’을 관람하였다. 문학관 건물은 자연스럽고 절제된 건축양식이었다. 작가 조정래(趙廷來ㆍ1943년 전남 승주군 선암사에서 출생)는 동국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1970년 현대문학 추천으로 등단하였다. 대하소설 태백산맥(太白山脈)은 여순사건이 있었던 1948년 늦가을 벌교 포구를 배경으로, 제석산 자락에 자리 잡은 현부자네 제각(祭閣) 부근에서부터 시작하여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던 1953년 늦은 가을까지 우리 민족이 겪었던 아픈 과거를 반추(反芻)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벌교를 출발하여 조계산도립공원에 있는 선암사와 송광사를 찾았다. 송광사(松廣寺)는 우리나라 삼보 사찰이라 불리는 이름이 높은 절이다. 불교에서 삼보란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한다. 송광사는 승보(수계사찰), 통도사는 불보(진신사리), 해인사는 법보(팔만대장경) 사찰이다. 송광사의 송광(松廣)에는 18명의 큰 스님이 배출되어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널리 펴나갈 훌륭한 사찰이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법정 스님도 송광사에서 기거하였기 때문에 다비식(茶毘式)도 이곳에서 거행했다.
선암사(仙巖寺)는 542년(신라 진평왕 3)에 아도 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따르면 875년(헌강왕 1)에 도선(道詵) 국사가 남방비모를 위해 경상남도 진주 영봉산의 용암사, 전남 광양 백계산의 운암사와 함께 선암사를 창건했다고 한다. 이 절은 1911년 조선총독부가 발표한 사찰령에 따라 31본산 중의 하나가 되었다.
저녁에 고창(高敞)에 도착하여 선운사(禪雲寺) 인근 숙소에 여장을 풀고 ‘풍천장어’로 유명한 신덕식당을 찾았다. 풍천장어 1인분에 3만2천원으로 고추장구이와 소금구이만 있었다. 우리 가족이 즐겨 먹는 간장구이는 없어 고추장구이와 소금구이 2인분씩 주문하였다. 선운사 인근 식당들은 대부분 ‘풍천장어’ 간판을 내걸고 영업을 하고 있었다.
전북 고창군을 흐르는 주진천(인천강)과 서해(西海)가 만나는 고창군 심원면 월산리 부근에서 잡히는 뱀장어를 ‘풍천장어’라고 부른다. 즉 인천강에 하루 2번 바닷물이 들어오는데 자연산 장어가 바닷물과 바람을 함께 몰고 들어온다고 해서 바람(風)자와 내(川)자를 써서 ‘풍천장어’라고 불렀다고 한다.
11월 14일 여행 일정의 마지막 날 아침 일찍 선운사를 찾았다. 선운사는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검단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선운사 인근에는 헐벗고 굶주린 백성들이 많았는데, 검단선사가 그 백성들을 교화하여 불법(佛法)으로 인도하고 소금 만드는 법을 가르쳐 생계를 유지하게 하였다고 한다. 그 후 생활의 터전을 마련한 주민들은 마을 이름을 검단리라 하고 검단선사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1500년 동안 선운사 부처님께 소금 공양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선운사 옆 등산로를 따라 약 2km를 들어가면서 새벽 서리를 맞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단풍(丹楓)을 감상하였다. 비가 내리고 추위가 와락 찾아와 단풍의 절정이 어느 정도 지나간 상태지만 단풍은 아직 아름다웠다. 단풍을 사진에 담는 사진작가들을 만날 수 있었다. 아침은 단풍을 찍기에 가장 안성맞춤인 빛으로 가득한 시간으로, 비스듬하게 떨어지는 빛은 단풍을 한층 더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해준다고 사진작가들은 말한다.
선운사 방문을 마치고 아침을 백합죽을 먹었다. 전북 부안에서 채취하는 고급 조개인 백합(白蛤)이 유명하고 맛이 좋다. 전복이 ‘조개의 皇帝’라면 백합은 ‘조개의 女王’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다. 백합 조개는 알이 크고 굵으며 부드럽고 깊은 맛을 내므로 구이로 해서 먹거나, 국을 끓여도 매우 맛있다. 백합조개 껍데기로 만든 흰 바둑알은 바둑알 중 최고급품으로 친다.
아침 식사 후 고창 ‘고인돌박물관’과 고인돌유적(遺蹟)을 돌아보았다. 고창 고인돌유적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형태의 고인돌을 접할 수 있는 세계에서 유일한 곳이다. 고인돌 분포가 조밀하고 거석화된 고인돌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어 학술적 가치를 더하고 있다. 또한 선사시대(先史時代) 우리 선조들의 삶을 조명하고 묘제(墓祭) 양식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국내 유일의 고인돌박물관에서는 청동기시대(靑銅器時代)의 각종 유물 및 생활상과 세계의 고인돌문화를 살펴볼 수 있다.
고창(高敞)에서 전북 군산(群山)으로 이동하여 유명한 제과점 ‘이성당(李盛堂)’에 12시 30분경에 도착하였으나 그 유명한 ‘앙금빵’과 ‘야채빵’을 매진되고 오후 3시에 빵이 나온다고 고지되어 있었다. 오후 3시까지 기다리기에는 귀경 시간이 늦어져 앙금빵과 야채빵 구입은 포기하고 다른 종류의 빵과 과자류를 잔뜩 구입하고 118,600원을 지불하였다.
이성당은 1920년대 초반 이즈모야제과점이 운영한 곳에 1945년 광복이후 ‘이성당’이란 상호로 운영하여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빵집이다. 서양에서 유입된 빵을 이렇게 오랜 기간 이어 온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앙금빵’은 어디에서도 구경하기 힘든 앙금빵 속 앙금의 양과 쌀가루로 만든 피는 진품으로 군산시민들의 사랑을 받아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 앙금빵이 되었다. 또한 ‘야채빵’은 웰빙빵으로 인기가 높다. 이성당은 대로변에 위치한 2층 건물이며, 약 70명 종업원이 근무하고 있다.
떡갈비 점심을 먹고 군산 주요 도로를 따라 시내 구경을 하고 서울로 출발하였다. 서울에 도착하니 오후 5시가 넘었다. 즐겁고 추억에 남는 가족여행을 무사히 마쳤다.
글/ 靑松 朴明潤(서울대학교 保健學博士會 고문, 대한보건협회 자문위원)
<청송건강칼럼(320). 2013.11.19. www.nandal.net www.ptc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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