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베껴쓰기_327] 대들보 / 고두현 논설위원 / 한국경제 / 2015.12.23
큰 재목이 될 만한 인물을 동량지재[棟(마릇대 동) 梁(대들보 량) 之(갈 지) 材(재목 재)]라고 부른다. 마룻대(용마루) 동(棟)에 들보 량(樑)이니, 건물의 힘을 가장 크게 지탱하는 뼈대다. 들보 중에서도 대들보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큰 들보를 말한다. 건물 중앙의 힘을 받쳐 주는 가장 중요한 구조물이므로 나무도 제일 좋은 것으로 쓴다.
한자로 들보 량[樑(들보 량)]은 물 위에 걸쳐 놓은 나무, 즉 다리를 뜻한다. 교량[橋(다리 교) 梁(대들보 량)이라는 한자말도 여기에서 나왔다. 물의 이편과 저편을 가로지르는 다리처럼 가로축의 힘을 가장 크게 받는 게 대들보다. 주춧돌 위에 기둘을 세우고 중앙에 대들보를 달아 올리면 건물의 골격이 완성된다. 요즘으로치면 콘크리트 골조가 완성되고 이후 내부 공사가 시작된다.
대들보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옛말도 많다. '기와 한 장 아끼다 대들보 썩힌다'는 말은 사소한 것을 아끼다 낭패 보는 어리석음을 빗댄 것이다. '노랫소리가 3일이나 사라지지 않고 대들보를 두르고 있다'는 요량삼일([繞(두를 요) 梁(대블보 량) 三(석 삼) 日(날 일)]은 매우 아름다운 노랫소리를 의미한다. 손자병법 36계에 나오는 투량환주([偸(훔칠 투) 梁(대들보 량) 換(바꿀 환) 柱(기둥 주)]·대들보를 훔치고 기둥을 바꾼다)는 겉을 그대로 두고 본질을 바꿔 놓음으로써 승리하는 전략이다. 대들보 위의 도둑을 점잖게 부르는 양상군자[梁(대들보 양) 上(위 상) 君(임금 군) 子(아들 자)]도 유명하다.
이처럼 중요한 대들보를 올리는 의식이 상량식[上(위 상) 梁(대들보 량) 式(법 식)]이다. 안전과 번영을 기원하는 글을 새겨 넣고, 떡과 술을 준비해 고사를 성대히 지내는데, 이때 '龍(용)'자와 '龜(구)'자를 함게 새긴다. 용과 거북이 '물의 신'이어서 화재를 막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저께 롯데월드타워 123층에 올린 대들보에도 '龍(용)'과 '龜(구)'자가 새겨져 있다. 7m 길이의 철골 대들보에 일반 시민들의 소망도 함께 적혔다. 오복을 내려 달라는 옛 문구와 달리 '대학 가게 해주세요' '연애하게 해주세요' '스트레스 안 받고 건강하고 행복하게' 등 애교 섞인 문구가 많아 시대 변천을 실감케 한다.
국내 최고층 건물의 대들보가 착공 5년 2개월 만에 올랐으니 상량식 주제가 '가장 위대한 순간'이라고 할 만하다. 땅을 마련하고 대들보를 얹기까지 30여년이 거렸다. 그런 만큼 감회도 남달랐을 것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한 해 200만명의 해외 관광객이 찾고, 2만여명의 고용 효과와 내수 활성화까지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처럼 한 기업의 차원을 넘어 국가경제에 기여하고 우리나라의 국격을 높이는 랜드마크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