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2. 인류를 위해 살아 온 비참한 생애
예수님이 뜻을 이룰 수 없어 “아바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막 14:36) 하면서 당신의 뜻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이룩되지 못한 안타까움을 말했던 그 내정의 뒷 골목까지 파헤칠 수 있는 내용을 지니고 나온 것이 통일교회 교리입니다.
그 내정을 갖고 결의하며 나서게 될 때, 하나님이 동정을 아니 할 수 없는 진리를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개척자의 사명과 선각자의 사명으로 더듬어 오면서도 통일교회 지도자인 문 아무개는 외로운 자리에 부딪치는 것을 일체 말하지 않았습니다.
생명을 거는 놀음을 했지만, 나는 외로운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여러분의 동정도 필요치 않습니다.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천지의 대주인이신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기 때문에 아무리 고문을 받아서 피를 흘리고, 몸이 찢기고, 힘줄이 끊어지던 자리에 들어가도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그런 자리에 내세운 당신의 심정은 그 이상 더 애달플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에 불행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하늘을 위로할 수 있는 나라를 찾겠다고 허덕이고 있었으니 아무리 고문이 심해도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엇갈린 십자가의 길이 가로놓이더라도, 그 십자가의 길이 나를 패배의 어려움과 절망의 환경으로 몰아넣더라도 나는 거기에서 새로운 결심과 새로운 소망을 가지고 가겠다고 결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핍박의 길이 문제가 아니고, 죽음의 길이 문제가 아닙니다. 단 한가지 문제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랑하는 것만 알 수 있다고 할진대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식을 죽을 자리에 내버려두는 법은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고생을 시키더라도 그 자식이 최고 행복의 길을 가게 하려니, 형제들 누구도 참소하지 못하게끔 하여 자연적인 순응의 조건을 세워 가지고 공인을 받게 하려니 남이 가지 못하는 수난 길을 가게 하고 남이 받지 못하는 핍박을 받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65-91~92, 1972.11.13)
감옥생활을 해 보면 석방되는 날이 얼마나 그리운지 모릅니다. 나가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거 하나가 취미입니다.
형량이 10년이라면 9년 364일이 됐다, 3일 됐다, 60일 넘어갔다, 9년 넘어간다 하는 그게 재미라는 것입니다.
어서 빨리 정월 초하룻날이 돼서 대접은 못 받더라도 돼지가 발자국 소리를 내고 건너간 국이라도 마시고 싶은 것입니다. 돼지 고깃국이 아니라 돼지가 밟고 건너간 국이라도 먹고 싶다는 말입니다.
교도소 같은 데서는 돼지가 건너간 그런 국물을 먹이는 날이 정월 초하룻날입니다. 그러니까 그 국물을 한 번 먹었다, 두 번 먹었다고 하면서 “어떻게 아홉 번을 지내나?” 라고 생각한다는 겁니다.
아홉 번이 지나고 10년이 가까워지면 밤에 잠을 못 잡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나도 감옥생활을 많이 했지만 그렇게 그리워하지는 않았습니다. 나 같은 사람은 태평이었습니다.
면회를 오겠으면 오고 말겠으면 말고, 배가 고프겠으면 고프고 안 고프겠으면 안 고프라고 한 것입니다. 배가 고픈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배고픈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고문을 받던 자리에서 매를 맞으면서도 매를 맞는 것보다 더 심각한 것이 있었기 때문에 매 맞던 것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256-189, 1994.3.13)
무엇 때문에 그렇게 살았습니까? 뜻길에 한치라도 마이너스가 될 수 있는 길을 남기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죽을 수 있었던 순간에도 뜻길에 보탬이 됐다 이겁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마 26:39) 하는 기도를 나는 못 합니다. 그런 기도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기도를 안 합니다. 피를 토하는 고문을 받고 그 피를 내 손에 묻히면서도 “내가 아직까지 죽지 않습니다. 피를 흘린다고 하늘이여, 걱정 마소! 하늘의 지원을 받기를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나보다 비참합니다.
당신의 해방의 날을 위해서 피를 열 번이라도 흘려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는 걸 압니다.” 하면서 위로하려고 했습니다.
밤에 달을 바라보나 별을 바라보나 하늘을 바라보면서 서러운 눈물이 천년만년 사무치는 듯 했습니다. 눈물 없이 별 자리를 볼 수 없고 달을 볼 수 없었던 삶을 살았습니다. (281-83~84,1997.1.2)
선생님의 생애를 두고 보면 감옥도 많이 가서 고문도 많이 받았지만 ‘이 자리에서 죽으면 큰일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 그랬느냐? 상처를 입고, 몸에 고문 자국을 남긴 자리, 신음하던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문제가 컸다는 것입니다. 그런 탕감복귀의 길을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죽음을 넘을 수 있는 감동과 충격의 눈물을 흘리게 되면, 하늘이 모든 것을 수습해 주던 것을 많이 느꼈습니다. 고문이 문제가 아니고, 자기 고통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명을 남기고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것을 생각해 봤습니까? 여러분이 지금까지 활동한 것, 정성껏 하늘에 기억될 수 있는 날들을 남겼다는 것을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 심정적 자리, 그런 체휼적 자리가 10년 전이나 20년 전이었다면 “오늘은 내가 왜 이렇게 됐느냐?” 하는 것을 비교해 봐야 됩니다.
그때 여러분의 심정 기준은 공적인 뜻을 위하여 생각하던 것으로서 오늘날 뜻을 위하는 생각과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됩니다. (276-13, 199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