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어민들의 약속 증서 「1909년 항리동(項里洞) 증명서(證明書) 3건」(32)>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구한말 1909년(융희 3년) 5월에 작성된 3건의 특이한 문건이 있다. 이 3건 모두 일본인과 조선인 항리 주민과의 사이에서 맺어진 증서들이다. 민간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이 3건의 문건은 사료적 가치가 큰 기록물이다. 증명서(證明書) 중에 「계약서(契約書)」는 전통 사회에서 ‘약속이나 합의 사항’을 서면으로 기록한 문서이고, 개인 간 거래인 사적 문서 「명문문기류(明文文記類)」는 주로 ‘재산권 중심’이다. 또한 계약서는 고용, 대차(빌리고 빌려줌), 동업 등 다양한 형태의 사회적 약속을 포괄한다.
먼저 1909년 5월 2일,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항리 마을(項里洞) 주민들과 일본 에히메현 어도촌(魚島村) 어민들 사이에 체결된 '일한인상약(日韓人相約)' 증명서 「1909년 항리동(項里洞) 증명서(證明書)」다. 당시 일본 어민들이 한반도 연안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어민들 사이의 마찰을 방지하고, 상호 공존을 위해 작성된 일종의 민간 자치 규약이다. 만약 양측 간에 폐단(싸움)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먼저 자체 재판을 거친 후 관가(公庭)에 보고하여 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서로 상업적으로 협력하되, 조선인 부녀자를 희롱하지 말 것이며, 일본인과 조선인이 서로 싸우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약속 증명서다. 구한말 이주한 일본 어민과 당해 마을에서 맺어진 증명서(證明書)로 국가‧민간적 차원에서 사료로써 가치가 큰 문서다.
그리고 「1909년 황성립(黃性立) 수표(手標)」는 1909년(융희 3년)에 작성된 민간의 대출 계약서로, 조선인 채무자가 일본인에게 빌린 돈 75냥과 이자를 기일 안에 갚지 못하면 집 앞의 터(洞基) 외 나머지 땅(餘地)을 일본인에게 영구히 넘겨줄 것을 약속한 수표(手標, 증서)다. 구한말 당시 조선인이 일본 이주 어민에게 돈을 빌리면서 토지를 담보로 대출을 하였고 또 이러한 내용을 표사(標事)한 문서를 남겼다. 역사적으로 희귀하며 거제도의 소중한 향토사 기록물이다.
또한 「1909년 촌상죽차랑(村上竹次郞) 계약서(契約書)」는 항리(項里) 마을 주민 12분과 일본인 측량사 무라카미 다케지로(村上竹次郞)가 체결한 산림 측량 위탁 계약서다. 대한제국 말기 일제가 시행한 산림 약탈의 전초 단계인 산림 조사 및 소유권 신고 사업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사료다. 측량 時 그 비용을 해당 토지 소유자 조선인이 지불한다는 내용이 주(主)다.
참고로 「1909년 항리동(項里洞)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문건은 1909년(기유년) 항리 해안가의 부지 '절목강변'이라 불리는 땅을 상업적 목적(상업흥리차)으로 사용하기 위해 일본인 사업가가 마을 공동체(동중)로부터 연간 임대료 10원에 임대한다는 토지매매명문(土地賣買明文) 토지 임대차 계약서다.
이 문서는 1909년 대한제국 말기,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던 시기에 거제도 연안에서 일본인의 경제 활동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보여주는 사료다. 특히 개인이 아닌 마을 공동체(洞中)가 주체가 되어 외국인과 계약을 맺고 수익을 관리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사실상 국권이 넘어간 이 당시 일본인들의 어업권 침해에 대해, 항리 동중(洞中)이 일본 애원현(愛媛縣) 어민들과 맺은 협정문이다. 여기에서 항리 동중(洞中)은 일본 에히메현 오치군 우오시마촌(愛媛縣 越智郡 魚島村) 출신 어민 오오바야시 신페이(大林新平) 등과 서로 형제의 도리로 어업에 종사하되 만약 작폐하는 자가 있으면 먼저 재판한 후에 공정(公庭, 관가의 뜰)에 보고하여 법에 따라 시행하자며 5가지 조항을 결의하였다.
(1) 「1909년 항리동(項里洞) 증명서(證明書)」 문건은 일본 애희현 월치군 어도촌과 일본 애히메현 오치군 사람들이 작성했으며 항리동(項里洞)이 수취한 문건이다. 1909년(메이지 42년) 5월 2일, 경상남도 거제시 일운면 항리마을(項里洞) 주민들과 일본 에히메현 어도촌(魚島村) 어민들 사이에 체결된 '일한인상약(日韓人相約)' 증명서다. 당시 일본 어민들이 한반도 연안으로 대거 진출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마찰을 방지하고, 상호 공존을 위해 작성된 일종의 민간 자치 규약이다. 내용인즉, 에히메현 출신 어민(히요시 주타로, 오바야시 신페이 등)들과 항리마을 주민들이 수백 년간 형제 같은 의리로 평온하게 지내왔음을 확인하며, 향후 분쟁을 막기 위해 약속하였다. 만약 양측 간에 폐단(싸움)을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먼저 자체 재판을 거친 후 관가(公庭)에 보고하여 법대로 시행하기로 했다. 이 문서는 구한말 일본 어민의 이주 양상과 당시 마을 단위에서 이루어진 초국가적 질서 유지 노력을 보여주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1909년 항리동(項里洞) 증명서(證明書)」** 원문(原文)
*[증명서] 우측 증명하는 바는, 대일본 제국 에히메현 어도촌(魚島村)의 히요시 주타로, 히요시 다쓰지로, 요코이 요네지, 요코이 쇼헤이, 오바야시 젠사쿠, 오바야시 신페이 등이 이곳 항리 마을 사람들과 더불어 서로 고기잡이를 해온 지 비록 수백 년이 지났으나, 마치 형제와 같은 의리로 폐단 없이 편안히 지내왔습니다. 추후에 혹시나 우리 양측 사이에 서로 약속을 어기거나 폐단을 끼치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마을에서) 재판한 뒤에 즉시 관가에 보고하여 법에 따라 시행하기로 합니다. 이에 일본인과 한국인이 서로 약속한 사항을 아래와 같이 기록하여 증명합니다. 메이지 42년(1909년) 5월 2일.
*[약속 사항]
1) 부녀자가 왕래하는 길에서 술 취해 행패를 부리거나 무례한 말을 하지 말 것.
2) 어업에 있어 서로 상업적으로 협력할 것.
3) 마을 앞에서 옷을 벗고 다니지 말 것.
4) 일본인과 한국인은 서로 싸우지 말 것.
5) 소나 개 같은 가축을 해치거나 상처 입히지 말 것.
항리동 주민 대표(殿). 대일본 에히메현 오치군 어도촌 : 오바야시 신페이, 오바야시 젠사쿠, 요코이 쇼헤, 요코이 요네지, 히요시 다쓰지로, 히요시 주타로, 미타라이 도토쿠.
[証明書 右証明段은,大日本愛媛縣魚島村日吉重太郞ㆍ日吉辰治郞ㆍ橫井米治ㆍ橫井庄平ㆍ大林善作ㆍ大林新平等, 此與本洞人民으로, 互相漁業에, 雖過幾百年이라되, 如兄弟之誼로, 無弊安過, 而追後에, 若有彼我間에, 相違作弊之人이면, 先爲裁判後에, 卽報告公庭依法施行ᄒᆞ고, 日韓人相約事ᄂᆞᆫ, 謄錄左開ᄒᆞ니, 以此証明할, 事. 明治四拾貳年五月二日 左開
一. 婦人來往路에, 勿爲醧辱悖說할, 事.
一. 漁業을, 互相商業할, 事.
一. 洞前에셔, 勿爲脫衣行步할, 事.
一. 日韓人이, 勿爲相鬪할, 事.
一. 牛犬을, 勿爲害傷할, 事.
項里洞中殿 大日本愛媛縣 越智郡魚島村 大林新平〔圖書〕 大林善作〔圖書〕 橫井庄平〔圖書〕 橫井米治 日吉辰治郞〔圖書〕 日吉重太郞吉 御手洗道德]
(2) 「1909년 황성립(黃性立) 수표(手標)」
다음 「수표(手標)」는 동장(洞長)이 수취인으로, 1909년(융희 3년)에 작성된 민간 대출 계약서 표사(標事)다. 채무자가 일본인에게 돈을 빌리며 담보를 설정한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의 시대상을 보여주는 문서로, 일본인의 경제적 침투와 그에 따른 민간의 토지 담보 대출 상황을 잘 나타내고 있다.
**「1909년 황성립(黃性立) 수표(手標)」**
융희 3년(1909년) 음력 7월 22일, 동장(洞長) 앞에서 작성한 표제(계약서)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일본인 야마우치(山內) 씨에게 빌린 돈 75냥에 대하여, 이자를 합쳐서 오는 9월 20일까지 만약 갚지 못한다면, 집 앞의 터(洞基) 외의 나머지 땅(餘地)을 영구히 넘겨줄 것을 약속합니다. 돈을 빌린 사람(표주) : 황성립 (인장). 증인 : 김무현 (인장). 글을 쓴 사람(집필) : 김석여 (서명)
[隆熙三年陰七月二十二日洞長前標 右標事은, 日人山內公處에, 借用錢柒拾伍兩을, 幷利하야, 來九月二十日 限內若不報則家前洞基外餘地을, 永爲許給事. 標主黃性立〔圖書〕 證人金珷現〔圖書〕 執筆金碩汝〔着名〕[際]]
[주1] 융희 3년(隆熙 三年) :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의 연호로, 서기 1909년에 해당한다.
[주2] 표사/표제(標事) : 권리나 의무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작성하는 일종의 차용증이나 계약서다.
[주3] 동기(洞基) : 집이 세워진 마을의 터(대지)를 의미함.
[주4] 영위허급(永爲許給) : 영구히 소유권을 넘겨준다는 뜻, 현대의 '대물변제' 또는 '소유권 이전' 계약에 해당한다.
(3) 「1909년 촌상죽차랑(村上竹次郞) 계약서(契約書)」
이 문건은 1909년(융희 3년) 당시 칙령 제19조에 의거하여 자기 소유 산림의 면적을 측량하고 도면을 첨부하여야 하기에, 거제시 일운면 항리(項里) 마을 주민들과 일본인 무라카미 다케지로(村上竹次郞) 사이에 체결된 산림 측량 위탁 계약서다. 이 계약은 대한제국 말기 일제가 시행한 산림 약탈의 전초 단계인 산림 조사 및 소유권 신고 사업의 실상을 잘 보여주는 사료다.
**「1909년 촌상죽차랑(村上竹次郞) 계약서(契約書)」**
<계약서>. 본 문서에 기재된 조항을 서로 확실히 약속하고 이행하기 위하여, 본 계약서 두 통을 작성하여 각기 한 통씩 소유하고 준수할 것.
제1조
한국 산림 소유자는 융희 2년(서기 1908년) 1월 21일 칙령 제19조에 의거하여, 융희 5년(서기 1911년) 1월 20일까지 자기 소유 산림의 면적을 측량하고 도면을 첨부하여 농상공부대신에게 인허가를 청원하는 일로 인하여, 위탁자의 소유 산림 전부 측량 업무를 무라카미 다케지로(村上竹次郞)에게 위탁하고, 보수는 10평에 대하여 금 5리(厘)로 정하며, 측량 도면과 교환하여 수탁자에게 지급하되, 만약 중도에 본 위탁을 취소하고자 하면, 배약금(계약 파기금)으로 각자 50원을 수탁자에게 지불할 것.
제2조
수탁자는 해당 칙령에서 정한 기한 전 60일을 기한으로 하고, 위탁자를 입회시켜 실제 토지를 모두 측량하여 도면을 제작하고, 이를 위탁자에게 교부하되, 만약 수탁자가 게을리하여 본 기한 내에 도면을 교부하지 못하면, 각 위탁자에 대하여 위약금으로 50원씩 지불할 것. 융희 3년(서기 1909년) 월 일.
메이지 42년(서기 1909년) 월 일. 한국 마산포 각국 거류지 수탁자 무라카미 다케지로(村山竹次郞) [도장]. 위탁자 항리(項里) 이장 강영주(姜䁐周) [도장]. 동(同) 강성로(姜性老) [도장]. 동(同) 노태옥(盧泰玉) [도장]. 동(同) 노재헌(盧在憲) [도장]. 동(同) 노정수(盧正守) [도장]. 동(同) 강석연(姜石連) [지장]. 추원길(秋元吉) [지장]. 황성립(黃性立) [도장]. 박혹이(朴或伊) [도장]. 이화백(李花白) [착명][지장]. 노수율(盧守律) [도장]. 강내홍(姜乃弘) [도장].
[契約書. 這回左記書項을, 互相確約履行ᄒᆞ기, 爲ᄒᆞ야, 本契約二通을, 作ᄒᆞ야, 各기, 一通式領有遵守할, 事.
一. 韓國山林所有者은隆熙二年一月二十一日. 勅令第十九條에, 依ᄒᆞ야, 仝五年一月二十日거치, 自己의, 所有山林의, 面積을, 測量ᄒᆞ야, 圖面을, 添付ᄒᆞ야, 農商工部大臣게, 認許請願事로, 以ᄒᆞ야, 委託者의, 所有山林全部測量事을, 村上竹次郞에게, 委託ᄒᆞ고, 報酬은, 拾坪에, 對ᄒᆞ야, 金五厘으로, 定ᄒᆞ고, 測量圖面과, 引換ᄒᆞ야, 受託者에게, 交付ᄒᆞ되, 若中途에, 本委託을,取銷코ᄌᆞᄒᆞ면, 背約金을, 各自五十圓을, 受託者예게, 支拂할, 事.
一. 受託者은, 該勅令의, 定ᄒᆞᆫ, 期限前六十日을, 限ᄒᆞ고, 委託者을, 立會ᄒᆞ고, 實地을, 皆測量ᄒᆞ야, 圖面을, 作製ᄒᆞ야, 此을, 委託者에게, 交付ᄒᆞ되, 若受託者가, 懈怠ᄒᆞ야, 本期日內에, 圖面을, 交付치못ᄒᆞ면, 各委託者에, 對ᄒᆞ야, 違約金을, 五十圓式支拂할, 事. 隆熙 三年 月 日. 明治 四十二年月 日. 韓國馬山浦各國居留地 受託者村山竹次郞〔圖書〕 委託者項里里長姜䁐周〔圖書〕 仝[項里里長之章]姜性老〔圖書〕 仝盧泰玉〔圖書〕 仝盧在憲〔圖書〕 仝盧正守〔圖書〕 仝姜石連[指章] 秋元吉[指章] 黃性立〔圖書〕 朴或伊〔圖書〕 李花白〔着名〕[指章] 盧守律〔圖書〕 姜乃弘〔圖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